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기계과 동문.(산행)

경북대학교 기계과 동문과 함께 2박3일 간 하기휴가를 "설악산 및 하조대" 에서의 관광.(2)

용암2000 2015. 8. 16. 20:07

둘째날 : 8월 5일.(수요일)  

 

1. 하조대 방문.

전일 속초 장사항에 있는 회센터에서 구입한 매운탕으로 아침식사를 끝내고, 숙소 인근에 있는 하조대를 관람하기 위하여 하조대 해수욕장 남쪽 끝지점에 있는 조그마한 야산을 넘어가면 하조대 주차장에 도착한다.

 

< 야산 속에 있는 "하조대' 주차장 >

 

먼저 오른편 나무테크 계단으로 올라가면 “하조대(河趙臺)” 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정자에 도착하는데, 이곳 하조대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를 도와 나라를 세우는데 크게 공헌한 "하륜(河崙)과 조준(趙浚)" 선생님이 이곳에서 잠시 은거하였다고 하여 그의 성(姓)을 따서 하조대라고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 하조대에 있는 "정자" >

 

조선 정종 때 정자를 건립하였으나 퇴락하여 철폐되었으며, 수차례 중수를 거듭하여 1940년 8각정을 건립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불에 탄 것을 1955년과 1968년에 다시 재건되었다.

 

< 정자 내부 마루에 붙어있는 "하조대 한시" >

 

현재의 건물은 1998년 해체 복원한 건물로 초익공 굴도리양식의 육모정으로 지붕에 절병통을 얹어 소나무와 함께 주위의 자연 경관과 잘 어울리고 있으며, 정자 앞에는 조선 숙종 때 참판 벼슬을 지낸 이세근(李世瑾)이 쓴 "하조대(河趙臺)" 라는 3자의 글씨가 암각되어진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 이세근 참판이 쓴 "하조대" 글씨 >

 

정자로 올라가 주변 조망을 구경하여 보는데, 하조대는 동해 바다의 절경을 볼 수 있는 돌출되어진 만(灣)의 정상 부위에 건립하여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지만 우리나라 해안에서 전망이 좋다는 장소에는 군사시설로 출입을 통제하다가 몇년 전 개방하므로 아직도 주변으로 군사시설을 철거하지 않아 매우 흉물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정자의 가장자리에서 동해 바다 방향으로 바라보면 바다로 돌출되어져 있는 바위 위에 고고하게 자라고 있는 수령 200년에 약 9m의 높이를 가진 소나무 한그루가 하조대의 풍광을 더욱더 빛나게 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사진의 배경으로 삼고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 200년의 수령을 가지고 있는 "소나무" >

 

일행도 함께 몇 장의 기념사진을 남기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안내소 앞을 지나 반대편의 돌출 바위에 있는 등대 방향으로 올라가는데, 트레킹 길은 나무테크 길로 잘 만들어져 있으면서 원만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바위로 올라서면 바다가 내려보이는 동산 위에 하얀 등대가 자리하고 있다.

 

< 등대 방향으로 건너가는 "나무테크 길" >

 

< 동해 바다가에 있는 "하조대 등대" >

 

< 동산 주변에 있는 "바다 헌장" 조각상 >

 

등대 주변으로 만들어져 있는 전망대를 돌아가 남쪽 방향으로 바라보면 조금 전에 올라갔던 하조대의 아름다운 풍광이 눈 앞에 머물고 있고, 반대가 되는 북쪽 방향으로 바라보면 울창한 숲속으로 군사시설이 숨겨져 있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등대에서 바라보는 "하조대 정자" >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하조대 주변으로 많은 군사시설들이 아직도 철거되지 않고 방치하고 있어 다소 실망감을 가지면서 승용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내려가 하조대를 떠나, 다음 여행지를 방문하기로 한다.

 

 

2. 휴휴암 관람.

하조대를 구경하고 나서 7번 국도를 이용하여 강릉방향으로 한 10여 분 정도 내려가면 휴휴암으로 들어가는 주차장에 도착하는데, 나는 이 휴휴암을 2013년 8월 3일 하기휴가 일정에 강원도 방향으로 여행하던 중 한번 방문한 곳이지만 친구들이 방문한 경험이 없다고 하여 서비스 차원에서 내방하도록 운전하여 간다.

도로변에 있는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시키고 작은 야산을 넘어 한 5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휴휴암의 정문이 되는 불이문에 도착하면서 경내와 바다가를 거닐면서 휴휴암의 진가를 다시 평가하여 본다.

휴휴암(休休庵)은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곳에 자리하면서 이름과 같이 "쉬고 쉬면서 참선의 경지에 이르면서 진리를 깨닭는다" 라는 뜻을 가진 참선의 장소가 되는 사찰이라 하겠다.

 

< "휴휴암" 입구에 있는 입석 >

 

< 휴휴암 관문이 되는 "불이문" >

 

< "휴휴암" 전경과 더불어 동부그룹와의 분쟁지역 토지 >

 

< 주불을 모시고 있는 "묘적전" >

 

< 묘적전 내에 모시고 있는 "천수관음상" >

 

<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밀법당" >

 

<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는 "비룡관음전" >

 

< 시원한 물이 흐르고 있는 "샘과 포대화상" >

 

특히 사찰을 돌아보고 나서 해안가에 있는 범종각 건물로 올라가니 한명의 보살님이 수십번의 종을 치면서 고요한 사찰과 바다로 긴 여운의 메아리를 만들고 있어, 종각 건물 마루에 올라가 가부좌 자세를 하면서 앉아 종소리와 함께 긴 맥놀이의 여음(餘音)에 도취하여 본다.

 

< 해안가 범종각 건물에서 타종하고 있는 "보살" >

 

< 바다가에 있는 "해수관음보살" >

 

수십 번의 타종식을 끝나고 나니 또 다른 한명의 여승이 바다 방향에 있는 해수 관음보살님을 바라 보면서 기나긴 염불 시간을 가지는데, 낭낭하게 들려오는 스님의 염불소리가 심금을 울리면서 마음을 정화시켜 주므로 모든 번뇌를 잊어지게 하는 사찰이라 하겠다. 

 

< 범종각에서 해수관음보살을 보면서 "염불" 하고 있는 스님 > 

 

< 사찰 방향으로 수영하면서 접근하고 있는 "거북" 바위 >

 

< 경내 곳곳에 있는 "거북이와 두꺼비" >

 

< 바다가에 있는 "부처 또는 해골" 상 >

 

< 부처님 "발가락" 형태의 바위 >

 

< 많은 "물고기" 를 방생하는 바다가 >

 

< "황어" 때가 움직이고 있는 물 >

 

< "황어" 때를 구경하는 관광객 >

 

휴휴암의 방문 후기는 이미 나의 블로그에 기술한 내용으로 대신하도록 하고, 천천히 경내와 바다까지 한바퀴 돌아보면서 귀중한 시간 속에 머물고 있다가 다음 관광지를 관람하기 위하여 경내를 떠나기로 한다.

 

 

3. 남애항 방문.

휴휴암에서 한 5분 정도 강릉방향으로 다시 내려가면, 동해에서 강릉 심곡항 및 삼척 초곡항과 함께 강원도에서 3대 미항(美港) 중 하나가 되는 "남애항(南涯港)" 이 자리하므로 그곳을 방문하여 보기로 한다.

이 남애항은 1종 어항으로써 양양군에서 가장 큰 항구이면서 남애 1리에서 4리까지의 긴 포구마을을 거닐고 있는 항구인데, 동해시의 추암(湫岩) 일출과 함께 동해안 일출의 최고 명소로 꼽히고 있으면서 특히 그림과 같은 해변과 아담한 항구를 붉게 물 들이면서 타오르는 해돋이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항구이라 하겠다. 

남애항이 위치한 양양군의 양양은 오를 "양(養)" 과 해양 "양(陽)" 으로 한자의 뜻에서 알 수 있듯이 "해가 떠오른다" 라는 의미를 가진 해돋이 고장이라 하겠으며, 남애는 매화가 결실을 맺은 후 떨어지는 모양이라 하여 "낙매(落梅)" 라고 불러오다가 남쪽바다 라는 뜻의 "남애(南涯)" 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항구를 알리는 아취형 문은 통과하여 부두로 들어가면 항구에는 물고기를 경매하는 거대한 창고형 건물이 있지만, 다소 늦은 오전 시간이다 보니 적막감이 내리고 있으므로 아름다운 정자와 더불어 전망대 건물이 보이는 왼쪽에 있는 방파제 방향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 강원도 3대 미항 중 하나가 되는 "남애항" 전경 >

 

왼편 방파제 입구에는 회를 판매하는 회센터 건물이 일렬로 도열하고 있으면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주차장과 더불어 아담한 정자 한 채가 자리하고 있는데, 그 정자에는 한가족의 중년부부가 한가롭게 무더위를 날려보내고 있다.

 

< 방파제 가장지리에 있는 "정자" >

 

이 정자 뒤편으로 남애항을 알리는 조형물과 더불어 이곳에서 영화 "고래사냥" 을 찍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어 그 내용을 읽어보는데, 1984년에 촬영한 고래사냥은 고향을 찾으러 떠난 세 젊은이의 모험담을 그린 영화로써 최인호 선생님의 각본에 배창호씨가 감독하였다고 한다.

 

< "남애항" 을 알리는 조형물 >

 

안성기, 이미숙, 김수철 등이 출연하여 공전의 희트를 친 고래사냥은 1984년 한국 영화 최고 흥행을 기록하였으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추억의 작품으로 생각하면서 영화의 마지막 장소가 되는 남애항을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 "고래사냥" 을 알리고 있는 안내문 >

 

여기 정자에서 바위가 돌출하고 있는 바다가로 나아가면 광활하면서 망망대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남애항 "스카이 워크(Sky walk)" 전망대가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자리하고 있어 그곳으로 올라가 보는데, 잘 만들어져 있는 나무테크 길 따라 한층 올라가면 바다로 돌출되어 있는 테라스 전망대를 만난다.

 

< 바다로 돌출하고 있는 "잔망대" >

 

< 울창한 소나무와 함께 하는 "전망대와 나무테크 길" > 

 

"U" 자로 돌출되어 있는 테라스 전망대의 발판이 투명유리로 되어 있어 한바퀴 돌려고 하면, 오금이 조여오는 현기증이 바로 유발하므로 다소 고소공포증이 많은 사람에게는 공포의 전망대가 된다.

 

< "U" 자로 돌출하고 있는 테라스 전망대 >

 

이 테라스 전망대에서 회전계단을 이용하여 한층 더 위로 올라가면 안전하게 만들어져 있는 전망대에 도착하면서 여기에서 내려보는 남애항 전경은 한폭의 풍경화로 머물고 있는데, 특히 방파제 끝지점에 서 있는 빨간색과 하얀색의 등대가 마치 쌍둥이 형제와 같이 마주보고 있다.

 

< 위층 전망대에서 내려보는 "남애항" 전경 >

 

<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빨간 등대" > 

 

북쪽의 바다 방향으로 바라보면 아름다운 해안선과 더불어 조금 전에 관람하였던 휴휴암의 해수관음보살이 높게 보이고 있어, 이 남애항이 정말 강원도의 3대 미항으로 선정되어진 이유를 실감하게 한다.    

 

< 남애항 오른편에 있는 "동산과 소나무" >

 

< 멀리 보이는 휴휴암 "해수관음보살" >

 

이곳에서도 충분한 여유를 가지면서 구경하다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이야기와 같이 배에서 음식을 달려는 소리로 인하여 남애항에 있는 회집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금일 오후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 위하여 하조대 해수욕장으로 달려가기로 한다.

 

 

4. 하조대 해수욕장에서의 물놀이.

하조대 해수욕장으로 올라가 해수욕장 먹거리촌의 되는 식당가를 찾아가 간단한 점심식사 시간을 가지고 나서, 인접하게 있는 속소로 들어가 수영복 차림으로 변신하고 다시 하조대 해수욕장으로 내려간다. 

 

< 하조대 해수욕장에 있는 "먹거리촌" >

 

이곳 하조대 해수욕장은 길이가 자그만치 6Km에 너비 150m, 넓이가 8만3.000㎡, 연평균 수용인원 약 16만 명에 1976년 7월에 신설 및 개장되었으며, 1984년 시범해수욕장으로 격상되었다고 한다.

 

< "하조대 해수욕장" 을 알리는 입석 >

 

<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수영객" >

 

< 적은 수영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하조대 해수욕장" > 

 

해수욕장 모래 경사가 완만하면서 모래의 질이 양호하고 울창한 송림을 배경으로 양양공항까지 약 6Km 백사장이 연이어 펼쳐지고 있으며, 남쪽에는 광정천(光丁川)이 동해로 흘러들고 있어 입지조건이 최고이라 하겠다.

 

< 약 6km 정도 펼쳐지고 있는 "하조대 해수욕장" >

 

간단하게 체조를 하고 나서 모처럼 바다 물에 몸을 담겨보는데, 어릴적 배운 개구리 수영으로 거대한 물장구를 만들면서 해수욕장을 누비고 다니고 있으니 주위에 있는 어린이와 선남선녀들이 머리가 하얀 늙은이들이 미쳤다고 생각하는지 따가운 시선들이 집중된다.

 

< "물놀이" 를 즐기는 동문 >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도취로 인하여 맑은 물 속에서 친구들과 물장구를 치면서 동심의 세계로 역행하고 있으니, 푸른 바다에는 굉음을 만들면서 달리는 수중 오트바이 뒤편에 매달려 있는 바나나 보트 및 스카이 보트에 몸을 싣고 물놀이를 즐기는 청춘남녀의 환호성이 파도소리와 함께 푸른 창공으로 흩어진다.

생각보다 그렇게 오래동안 물 속에서 머물어 보기에는 이제 너무나 늙어 버린 세월로 인하여, 약 한시간 정도 몇 번의 짠물을 마시다가 해수욕장을 떠나 다시 속소로 들어가 짠물로 젖은 몸을 씻으면서 기나긴 휴식의 시간을 가진다.

 

 

5. 속초 아바이 마을 구경.

전일 구입한 옥수수를 삶아 먹으면서 여가의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식사는 속초시내에 있는 아바이 마을로 들어가 아바이 순대를 비롯하여 지역 별식을 먹어보기 위하여 다시 속초시가지로 달려간다.

청초호 옆에 있는 아바이 마을 호수가에 주차하고, 아바이 섬으로 넘어가기 위하여 새롭게 만들어져 있는 "설악대교" 다리를 건너가기 위하여 다리 가장자리에 만들어져 있는 엘리베이트를 타고 올라가 다리를 건너 가다가 다리 반대편에 있는 엘리베이트를 이용하여 내려가서 아바이 섬으로 들어간다. 

 

< 아바이 섬으로 넘어가는 "설악대교" >

 

< 아바이 섬으로 내려가는 설악대교 "엘리베이트와 계단" >

 

이곳 아바이 마을과 섬은 본래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백사장으로 이루어져 있던 곳 이었으나 수복 이후 피난민들의 거주지로 마을이 형성되어 속초리 5구가 되었다가 청호동(靑湖洞)으로 이름이 바꾸어졌는데, 청호라는 이름은 섬의 안쪽에 있는 "청초호(靑草湖)" 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 일몰시간에 있는 "청초호" >

 

< 설악대교에서 바라보는 "동해 바다" >

 

이곳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에는 함경도(咸鏡道)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까닭에 함경도 사투리로 "아바이" 를 사용하여 "아바이 마을" 이라고 불려지기 시작하였는데, 1954년 11월 17일 법률 제350호 "수복지구 임시 행정조치법" 에 따라 수복 이후 북쪽에서 월남한 피난민들이 거주하면서 마을로 형성된다.

현재 청호동에는 면적 0.3㎢, 1.149세대, 3.650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면서 10개 통과 52개 반으로 구성되고, 이곳 청호동은 항만에 접한 작은 반도(半島)이므로 주민의 6할 이상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으면서 북쪽에 고향을 두고 자유를 찾아서 월남한 실향민이 70% 이상이 상권을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 이곳에 정착한 주민들은 사람 허리 정도의 깊이로 땅을 파고 창문과 출입구만 지상으로 내놓고 토굴 같은 집을 짖고 살았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해일이 일면 마을이 휩쓸려 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피난민들의 열악한 생활과 함께 역경 속에서 살아가다가 70년 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써 부분적으로 주택을 개축할 수 있었고, 나름대로 마을의 형태를 갖추게 되므로 조금씩 인간다운 삶으로 살아갈 수 있는 마을이다.

이곳은 조양동에서 진입하는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중앙동에서 대부분 무동력 운반선인 "갯배" 를 이용하여 왕래하므로 자연적으로 발전이 더딜 수 밖에 없었으며, 청호동의 상징물 이른바 "5구 도선장" 은 실향민들의 아픔을 실어 날았다.

먼저 아바이 섬에서 중앙통이라고 불려지는 좁은 길 따라 들어가면 거리 곳곳에 아바이 순대를 비롯하여 이북 전통음식을 판매하는 상가들이 도열하고 있고, 좁은 거리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왕래하면서 이색적인 풍경에 도취하면서 걷고 또 걷는다.

 

< 아바이 섬의 "중앙통" 이 되는 거리 >

 

< 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아바이 섬" 뒤골목 >

 

우리 일행도 많은 젊은이와 함께 거리를 거닐면서 구경하다가 섬의 북쪽이 되는 "금강대교" 아래로 들어가 육지로 건너가기 위하여 갯배를 승선하여 보기로 하는데, 일인당 편도 200원의 요금을 징수하고 있다. 

 

< 아바이 섬에서 유명한 "은서네 집" >

 

< 금강대교 아래에 있는 "갯배" 타는 곳 >

 

< 아바이 섬에서 속초시내로 넘어가는 "금강대교" 전경 >

 

아바이 섬에서 한 50m 거리에 있는 육지가 되는 중앙동으로 건너가기 위하여 갯배는 양쪽으로 Wire 로프를 매어 놓고 뱃사공이 로프에 막대기를 걸고 당겨서 배를 운행하는데, 여분의 막대기를 준비하여 승객과 협력하여 직접 배를 당겨서 건널 수 있는 체험을 하는 것도 하나의 추억이 되므로 많은 어린이들이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 "Wire 로프" 를 당겨서 운행하는 갯배 >

 

아바이 섬을 건너 숙초시내의 중심지가 되는 중앙동을 거닐어 보는데, 중앙동은 속초에서 생산하는 수산물을 판매하는 시장으로 제일 유명한 "속초관광수산시장" 이 자리하고 있으며 시장 입구에 설치하고 있는 네온싸인에서 일부 불빛을 발하면서 고객을 유혹하고 있다.

 

< 속초시가지에 있는 "황소" 조형물 >

 

< 네온싸인 불빛이 들어오고 있는 "속초관광수산시장" >

 

< 많은 식객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88 생선구이" 식당 >

 

뱃사공이 속초관광수산시장 지하에 있는 회집으로 들어가면 값이 저렴한 회를 실컨 먹을 수 있다는 유혹을 뿌리치고, 처름 계획한 것과 같이 아바이 섬으로 다시 돌아와 거리를 구경하면서 예약하여 놓은 식당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고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 먼저 아바이 순대와 더불어 오징어 순대가 혼합되어 있는 모둠 순대 한 접시와 더불어 반주로 한병의 소주로 기념 축배를 들고 있으니, 주인장이 특별하게 만든 북한식 반찬을 음미하여 보라고 조금씩 제공하여 주는 재미를 가진다.

 

< 한식당에서 먹어보는 "순대" 셋트 >

 

아울러 식당의 벽과 천정에는 많은 낙서와 함께 시인 "이상국" 씨가 쓴 한편의 시(詩)가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이나 나그네에게 실향민의 애환을 느껴 보기에 충분하게 기술하므로 짱하여 지는 마음을 열리게 한다.

 

* 혹시 청호동에 가본 적이 있는지
   집집마다 걸려 있는 오징어를 본적이 있는지
   오징어 배를 가르면
   원산이나 청진의 아침 햇살이
   퍼들쩍거리며 튀어오르는 걸 본 적이 있는지
   그 납작한 몸뚱이 속의
   춤추는 동해를 떠올리거나
   통통배 연기 자욱하던 갯배머리를 생각할 수 있는지
   눈 내리는 함경도를 상상할 수 있는지
   우리나라 오징어 속에는 소줏집이 들앉았고
   우리들 삶이 보편적인 안주라는 건 다 아시겠지만
   마흔 해가 넘도록
   오징어 배를 가르는 사람들의 고향을 아는지
   그 청호동이라는 떠도는 섬 깊이
   수장당한 어부들을 보았거나
   신포 과부들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는지
   누가 청호동에 와
   새끼줄에 거꾸로 매달린 오징어를 보며
   납작할 대로 납작해진 한반도를 상상한 적은 없는지
   혹시 청호동을 아는지...

 

그러고 나서 평양식 냉면으로 식사를 끝나고 한번 더 좁은 골목을 돌아서 나오는 길에 숙소에서 계속적으로 파티를 이어가기 위하여 새우와 오징어 튀김 한 접시를 구입하면서 아바이 섬을 따나기로 하는데, 그 사이 모든 관광객을 썰물과 같이 떠나가고 적막감이 내리는 아바이 섬이 된다.

 

< 다소 조용한 거리가 되는 "아바이 섬 거리" >

 

다시 엘리베이트를 이용하여 호수가에 주차하고 있는 승용차를 몰고 숙소가 있는 하조대 해수욕장 인근에 있는 아파트로 들어가서, 2차의 파티시간을 가지면서 무더운 여름 밤을 시원하게 만들어 본다. -둘째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