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 문화와 산행.

서울에서 거주하는 대학교 동문 3명과 함께 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운문사' 를 방문하면서.(1)

용암2000 2020. 10. 18. 13:08

 

 

여행의 기간 : 2020년 10월 15일에서 17일까지 2박3일

 

 

* 첫째날 : 2020년 10월 15일.(목요일)

 

1. 여행의 개요.

일전 서울에 거주하는 대학교 동문 3명과 함께 코로나 바이러스(Corona Virus)를 탈피하게 위하여 2박3일(2020년 8월 21일에서 23일까지)간 경상남도 합천군에 있는 해인사 주변의 관광지를 탐방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 때 가능한 수시로 장거리 여행을 추진하자는 의견으로 집결하였다.

그래서 다음의 여행지로는 가을의 전령사로 유명한 억새가 나부끼는 영남알프스 지역을 탐방하여 보자는 의견으로 결정하였는데, 그래서 억새가 무르익는 10월 15일에서 부터 17일까지 2박3일로 결정을 하였다.

영남 알프스는 경상북도의 청도군, 경주시와 경상남도의 울산시, 밀양시, 양산시의 접경지에 형성하면서 해발 1.241m '가지산' 을 중심으로 해발 1천m 이상의 산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각각의 산에는 수려한 산세와 더불어 풍광을 자랑하면서 유럽의 알프스와 견줄만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영남알프스는 가지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천황산, 재약산, 고헌산 등 7개의 산을 지칭하였으나 가지산에서 양쪽 날개와 같이 자리하고 있는 운문산 및 문복산 2개의 산을 추가로 포함하여 9개의 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영남 알프스는 전체 면적이 약 255㎢가 된다.

사계(四季) 모두가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가을이 되면 산의 곳곳에 억새로 가득한 환상적인 풍경을 자랑하여 전국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지역인데, 명산 속에 품고 있는 유명한 사찰로는 통도사, 운문사, 석남사, 표충사, 석골사 등 역사 깊은 문화 유적지도 함께 하고 있다.

또한 아름다운 기암절벽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면서 다양한 동식물이 살고 있어 영남알프스는 동물와 식물의 보고(寶庫)이라고 불려지고, 주변으로는 아름다운 자연 만큼이나 즐길거리가 가득하다고 한다.

 

2. 운문사의 방문.

나는 나의 애마가 되는 모닝을 운전하면서 KTX 열차로 아침 10시 20분 동대구역에 도착하는 동문을 픽업(Pick-up)하여 영남알프소 방향으로 달려가는데, 첫번째 여행지로는 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운문사(雲門寺)' 를 방문하여 보기로 한다.

나는 이번 여행지는 다방면으로 여러번 방문한 장소가 되어지지만 서울에서 거주하는 동문들은 까마듯한 옛날 옛적에 방문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관광지가 어떻게 변화를 가져왔는지 무척이나 궁궁증을 유발시키고 있다고 한다.

내가 제일 최근 운문사를 방문한 일자는 6년 전이 되는 2014년 2월 15일이 되어 다소 상기된 얼굴을 하면서 운문댐 상부에 있는 운문사 경내로 진입하는데, 경내 입구에 있는 매표소에서 경로(敬老)로 인하여 입장료는 무료가 되지만 주차비 1.000원을 요구한다.

운문사는 일반적으로 사찰의 입구에 있는 일주문이나 사천왕문 등 복잡한 문이 없고, '호거산운문사(虎距山雲門寺)' 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2층의 범종각 건물 밑으로 진입하면 이내 경내의 마당에 들어선다.

 

< 주차장에서 '운문사' 로 들어가는 길 >

 

< 운문사의 첫 관문이 되는 '범종각' 건물 >

 

운문사는 대구의 명산 팔공산에 자리하고 있는 동화사의 말사이면서 신라 진흥왕 21년(서기 560년)에 초창되어 처음에는 '대작갑사(大鵲岬寺)' 라 하였는데, 제1차 중수는 진평왕 때 원광국사가 중수하였고 제2차는 신라 말 보량국사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서기 937년 고려 태조왕이 많은 전지(田地)를 내리고 운문선사(雲門禪寺)라는 사액을 내리면서 '운문사(雲門寺)' 라고 불려졌다고 하는데, 고려 숙종 때 원응국사가 3차 중수를 하였으며 고려 고종 때 일연스님이 주지로 역임하였다고 한다.

그 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여러 차례 중수가 있었으며 1958년에 비구니 전문 선원을 개설한 이래 한국의 대표적인 승가대학으로 승격하였는데, 경내에는 7개의 보물급 문화재와 더불어 1개의 천연기념물을 보유하고 있는 가람이다.

 

< '운문사' 를 설명하고 있는 현황판 >

 

범종각 건물 앞으로 중앙 통로가 만들어져 있으며 중앙 통로를 기준으로 운문사가 2개의 영역으로 구획하고 있는데, 오른편 방향으로 일반 신도와 함께 불경을 올리는 사찰영역이 되어지고, 왼편으로는 비구니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 건물과 더불어 스님들이 공부하는 승가대학 영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 '범종각' 건물 앞으로 펼쳐지고 있는 중앙 통로 >

 

오른편 입구 처음 만나는 건물에는 각종 기념품과 더불어 서적을 판매하는 상가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 뒤편으로 500여 년의 수령을 가진 천연기념물 제180호로 지정된 '처진소나무' 가 운문사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 중앙 통로 오른편에 있는 '처진소나무' 전경 >

 

처진소나무는 운문사에서 거주하는 어떤 고승이 소나무 가지를 꺽어서 심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나무의 높이가 6m에 가슴 둘레가 3.5m 이며 가지가 밑으로 늘어지는 점이 일반 소나무와 차별화가 발생한다.

특히 이 처진소나무에는 매년 봄에 막걸리 10말을 물에 타서 뿌리 가장자리에 뿌려 주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에서 최대 규모의 크기로 둥굴 모양을 하고 있어 매우 아름다운 자태를 가진 소나무이라 하겠다.

이 소나무를 통과하면 '만세루(萬歲樓)' 라고 불려지는 거대한 루각 건물을 만나지만, 현재는 공사로 인하여 건물 전체에 거대한 천으로 가려져 다소 보기가 싫어지면서 처진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만세루 건물의 뒤편으로 넓은 마당이 나타나면서 마당의 중심으로 운문사의 본찰의 건물 '대웅보전(大雄寶殿)' 이 자리하고 있고, 대웅보전 오른편에는 응진전(應眞殿)과 조영당이라는 현판으로 같이 붙어있는 한채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보전' >

 

< '대웅보전' 내에 모시고 있는 부처님 >

 

< 대웅보전 오른편 한채의 건물에 '응진전 및 조영당' 현판이 붙어있는 건물 >

 

마당 왼편으로는 고옥의 '전향각(篆香閣)' 이라는 건물이 자리잡고 있지만 문이 굳게 잠겨져 있고, 그 앞으로 감로수가 흘려내리는 우물과 더불어 부처님의 교법(敎法)이 한곳에 머물지 않고 항상 돌아가면서 전달하여야 한다는 '법륜상(法輪相)' 조각품이 자리하고 있다.

 

< 대웅보전 왼편에 있는 '전향각' 건물 > 

 

< 만세루와 옛 대웅보전 건물 사이에 있는 '법륜상' >

 

법륜상 왼편으로 또 다른 보물 제835호 옛 '대웅보전' 건물을 만나는데, 이곳 대웅보전 건물은 운문사 본찰의 건물 대웅보전 보다 규모 면에서 다소 작은 건물이지만 건립 시기가 훨신 오래 되어진 건축물이라고 한다.

이곳 옛 대웅보전 건물 내부에는 비로자노불을 모시고 있어 건물의 명칭도 '비로전(毘盧殿)' 이라고 변경을 하였는데, 운문사 본찰의 건물이 되는 새로운 대웅보전을 건축하면서 부터 명판을 비로전으로 교체하였지만 안내 설명문은 옛 이름이 되는 대웅보전으로 기술하고 있다.

 

< 옛 대웅보전 건물이면서 현재 '비로전' 건물 >

 

< 비로전 내에 모시고 있는 '비로자나불' >

 

비로전 건물 앞에 보물 제193호 '석등(石燈)' 과 더불어 제678호 '삼층석탑(三層石塔)' 2기가 나란하게 서 있는데, 석탑의 높이가 5.4m의 쌍탑으로 9세기 통일 신라시대에 축조 되었으며 상층 기단부에 앉아 있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이 세련되게 조각되어 있으며 한개의 돌로 된 탑신에는 모서리 기둥이 뚜렸하게 만들어져 있는 탑이다.

 

< 비로전 앞에 있는 '3층석탑' >

 

이어 비로전 건물 왼편으로 '오백전(五百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중앙에 모시고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 오백나한이 서로 다른 얼굴을 하면서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볼수록 정겨움이 일어난다.

 

< 비로전 안쪽에 있는 '오백전' >

 

오백전 건물 뒤편에는 담장으로 구획하고 있는 요사채 건물이 자리잡고 있지만 내부로 연결하는 문이 없으므로 인하여 뒤돌아서 나오면, 만세루 앞으로 스님들의 수행공간 요사채로 들어가는 작은 쪽문 불이문(不二門)이 있지만 이곳으로 출입이 금지된다는 안내문 붙어있다.

쪽문 바로 뒤편에 '작압(鵲鴨)'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전면 1칸에 측면 1칸의 매우 작은 '작압전(鵲鴨殿)' 건물 한채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건물 내부에 보물 제317호 석가여래좌상(石迦如來坐象)' 을 모시고 있으나 좌상의 모양 자체가 나약하고 위축되게 조각되어 있으며 형식화가 많이 진전된 점으로 보여 신라 말 또는 고려 초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 매우 작은 '작압전' 건물 >

 

또한 석가여래좌상 앞 좌우에 보물 제318호 '사천왕석주(四天王石柱)' 를 모시고 있는데, 4기의 사천왕상 돌 기둥은 반대로 신체가 장대하지만 양감이 줄어든 가냘픈 체구와 더불어 부드러운 인상 및 갑옷의 굵은 띠 주름 등으로 미루어 보아 신라 말에 만들어진 작품이라 하겠다.

 

< 작압전 내 모시고 있는 '석가여래좌상 및 사천왕석주' >

 

작압전 건물 옆에 '관음전(觀音殿)' 건물과 더불어 '명부전(冥府殿)' 건물이 나란하게 자리잡고 있고, 명부전 앞으로 칠성각(七星閣) 건물과 더불어 또 다시 승가대학과 요사채로 들어가는 넓은 문이 있지만 이곳에서도 발길을 돌려 주면 좋겠다는 안내문 따라 되돌아 나오면 칠성각 건너편으로 3개의 비각 건물이 나란하게 서 있다.

 

< 작압전 오른편에 있는 '관음전' >

 

< 관음전 오른편에 있는 '명부전' >

 

< 명부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칠성각' >

 

< 칠성각 앞으로 펼쳐지고 있는 '승가대학' >

 

중앙 비각 건물 내에는 보물 제316호 '원응국사비(圓應國師碑)' 가 서 있는데, 원응국사는 고려 중기의 승려로써 운문사 중창과 더불어 그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비석이라고 한다.

 

< 승가대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원응국사비' >    

 

고려 인종 22년(1144년)에 원응국사가 93세로 입적하자 인종은 국사로 책봉하고 '원응' 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비를 세우게 하였다고 하는데, 현재 비석이 3개로 파손되어 있는 것을 비편을 연결하여 관리하고 있다.

 

 < 운문사 앞 바위 틈에 자리하고 있는 '북대암' >

 

여기까지 운문사의 사찰 영역이 되어지는데, 오늘도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관람을 끝내고 다시 범종각 건물 밖으로 나오면 운문사 5개의 암자 중에 하나이면서 해발 659m 지룡산 허리에 '북대암' 이라는 암자가 새집과 같이 바위 틈에 자리하고 있다. -  첫째날 1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