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기계과 행사.(제주도)

경북대학교 기계과 제1회 동문 6명과 함께 3박4일 "제주도" 여행에 따른 기행문.(둘째날)

용암2000 2015. 5. 10. 10:32

둘째날 : 2015년 4월 27일.(월요일)

 

1. 교래자연휴양림 내의 산책.

오늘 첫 여정으로 아침 10시 교래자연휴양림 인접지역에 있는 "거문오름" 탐방을 예약하므로 다소 늦게 까지 꿈 속에 머물다가 자연휴양림 내에 있는 산책길을 걷기 위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교래자연휴양림은 함몰지 및 돌출지가 불연속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형의 영향으로 난대수종 및 온대수종이 공생하는 지역으로 독특한 식생과 다양한 식물상을 가지고 있으며, 전형적인 2차 산림지대와 달리 숲이 안전하고 서식 식물종이 다양하여 원시림 식생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휴양림이라고 한다.

또한 산책로 일부구간은 1940년대 산전(山田)을 이루었던 산전터와 1970년대 이전 까지 숯을 만들었던 가마터가 온전하게 남아있어, 인문학적 가치와 생태환경적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로 곶자왈 지대에 조성된 교래자연휴양림은 약 230만 평방미터(약 70만 평)의 방대한 면적에 첫째 숲속의 초가, 야외공영장 등이 갖추어져 있는 "휴양지구" 와 둘째 야영장 및 야외무대, 풋살경기장 등이 자리잡은 "야영지구" 로 구성하고 있다.

셋째로는 곶자왈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생태체험지구" 와 넷째로는 큰지그리오름 까지 산행이 가능한 "산림욕지구" 등 총 4개 지구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가벼운 아침 산책을 하기에 최상의 길이 되는 산림욕지구로 들어가는데, 약 3.5Km 정도 떨어져 있는 큰지그리오름 까지 완주하기에는 다수 무리가 발생하므로 적당한 거리 까지 걷다가 되돌아오는 방향으로 선정한다.

 

< "교래자연휴양림" 내에 있는 산책로 입구 >

     

< 화산석으로 만든 "화장실" >

 

하늘을 가리는 울창한 숲속의 오솔길 따라 내부로 들어가면 아침부터 수 많은 새들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특별하게 큰 딱따구리 새가 짝을 찾기 위하여 생나무 기둥을 연속적으로 찍는 소리가 고요한 숲을 요동치게 한다.

 

< 울창한 숲속으로 걸어보는 "오름산책길" >  

 

아울러 발 아래로 이름도 모르는 다양한 야생화들이 청초한 이슬을 머금으면서 기지게를 켜면서 숲속의 향연을 준비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지므로 아마 여기가 천상의 길이 아닌지 모르겠다.

울창한 숲에는 기생하면서 올라가는 넝쿨식물들이 원나무와 상호 공생하면서 한 몸이 되면서 성장하고 있는 자연의 섭리를 보면서 깊숙하게 내부로 들어가는데, 상쾌하게 발산하는 나무의 향기기 코를 자극한다.  

 

< "넝쿨식물" 과 상호 공생하는 나무 >

 

특히 이 교래자연휴양림은 곶자왈의 중심지에 만들어져 있다 보니 곳곳에 많은 화산석이 지천으로 깔려 있으면서 다양한 형상을 만들고 있는데, 중간중간 산책객이 쉬었다 갈 수 있는 친환경적인 공연장을 많이 만들어져 있다.

 

< 쉼을 가지도록 만들어져 있는 "공연장" >

 

더욱더 오솔길 따라 깊숙하게 들어가면 인간이 살아갔다는 흔적이 되는 산전(山田)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더 내부로 들어가면 숯을 만들었던 가마터 등이 나타나므로 다양한 불거리에 도취하다가 다음 일정을 위하여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적당한 거리에서 되돌아 가기로 한다. 

 

< 숯을 생산하였다는 "숯 가마터" >

 

이렇게 간단하게 Warming-up을 통하여 몸의 콘디션을 조절하고 나서 숙소로 돌아와, 세수와 더불어 전일 밤에 먹다가 남은 생선을 넣은 라면을 끓여 햇밥과 더불어 풍족한 아침식사 시간을 가진다.

 

2. 거문오름 탐방.

교래자연휴양림에서 10여 분 정도 거리에 있는 거문오름을 탐방하기 위하여 아침 9시 30분 경 숙소를 출발하여 거문오름 주차장에 도착하여 탐방 안내소로 들어가는데, 몇주 전 인터넷으로 예약하여 놓은 이름을 말하면서 입장권(인당 2.000원)을 구입한다.

 

< "거문오름 탐방" 을 위하여 속속 모여드는 관광객 >

 

< "거문오름" 탐방 안내소와 매표소 > 

 

이곳 거문오름은 매주 화요일은 자연 휴식일로 지정하므로 화요일을 제외되고 나머지 일은 오전 9시 정각 부터 30분 간격으로 탐방이 이루어지는데, 한 팀에 50명 인원으로 제한 함과 동시에 일일 최대 400명으로 전체의 인원을 제한하므로 적어도 2일 전 까지 예약의 완료되어야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제주도를 방문하고 나서 예약을 추진 할려고 하면 단체 관광객이 동시에 접속한다면, 본인이 요구하는 날짜와 시간에 탐방이 불가능할 수 있어 적어도 몇 주전 예약이 이루어져야 안심하고 탐방이 가능하게 하는 오름이다.

탐방 시간까지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발생하여 탐방소 앞에 있는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건물로 들어가 불순물을 정리하고 내부를 조금 구경하고 있으니, 앞 팀이 출발하므로 내가 예약한 10시 팀의 인원을 소집하기 시작한다.

                           

< 거문오름 매표소 앞에 있는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입구 >

 

안내소에서 나온 아가씨가 탐방 출입증을 지급 함과 동시에 10시 팀을 안내 할 해설사를 소개하는데, 우리팀을 안내 할 해설사는 거문오름에서 국보급으로 명 해설사로 정평이 나 있는 "J" 선생님으로 인터넷을 통하여 다소 안면이 있는 사람이다.

 

< 매표소 앞에서 "탐방 출입증" 을 교부하면서 >

 

해설사는 일행을 지도 앞에서 안내하면서 오늘 탐방하는 거문오름에 대하여 개략적으로 설명하여 주는데, 거문오름은 세계가 인정하는 생물권보전지역과 자연유산 및 지질공원이라는 3관왕에 등제한 지역으로 우리들의 후손에게 자연 상태를 보존하면서 문화유산을 넘겨주기 위하여 지켜야 할 많은 요소가 따른다고 한다.

 

< "거문오름" 의 탐방코스 안내도 >

 

이미 예약을 통하여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제일 큰 요소는 탐방 인원 및 시간의 제한과 더불어 탐방 동안 생수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음료수 및 가방, 양산, 우산, 스틱, 아이젠 등을 가져 갈 수 없다고 한다.

아울러 소변와 대변 및 방구도 허용하지 않으므로 출발 전에 생리적 현상을 완벽하게 정리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특히 이곳 거문오름에는 다양한 식물에서 발산하는 독특한 향기의 혼탁을 방지하기 위하여 몰래 발산하는 방구로 함께 탐방하는 일행에게 누를 끼치지 않도록 명심하여 달려는 당부의 말이 첨언(添言)한다. 

그러고 탐방 동안 주어진 통로 이외의 길로 한발짝도 벗어날 수 없으며 또한 본인이 허용하는 지역 이외에서는 오직 조용하게 통과하면서 해설사가 이야기 하는 내용만 경청하여야 하고, 질문이나 스마트폰 사용 및 일행과의 대화 등 어떠한 행동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지 시켜준다.

더불어 이러한 내용을 어기면 그 자리에서 탑방소를 관리하는 경비원에게 연락하여 즉석 퇴출하도록 하겠으니 조금 불편하여도 탐방 거리 5.5Km에 약 2시간 반 동안 참고 참아 오직 눈으로 감상하고 즐기는 탐방이 이루어 질 것을 몇 번이고 당부하는데, 이렇게 엄격하게 통제하는 이유는 탐방이 이어지는 동안 자동적으로 알게 되어진다고 한다.    

탐방 지도를 보면서 세부적인 탐방코스를 설명하고 일행을 인솔하면서 들머리 길로 안내하기 시작하는데, 탐방 입구에서 부터 차분하게 해설이 이루어지면서 거문오름의 특징을 나열하기 시작한다.

 

< 탐방로 입구로 들어가는 "일행" >

 

< 탐방로 입구에서 "해설" 은 이어지고 >

 

약 10여 분 정도 급경사의 오르막 길을 올라가면 깔닥고개에 도착하는데, 이 고개에는 한개의 초소가 자리하면서 거문오름을 지키는 아저씨 한분이 반가운 인사를 하면서 반겨준다.  

 

< 깔닥고개에 있는 "초소와 지킴이" >

 

초소 앞에서 해설사는 약간의 휴식을 취 함과 동시에 지속적인 해설을 통하여 거문오름의 장점을 이야기 하는데, 해설사는 거문오름에서 자생하는 희귀식물과 야생화, 동물, 새, 곤충 등을 스마트폰에 담아서 직접 보여 주면서 이해가 쉽도록 설명이 이어진다. 

 

< "스마트폰" 을 이용하여 설명하는 해설사 >

 

이윽고 깔닥고개에서 왼편으로 만들어져 있는 나무테크 길 따라 고도를 상승하는데, 나무테크 길을 걷는 사람에게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을 요구하는 이유는 산에서 살고 있는 동물에게 얼마나 많은 해을 끼치는 것을 인지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 발자국 소리도 없이 올라가야 하는 "나무테크 길" >

 

그런데 나와 우리 동문은 육체적인 노구로 인하여 발소리도 마음데로 Control 하지 못하는 중 늙은이로 변화하고 있으므로 탐방이고 뭐고 다 집어 치우고 집구석에 처박혀 빈대떡이나 붙여먹지, 이렇게 먼 제주도 까지 와서 젊은이들과 함께 탐방을 시도한 것 자체가 근원적으로 잘못되어진 발상이 아닌지 모르겠다.

언제나 제일 후미를 담당하면서 고도를 상승하니까 해설사 이야기 한 토막도 듣지 못하고 멍청한 정신으로 조금 올라가니 가슴이 확 열리는 전망대가 나타나는데, 이 전망대에 올라서면 발 아래로 조금 전 출발한 탐방소 건물과 더불어 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고개를 조금 들어 남쪽 방향으로 쳐다보면 한라산 정점으로 올라가는 성판악 코스와 더불어 한라산 정상이 한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이 머물고 있다.

 

< 처음 만나는 거문오름의 "전망대" >

 

<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한라산" 전경 >

 

해설사는 이곳 전망대에서 지금까지 해설하면서 이야기한 내용을 복습도 하면서 중간 키즈 문제를 내는데, 해설사와 함께 하면서 걷고 있는 초등학생과 젊은이들은 한개의 문제도 틀리지 않고 척척 대답이 나오지만 나의 귀에는 어느 사찰의 스님이 목탁 두드리는 소리로 들린다.

전망대에서 앞으로 조금 전진하면 거문오름의 정점이 된다는 해발 456m 정상 표시판이 붙어있고, 여기에서 부터 내리막 길이 되므로 다소 수월하게 해설사 뒤 꽁무니를 따라 갈 수 있겠지만 이제는 급경사의 나무 계단에서 발생하는 새콤하게 느껴지는 무릎 통증으로 언제나 후미를 장식한다.

 

< 거문오름의 정점을 표시하고 있는 "판" >

 

계단을 조금 내려가면 또 다른 전망대가 나타나는데, 이 전망대는 거문오름의 내부를 내려볼 수 있는 전망대로써 후미의 일행이 도착 할 시점에 벌써 거문오름의 형성 과정에 대한 해설이 끝나고 하산길로 들어가므로 신속하게 거문오름 내부 사진 한장을 찍고 앞서 출발하는 일행을 따라가야 한다.

 

< 두번째 전망대에서 내려보는 "거문오름 내부 분화구" >

 

계단의 끝지점으로 내려서면 또 다시 경비 초소 한채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초소는 거문오름의 내부로 들어가 한바퀴 돌아서 관람을 끝내고 나서 이곳으로 되돌아 나오는 원점회귀의 지점이 되는 곳이다.

 

< "무릎 통증" 으로 겨우 앞 사람 따라 내려가면서 >

 

함께 하는 일행 중 10여명이 육지로 떠나는 배행기 시간으로 인하여 더 이상 거문오름의 내부 탐사가 불가능하겠다는 이야기와 함께, 경비 초소에서 처음 출발한 탐방안내소 방향으로 내려가므로 인하여 다소 적은 인원이 거문오름의 속살로 진입하게 한다.

 

< "거문오름 속살" 로 들어가기 전에 설명하는 해설사 >

 

거문오름의 정점에 있는 전망대에서 내려본 것과 같이 거문오름은 전체가 둥굴게 오름을 형성하지 못하고 지금 서 있는 북동쪽 방향으로 터진 말굽형 분화구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 터진 형태는 불출한 용암이 흘러가는 길이 되다가 어느 지점에서 지표 아래로 계속하여 흘려가므로 현재의 지표면과 동일하게 낮아지는 용암 동굴계를 형상하는 모체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거문오름에서 부터 오늘날 우리들에게 유명한 동굴 관광지로 만들어 주고 있는 뱅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의 동굴을 형성하면서 제주도 동쪽 바다 까지 연결된다고 한다.    

 

< 초소 앞에 있는 거문오름 형성 과정 "설명서" >

 

지금까지 어느 정도 이야기를 허용하였지만 지금 부터 엄하게 무언을 부탁하면서 거문오름의 허파 속으로 진입하게 하는데, 다소의 인원이 감소하여도 여전히 끝지점에 따라가다 보니 해설의 내용은 꽝통이 된다.

처음에는 다소의 속보로 걸어가다가 어느 지점에 멈추면서 긴 해설이 이어지는데, 이번에는 거문오름 내에서 흘려가는 용암의 길을 형성하고 있는 내용과 더불어 거문오름에서만 자생하고 있는 야생화와 더불어 식물, 나무 등을 설명하여 준다.

 

< "용암" 이 흘려간 용암협곡 >

 

그런데 이곳 거문오름에는 매우 강한 독성을 품고 있는 "천남성(天南星)" 꽃을 비롯하여 금빛의 색을 가진 "금새우난초" 꽃에서 부터 다양한 야생화가 자라고 있어, 한순간도 해설사가 지적하는 손끝을 주시하지 않으면 허사의 탐방이 된다.

 

<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는 "천남성" >

 

< 아름답게 피어 있는 "금새우난초" >

 

< 만개하고 있는 "얼름나무" 꽃 >

 

특별하게 이 거문오름에서 자생하고 있는 나무들의 뿌리를 관찰하여 보면, 나무의 뿌리가 바위를 뚫고 살아가는 모습에서 부터 바위 위에서 사는 나무, 바위와 공생하면서 살고 있는 나무,  바위를 통째로 감쌓고 있는 나무, 바위 위에서 살다가 태풍으로 인하여 바위와 분리하면서 고사목으로 전환하고 있는 나무 등 다양한 뿌리를 관찰 할 수 있다. 

 

< 바위 위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 뿌리" >

 

< "뿌리" 가 노출되어 있는 나무를 설명하는 해설사 >

 

특히 탐방코스는 삼나무 군락지를 포함하여 붓순나무 군락지, 식나무 군락지를 비롯하여 다양한 나무들이 분포하고 있는 군락지를 통과하면서 고유의 식생을 관람하면서 연속적으로 탐방이 가능하게 한다.

 

< "삼나무" 군락지를 통과하는 일행 >

 

거문오름의 입구에서 부터 한 20분 정도 들어가면 거문오름의 중심지가 되는 다소 솟은 지형에 나무테크로 만든 "알오름" 전망대에 도착하여 지는데, 전망대 난간에 서서 숲에서 발산하는 피톤치드의 향기에 취하여 본다.

 

< 거문오름 중앙지점에 있는 "알오름" 전망대 >

 

< 알오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거문오름 속살" >

 

다시 분회구 내부로 전진하면 일본군이 전쟁을 준비하면서 만든 갱도 진지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고, 더 깊숙하게 앞으로 전진하면 다양한 식생과 더불어 숯가마터, 풍형 등을 구경하다가 왔던 길의 다른 방향이 되는 "U" 자 형으로 꺽어서 분화구를 탈출하는 길로 들어선다.

 

< 일분 군인들이 만든 "갱도 진지" >

 

< 갱도에서 파낸 "화산석" 무덤 >

 

<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풍혈" >

 

여기 "U" 자의 정점이 되는 지점에서 뒤에서 출발한 팀이 함류가 이루어지는데, 이렇게 30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팀간의 간격에도 불구하고 뒤팀이 따라왔다는 것은 우리팀 해설사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해설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한다.

 

< 성장을 억제시키는 "밴드" 로 감쌓고 있는 나무가지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

 

< "화산탄" 생성 과정을 설명하면서 >

 

거문오름의 마지막이 되는 지점에 도착하면, 거문오름에서 더 많이 걸어보기 위하여 말굽형의 반대편 편자(태극길 탐방로)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이 되는 3거리 이정표를 만난다.

거문오름에 대하여 더 많게 연구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 길로 들어가 약 1시간 정도 능선으로 올라가 걸을 수 있지만, 그 방향으로는 해설사가 동행하지 않고 단독으로 진행하여야 한다고 한다.

 

< 계속 탕밤을 원하는 사람에게 안내하는 "태극길" >

 

대부분 사람들은 2시간 30분 정도의 탐방이 이루어진 것도 힘들어 하므로  더 이상 탐방을 원하지 않고 해설서와 함께 거문오름의 허파로 들아가는 원점회귀가 되는 초소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초소 앞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여 탐방길에서 참았던 배설물을 제거하는 시간을 가진다. 

 

< 거문오름 내에 있는 유일한 "화장실" >

 

그래도 뒤 팀에게 미안함을 가지면서도 거문오름에 대한 신비스러운 풍경을 한개라도 더 해설하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는 J 선생님에게 무언의 감사를 보내는데, 다소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열정으로 해설하여 주시기를 기원하여 본다.

이렇게 마지막 지점에서 해설사는 금일 함께 하는 여려분에게 자기의 지시를 잘 따라 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면서 처음 생수를 제외하고 어떠한 것도 지참하지 못하게 한 것은 거문오름 내에 살고 있는 식물의 무단 반출 및 토질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함이고, 어떠한 소리도 못하게 하는 것은 숲속에 살고 있는 새나 동물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아울러 자기의 소원은 이곳을 탐방하는 사람에게 수백 배의 탐방료를 징수하는 일이 발생하여도 일회 최소의 인원으로 출입을 허락하고, 먼 발취에서 해설을 경청하는 사람이 없도록 진정하게 자연유산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탐방의 기회를 많이 가지는 것이 최선이 아닌지 의문을 가져본다고 한다.

아울러 현재 제주도에는 중국인을 비롯하여 외국인들의 관광이 급감하고 있는데, 제주도에서 먹고, 쉬고, 머무는 곳으로 거듭나게 하면서 제주도를 더욱더 사랑하여 달려는 이야기로 해설의 총평을 끝낸다.

 

< 탐방을 끝내고 "원점회귀" 의 초소 앞으로 지나가는 일행 >

 

거문오름의 둘레길이 되는 가장자리 따라 한 10여 분 정도 걸어서 내려가면 아침에 출발한 탐방 안내소에 도착하는데, 안내소로 들어가 탐방 출입증을 반납하면서 거문오름의 관람을 종료하게 한다.

     

3. 광치기 해변에서 점심식사.

거문오름의 탐방길에서 해설사가 마지막으로 당부한 내용 중 관광객 감소로 인하여 모두가 힘들다고 하면서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 제주도의 토속음식이 되면서 다소 가격이 저렴한 음식으로 전복죽, 겡이죽, 멍게 비빔밥, 성게칼국수 등을 추천하므로 거문오름 근처에는 별다른 음식점을 찾지 못하여 스마트 폰으로 음식점을 조회하는데, 인접하게 있는 대부분의 음식점이 성산읍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네비게에션을 의존하면서 섭지코지 입구이면서 광치기 해변에 있는 "섭지해녀의 집" 식당으로 안내하는데, 이 섭지해녀의 집은 제주도 출신 해녀들이 직접 바다로 들어가 수확한 해산물을 식재료로 사용하여 음식을 만든다고 한다.

 

< 광치기 해변에 있는 "섭지해녀의 집" >

 

해녀의 집에서는 회와 더불어 겡이죽, 멍게 비빔밥, 성게칼국수를 전문적으로 요리한다는 아주머니의 추천으로 모두 성게칼국수를 주문 함과 동시에 반주로 해녀들이 잡은 해산물 한 접시와 더불어 제주도에서 생산하는 소주를 주문하여 본다.

다소 늦은 시간이라 시장이 반찬이라는 이야기와 같이 순식간에 점심식사 시간을 끝내고 좌판기에서 뽑은 커피 한잔을 들고, 식당 뒤편에 있는 나무테크 전망대로 나아가 눈 앞에 펼쳐지는 광치기 해변과 더불어 멀리 성산일출봉 풍경을 감상하여 본다. 

 

< 해녀의 집에서 바라보는 "성산일출봉" 전경 >

 

언제나 이곳 광치기 해변에서 바라보는 성산일출봉의 전경이 일품으로 연출하고 있지만, 일본 군인들이 전쟁을 대비하여 해안선 따라 만들어져 있는 동굴진지를 보고 있으니 가슴이 아련하여 진다.

 

4. 섭지코지의 산책.

점심식사 덕분에 섭지코지 입구 까지 방문한 기회로 인하여 다시 섭지코지를 한번 더 찾아가기로 하는데, 해안선 따라 주차장으로 들어갈려고 입구에 도착하니 아저씨 한분이 현재 해안가 주차장에는 만차가 되어지므로 인하여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휘닉스 아일랜드" 앞으로 들어가면, 새로운 섭지코지 해안 관광단지가 조성하고 있다고 한다.

 

< 새롭게 단장하고 있는 "섭지코지" 조감도 >

 

그래서, 휘니스 아일랜드 정문을 통과하여 더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넓은 주차장과 더불어 새롭게 관광단지를 조성하고 있는 곳에 승합차를 주차시키고 나서 섭지관광단지로 들어가 보는데, 제주도 조롱말을 사육하기 위한 초지 일부분을 산책길로 만들면서 새로운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는 중이다.

섭지코지는 제주도의 동쪽 해안에 자리잡고 있는 관광지로 제주 방언으로 "좁은땅" 이라는 뜻을 가진 "섭지" 와 "곶" 이라는 뜻의 "코지" 가 합쳐저서 섭지코지이라고 하는데, 이곳에는 조선시대에 봉화를 올렸다는 "연대(煙臺)" 도 함께 하고 있다.    

관광지 입구에는 먹거리촌을 비롯하여 커피점 등 휴식공간과 더불어 관광안내소가 새롭게 단장하고 있는데, 이 단지 입구에서 해안선 까지 접근하는 방법으로는 걸어서 가는 길을 비롯하여 마차와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길이 조성되므로 다양한 방법으로 해안선에 도착이 가능하게 한다.

 

< "섭지코지" 로 들어가는 문 >

 

돈이 없는 실업자 동문은 걸어 초지의 땅을 통과하면서 해안선으로 접근하여 하얀색 등대가 있는 언덕길 위로 올라가는데, 시원한 바다와 함께 성산일출봉의 화산석 바위들이 바다로 돌출하고 있는 절벽이 우뚝 솟아있고 그 뒤편으로 "우도(牛島)" 라는 섬의 끝머리가 조금 보이고 있는 전경이 펼쳐진다.

 

< 섭지코지 내에 있는 "등댸' 올라가는 길 >

 

< 등대 주변에서 바라보는 "성산일출봉과 우도" >

 

등대 주변을 돌아가면서 해안선 구경을 하다가 다시 왔던 길로 내려서면서 해안선 따라 길을 걸어가면 이 해안선 길에는 어느 해안선과는 달리 불은색 화산재로 구성되고 있는 "송이" 로 덮혀 있고, 해안가에는 기암괴석들이 마치 수석 전시회를 여는 듯 저마다의 모습을 뽐내고 있다.

 

< 등대 주변으로 화산석 "송이" 와 함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선돌바위" >

 

그 중에서 새의 배설물로 인하여 흰색으로 도색을 하고 있는 촛대모양의 바위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촛대바위는 선녀와 용왕신의 아들 사이에 못다 이룬 사랑의 전설이 담긴 선돌바위가 관광객의 시선을 집중하게 만든다.

옛날 이곳 섭지코지는 선녀들이 목욕을 하던 곳으로 선녀를 한번 본 용왕신의 막내 아들은 용왕에게 선녀와 혼인하고 싶다는 간청을 드리니, 용왕은 아들에게 100일 간 기도를 드리면 선녀와 혼인 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100일 째 되던날 갑자기 바람이 거세어져 선녀들이 하강하지 못 함으로 용왕이 이르기를 너의 정성이 부족하여 하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구나 하면서 달래 보지만, 이에 슬퍼하는 막내는 이곳 섭지코지에서 선채로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몇 번이고 보았던 바위이지만 보고 또 보면서 구경를 하고 있으니 몇몇 중국어를 사용하는 무리들이 지나가고 있는데, 지금까지 그렇게도 많는 중국인들이 제주도를 찾아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여기에서 처음 만나보는 외국인이 된다.       

전에 방문하였던 길의 반대 방향으로 올라가면 언덕의 정점에는 적의 침입을 알리는 협자 연대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 앞으로 영화 "올인" 의 촬영장이 되는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 적의 침입을 알리는 "협자 연대" >

 

성당 방향으로 가까이 내려가니, 성당 건물이 초콜릿을 판매하는 집으로 개조하기 위하여 지붕에서 부터 건물 외벽 전부를 초콜릿 모양으로 만들고 있어 옛날에 방문한 모습에서 많은 반감이 일어나는 건물로 변하고 있다.

 

< "초콜릿" 집으로 변신하고 있는 성당 >

 

이 초콜릿 건물에서 승합차가 주차하고 있는 방향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초지를 건너 마차가 다니는 도로에 올라서서 조금 걸어가면, 화산석으로 쌓은 미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그 속으로 들어가 술래잡기를 하여도 본다.

 

< 화산석으로 쌓은 "미로 길" 을 걸으면서 >

 

또 다른 한편으로 제주도에 채취한 화산석으로 거대한 돌탑을 만들어 놓고 있어 바위 앞에서 한장의 기념사진을 찍어보는데, 저렇게 무거운 돌을 어떻게 운반하면서 돌탑을 쌓았는지 의문이 발생하게 한다.

 

< 거대한 돌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장 >

 

5. 혼인지 방문.

이곳 제주 동부 방향에 있는 관광지 대부분을 관람한 곳이라 특별한 관광지가 생각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승합차를 운전하면서 표선항 방향으로 이동하다가 "혼인지(婚姻池)" 라는 이정표가 보이므로 한번 더 혼인지를 구경하여 본다.

혼인지는 삼성혈(三姓穴)에서 태어난 탐라의 시조 고(高)씨, 부(夫)씨, 양(梁)씨의 삼신인이 동쪽 바닷가에 떠밀려 온 함(函) 속에서 나온 벽랑국(碧浪國) 세명의 공주를 맞이하여 각각 배필을 삼아 이들과 결혼하였다는 곳이다.

삼신인은 그들의 함 속에서 나온 송아지, 망아지를 기르고 오곡의 씨앗을 뿌려 태평한 생활을 누렸고 이로 부터 농경생활이 시작하였다고 하는데, 지금도 당시 세명의 공주가 들어 있던 함이 떠밀려 왔던 해안선 "황루알" 에는 삼인이 바닷가에서 처음 디딘 발자욱이 암반에 아련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주차장에 주차를 끝내고 나서 도로 건너편에 있는 관리사무소를 통과하여 혼인지 연못으로 길을 안내하여 연못을 가로 질려 만들어져 있는 나무테크 길 따라 걸어 뒤편으로 들어가는데, 연뭇 속에는 다양한 수생지 풀과 함께 아름다운 연꽃을 피우기 위하여 많은 연이 연못을 가득 메우고 있다.

 

< "혼인지" 를 알리는 입석 >

 

<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 있는 "혼인지" 전경 >

 

연못을 한바퀴 돌고 나서 혼인지 중앙에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삼신인이 신방을 꾸몄다는 동굴을 구경하여 보는데, 이 동굴에서 고씨와 부씨 및 양씨의 삼신인과 벽랑군 세명의 공주와 합방하였다고 하는 신방굴이라고 하며 굴 입구로 들아가면 각각의 방이 세곳으로 나누어져 있어 신혼방으로 사용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라고 한다.

 

< "신방굴" 내부를 구경하고 있는 동문 >

 

동굴을 구경하고 나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전통 혼례를 치루는 넓은 마당과 더불어 곳곳에 산재하고 있는 건물을 만나는데, 입구의 왼편에 있는 건물은 하객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 건물이고 마당의 중앙에 있는 건물을 전통 혼례식을 거행하는 건물이라고 한다.

 

< 신방굴 안쪽에 있는 "전통 혼례장" >

 

간단하게 전통 혼례장을 관람하고 나서, 해안가로 드라이브를 즐기면서 분위기가 있는 카페(Cafe)로 들어가 품위에 걸맞은 커피 한잔을 먹어보자는 의견으로 인접하게 있는 표선항으로 이동하게 한다.

표선항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민속 해안로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면서 표선 해비치 리조트를 지나 조금 더 앞으로 전진하면 바다가 내려보이는 카페가 자리하므로 그 곳으로 들어가 충분한 휴식과 더불어 고급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여가를 즐겨본다.    

 

6. 성읍민속촌 구경.

다음 관광지로 이동하기 위하여 표선사거리 방향으로 되돌아 나와 성읍민속마을을 관람하기 위하여 97번 국도를 이용하여 제주시 방향으로 한 20분 정도 달려가면, 성읍민속마을에 도착한다.

도로변에 있는 주차장으로 들아가 주차하고 있는 사이 한 아주머니가 뛰어와 일행에게 성읍민속촌에 대하여 해설을 자청하므로 아주머니를 따라가니, 그녀는 한 채의 민속집으로 안내하면서 제주도 집의 구조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 물건을 판매하는 "아주머니" 해설을 경청하면서 >

 

적당하게 해설을 끝내고 나서 그녀의 상점으로 안내하여 제주도에 생산하는 미역과 더불어 말의 뼈로 만든 환약을 팔기 위하여 혈안이 되는데, 모두가 상품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아주머니에게 우리들이 이곳 성읍을 방문한 이유는 제주도의 특산 먹거리가 되는 말고기를 먹기 위함이라고 설명하여 본다.

그래서 인터넷 상으로 제주도 성읍에서 말고기를 잘하는 "원조바스메" 라는 식당의 위치를 물어보니, 아주머니가 물건을 파는 것은 뒤편으로 하고 이제는 주객이 전도 되면서 식당을 홍보하기 시작한다.

여기 성읍에서 제주시 방향으로 한 10여 분 정도의 거리에 "원조바스메 및 바스메" 라는 2개의 식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원조바스메 식당은 제주시로 올라가는 길의 오른편에 있고 바스메 식당은 도로 건너편이 되는 왼편에 있다고 한다.

그런데 바스메 식당이라는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이유는 원조바스메 식당 주인이 10여 년 간 영업을 하다가 집의 주인이 상호와 식당을 그대로 남겨둔 상태에서 집을 나가는 계약으로 도로 건너편에 바스메 식당의 간판을 걸고 Open 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자기가 우리를 모시고 도로 건너편에 있는 바스메 식당 까지 안내하여 주겠다는 간청을 뿌리치고 우리들이 직접 찾아가겠다고 하니, 전화로 미리 예약하여 주겠다는 요청으로 그것 까지 거절하기에 다소 미안 함이 발생므로 허락하기로 한다.

그러고 나서 서문을 통하여 성읍민속촌을 구경하기 시작하는데, 성읍민속촌은 조선조 태종 16년(1416년) 성산읍 고성리에 설치되었던 정의현청(旌義縣聽)이 세종 5년(1423년) 이곳으로 옮겨진 이내 500여 년간 현청 소재지 이었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 "성읍민속촌" 을 알리는 안내문 >

 

기록에 의하면 원래 정의현은 태종 16년(1416년) 안무사 오식(吳湜) 선생님의 건의에 따라 성산읍 고성리에 정의현을 축성하였으나 현청이 동쪽으로 너무 치우쳐 행정상 불편할 뿐만 아니라 태풍의 피해가 잦고, 또한 우도가 가까이 있어 외적의 침범이 빈번하므로 안무사 정간(鄭幹) 선생님이 건의하여 세종 5년(1423년)에 당시 진사리(현재 : 표선면 성읍리)로 현치(懸治)를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일명 진사성(晉舍城)이라고 불려졌던 정의성(旌義城)은 축성한지 5일만 인 세종 5년(1423년) 정월 13일에 총 돌레 2.896척에 높이 13척 규모로 완공되었는데, 성에서는 동쪽과 서쪽 및 남쪽 3개의 문을 두었고 성안에는 두곳의 우물이 있었다.

숙종 28년(1702년) 이형상(李衡祥) 목사 "탐라순력도" 에 의하면 정의현의 당시 민가 호수가 1.436호에 전답이 140결, 성 수비군이 664명, 말이 1.178필, 흑우가 228수를 보유 할 정도의 상당히 번성하였던 읍성이었다고 한다.

1423년 이후 부터 약 5세기 동안 정의현은 도읍지로 번성하였던 성읍이 평범한 농촌 마을의 길로 접어들었다가, 1915년 5월 1일 부로 제주 군제도 마져 폐지되고 도제가 실시되면서 정의현 고을이었던 성읍은 표선면 면소재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1980년 대에 들어서면서 성읍민속촌은 그 역사적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문화재적 차원에서 새로운 정기를 맞게 되면서 제주도 지정 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되었고, 이어 1984년 6월 1.425필지 약 백만 평의 면적이 중요민속자료 188호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되었다가 1987년 9월에 보호구역이 되는 935필지 약 24만 평으로 축소 조정되어 오늘에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성읍민속촌의 안내문을 숙지하고 나서 민속촌 구석구석을 거닐면서 관람하여 보는데, 옛날 성읍민속촌을 방문하였을 때에는 남문을 통하여 들어가므로 다소 어안이 벙벙하게 만든다.

 

< 성읍민속촌의 주 통로가 되는 "남문" >

 

일단 눈에 익은 남문 방향으로 이동하여 민속촌의 중앙통이 되는 Main 길 따라 본격적으로 관람하여 보는데, 한무리의 외국인들이 민속촌 해설사와 함께 하면서 알찬 해설을 통하여 민속촌을 구경하는 모습에 부려움을 발생하게 한다. 

 

< 성읍민속촌의 중앙이 되는 "Main 길" >

 

이 성읍민속촌의 중앙길로 한참 들어가면 처음 만나 물건을 강매하는 아주머니 해설을 기억하면서 전통가옥 한부분 한부분을 관람하면서 뒤편으로 이동하니까, 민속촌에서 제일 큰 건물을 가지고 있는 "객사(客舍)" 에 도착한다.

 

< 아주머니가 해설한 제주도 "전통가옥" 을 구경하면서 >

 

< 활짝핀 "유채꽃" 도 구경하고 >

 

객사는 중앙에서 내려온 벼슬아치들의 숙소로 사용한 건물로써,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과 함께 좌우로 대칭이 되면서 솟을대문과 비숫하게 중앙에 있는 건물이 앞으로 조금 나와 있는 3칸의 집과 좌우의 3칸 건물이 약간 후퇴하므로 매우 특색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건물이다.

 

< 매우 아름다운 형태의 "객사" 건물 >

 

이렇게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성읍민속촌을 구경하고 나서 남문 방향으로 나오면 남문 입구에 4개의 돌하루방이 자리를 하고 있는데, 이 돌하루방의 표정과 좌우 손의 높이와 위치에 따라 문관과 무관으로 구별하게 한다고 한다.

         

< 다양한 모양과 손의 위치를 나타내는 정의현 오른편 "돌하루방" >

                        

< 성읍민속촌 남문으로 들어가는 왼편에 있는 "돌하루방" >

 

7. 바스메 식당에서 말고기 식사.

성읍민속촌에서 만난 아주머니 약속과 같이 제주시 방향으로 한 10여 분 정도 운전하여 올라가니 아주머니가 이야기 한 것과 같이 먼저 "원조바스메" 식당 간판이 나타나고, 조금 더 진행하면 도로 건너편으로 "바스메" 식당 간판이 보이므로 한 200m 더 전진하여 신호등 앞에서 U-Turn 하여 바스메 식당으로 들어간다.

 

< "말고기" 음식을 판매하는 바스메 식당 >

 

식당으로 들어가니 넓은 홀에서는 오직 한부부가 말고기를 먹고 있어 매우 적막감이 흐르는 식당이 되므로 잘못 찾은 것이 아닌지 의심을 가지면서 테이블로 앉으니, 주인 아주머니가 인사를 하면서 식당의 내력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도로 건너편에서 원조바스메 라는 식당에서 약 10여 년 운영하다가 건물 주인과의 계약으로 빈손으로 나와 이곳에서 10여 년 동안 바스메라는 식당으로 영업하고 있는 원조 주인장이 되고, 바스메는 이곳 지역에 있는 한개의 오름의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고 나서 말고기의 장점을 설명하여 주는데, 말은 치명적인 지병이 없고 영양학적으로 어느 가축보다 뛰어나서, 국가적으로도 말고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끝임 없이 지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제주도에는 식용마(食用馬)를 별도로 사육하고 있으며 소와 돼지가 도살되는 축협 도살장에서 위생적으로 도살해서, 기생충 검사와 질병 검사를 수의사에게 검수하여 합격한 것에 대하여 소비자에게 판매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아울러 말고기의 식품 영양학적 가치로는 칼숨과 철분이 풍부한데, 칼숨의 함유량이 11% 로써 소고기 4%의 약 3배가 되고 철분이 4.3%로 소고기 2.7%의 약 2배가 되며 저지방, 고단백, 저칼로리, 저콜레스테롤, 저열량을 가진 고기가 된다고 한다.

또한 섭취시 혈액 내 총 콜레스테롤 및 LDL-CHO(유해한 콜레스테롤)의 함량 및 혈액의 지방 함량을 저하시키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으며, 소고기에 거의 함유하지 않고 있는 오메가-3 필수 지방산인 알파-리놀넨산 함량이 100g 당 318-710mg 정도 풍부하므로 죽상동맥경화증 및 혈전형성을 예방하는데 특효가 있다고 한다.

이곳 식당에서는 인당 2만5천원의 말고기 Full-course를 판매하고 있는데, 제일 먼저 말고기 햄버그 스택이 나오고 그 다음으로 육회, 불고기, 갈비찜, 내장, 사골탕 등 6가지 요리가 연속적으로 나온다고 한다.

 

< 바스메 식당에서 판매하는 "말고기 Full-course 요리" 메뉴 >

 

아울러 인당 3만원 짜리 Full-course는 2만5천원 짜리 요리에 액기스 한잔과 육 사시미를 추가하는데, 일반적으로 말고기 이라는 선입감으로 2만5천원 짜리를 많이 찾고 있다고 하면서 사전 전화로 주인장이 서비스 차원에서 액기스 한잔을 선사하겠다고 한다.

어찌하던 일행 모두가 인생 처음으로 말고기를 음미하여 보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고기는 다소 찔기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요리 방법에 따라 차별화가 있어 찔김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단지 갈비찜에서 사용하는 고기가 다소 찔김을 느끼게 한다.

 

< 코스 요리로 나오는 "말고기 육회" >

 

< 말고기 "사골탕" 요리 >

 

< 다소 찔김감을 느끼게 하는 말고기 "갈비찜과 내장" > 

 

일반적으로 많이 먹어보는 소고기와 돼지고기에 대비하여 큰 차별화를 느끼지 못하므로 만약 제주도를 방문한다면, 한번은 꼭 먹어 보아야 하는 요리가 된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를 한다.  

 

< "말고기" 를 즐기는 동문 >

 

식당의 입구 진열장에는 말에서 추출되는 마유 등 다양한 말의 부위를 식용으로 판매하고 있으나, 어찌 찝찝함을 느끼는 상품이 되므로 가격도 물어보지 않고 식당을 떠나기로 한다.

 

8. 속소 도착과 더불어 내일 일정 소개.

바스메 식당 주차장에서 나와 다시 U-turn 하여 숙소가 있는 제주시 방향으로 운전하여 가다가 1112번 도로를 이용하여 삼굼부리 앞을 통과하여, 2일간 예약하여 놓은 교래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간다.

그러고 내일 다소 많은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발하지만 가파도 청보리 축제를 구경하기 위하여 모슬포항으로 이동하기로 하는데, 제주도를 처음 방문하는 인간 문화재가 되는 동문이 하루라도 더 늙기 전 한라산 정상을 정복하겠다는 의지로  이원화로 관광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가파도로 들어가는 아침 9시 배를 승선하기 위하여, 내일 아침은 다소 일찍 일어나 행동 하여야 한다는 엄명으로 각자의 방으로 직행하여 깊은 꿈속으로 빠져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