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중국)

중화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China)의 수도가 되는 '베이징(Beijing)' 의 방문.(5)

용암2000 2019. 10. 4. 00:41
3. 세째날. (9월 22일 : 일요일 오후)


1) 명 13릉의 방문.
용경협 구경을 끝낸 일행은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길의 중간지점에 있는 '명 13릉(明 十三陵)' 을 관람하기로 하는데, 가이드는 여행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코스이라서 추가 옵션(Option)의 비용 45불($)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도 모두가 좋다는 이야기로 마이크로 버스는 시골 길을 한참 달려가 왕릉의 가장자리에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가 하차를 하는데, 명 13릉은 베이징 시에서 북서쪽으로 약 50km 떨어진 천수산(天壽山) 아래에 조성되어진 명나라의 13명의 황제와 29명의 황후 및 1명의 귀빈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왕릉의 면적이 80㎢(약3천만평)가 되어져 이곳 주차장에서 부터 왕릉의 입구의 관문이 되는 석패방(石牌坊)까지 거리가 7Km 정도 밖에 자리하고 있고, 그 다음으로 대궁문(大宮門) 및 비루(碑樓)가 자리하고 있다.
 
< '명 13릉' 의 조감도 >
 
비루에서 부터 신로(神路)가 만들어져 있는데, 신로의 길이가 자그만치 3Km가 되면서 좌우로 다양한 형상의 석조물(문관 및 무관, 사자, 해태, 코끼리, 기린, 낙타 등)이 도열하고 있다고 한다. 
여행객에게 도보로 입구의 관문에서 부터 시작하여 명 13릉의 전체 관람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관람의 동선(動線)을 가능한 짧게 하기 위해서는 시신을 안치하고 있는 앙릉과 가까운 위치에 주차장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주차장 인접지역에는 과일을 판매하는 많은 상점이 도열하고 있는데, 가이드는 이 지역에서 생산하는 복숭아가 최고의 맛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나갈 때 인당 한개씩 선물을 하겠다고 한다.
 
< 명 13릉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상점' >


그러고 나서 명 13릉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을 하는데, 명나라는 1368년 주원장(朱元璋)이 몽골이 지배하는 원(元)나라를 몰아내고 명(明)나라를 세웠으면 1544년에 명나라가 멸명할 때 까지 277년간 17명의 황제가 통치를 하였다.  
초대 황제가 되어지는 주원장은 당시 수도였던 난징의 효릉에 매장되어져 있고 2대 황제는 전란에서 실종되었고, 6대 황제와 8대 황제는 동일 인물이다. 
7대 경태제 황제는 탈문의 변으로 퇴위하여 사후 베이징 서교 금산에 묻혀져 명 13릉에 포함이 되지 못하는데, 그래서 명나라 17명의 황제 중 4명 황제를 제외한 13명 황제가 이곳에서 잠들고 있다고 한다.
명나라 3대 황제인 영락제가 수도를 난징에서 이곳 베이징으로 옮기므로 인하여, 영락제가 제일 중앙이 되는 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장릉(長陵) 이라고 한다.
13명의 황제 중에서 개방된 무덤은 1대의 장릉와 9대 소릉(昭陵) 및 10대 정릉(定陵) 등 3곳이 발굴되어져 있는데, 이 중에서 1대 장릉과 9대 소릉은 개방을 하지 않고 10대의 정릉을 개방하여 관광객을 수용하고 있다고 한다.
넓은 광장을 통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광장의 한 가장자리에 한기의 신공성덕비(神攻聖德碑)가 자리하고 있는데, 비석의 앞과 뒤면에 아무런 비문도 기록하지 않고 있다.

 
< 비문에 아무런 글씨가 없는 '신공성덕비' >
 
계속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왕릉을 개방하고 있는 정릉으로 들어가는 릉문(陵門)을 만나는데, 이 릉문은 중문이라고 불려지면서 문의 입구에는 명 13릉에 대한 내력을 한국어로 기록하고 있다.
 
< 왕릉으로 들어가는 '릉문' >
 
< 릉문 앞에서 '한국어' 로 기술하고 있는 설명문 >
 
신로의 길 옆으로 계속하여 걸어서 가면 일단의 계단을 만나고 계단의 위쪽 넓은 부지에 건물의 받침대가 되는 주축돌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의 건물은 일본군 폭격으로 건물이 파괴되어졌다고 한다.
 
< 릉문의 뒤편으로 이어지는 '신로' >
 
< 두번째로 만나는' 신로 및 돌계단' >
 
< 두번째 돌계단 중앙에 있는 '용' 의 문양 >
 
< 일본군의 폭격으로 건물이 파괴되고 남아 있는 '주축돌' >
 
마지막으로 푸른색의 영성문(靈星門)을 만나는데, 가이드는 이곳 영성문을 들어갈 때와 나갈 때에는 반듯이 황제님 '무덤으로 들어갑니다' 와 '무덤을 떠납니다' 이라는 인사를 하여야 한다고 한다.   
 
< 마지막 문에 되는 '영성문' >

이곳 영성문 옆으로 무덤에서 발굴되어진 다양한 유물을 진열하고 있는 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전시관 내에는 그릇, 비녀, 도자기, 왕관, 어의 등 다소 간단한 유뮬을 진열하고 있다.
 
< 영성문 좌측에 있는 '전시관' >

이렇게 작은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이유는 왕릉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발굴 기술의 미숙으로 인하여 많은 유물들이 유실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 관리의 미숙으로 인하여 도난을 많이 당하였다고 한다.


< '정릉' 의 조감도 >
 
< '전시관' 내부의 전경 >
 
< 황제가 쓴 '금관' >
 
< 황후가 쓴 '보석' 관  >
 
< 황실에서 사용한 '그릇' >


< 황후가 입었던 '옷' >


< 발굴한 '도자기' >
 
전시관을 나온 일행은 거대하게 자라고 있는 측백나무 숲을 통과하면서 내부로 계속하여 걸어가는데, 이렇게 왕릉 주변으로 많은 측백나무가 자생하는 것은 국목(國木)도 되지만 곤충을 퇴치하는 피톤치드가 많이 발산한다고 한다.


< 거대하게 자라고 있는 '측백나무' 숲 단지를 지나면서 >
 
측백나무 단지에서 오른편으로 야산과 같은 동산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이 동산이 정릉의 외곽이라고 하는데, 무성하게 자라는 측백나무로 인하여 가이드의 설명이 없으면 누구도 왕릉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크기이다.
 
< 동산과 같은 왕릉 위에서도 자라고 있는 '측백나무' >
 
이 동산의 뒤편으로 돌아가면 다소 기나긴 건물 한채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건물의 제일 뒤편으로 돌아가면 왕릉으로 들어가는 후면이 지하궁전(地下宮殿)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 왕릉의 뒤편 '지하궁전' 으로 들어가는 건물 > 

지하궁전으로 내려가는 계단의 숫자가 약 150개가 넘는데, 지하궁전이 이렇게 깊이 내려가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측백나무의 뿌리가 최고로 뻗어가는 깊이가 20m가 되어진다고 한다.
 
< '지하궁전' 으로 내려가는 계단 >
 
그래서 지하궁전에 측백나무의 뿌리가 도착하지 못하도록 지하궁전의 건물 높이를 포함하여 지하 30m 이상의 깊이에서 지하궁전을 만들었는데, 그러므로 무덤의 뒤편에는 더욱더 깊은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정릉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정면으로 들어오는 것이 원칙이지만, 관람을 끝내고 나서 뒤편으로 나올 때 높은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이 더 많은 에너지가 요구하여 뒤편에서 내려가 관람하는 동선(動線)으로 선택한다고 한다.   
수 많은 계단을 뱅뱅 돌아가면서 내려가면 먼저 거대한 좌배전(左配殿) 이라는 공간으로 들어가는데, 이 공간에는 장례의 행사 때 황제의 관을 임시 안치한 장소이라고 하면서 많은 중국의 돈이 놓여있다.
 
< 지하궁전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좌배전' >
 
좌배전 중간 지점에서 옆으로 들어가면 황제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는데, 관람 순서는 무덤의 뒤편에서 시작하여 앞으로 관람 하면서 터널을 통과하여 무덤을 벗어 나가겠다고 한다.
무덤의 제일 뒤편으로 들어가면 좌배전 보다 더 넓은 공간이 자리하면서 한쪽 벽면에 무덤의 조감도 붙어있는데, 가이드는 조감도 앞으로 가서 무덤 내부를 설명하기로 한다
 
< 후전 벽면에 붙어있는 '지하궁전' 배치도 >

무덤의 구조는 현재의 자리가 되는 후전(後殿)과 조금 전에 통과한 좌배전(左配殿) 및 우배전(右配殿), 중전(中殿), 전전(前殿), 터널(Tunnel)로 구성하고 있다.
이곳 후전에는 황제의 관(棺)과 함께 좌우에 황후(제1부인 및 제2부인)의 관이 놓여 있고 그 옆으로 보물을 보관하는 상자가 놓여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이 썩어서 없어지므로 현재는 관람을 위하여 동일한 크기로 붉은 상자를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 후전 내부에 비치하고 있는 붉은색 '관 및 보물상자' >
 
후전에서 중전으로 나아가면 황제가 앉아 있었던 청옥으로 만든 의자와 놓여 있고 그 앞으로 2명의 황후가 앉아 있었던 의자가 놓여 있는데, 황제는 죽어서도 무덤 속에서 살아있는 사람과 같이 행동을 하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 '중전' 의 내부 전경 >
 
< 황제가 앉아 있었던 청옥 '의자' >
 
우배전는 좌배전과 대칭으로 만들어져 있으면서 출입을 통제시키고 있으면 앞으로 나아가면 전전과 터널이 자리하고 있는데, 현재 전전과 터널에는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 빈 공간으로 남아 있는 '전전' >
 
< 빈 공간으로 남아 있는 '터널' >
 
터널을 통과하면 다시 몇 단의 계단을 만나면서 계단으로 올라가면 무덤 속에서 탈출되고 통로를 통하여 무덤의 앞으로 나아가면 높은 비석을 보호하고 있는 비각(碑閣)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비석 전면에는 황제의 묘비명을 기술하고 있지만 후면에는 아무런 업적도 기술하지 않고 그냥 두고 있다.
 
< 계단으로 올라와 '왕릉' 을 벗어나는 통로 >
 
< 통로 앞에 있는 '비각' 건물 >
 
< 후면에 '비문' 이 없는 비석 >
 
< 비각 앞에서 내려보는 '측백나무' 숲 >
 
비각의 건물 앞으로 나아가면 석오공(石伍供)이라는 제단(祭壇)이 만들어져 있는데, 석오공은 상징적인 제기(향로, 촛대, 꽃병 등)로서 정원에 놓여 있으면서 사망자를 추모하는 뜻이 있다고 한다.
 
< 향 또는 촛불을 켜는 '석오공' >
 
석오공 앞에서 들어올 때 기념관으로 가는 길과 만나는데, 들어올 때 신고식을 하면서 왔던 영성문을 통과하면서 '황제님 구경 잘 하고 갑니다' 라는 인사를 남기고 정릉을 떠나기로 한다.                


 
2) 오리고기로 저녁식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마이크로 버스에 탑승을 하니 가이드는 약속한 복숭아 한개씩 선물하여 주는데, 복숭아는 단단하면서도 정말로 액즙이 많아 먹기에 매우 좋은 과일이다.
 
< 왕릉 주변에서 생산하는 '복숭아' >
 
마이크로 버스는 왕릉의 전면에 있는 거대한 호수를 돌아서 이내 고속도로에 진입을 하지만 퇴근시간이 되어져 무척이나 저속으로 달려 겨우 베이징시가지에 진입하여 저녁식사를 위하여 한 식당으로 들어간다.
건물 외형에는 '거연대하(居然大廈)' 이라는 거대한 간판이 붙어있는 식당으로 들어가 저녁식사의 시간을 가지는데, 금일의 저녁식사는 오리고기이라고 한다.
 
< 저녁식사를 하기 위하여 찾아가는 '거연대하' 식당 >
 
문제는 10명의 테이블에 작은 접시 2개에 오리고기를 담아 주면서 식사를 하라고 하여 종업원에게 오리고기를 더 달려고 부탁하는데, 종업원은 불가능하다고 하여 무척이 불쾌한 식사가 된다.   
 


< 열명이 먹도로 제공하여 주는 2접시의 '오리고기' >


 
3) 서커스 구경.
 
가이드는 저녁식사 후 오후 7시 부터 중국에서 또 다른 불거리가 되는 북경(北京)서커스를 구경하기 위하여 식당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공연장으로 인도를 한다.
공연장 외곽은 희미한 조명을 켜고 있어 다소 실망을 가지고 공연장 내부로 들어가는데, 내부에는 대부분의 서양인과 히잡을 쓰고 있는 무슬림들이 많은 좌석을 점유하고 있다.
 
<  희미한 조명을 가지고 있는 '서커스' 공연장 >
 
< 좌석의 여유가 많이 남아 있는 '공연장' 내부 >
 
이곳 공연장에는 지정된 좌석이 없어 본인이 원하는 의자에 앉아 관람할 수 있는데, 주어진 시간에 한명의 광대가 나와 방청석으로 돌아 다니면서 고무 풍선을 불어 다양한 모양의 인형을 만들어 선물로 나누어주는 것으로 공연이 시작 된다.
 
< '광대' 의 줄타기 공연 >
 
그러고 나서 연기자들의 다양한 묘기와 더불어 유연한 몸 동작으로 관람객의 혼(魂)을 빼았게 만드는데, 여러가지 연기를 끝날 때 마다 방청석에서 우뢰와 같은 박수로 화답하여 준다.
 
< '링' 을 돌리면서 공연하는 연기자 >
 
< '우산' 을 돌리는 공연자 >
 
< 한대의 '자전거' 로 많은 연기자가 타고 >
 
< '광대' 와  함께 노래하는 공연자 >
 
약 한시간 정도 다양한 연기를 끝내고 모든 출연자가 무대로 나와 인사를 하면서 공연의 막을 내리는데, 내가 어릴 때 한국에서도 종종 서커스 공연을 보았지만 현재는 거의 살아지고 불 수가 없는 것이 아쉽다.
 
< 마지막으로 출연자 전원이 '인사' 를 나누면서 >
 
공연을 끝내고 나서, 마이크로 버스에 오른 일행에게 가이드는 베이징 중심지가 되는 강남의 빌딩과 빌딩 사이를 누비는 버스 투어(Tour)를 좀 하며서 호텔로 가겠다고 한다.
한 30분 정도 달려가면 강남의 중심지에 도착하는데, 베이징의 강남에 있는 빌딩은 대부분 100층이 넘는 것이 많고 또한 지가(地價)도 한국과 비교가 되지 않게 고가(高價)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유명한 100대 회사의 빌딩이 대부분 자리하고 있는데, 한국의 대기업 중에서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우리은행 등의 빌딩들이 어깨를 나란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하여 준다.
또한 강남의 아파트는 한국과 비교도 되지 않은 평당 2억에서 2억5천이 기본이라고 하는데, 이곳 중국에서도 한국의 돈으로 100억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1억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시진핑 중국국가 주석은 내년 부터 외국인들이 중국으로 여행을 오면 많은 특혜를 주었던 것을 내국인과 동일하게 적용하겠다고 하는데, 그러면 여행의 경비가 대폭적으로 상승할 것이라 한다.
정말 베이징의 강남은 별천지가 되고 있는 야경을 구경하면서 호텔로 돌아가는데, 아마 나에게 있어서 대폭적으로 상승 할 경비로 이번이 중국의 마지막 여행이 되는 기분이 일어나는 것 같다.
호텔에 도착한 가이드는 내일 밤 매우 늦게 베이징을 떠나는데, 금일의 밤에는 호텔 주변에서 한잔으로 추억을 만들고 내일 아침 9시 까지 모든 짐을 소지하고 로비에서 만나자고 인사를 하고 떠나간다.-세째날 오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