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행.(여행)

강릉의 여류시인 "난설헌" 생가와 더불어 "참소리축음기 및 에디슨과학 박물관" 을 돌아보고.(1)

용암2000 2013. 8. 12. 01:38

2013년 8월 3일(토요일 : 오전)

 

간단하게 라면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나서, 또 다시 경포호 인접 지역으로 달려가서 허균, 난설헌 생가를 방문하여 보는데, 더위로 인하여 아침 일찍 부터 많은 차량들이 주차장으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1. 허균 및 허난설헌 생가 방문.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허균 및 허난설헌 생가는 강릉 바닷가 사천과 이어지는 교룡산(蛟龍山) 정기를 타고난 교산 "허균(許筠)" 과 난초 향기와 눈 처럼 깨끗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 난설헌 "허초희(許楚姬)" 가 태어난 곳이다.

 

< "난설헌 생가" 를 알리는 안내문 >

 

난설헌의 아버지 초당 "허엽(許曄)" 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양천(陽川), 호는 초당(草堂)으로써 아버지가 군자감부봉사(軍資監副奉事) "허한(許瀚)" 이라는 분이고, 슬하에는 4명의 자녀을 두었다.

첫번쨰 부인과는 큰 아들 허성(許筬)을 두었지만, 본 부인과는 일찍 사별하므로 2번째 부인으로 부터 허봉(許封)와 허초희(許楚姬) 및 마지막으로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지고 있는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許筠) 등 4형제를 두었다.

아버지와 4형제는 허씨 가문의 5대 문장가로 이루어지면서, 글을 짓고 학문하는 것을 자랑거리로 삼고 강릉 땅 초당에 살면서 경포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구경하면서 시(詩)를 읇고 문학성을 키워 나갔다고 한다.

특히 막내 허균의 시 "경포호를 그리워 하며" 에서 "초당 집은 경포호의 서쪽에 있으니 바위, 돌, 골짜기들이 화계 명산과 같아라" 라고 하는 등 여러 작품을 통하여 강릉에 대한 애착을 표현하고 있다.

아침 이슬을 머금고 있는 꽃을 보면서 오솔길 따라 조금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공터와 함께 생가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솟을대문을 만나고, 그 솟을대문을 통과하면 고목의 향나무를 품고 있는 사랑채 건물을 만난다.

 

< 난설헌 생가로 들어가는 "솟을대문" >

 

< 솟을대문을 통과하면 만나는 "사랑채" >

 

< 사랑채 앞에 있는 "향나무" >

 

사랑채 건물 왼편에 있는 향나무 옆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아가서 다시 안쪽 대문으로 들어가면, "ㅁ" 자 형태의 안채 건물이 나타나는데, 안채 건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랑채 건물이 "ㅁ" 자 형태의 한부분이며 곳간채와 연결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 할 수 있다.

안채 건물 좌우로 곳간채 건물을 거닐고 있으며, 건물 앞으로 대청마루로 되어 있으며 그 대청마루 뒤편으로 여러개의 방이 이어지는데, 각 방 마다 한시(漢詩)와 더불어 제일 오른편 방에는 난설헌 "허초희" 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 "ㅁ" 자의 중앙에 있는 안채 모습 >

 

< 안채 제일 오른편 방에 있는 "허초희" 초상화 >

 

오른편 곳간채 중간에 있는 쪽문을 통하여 뒤편으로 나아가면 생가를 구획하고 있는 토담과 더불어 뒤마당이 펼쳐지는데, 그 뒤마당 한 구석에는 우물과 장독대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며져 있어 많은 꽃들이 피어 있다.

 

< 건물 뒤편 마당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장독대" >

 

건물 뒤편으로 돌아 서쪽방향으로 들어가면 서쪽 담벼락 아래에 디딜방아와 더불어 허드레 물건을 보관하는 또 다른 별채 건물이 자리잡고 있지만, 건물 내에는 물건들이 어지럽게 관리하고 있어 다소 보기가 민망스러움이 보인다.

다시 솟을대문으로 나와 토담 밖 오른편 서쪽방향으로 들어가면 울창한 숲 속으로 산책길이 펼쳐지고 있는데, 아침 일찍부터 몇몇 사람들이 산책하면서 걷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고 있다.

 

< 생가터 왼편으로 연결되는 울창한 "소나무" 숲 >

 

그 앞으로 아버지 허엽과 더불어 허씨 4형제가 지은 5개의 시비가 세워져 있으며, 그 시비에는 5분의 대표적인 한시와 번역하여 놓은 한글이 새겨져 있지만, 보는 안목이 까만 눈이라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불가능하여 진다. 

 

< 소나무 숲 앞에 아버지 허엽와 4분의 자매가 쓴 "시비" >

 

이 시비 옆으로 "난설헌" 씨가 앉아서 책을 보는 동상이 있어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찍고 나서 앞에 있는 시를 읽어 보는데, 그 시의 내용은 본인보다 먼저 보내 어린 남매의 무덤을 보고 신세를 한탄하면서 읍조린 "곡자(哭子)" 라는 시(詩)라서 가슴이 뭉클하여 진다.

 

< 시비 앞에 있는 "허초희" 동상 >

 

- 곡자 -

  지난해 사랑하는 딸을 잃었고,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서럽고 서러워라 광릉고장에, 두 무덤 나란히 앞에 있구나.

  백양나무 쓸쓸타 바람이 일고, 도깨비불 소나무에 비추이누나.

  지전으로 너희들 혼을 부르고, 무덤에 맹물 한잔 부어 놓는다.

  너희들 남매의 가여운 혼이야, 생전처럼 밤마다 정답게 노닐고 있으리.

  비록 뱃속에 아이가 있다 하지만, 어찌 제대로 자랄 수 있으랴.

  하염없이 슬픈 노래를 부르면서, 비통한 피눈물에 목이 멘다.

 

< 난설헌 동상 앞에 있는 "곡자" 시 >

 

이 허초희 동상이 바라보이는 전면에 또 다른 한옥으로 건립된 허균, 난설헌 기념관 건물이 자리잡고 있어, 그 속으로 들어가서 아버지 허엽과 그의 4 자매에 대한 일대기를 조명하여 본다.

 

< 허균, 난설헌 "기념관" 으로 들어가는 입구 >

 

특히, 이곳 기념관에는 허초희 씨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동인의 영수였던 허엽의 딸로 강릉에서 태어난 난설헌의 어렸을 때 이름이 허초희로써, 조선시대 대부분의 여성들이 이름을 가지지 못했던 시절 어였하게 이름을 가진 것으로 부터 그녀의 집안에는 여성에게 매우 관대한 집안이다.

 

< 아버지 "허엽" 과 4 자매의 가계도 >

 

아버지는 난설헌에게 남자와 똑 같이 교육의 기회를 주었는데, 그녀의 둘째 오빠인 허봉은 그녀의 천재성(天才性)을 미리 알아보고 이를 독려하여 당대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이었던 "이달" 에게 여동생의 교육을 부탁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강릉에서는 신사임당과 동 시대에 여류시인 2명이 태어낳지만 난설헌은 아버지 허엽의 가르침 및 스승의 격려 속에서 조선시대 규중의 유일한 여류 시인으로 성장한 그녀 이었지만. 15세 때 안동에서 명문으로 자랑하는 안동김씨 문중 "김성립" 씨에게 시집을 가므로 불행이 싹 트기 시작한다.

그 시대 사대부 집안의 여인들이 시집살이 보다 친정에서 기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관례로 통하였지만, 난설헌은 신사임당과는 반대로 보수적인 안동김씨 가문에서 철저한 시집살이와 엄격한 시어머니 및 무능한 남편으로 인하여 마음 고생을 많이 하면서 굴곡진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이러한 삶을 이겨내기 위하여 시로써 마음의 위안을 가질려는 난설헌과 갈등의 주인공 시어머니와의 골이 점점 깊어 갔고, 과거시험을 핑게로 바깥으로 돌아다니면서 외도를 일삼는 남편과 더불어 두명의 아이들도 돌림병으로 인하여 일찍 여위고 뱃속의 아이까지 유산되는 아픔을 껵어야만 했다.

그 중에 더욱더 큰 불행은 그녀의 친정집이 물락의 길로 걷게되므로 인하여 결국 그녀는 27세(1563-1589년)라는 꽃다운 나이에 삶을 마감하기에 이르는데, 그녀가 23살 때 한편의 시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 을 지었으며 그 시가 그녀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하니 더욱더 애절함이 묻어난다.

 

-몽유광상산-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일찍 세상을 떠난 난설헌은 자신이 쓴 "모든 시(詩)들을 불태우라" 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동생이자 홍길동의 저자가 되는 허균(許筠)은 친정에 남아있던 시를 정리하여 명나라 시인 "주지번" 에게 전하여 준댜.

이로 인하여 주지번은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 집이 간행되기에 이르었고, 그 후 1711년 일본에서도 간행되면서 우리나라에 앞서 중국과 일본에서 그녀의 문학성은 빛을 발하게 된다.

그 결과 그녀의 문학성(文學性)을 지금이나마 우리에게 알려지고 있으며 현재 그녀의 시는 총 142 수가 전하여 지고 있다고 하는데, 난설헌과 그녀의 2명 자녀 무덤은 경기도 광릉에 있는 안동김씨 문중의 묘소에 자리잡고 있지만 죽어서도 남편 김성립은 2째 부인과 함께 묻혀지므로 사대부의 삐뚫어진 단면을 보여주는 가문이다. 

이 밖에 기념관에는 아버지 허엽과 더불어 큰오빠 허성, 작은오빠 허봉, 동생 허균에 대한 일대기와 더불어 많은 출간물(出刊物)을 보관하고 있는데, 그러므로 볼거리를 많이 제공하고 있는 기념관이라 하겠다.

 

< 허엽 이외 4명의 자매가 쓴 "기록물" >

 

특히 허균이 저슬한 "홍길동전" 을 발행한 책의 중류가 너무나 많이 진열하고 있는데, 한권의 소설이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출판이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우리 국민들에게 읽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 된다.

 

< 허균이 쓴 "홍길동전" 을 책으로 발간한 서적 > 

 

< 음반과 만화로 만들어진 "홍길동전" >

 

여기 기념관에도 TV 모니터를 통하여 초당에 대한 풍경을 방영하고 있으며 기념 판매점을 통하여 난설헌과 그의 자매 일대기를 그린 자료나 책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지만, 학문보다는 배부른 돼지가 되는 것이 나의 인생관이라 그냥 빈손으로 기념관을 탈출한다.

 

< TV를 통하여 관람하여 보는 "난설헌 생가" >

 

기념관 앞으로 나아가면 "ㄱ" 자 형태로 건립된 한옥에는 전통 한국차를 만드는 체험실과 더불어 다도회 예절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한잔에 1.000원 비용으로 차를 마실 수 있는 휴식 공간도 운행하고 있지만 시간 관계로 야외 꽃밭을 통과하면서 야생화를 조금 구경하다가 다음 여행을 위하여 허균 및 난설헌 생가를 떠난다.

 

< 다도회를 체험하고 있는 "스승과 어린이" >

 

< 난설헌 생가터 주변에 만들어진 "정원" 을 걸으면서 >

 

2. 참소리축음기 박물관과 에디슨과학 박물관 관람.

허균, 난설헌 생가에서 어제 낮 동안 2번이나 지나간 경포호 옆으로 이어지는 길 따라 조금 돌아서 오죽헌 방향으로 가면 호수 반대편 길 가장자리에 "안성기" 영화박물관을 건립하고 있는 건물 옆에 "참소리측음기 박물관과 에디슨과학 박물관" 이라는 현판과 더불어 둥근 건물이 보이고, 건물 앞에 있는 주차장에는 아침부터 많은 차량들이 분비고 있다.

 

< "참소리축음가와 에디슨과학" 박물관 전경 > 

 

이 박물관은 관장 "손성목" 이라는 한 독지가가 50년 간 혼자서 소리에 관련되는 축음기 등 음악 악기를 수집하여 전시하고 있는 "참소리축음기 박물관" 과 세계적인 발명가 에디슨이 발명한 약 3.500여점의 발명품과 5.000점의 자료 중에 약 2.000여점을 전시하고 있는 "에디슨과학 박물관" 으로 이원화하여 운영하고 있다.

 

< 참소리축음기와 에디슨과학 박물관의 관장 "손성목" 씨 >

 

1982년 참소리방으로 출발한 박물관은 1992년 "참소리축음기 박물관" 으로 정식 개장하였는데, 25년만에 강원도 경포대로 이전하여 글로벌 뮤즘(Global Museum) 시대를 열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 참소리축음기 박물관 및 에디슨과학 박물관에는 약 1만여 점의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 "포노그래프" 를 비롯하여 세계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유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손성목씨는 60여 개국을 150회 이상 찾아 다니면서 수집한 유물들을 전시와 더불어 관리하고 있는데, 현재 국내 신문과 방송은 물론 미국 CNN TV, 일본 도교 TV, 중국 CC TV, 유로 TV 등을 통하여 소개하므로 연간 50여 만명의 관람객이 찾아드는 세계적 명품박물관이라고 한다.

특히 전국 초, 중, 고등학교 수학여행, 졸업여행, 체험 학습장으로 관심을 갖고 찾아주는 곳으로 변모하므로 그 수익으로 인하여, 년간 150 종류 이상의 새로운 발명품을 구입하여 교체 전시하므로 항상 새로운 발명품을 대면할 수 있는 곳 이라고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 에디슨의 발명품을 구경 할려면 "강릉에 있는 참소리축음기 및 에디슨과학 박물관으로 찾아가라" 고 할 정도로 유명한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우뚝 자리 매김하고 있다고 한다.

이 참소리축음기 및 에디슨과학 박물관은 2개의 건물을 상호 연결하면서 움직이는 동선을 짧게 만들면서 3층까지 전시실로 꾸며져 있는데, 참소리축음기 박물관은 본관 1층에 제1전시실과 오른편으로 카메라 전시실로 꾸며져 있으며 본관 2층에 제2전시실과 음악감상실, 본관 3층에 제3전시실, 옥상에는 경포호를 내려다 보는 전망대로 만들어져 있다.

에디슨과학 박물관은 본관과 연결하게 건립된 건물로써 1층에는 제1전시실와 2층에 제2전시실으로 만들어져 있고, 그 밖에 건물 앞 마당에 천막으로 만든 야외전시실이 있지만 야외전시실에는 유물을 정식으로 전시하지 않고 오직 보관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개인당 입장료 7.000원을 지불하고 내부로 들어가면 일단 밖에는 찜통같이 달구어지고 있는 대지의 열기를 탈출할 수 있는데, 시원한 에어콘 속에서 전시품을 구경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가진 박물관이라 하겠다.

 

< "입장료" 를 지불하는 매표소 >

 

전시실 관람은 본관과 별관 건물을 상호 Zig-zag 식으로 이동하면서 관람이 기능하도록 움직이는 동선(動線)을 적게 하면서 이동의 편리성을 부여하고 있다.

먼저 본관으로 들어가 좌측에 있는 제1전시실로 들어가면, 이 전시실에는 축음기가 발명되기 전에 1796년도 스위스에서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800년도 유럽 여러나라에서 생산되었고, 이후 대중들에게 일반화 되었던 "뮤직박스" 식 서커스 오르간을 비롯하여 20여 종의 오르간을 전시하고 있다.

 

< 제1전시실을 설명하는 "해설사와 관람객" >

 

그외 각종 아름다운 모형의 나팔 축음기를 비롯하여 포토블 축음기, 어린이 축음기 등 250여 종의 축음기가 전시되어 있는데, 각 Booth 마다 한 사람씩 나와서 설명과 더불어 시연을 하면서 축음기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어 생동감이 일어나는 전시실이 된다.

 

< 각종 나팔 모양의 "축음기" 전시장 >

 

< "축음기 소리" 를 시연하고 있는 해설사 >

 

이어 옆에 있는 별관으로 연결되어진 긴 통로로 이동하여 별관 1층에 있는 에디슨과학 박물관으로 이동하는데, 에디슨의 3대 대표적 발명품 축음기, 전구, 영사기가 소리, 빛, 영상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에디슨 최초의 축음기가 되는 "틴포일" 에서 부터 에디슨 축음기 회사의 대표적 축음기가 되는 "앰베롤라, 오페라, 다이아몬드디스크" 등 200여 종의 각종 축음기가 전시되어 있다.

 

< "틴포일" 타입의 축음기 >

 

한쪽 구석에는 에디슨 발명한 세계 최초의 탄소 전구를 비롯하여 에디슨 전구 회사에서 생산한 약 500여 개의 전구가 전시되어 있고, 다른 한 벽면에는 에디슨의 최초 영사기를 비롯한 150여 개의 영사기를 전시하고 있다.

 

< 다양한 형태의 "전구" 모습 >

 

< 에디슨이 발명한 "영사기" >

 

다른 한 모서리에는 1913년 에디슨에 의해 발명된 세계 최초의 전기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는데, 현재 이 전기 자동차는 전 세계에서 단 2대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 중 한대는 미국 에디슨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고 나머지 한대는 이곳 강릉에 있다고 한다.

 

< 에디슨이 발명한 세계 최초의 "전기 자동차" 를 설명하는 해설사 >

 

< "전기 자동차"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2층으로 올라가면 먼저 별관 에디슨과학 박물관 제2전시실에 도착하는데, 이 전시실에는 에디슨이 생전에 발명 및 개발한 각종 생활용품, 가전제품, 주방기기 등이 전시하고 있으면서 그 수량(數量)이 어마어마 하다.

 

< 에디슨이 발명한 각종 "생활용품" >

 

대표적인 전시품으로는 에디슨 일렉트릭 팬, 에디슨 등사기, 주식시세 표시기, 전화기 등을 들 수 있고, 이 밖에도 에디슨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커피 포트, 에디슨 인형, 타자기, 재봉틀, 난로, 선풍기, 다리미, 온풍기, 시계 등 200여 종의 에디슨 발명품이 전시되어 있다.

 

< 에디슨 이 발명한 "금전 계산기" > 

 

그 옆에 있는 본관 제2전시실에는 축음기가 소리를 듣는 단순한 오락기기에서 발전하면서 각 가정의 장식품으로 자리 메김하는데, 1920-1930년대 제작된 캐비넷 내장형 축음기와 더불어 전 세계 15개국에서 제작한 150여 종류의 축음기가 전시되어 있다.

 

< 캐비넷 내장형 "축음기" >

 

< "부다" 형 축음기 모습 >

 

다음으로 본관 3층으로 올라가 제3전시실에 도착하면 1952-1980년대 까지 세계 각국에서 생산된 다양한 형태의 라디오와 세계 최초 TV  "베어드 30라인 TV" 등이 전시되어 있고, 특히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을 기념하는 우주인 모양의 TV도 전시하고 있어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세계 최초 "베어드 30인치 TV" 모습 >

 

< 아직도 작동되고 있는 국내 최초 "TV" >

                                                                                            

이어 본관 2층으로 다시 내려오면 200여 명이 동시에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극장이 자리잡고 있는데, 극장 무대 앞에는 대형 스크린과 더불어 다양한 종류의 스피커가 장착되어 있다.

 

<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극장" >

 

인솔자는 독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시연으로 연주하는 음악과 더불어 "마이클 잭슨" 의 유럽 공연 등 2편의 영화를 보여 주는데, 각 스피커에서 흘려나오는 웅장한 소리와 화음으로 인하여 완전히 흥분의 시간 속으로 여행하게 만든다.

 

< "마이클 잭슨" 의 현란한 노래와 춤 >

 

10여 분 동안 공연하는 영화만 보아도 입장료의 비용과 더불어 더위가 완전히 살아지고 명쾌한 기분으로 1층으로 다시 내려와서 들어올 때 그냥 지나쳐 버린 카메라 전시실로 들어가는데, 이렇게 많은 카메라를 본 것은 처음이라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 본관 1층 오른편에 있는 "카메라" 전시품 >

 

< 카메라 전시실 입구에 "바람과 함께 살아지다" 의 영화를 촬영한 영사기 >

 

정말 황홀하고 공부하게 만드는 박물관이 되어지는데, 죽기 전 조금의 돈이라도 벌어지면 머나먼 강릉 까지 다시 한번 더 찾아와 찬찬히 관람과 더불어 공부하여야 하는 박물관이라 하겠다.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