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 문화와 산행.

경북 청도군 금천면 임당리에서 조선 400년 동안 내시 가계로 이어오고 있는 "임당리 김씨고택" 의 방문.(5)

용암2000 2017. 4. 14. 10:23

2017년 4월 5일.(수요일)

 

1. 청도 임당리 김씨고택 방문.

 

신지리 4거리에서 운문댐 방향으로 한 10여 분 정도 달려가면 임당1리가 나타나면서 도로변에 임당 마을회관이 자리하고 있으므로 마을회관 주변에 승용차를 주차하였지만, 주변에는 임당리 김씨고택으로 가는 이정표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임당마을은 운문산 한줄기가 서북으로 뻗은 해발 538m "시루봉" 서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데, 마을 앞으로 흐르는 동창천(東倉川)를 바라보면서 마을은 아늑하게 만들고 있으면서 김씨고택은 이 마을의 어느 한부분에 자리하고 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게 한다.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문의하겠다는 생각으로 마을 안길 따라 걸어가니 어느집 담벼락에 "김씨고택 가는 길" 이라는 글씨와 더불어 하부에 화살표가 있는데, 화살표가 가르키는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면 고택의 건물을 보호하는 긴 돌담에 도착하여 진다.

 

                  < 마을 안길 어느집 담벼락에 쓰여 있는 "김씨고택 가는 길" >

 

             < 긴 돌담과 함께 하는 "임당리 김씨고택" 전경 >

 

돌담의 중간지점에 솟을대문과 더불어 대문 앞에 청도 "임당리 김씨고택(林塘里 金氏故宅)" 에 대한 설명문이 붙어있어 그 내용을 정독하여 보는데, 이곳 김씨고택은 중요민속문화재 제245호로 조선시대 궁중 내시(內侍)로 봉직한 "김일준(金馹俊)" 선생님이 통정대부 정3품의 관직 까지 지내다가 말년에 낙향하여 집을 짓고 여생을 마친 후 후손들이 줄 곳 이곳에서 거주한 고택이라고 한다.

 

                 < 김씨고택의 정문이 되는 "솟을대문" >

 

청도 임당리는 1592년 임진왜란 이전 부터 400년간 16대에 걸쳐 내시가계(內侍家系)가 이어져 오고 있는데, 건물에는 내시종가(內侍宗家)의 가옥으로써 건물 전체의 구조를 보아 19세기 초의 건축물로 추정된다.

이 집의 특징으로는 안채로 출입하는 사람을 잘 살펴 볼 수 있게 큰사랑채가 배치되어져 있으면서 안채와 안마당이 건물과 담장으로 완전히 폐쇄되어져 있는 점, 안채가 북향으로 보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고 하겠다.

이 건물은 내외공간(內外空間)이 일반 사대부의 저택 보다 더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고, 건물 배치도 출입을 잘 관리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는 것 등 특이한 주택 형식을 보여 주고 있어 내시 주택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 임당리 "김씨고택"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솟을대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왼편으로 넓은 공터를 가진 마당의 중앙에 4칸의 큰사랑채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대문과 다른 대부분의 건물들은 서향으로 건물이 배치하고 있지만 큰사랑채와 그 앞면에 있는 작은 고방채 건물만 유일하게 남향이 된다.

큰사랑채는 홑처마에 팔작기와지붕에 4칸의 일자(ㅡ)의 평면으로 지어진 건축물로 안쪽의 2칸의 사랑방으로 나머지 2칸은 대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청에 서면 안채로 드나드는 사람들을 살필 수 있는 절묘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솟을대문을 통과하면 왼편에 있으면서 남향이 되는 "큰사랑채" >

 

이 큰사랑채 앞으로 중사랑채가 자리하고 있으면서 이 중사랑채도 홑처마에 팔작기와지붕으로 하는 정면 4칸과 측면 2칸의 건물이 되는데, 이 4칸의 건물 중에 왼쪽의 1칸은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 안채로 들어가는 유일한 대문이 있는 "중사랑채" >

                    < 안채 마당에서 바라보는 "중사랑채" >

 

이 중사랑채 왼편 한칸에 있는 대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아가면 넓은 장방형의 마당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이 마당을 중심으로 하여 튼 "ㅁ" 자의 건물이 배치하고 있는데, 대문에서 오른편에는 북향이 되는 안채가 자리하고 있으면서 안채의 정면에는 작은 고방채 건물과 우측에는 큰 고방채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안채는 정면 6칸에 측면 2칸의 맞배기와지붕을 하고 있으면서 중사랑채 방향에서 건너방, 대청와 안방, 부엌의 순서로 되어있는데, 잘 다듬은 장대석으로 일단의 기단을 만들면서 역시 잘 다듬은 고급스러운 장대석으로 섬돌을 꾸며져 있어 사랑채와 같이 비교적 장엄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작고 답답한 툇마루와 폭이 짧은 기둥 사이로 인해 사대부집의 안채 처럼 개방감과 시원한 느낌은 주지 못하고, 안채의 바라지창은 나무 무늬가 아름답게 표현되도록 널판을 널찍하게 만들어 나무의 결 및 옹이 부분이 섬세하게 드러내게 만들어져 있다.

 

             < 북향이 되는 "안채" 전경 >

 

안채의 정면과 우측에 비교적 크고 꽤 넓은 2개의 고방채가 자리하고 있는데, 안채의 우측에 있는 큰고방채는 가운데에 2분합 판문을 두고 있으면서 오른편의 한 칸에는 선반과 뒤주를 만든 곳간채로 별도의 문을 두고 있으면서 제일 구석에는 안채 여인들이 사용하는 내측(內厠)이 자리하고 있다.

 

              < 안채의 정면과 우측에 있는 2채의 "고방채" >

 

               < 큰 고방채 제일 구석에 있는 "내측" >

 

안채의 정면에 있는 작은 고방채의 3칸은 통으로 만든 4량의 큰 곳간채가 되면서 전용 수장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제일 구석의 1칸에는 디딜 방아간을 두고 있는데, 여기의 아낙네들은 친정 부모님의 상(喪)을 당하였을 때 오직 출가를 허용하므로 여인들이 이곳에서 음식을 만들기도 하는 위안처의 공간이라 하겠다.

안채와 중사랑채 사이로 있는 협문을 이용하여 밖으로 나가면 사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별도의 공간으로 구획하고 있는 담장 안에 있는 일반 사당과 차별하게 동쪽으로는 담을 만들지 않고 안채를 지키기 위한 것 처럼 안채 방향으로는 담장을 쌓고 있다. 

 

                < 안채의 뒤편과 중사랑채 사이에 있는 "사당" >

 

조상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있는 사당은 3칸의 규모로 둥근기둥을 앞 줄에 세우고 반칸 뒤편으로 삼문을 두고 있는 것이 건물의 특색이 되면서 사당 앞에는 높은 정료대가 자리하고 있는데, 정료대는 서원이나 향교, 큰 관아, 사찰 등에서 볼 수 있는 시설물이나 일반적인 가옥에서는 보기드문 사례가 된다.

 

               < 사당 앞 마당 가장자리에 있는 "정료대" >

 

이렇게 사당을 관람하고 나서 사당 앞으로 만들어져 있는 협문을 통하여 앞으로 나오면 중사랑채 건물 전면에 도착하여 지는데, 중사랑채 앞에는 고택으로 들어오는 5칸의 솟을대문이 자리하고 있다.

솟을대문은 정면으로 보이지 않도록 "ㄱ"자 형태의 작은 담장이 앙증맞게 자리하고 있으면서 왼편으로 넓은 텃밭과 더불어 아름다운 정원들이 가꾸어져 있지만 아직도 봄이 활짝 열리지 않아서 그런지 다소 쓸쓸함이 묻어난다.

 

                < 사당 앞에 있는 "협문" >

 

                    < 중사랑채 앞 왼편에 만들어져 있는 "ㄱ" 자 형태의 작은 담장 >

 

                       < 중사랑채 앞에서 바라보는 "솟을대문" >

 

이렇게 숨겨져 있는 임당리 김씨고택을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돌아보고 나서 길을 떠나기로 하는데, 이러한 저택을 가지면서 생활하였던 내시들이 상당한 경제적 능력을 가지면서 살았고 또한 궁궐에서 터득한 생활 지식으로 매우 고귀한 삶을 살았으리라 생각하니 그분들의 생(生)을 되돌아 보게하는 고택이라 하겠다.-5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