문화유산 답사기.(경남)

경남 의령군 곽재우 장군 및 휘아 17 장군 위패를 모시고 있는 '충익사' 의 방문.(2)

용암2000 2024. 5. 12. 14:03

2024년 5월 9일.(목요일)

3. 충익사를 돌아보면서.

의령소바 본점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즐긴 일행은 승용차를 이용하여 '층익사(忠翼祠)' 를 방문하기로 하는데, 충익사는 의령읍(宜寧邑)시가지를 관통하여 흐르고 있는 의령천 건너편 남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 '충익사' 앞에 자리하고 있는 의병교 >

충익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의령천을 가로질려 만들어져 있는 의병교(義兵橋)를 건너가야 하는데, 의병교를 건너가면 왼편 방향으로 주차장을 알리는 지시표 따라 조금 내려가면 거대한 주차장에 도착한다.

 

1) 의병탑을 지나면서.

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나서 의병교 까지 걸어가면 왼편 야산 기슭로 거대한 높이를 가지고 있는 '의병탑(義兵塔)' 이 서 있는데, 탑의 높이가 27m에 폭이 5.5m로 중앙에 원형고리 18개가 만들어져 있다.

< 충익사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의병탑' >

의병탑은 1592년에 발생한 임진왜란 초기에 이곳 의령 출신의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 장군이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는데, 그의 휘하에서 활동한 17명의 장군과 함께 충의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72년 군민의 성금으로 건립하였다.

< '의병탑' 의 건립 취지문 >

2) 충익사의 관람.

이곳 의병탑에서 부터 상부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충익사 영역을 표시하고 있는 홍살문을 만나고 홍살문을 지나 조금 더 내부로 들어가면 '충의문(忠義門)' 을 만나는데, 충의문 왼편으로 충익사 연역을 기술하고 있는 안내문과 함께 조감도가 붙어있다.

< 충익사 입구에 만들어져 있는 '홍살문' >

< 충익사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충의문' >

조감도에 따르면 충익사에는 입구에서 만난 의병탑 및 홍살문이 자리하고 있고, 충의문 내부에는 곽재우장군유적정화기념비, 충의각, 사당, 기념관, 의병박물관을 비롯하여 다양한 보조 건물들이 함께 하고 있다.

< 충의문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안내문' >

< '충익사' 의 조감도 >

충익사 연역에 따르면 의령읍 남산 기슭에 위치한 충익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킨 의병장 곽재우 장군과 그 휘하 장병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써, 규모는 면적 약 8.000평(23,600m²) 이며 9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곽재우(郭再祐) 장군은 1552년 8월 28일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서 감사 곽월(郭越)의 아들로 출생했는데, 선생님은 문무(文武)을 겸비하고 있는 선비이라 하겠다.

그는 1592년 4월 13일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이 별다른 저항없이 서울로 진격하자 '나라를 지키는 일을 관군에게만 맡길 수 없다' 고 하면서 분연히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 침공을 막아 내는데 크게 기여했다..

장군은 붉은 옷에 백마를 타고 휘하에 17명의 장군과 수천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정암진, 기강, 현풍, 창녕, 화왕산성, 진주성 등 전투에서 뛰어난 전략과 전술로 일본군을 크게 무찌르므로써, 일본군의 전라도 지방 진격을 저지했다.

붉은 옷을 입은 장군이라 하여 ‘홍의장군(紅衣將軍)' ’이라고도 부르는데, 곽재우는 남명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임진왜란 중인 1593년에는 성주목사 및 1597년에는 경상우도 방어사를 맡았다.

임진왜란 후가 되는 1605년에는 한성부우윤 및 1610년에는 함경도 관찰사로 임명되어 일시 재직하였지만, 그 외에 여러 관직이 주어졌으나 부임하지 않았으며 사후 병조판서의 직위가 내려졌다.

< '충익사' 내력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3) 유적정화기념비의 구경.

충의문을 지나면 넓은 광장에 도착하면서 광장의 왼편으로 먼저 '곽재우장군유적정화기념비(郭再祐將軍遺蹟淨化記念碑)' 가 서 있는데, 기념비에는 의령지역 의병의 공적을 알리기 위해 1976년 9월 14일 국가차원의 유적지 정화사업이 결정되었다.

< 충의문을 지나면 만나는 '광장' >

1977년 10월 5일에 정화사업이 시작하여 그로 부터 1년 뒤가 되는 1978년 12월 22일 충익사 정화사업이 완료되면서 이날 정화기념비 제막식이 거행 되었는데. 비면(碑面)에는 충익공 '곽재우' 장군의 일대기가 기술되어 있다.

< 사당 내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곽재우장군유적정화기념비' >

4) 충의각을 돌아보면서.

곽재우장군유적정화기념비 옆에 있는 목조건물은 곽재우 장군과 17명의 장군 직명과 고향 등이 적힌 명판을 보관한 '충의각(忠義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극락세계를 염원하는 상여 모양을 하고 있는 건물로 1978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 상여 모양을 하고 있는 '충의각' >

< '충의각' 을 안내하고 있는 설명문 >

5) 사당을 보면서.

충의각에서 옆으로 이동하면 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사당(祠堂)' 건물을 만나는데, 사당 내에는 20위(位)의 의병장 신위(神位)가 봉안되어 있으면서 이중 2위는 무명의 의병 신위이다.

< 사당의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솟을대문의 '홍의문' >

나머지 18신위 중 앞에서 소개가 된 곽재우장군을 제외한 17명의 장군 명단과 함께 약력을 기술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매년 음력 4월 22일 추모 제향(祭享)을 드리고 있다고 한다.

< 20명의 신위를 모시고 있는 '사당' >

6) 기념관을 돌아보면서.

충익사 내에서 제일 안쪽으로 들어가면 '기념관(記念館)' 건물을 만나는데,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곽재우 장군의 생가를 비롯하여 장군의 유적지(遺跡地) 등을 표시 하고 있는 지도가 붙어있다.

< 충익사 내에서 제일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기념관' >

< 기념관으로 들어가면 먼저 만나는 '곽재우 장군 유적지' 지도 >

기념관 오른편으로 들어가면 먼저 곽재우 장군의 일대기를 기록한 내용의 비석(碑石)을 탁본한 액자가 비치되어 있고, 더 내부로 들어가면 각종 전투에서 승리한 전적도 5폭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 곽재우 장군의 일대기를 기술한 비석의 '탁본' >

< '기념관' 내부의 전경 >

< 회의를 하고 있는 '의병창의도' >

< 붉은 옷을 입고 있는 '곽재우 장군' >

 

< '정암진 전투' 의 그림 >

< '기강 전투도' 의 그림 >

< '화왕산성 대치도' 의 그림 >

기념관 왼편의 출구 방향으로 나오면 곽재우 장군이 마지막으로 기거하였던 '망우정(望憂亭)' 건물이 만들어져 있고, 출구에는 곽재우 장군이 탄 백마(白馬) 한마리가 자리하고 있다.

< 곽재우 장군이 마지막으로 기거하였던 '망우정' >

< 곽재우 장군이 타고 다녔던 '백마' >

7) 기타.

충익사 내부에는 아름다운 정원을 비롯하여 연못 및 다양한 휴식처를 만들어 놓고 있는데, 특히 광장 중앙으로 수령 약 500여 년에 높이 12m 정도가 되는 '모과나무' 한 그루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 충익사 내부 정원에 만들어져 있는 '연못' >

 

< 수령 약 500여 년의 '모과나무' >

 

< '모과나무'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이 밖에도 배롱나무를 비롯하여 울창한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있는데, 나무 아래에 머물면서 여가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의 사당(祠堂)이라 하겠다.

< 연못 가에 자라고 있는 '배롱나무' >

8) 의병의 날 기념행사.

이곳 충익사에서는 매년 의병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는데, 의병 제전 및 군민의 날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한 의병들을 추모하고 그 정신을 받들기 위해 행사이다.

행사는 의령인(宜寧人)의 화합과 자긍심을 모으는 군민의 날 행사와 함께 매년 4월 22일 의병 창의 일에 개최하는데, 이날이 의령군민들의 '문화예술행사(文化藝術行事)' 이라 하겠다.

전야제는 4월 21일 세간리 현고수 느티나무에서 성화를 채화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2011년 6월 1일 ‘의병의 날’ 국가기념일로 제정 및 시행 됨에 따라 기존의 '의병제전' 이 갖는 의미를 계승하고 있다. - 2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