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기계과 행사.(제주도)

제주도 4일차 마지막 날 첫 여정은 상생의 바람이 되는 '제주 4.3 평화공원' 을 방문하면.(5)

용암2000 2018. 11. 18. 22:51

2018년 11월 10일.(네째날 : 토요일 오전)

 

1. 여행의 개요.

금일은 제주도 여행에 있어서 마지막 날이 되는데, 지금까지 함께 여행을 가진 2명의 동문은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오후 2시 선편으로 전라남도 완도군으로 들어가 완도에서 1박을 하고 아침에 청산도를 관광하는 것으로 계획 하겠다고 한다.

대신 나는 대구에 있는 산악회를 통하여 청산도를 몇 번 방문한 경험이 있는 장소이라 함께 동행하지 않고, 내일 고등학교 동문야유회을 참석하는 것으로 약속하므로 오후 6시 비행기로 대구로 출발하기로 한다. 

전일 밤 부림온천 회장의 초대로 저녁식사를 하였던 식당으로 찾아가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4일차 마지막 날 첫 여정은 제주도 중산간에 있는 제주 4.3 평화공원을 방문하기로 한다.

 

< 어제 저녁식사와 아침식사를 한 '서울 뚝배기' 식당 >

 

2. 제주 4.3 평화공원을 찾아서.

식당에서 제주 절물자연휴양림 방향으로 한 30분 정도 달려가면 절물자연휴양림 바로 직전에서 오른편으로 평화공원을 가르키는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이정표 따라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주차장에서 평화공원 내에 조성하고 있는 정원을 가로질러 왼편 구석 가장자리에 자리하고 있는 제주 4.3 평화기념관 내에 있는 상설전시실을 관람하기로 하는데, 몇 대의 대형버스를 이용하여 많은 관광객이 동시에 방문하므로 기념관 안에는 야시장을 방불하게 만든다.

 

< '제주 4.3 평화공원' 조감도 >

 

< 주차장 가장자리에 있는 '이정표' >

 

< '제주 4.3 평화기념관' 으로 들어가는 문 >

 

< 호수와 함께 하는 '평화공원' 전경 >

 

먼저 영상실로 들어가 간단하게 제주 4.3 사건에 대한 내력을 설명하고 있는 한편의 영화를 관람하고 전시실로 들어가는데, 관람객이 너무나 많아 몇 명의 해설사가 나와 관람객을 나누어 해설을 하기로 한다.

 

< '전시관' 내부에 있는 로비 >

 

< 전시관 내부에 있는 '영상실' >

 

일행도 한 무리의 관람객과 함께 해설사를 따라 가면서 전시실 내부를 관람하여 보는데, 전시실 내부가 미로와 같이 좁고 어둡게 되어져 있어 이내 앞 뒤에서 인도하는 해설사의 마이크 소리가 상호 메아리가 되어 억망의 해설장이 된다.

 

< 전시관 내 '전시실' 로 들어가는 입구 >

 

< 아직 미발굴되어진 시신을 위하여 준비한 '관' >

 

< '해설사' 와 함께 하는 관람객 >

 

그래서 해설의 내용보다 입구에서 획득한 팜플릿을 참조하여 4.3 사건 내용을 요약하여 보는데, 제주 4.3 사건은 미군정기에 발생하여 약 7년 동안 지속한 사건으로 한국전쟁 다음으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이라 하겠다.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정에서 당국의 정책실패와 사회문제 등으로 인하여 민심이 불안한 상황에서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로 제주 주민 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 1945년 '해방' 을 좋아하는 제주도민 >

 

< '신탁통치' 를 결정하는 모스코바 3상 회담 >

 

< '미군정' 의 정책실패를 설명하는 내역 >

 

그래서 제주도민과 관청에서 총 파업을 단행하므로 미군정은 여분의 경찰과 서청(서북청년) 단원을 제주도에 파견하여 테러와 고문을 일삼았는데, 결국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는 경찰과 서청 단원에 대하여 무장봉기를 하게 된다.

1948년 5월10일 총 선거에서 전국 200개 선거구 중 제주도 2개의 선거구에서 투표수 과반수가 미달되어 무효처리가 되어졌으며, 대한민국 이승만 대통령은1948년 8월 15일 정부의 수립과 동시에 제주도 사태를 진압하기 위하여 군 병력을 증파하여 강력한 진압 작전을 전개한다.

 

< '민간인' 등을 사살한 경찰 >

 

< 토벌대가 사용한 '무기' >

 

그해 11월 17일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중산간 마을을 초토화를 시키면서 대대적으로 강경 진압작전을 전개하는데, 제주도 전역에서 무장대를 협조하였다는 이유로 수 많은 주민들을 집단적으로 학살을 시킨다.

1949년 3월 비로써 선무(宣撫)를 원칙으로 한 진압작전이 전개되어 한라산에 피신하여 있었던 주민을 하산시키고, 1949년 5월 10일 재선거가 성공리에 실시되고 그해 6월 무장대는 사실상 괴멸 된다.

 

< 중산간에서 사살 당한 '민간인' 디오라마 >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예비 검속(檢束)자와 내륙지방 형무소 재소자 등이 또 다시 희생이 되는데, 결국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禁足) 지역이 전면 개방 되므로 7년 7개월만에 4.3 사건이 종료 된다.

1947년 3월 1일 발포사건과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로 촉발되었던 제주 4.3 사건은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2만5천명에서 3만명의 제주도민이 희생되었는데, 당시 제주도의 주민 전체 수가 20만 명 정도가 되므로 9명 중 한명 정도가 희생이 되어진 사건이라 하겠다.

해설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발포명령을 내리므로 많은 제주 도민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까지 발설하지 못하고 있다가 작년 부터 마음 놓고 이야기 할 수 있어, 한 많은 엉어리가 풀린다고 하면서 해설을 끝낸다.  

 

< '4.3 사건' 이야기를 경청하는 관람객 >

 

< 출구 앞에 '소감문' 을 표시한 종이 >

 

기념관을 나와서 뒤편으로 조성되어 있는 공원을 산책하여 보는데, 공원의 전체 면적이 약 12만평이 되므로 매우 넓은 부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공원 곳곳에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 평화공원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조형물' >

 

공원의 중앙에는 위령탑이 자리하고 있고 위령탑 뒤편으로 올라가면 추모승화광장이 펼쳐지는데, 잘 가꾸어져 있는 진디광장 끝에 반원형 부채모양의 추모승화기념 위령탑이 자리하고 있다.

 

< 넓은 잔디광장과 함께 하는 '추모승화기념' 위령탑 >

 

건물의 내부로 들어가면 벽면의 전면에 제주 4.3 사건으로 희생되어진 14.120명의 위패(位牌)가 부락 단위로 붙어있는데, 매년 4월 3일 정기적으로 위령제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 건물 내부에 모시고 있는 14.120명 '위패' >

 

추모승화 위령탑 오른편 뒤편으로 돌아서 가면 우리나라 국립묘지와 비슷하게 표석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곳 표석에는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 중에서 시신을 찾지 못한 행방 불명자 3.896명의 표석이라 한다.

 

< 평화공원 제일 뒤편에 있는 '행방 불명자' 표석 >

 

< 표석 앞에서 해설을 듣고 있는 '관람객 >

 

공원의 오른편으로 내려오면 정원 가장자리에 발굴 유해 400구를 봉안하고 있는 봉안관과 더불어 다목적 어린이 체험관 건물이 보이고 있으며, 이곳 4.3 평화공원은 2008년 3월 28일에 개관이 되어진 공원이라 한다.

 

< 발굴 유해 400구를 모시고 있는 '봉안관' >

 

< 어린이를 위한 '체험관' >

 

지금 까지 나에게는 제주 4.3 사건이 머나먼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이면서 나의 주위에 피해자가 거의 불 수 없이 무관심 속에서 살았지만, 오늘 제주 4.3 평화공원을 돌아보고 희생자는 우리 동포이지만 단지 이념의 차이로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 민족인가를 알게 한다. -네째날 오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