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행.(여행)

2013년 하기휴가는 강원도 강릉에 있는 사임당과 율곡 선생님의 탄생지 "오죽헌" 돌아보고.(1)

용암2000 2013. 8. 7. 23:20

2013년 8월 2-4일(2박3일)

 

8월 2일(금요일)

 

*여행의 개요.

연일 폭염이 내리고 있는 대구를 탈피하기 위하여 막내 아들 하기휴가 기간에 맞추어 강원도 강릉, 속초, 고성 인근 지역에 있는 관광지와 더불어 통일전망대를 돌아보기 위하여 여행계획을 수립하고 있는데, 한 6촌 여동생 부부도 함께 동행하자는 제의로 2대의 승용차를 이용하여 아침 일찍 대구를 떠난다.

승용차는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약 1시간 정도 운전하여 군위 휴게소에서 동생 부부를 만나 약간의 휴식를 가지고 나서 다시 출발하여 강원도 방향으로 달려가는데, 안동 인접지역에서 부터 국지성 소나기가 쏟아지므로 앞이 보이지 않아 운전에 많은 애로를 꺽는다.

최대한 속도를 즐이면서 안전운행을 최우선으로 하여 원주에서 영동고속도로 방향으로 바꾸어 들어서는데, 서울과 인천에서 내려오는 피서객 차량으로 도로가 완전히 주차장으로 변모한다. 

거북이 걸음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휴게소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면서 천천히 달려가 강릉시가지로 들어가니, 전국에서 모여들고 있는 피서객 자동차로 시내 도로가 아수라장이 된다.

 

1. 초당 두부마을.

민생고와 더불어 강릉지역의 명품 음식을 먹어보기 위하여 "초당" 두부마을로 찾아가는데, 이곳 초당 두부마을은 해송림으로 우거진 강릉 경포호 인접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초당 두부마을에는 많은 음식점이 도열하고 있으면서 이 지역에서 만든 두부는 바다물을 이용하여 순두부를 생산하여 다양한 음식으로 요리하는 강릉의 대표적인 먹거리촌으로 형성하고 있는 지역이다. 

수 없이 많은 식당이 도열하고 있는 좁은 거리들 사이에 유명한 순두부를 판매하고 있는 "원조초당 순두부" 식당에 점심시간이 훨신 지나간 오후 2시 30분 정도에 들어갔지만, 아직도 기다리는 손님으로 음식의 종류를 먼저 주문 함과 동시에 대기 번호 24번을 주면서 약 30분 정도 기다려라고 한다.

 

< "원조초당 순두부" 식당 안내판 >

 

시원한 소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원조초당 순두부 식당에 대한 내력을 읽어 보는데, 이 원조 식당에는 고(故) 조동인 할머니가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 간수를 사용하지 않고 처음으로 동해 바닷물로 사용하여 두부를 생산하여 현 강릉 중앙시장에서 좌판을 열고 판매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 "원조초당 순두부" 식당의 유래 >

 

그 후 초당마을에서 10여 가구가 두부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였고, 사람들은 초당마을에서 만들고 있는 두부를 Brand화 하여 "초당두부" 라고 불린다고 한다.

현재 원조초당 순두부 식당은 아들과 며느리 및 손자가 할머니의 가업(家業)을 이어 받아 두부를 생산하여 맛 있는 음식을 만들고 있으며, 뒤편 마당으로 돌아가면 넓은 주차장과 함께 주차장 가장자리에 천막을 치고 직접 콩을 갈아서 즉석 두부를 생산하여 손님의 밥상에 바로 올라간다고 한다.

 

< "원조초당 순두부" 식당 모습 > 

 

한 30분 정도 기다리다가 번호를 불려 주므로 방으로 들어가니 주문한 음식이 Setting 하여 바로 식사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어 허기진 배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급하게 음식을 먹어보는데, 음식의 맛이 좋은지 아니면 허기로 인한 걸식인지 순식간에 빈그릇을 생산하고 자리를 일어선다.

 

< 미리 Setting 되어진 "순두부" 요리 >

 

< 맛 있게 먹고 있는 "가족과 동생 부부" >

 

2. 오죽헌 방문.

이어 본격적으로 강릉 유적지를 구경하기 위하여 두부마을에서 바닷가 경포호를 빙돌아 오죽헌 앞 주차장으로 들어가니 외지에서 방문한 많은 차량들로 인하여 주차장 입구에서 약간의 곤욕을 치루고, 정문 옆에 있는 매표소에서 인당 3.000원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내부로 들어가면 잘 조성된 정원과 가로수가 무더위를 막아주는 그늘을 만들어 준다.  

 

< "오죽헌" 으로 들어가는 정문 >

 

오죽헌은 15세기 후반(1450-1500년) 형조참판을 지낸 "최응현" 이 지은 건물로써 이 건물을 둘째 사위 "이사온" 에게 물려주고 이사온의 외동딸 용인이씨는 서울 "신명화" 씨와 혼인하여 다섯 딸만 두었는데, 그 둘째 딸이 "사임당(師任堂)" 이다.

그런데 용인이씨는 친정 어머니 최씨가 병이 나자 간호를 위해 친정집 강릉에 머물고 있을 때 오죽헌에서 사임당을 낳았으며, 또한 사임당도 서울에 살고 있는 "이원수" 씨와 혼인하였으나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강릉에서 지내다가 오죽헌에서 율곡 "이이(李耳)" 선생님을 출생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여인들이 비록 시집은 갔지만 친정 어머님을 수발 할려고 하는 "효(孝)" 사상 때문에 사임당과 율곡이 동일한 장소인 오죽헌에서 탄생하게 된다.

사임당 어머니가 넷째 딸의 아들 "권처균" 에게 현재의 오죽헌 집을 상속시켜 주었는데, 오죽헌 집 주위에 까마귀 처럼 검은 대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 권처균은 자신의 호(號)를 오죽헌이라 지으므로 명칭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오죽헌 경내에는 오죽헌, 문성사, 어제각, 율곡기념관, 사랑채, 안채가 지어져 있으며, 경외에는 향토민속관, 강릉시립박물관 건물이 함께 자리하고 있어 동일한 지역에서 동시에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입장권을 제출하고 정문에서 조금 들어가면 오른편으로 율곡 선생님의 동상이 서 있으며 동상에서 조금더 들어가면 초충도 8폭의 병풍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그 그림 뒤편으로 병풍에 그려져 있는 모습 그 형태의 정원이 만들어져 있고 아울러 정원 주변에서 쉼을 가질 수 있는 휴식처가 마련되어 있다.

 

< 정문 인근지역에 있는 "율곡" 선생님 동상 >

  

< 율곡 동상 앞에 "견득사의" 라고 쓴 문구 >        

 

< "사임당" 이 그린 초충도병풍 그림 >

 

< 8폭의 초충도와 같이 만들어진 "정원" >

 

< 초충도 주변 휴식처로 만들어진 "연꽃 단지" >

 

길 따라 조금더 내부로 들어가면 넓은 공터와 함께 오죽헌을 설명하는 안내문과 더불어 몇 단의 계단 위에 오죽헌으로 들어가는 외삼문 "자경문(自警門)" 이 서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오죽헌을 관람하기 위하여 자경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 오죽헌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과 자경문" >

 

이 자경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펼쳐지는데, 마당의 끝지점에는 "율곡기념관" 건물이 자리잡고 있으며 북향의 몇 단 계단 위에는 "문성사(文成祠)" 로 들어가는 대문이 자리잡고 있다.

 

< 구권 5.000원 화폐에 나오는 "문성사" 앞에 있는 Wife와 아들 >

 

이 대문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좌측에는 수령 약 600년이나 되는 "율곡매(栗谷梅)" 라는 홍매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으며, 우측에는 율곡 선생님의 유적을 기리는 "정화기념비" 가 서 있다. 

 

< 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오른편에 있는 "정화비" >

 

문성사로 들어가는 계단에 올라가면 조그마한 마당에 이르면서 정면에는 문성사 사당이 자리잡고 있으며 마당 우측으로 문성사의 역사를 말하여 주고 주는 600년이나 되는 배롱나무 한 그루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 배롱나무에는 수 없이 많은 꽃을 피우고 있다.

 

< 600년의 수령을 가진 "배롱나무" 앞에서 >

 

좌측편으로 보물 제165호로 지정된 "오죽헌(烏竹軒)"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오죽헌 건물은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평면 건물로 4칸짜리 대청과 2칸짜리 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고 대청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천정은 고미반자를 두었으며 삼면은 창호문으로 둘렀다.

 

<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있는 보물 제165호 "오죽헌" 건물 >

 

죄측에 있는 2개의 대청에는 율곡 선생님이 쓴 격몽요결의 한 부분과 한시(漢詩)가 진열되어 있고, 제일 우측에 있는 방에서 율곡 선생님이 출생한 "몽룡실(夢龍室)" 이라는 현판과 더불어 사임당의 영정이 놓여있다.

 

< "몽룡실" 내에 있는 사임당 영정 >

 

정면의 축대 위에 자리잡고 있는 문성사 사당으로 올라가면 건물 중앙에 율곡 선생님의 영정(影幀)을 모시고 있는데, "문성(文成)" 이라는 뜻은 인조대왕이 1624년 8월 율곡 선생님에게 내린 시호(諡號)로써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 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政事)의 근본을 세웠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 율곡 선생님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문성사" >

 

원래 문정사 자리에는 율곡 선생님이 쓴 "격몽요결(擊蒙要訣)" 과 벼루를 보관하기 위해 건축된 어제각이 있었던 자리이었지만, 어제각을 사랑채 북쪽으로 옮기고 문성사를 건립하여 율곡 선생님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곳이다.

율곡 이이 선생님의 영정은 이당 "김은호" 선생님이 그린 것으로 1975년에 표준 영정으로 선정되었는데, 선비들의 평상복인 심의를 입고 검은색의 복권을 쓰고 있으며 건물 현판에 붙어있는 "文成祠" 라는 글씨는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라고 한다.                                                                                         

 

< 문성사 내에 있는 "율곡" 선생님 영정 >

 

문성사 뒤편으로 돌아가면 푸른 잎을 가진 손가락 굵기의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데, 그 대나무 줄기 전부가 검은색을 하고 있는 오죽의 군락지가 되므로 이렇게 많은 오죽 나무를 보는 것은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이곳을 다녀간 후 처음인 것 같다.

 

< 문성사 주변에 자라도 있는 "오죽" >

 

오죽헌 건물 뒤편 작은 쪽문을 통과하여 사랑채 건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사랑채는 주로 바깥 주인이 거주하면서 외부 손님을 접대하는 곳으로 온돌방, 튓마루, 대청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 오죽헌 뒤편에 있는 "사랑채" 건물 >

 

사랑채 뒤편으로 조그마한 마당 뒤편 축대 위에 5칸의 안채 건물이 자리잡고 있으며, 안채 왼편으로 곡간채 건물이 지어져 있어 건물 전체 배치도가 "ㄷ" 자 형태를 하고 있다.

 

< 안주인 거주하는 "안채" 건물 >

 

사랑채와 곡간채 건물 사이에 있는 출입문을 통과하여 밖으로 나오면 오른편 방향으로 작은 쪽문이 나타나므로 그 쪽문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가면 "어제각(御製閣)"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 어제각으로 들어가는 "쪽문" >

 

< "어제각" 건물 모습 >

 

어제각은 정조대왕이 1788년 율곡 선셍님의 친필 "격몽요결(擊蒙要訣)" 과 어린시절 사용하였던 벼루를 보고, 책에는 머리 글을, 벼루 뒤면에는 율곡 선생님의 학문을 찬양한 글을 새겨 소중히 보관하라는 명(名)을 내리자 이를 관리하기 위하여 건립한 집이라고 한다.

 

< 어제각 내에 비치하고 있는 "벼루와 격몽요결" > 

 

3, 율곡기념관.

오죽헌 건물을 돌아보고 밖으로 나와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율곡기념관" 건물에 도착하는데, 내부로 들어가면 사임당의 일대기와 더불어 그 자녀의 발자취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 "율곡기념관" 건물 모습 >

 

< 율곡 "이이" 선생님의 연역 >

 

사임당은 4남 3녀를 두었는데, 그 중 맏딸 "매창", 셋째 아들 율곡 "이이", 넷째 아들 옥산 "이우" 는 학문적, 예술적으로 크게 성취를 이룬 인물로써 이곳 율곡기념관에는 사임당과 그 자녀들이 남긴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율곡 이이의 유품으로는 "율곡전서" 와 "간찰" 이 전시하고 있는데, 율곡전서는 이이의 저작을 집대성 하여 놓은 책으로 전체 23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간찰은 짧은 글이긴 하나 본인이 직접 쓴 것이어서 이이의 생활 일면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 "율곡" 선생님이 저술한 책 >

 

< "율곡" 선생님에게 내린 교지 >

 

사임당의 유품으로는 "습작매화도", "초서병풍", "초충도병풍"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초충도(草蟲圖)는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과 벌레를 소재로 그린 그림으로써 사소한 사물을 섬세하게 조형화한 사임당의 재능을 살필 수 있는 대표적인 유품이라 할 수 있다.

 

< 사임당이 그린 "초충도병풍" >


매창의 유작이 되는 "매화도" 는 조선 전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때의 묵매(墨梅)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옥산 이우가 쓴 "귀거래사" 는 초서로 뛰어났던 이우의 필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 "율곡기념관" 에 전시하고 있는 유품을 관람하는 어린이 >

 

이 밖에 대형 TV 모니터를 통하여 사임당과 그 자녀들의 일대기와 더불어 오죽헌의 사계절 풍경을 연속적으로 상영하고 있어, 관람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서 찬찬히 감상하다가 박물관을 떠난다.

 

< TV 모니터를 통하여 홍보하고 있는 "사임당" >

 

마당으로 나와 남쪽으로 내려가는 "입지문(立志門)" 을 통과하여 오죽헌 경내를 벗어나면, 넓은 정원의 곳곳에 향토민속관과 강릉시립박물관 등 또 다른 관람코스가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