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고궁 및 종묘.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으면서 전통과 근대가 공존하고 있는 '덕수궁 및 중명전' 의 관람.(1)

용암2000 2019. 10. 13. 00:10
 
2019년 10월 5-6일.(1박2일)


1. 첫째날. 10월 5일.(토요일)


1) 방문의 개요.
경북대학교 기계공학과 제1회 졸업생은 매년 5월에 실시하는 정기총회의 모임을 제외하고, 서울 인근에 거주하는 서울팀과 추풍령 이남에 거주하고 있는 영남팀으로 이원화를 추진하면서 년차적(年次的)으로 부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도록 하였다.
금년에는 서울팀의 주관으로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개최하는 '서울세계불꽃축제' 행사의 구경과 겸하면서 모임을 가지도록 계획을 하는데, 모임의 장소는 서울 지하철 5호선에 있는 마포역에서 오후 4시에 집결하기로 한다.
나는 대구에서 다소 일찍 출발하여 서울역에서 혼밥의 점심식사 시간을 가지고 시간적 여유가 발생하는데, 혼자 천천히 걸어 서울시청 앞에 있는 덕수궁을 관람하여 보기로 한다.  


2) 덕수궁의 관람.
서울역에서 한 20분 정도 걸어가면 덕수궁(德壽宮) 정문에 도착하는데, 정문에는 다수의 인원이 모여 조국 법무부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示威)를 개최하지만 시위의 방법이 너무나 재미를 가미하고 있어 한참 동안 구경하여 본다.  

 
< 덕수궁 정문 앞에서 '시위' 를 하는 군중 >
 

그런데 나의 목적(目的)은 시위가 아니고 덕수궁의 관람이 목적이므로 이내 매표소로 들어가 입장권을 구입하는데, 경로(敬老)의 혜택으로 무료의 입장이 가능하여 진다. 
대한문(大漢門)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정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서면 입구에 덕수궁의 유래를 기술한 현황판이 자리하고 있는데, 현황판 내용에 뎍수궁은 지금으로 부터 500여 년 전 조선 성종 임금이 그의 형 월산대군(月山大君)에게 살림집으로 지어 준 것이다.
 
< 덕수궁의 정문이 되는 '대한문' >
 

< 정문을 통과하면 왼편에서 만나는 '현황판' >

 
< 현황판에서 나타내고 있는 '덕수궁' 조감도 >
 

덕수궁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로 피난 갔던 선조(宣祖)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왔을 때, 월산대군 저택과 그 주변 민가 여러 채를 합하여 '시어소(時御所)' 로 정하여 정릉동(貞陵洞) 행궁으로 삼았던 것으로 부터 시작이 된다.
이후 광해군이 즉위한 후 창덕궁(昌德宮)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경운궁(慶運宮) ’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는데, 궁궐의 모습을 갖춘 덕수궁은 인목대비 유폐와 인조반정을 겪으면서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다.
특히 인조가 즉위한 이후 즉조당(卽阼堂)과 석어당(昔御堂)을 제외한 나머지는 원래 주인에게 돌려 주었는데, 그로 인하여 덕수궁은 더 이상 왕이 공식적으로 머물며 국정업무를 보던 궁궐의 기능을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난 이후 덕수궁이 다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는데, 을미사변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후 1897년 2월에 덕수궁으로 환궁하게 된다.

또한 고종은 대한제국이라는 황제국을 선포한 후 황궁으로서의 규모와 격식을 갖추게 되었지만, 1904년 덕수궁 대화재와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로 인하여 덕수궁은 그 규모가 대폭적으로 축소하였고 이때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이름도 바뀌었다고 한다.
고종 임금이 경운궁을 궁궐로 사용하며 정전(正殿)을 중화전(中和殿)이라 하였고 대안문(大安門)을 대한문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는데, 대한문은 덕수궁의 정문이며 중화전은 그 뒤 1904년에 불타 새로 세웠다고 한다.
중화전 서쪽에 있는 석조전(石造殿)은 1900년에 착공하여 11년 만에 준공한 서양식 건물로 정면에 둥근기둥이 늘어선 르네상스식의 화려한 석조 건물인데, 이 건물이 준공되기 전인 1907년 순종 임금이 궁궐을 창덕궁으로 다시 옮겼다고 한다.
덕수궁에는 1938년에 세운 또 하나의 서양식 건물이 있으며 이 건물은 1986년까지 석조전과 함께 우리나라의 국립 미술관으로 사용하였고, 덕수궁은 사적 제124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 현황판에 기술하고 있는 '설명문' >

 

(1) 내전(內殿) 영역의 관람.

 

이상과 같이 덕수궁의 현황을 정독(精讀)하고 나서 내부로 조금 들어가면서 오른편으로 꺽으면 광명문(光明門)을 만나는데, 광명문을 지나면 화랑과 같은 모양의 긴 담장으로 만들어진 건물은 만난다.

 

< '내전' 영역의 조감도 >

 

< 내전의 입구가 되는 '광명문' >

 

당장의 중앙에 있는 대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함녕전(咸寧殿)이라는 건물을 만나는데, 함녕전은 정면 9칸에 측면 6칸이면서 한쪽 후면으로 4칸이 더 붙은 'ㄱ' 자형을 하고 있으며 익공형식(翼工形式)으로 지어진 간결한 건물이면서 보물 제820호로 지정되어져 있다.

 

< '함녕전' 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대문 >

 

이 함녕전은 고종의 편전(便殿)이자 침전(寢殿)으로 사용하였으며 고종이 이 건물에서 승하한 곳이기도 하는데, 덕수궁에는 다른 궁궐과 다르게 황후를 위한 침전의 건물은 따로 없다고 한다.

 

< 대문을 통과하면 만나는 '함녕전' >

 

그 이유는 고종의 비(妃)가 되어지는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승하한 뒤 고종은 다시 황후를 맞이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대신 함녕전의 왼편에 명성황후의 신주(神主)를 모신 경호전(景孝殿)을 건립하였으나 1904년 화재로 소실하고 그 자리에 덕흥전(德興殿)을 세웠다.

 

< 함녕전 왼편에 있는 '덕흥전' >

 

< '덕흥전' 의 뒤 모습 >

 

덕흥전은 외국사신을 위한 접견의 목적으로 지은 전각으로 외부는 한옥(韓屋)이지만 내부는 서양식으로 꾸며져 있는데, 방의 천정에는 우리나라에 제일 먼저 설치한 전기불이 달려있다.

 

< 덕흥전 천정에 있는 '전기불' >

 

덕흥전 뒤편에 있는 낮은 동산으로 올라가면 정관헌(靜觀軒)이라는 건물을 만나는데, 정관헌은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 이 설계를 하였으며 건물의 형태는 한국과 서양의 건축 양식을 절충하여 독특한 외관을 가진 건축물이다.

 

< 덕흥전 뒤편에 있는 '정관헌' >

 

 

정관헌은 1900년 대 대한제국 시절 고종이 다과(茶菓)를 들거나 외교사절단을 맞아 연회(宴會)를 여는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덕수궁 내에 건축한 건물이라 한다.

  

(2) 외전(外殿) 영역의 관람.

 

내전 영역의 입구로 나와 다시 내부로 조금 더 들어가면 외전의 영역에 도착하면서 외전의 입구에는 중화문(中和門)이 자리하고 있는데, 중화문의 오른편 코너에 행각(行閣)이라는 ㄱ자 형태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외전' 영역의 조감도 >

 

< 외전의 입구에 있는 '중화문' >

 

< 중화문 오른편 코너에 있는 '행각' >

 

중화문을 통과하면 먼거리에 2단의 축대 위로 중화전(中和殿)이라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중화전 건물의 건립 당시에는 중층(重層)으로 건축하였으나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어 정면 5칸에 측면 3칸의 단층 건물로 축소하여 건축하면서 1985년 중화전 및 중화문을 합하여 보물 제819호로 지정이 되었다.

 

< 덕수궁의 정전이 되는 '중화전' >

< 중화전 4 모서리에 놓여져 있는 '드므' >

 

중화문에서 중화전 까지 긴 어도(御道)가 만들어져 있으며 어도의 양 옆으로 품계석(品階石)이 일렬로 도열하고 있고, 축대로 올라가는 기단부 계단의 답도에는 용(龍)의 문양을 새겨놓고 있다.

 

< 중화전 앞에 있는 '어도 및 품계석' >

 

< 답도에 새겨져 있는 '용' >

 

중화전 내부를 들어다 보면 벽면에 어좌(御座)가 놓여 있으며 그 어좌의 뒤편에는 오봉일월도(五峰日月圖)의 그림이 붙어있고, 건물의 천정에는 2마리의 용(龍)이 상호 꼬리를 물고 승천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 중화전 내부에 있는 '어좌 및 오봉일월도' >

 

< 중화전 천정에 그려진 '용' >

 

중화전 건물의 뒤편으로 돌아서 가면 다소 넓은 잔디 정원의 뒤편으로 3채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좌측 2채의 건물은 상호 연결이 되어진 구조이면서 왼편의 건물은 준명당(浚眀堂)이고 오른편의 건물은 즉조당(卽阼堂)이다. 

 

< '즉조당' 영역의 조감도 >

 

< 중화전 뒤편에 있는 '준명당 및 즉조당' >

 

연결되어져 있는 2채의 건물 오른편 조금 앞으로 석어당(昔御堂)이라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즉조당과 석어당의 건물은 선조가 임시로 거쳐했을 때 사용한 유서가 깊은 공간이고 준명당은 외국사신을 영접하는 건물이다.

 

< 즉조당 오른편 앞에 자리하고 있는 2층의 '석어당' >

 

< 석어당 뒤편 야산에 있는 '굴뚝' >

 

즉조당은 대한제국 초기에 정전(正殿)으로 사용되었지만 중화전이 지어진 후에는 편전으로 활용을 하였는데, 석어당은 덕수궁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중층(重層)의 전각이면서 1904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다시 재건한 건물이다. 

 

(3) 석조전(石造殿) 영역의 관람.

 

A) 석조전 외형의 구경.

고종은 개항 이후 덕수궁을 대한제국(大韓帝國)의 왕궁으로 삼고 근대 개혁을 추진하면서 덕수궁 안에 여러 사양식 건축물이 되어지는 석조전, 정관헌, 중명전 건물을 건립하였다.

분수대가 높에 솟아오르는 정원을 사이에 두고 석조전은 왼편 통로로 연결하면서 '덕수궁미술관(德壽宮美術館)' 건물이 자리하고 있지만, 현재 미술관 내에 전시품을 교채하기 위하여 임시 휴관을 단행하고 있다.

 

< 덕수궁 제일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석조전' >

 

< 석조전 왼편에 있는 '덕수궁미술관' >

 

분수대 뒤편에 있는 석조전(石造殿) 건물을 관람하여 보는데, 건물의 내부에는 접견실과 대식당 등 공적인 공간과 더불어 침실 및 서재 등 황실가족의 생활공간을 갖추고 있는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서양식 건물이다.

 

< 측면에서 보는 '석조전' >

 

< 석조전 앞에 있는 '분수대' >

 

그러나 일제 강점기 아래 미술관 등으로 사용되면서 내부의 본래 모습을 많이 훼손하였는데, 2009년 부터 복원을 통하여 2014년에 '대한제국역사관' 으로 활용하고 있다.

 

B) 석조전 내부의 관람.

현재 석조전에는 '황제의 식탁' 이라는 특별 기획 전시전이 개최하고 있어 내부의 관람을 하여 보는데, 건물의 1층 오른편에 있는 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먼저 제1전시실이 자리하면서 제6전시실 까지 관람의 동선(動線)으로 이어진다.

 

< '황제의 식당' 의 기획 전시전을 알리는 현수막 >

 

이곳 전시실의 내용은 조선이 개항을 하자 새로운 물결을 타고 외국인들과 그들의 음식 문화가 조선에 상륙을 하는데,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서양 문물을 접할수록 서양과 교역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어 대한제국이 지향하는 음식 문화를 확인하기 위하여 전시전을 열고 있다고 한다..

제1전시실에는 '개항 및 새로운 물결' 이라는 주제로 사진의 부착 및 설명을 기술하고 있고, 제2전시실에는 '대한제국 선포와 변화의 시작' 이라는 주제로 전시물을 전시하고 있다.

 

< '기념 연회도' 의 그림 >

 

제3전시실로 들어가면 '황제의 잔칫상' 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하고 있는데, 입구에는 10폭의 병풍으로 잔칫상을 차려지는 모습의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다른 한편에는 궁중의 일상식, 잔칫상, 접대식, 가레식, 제사상 등의 모습을 재현(再現)하고 있다.

 

< '황제의 잔칫상' 의 행사 >

 

제4전시길에는 '대한제국 서양식 연회' 이라는 주제로 전시하고 있는데, 서양식으로 사용되는 각종 그릇을 비롯하여 주방 용기를 비치하므로 인하여 황실의 내실을 알게하여 준다.

 

< 황제의 잔칫상에 사용하는 '그릇' >

 

제5전시실에는 '대한제국 국빈연회 음식' 에 관련되는 내용을 전시하고 있는데,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찾은 국빈들과 함께 원탁에 앉아 한식을 나누어 먹는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

 

< 황실에서 서양음식을 만들었던 '손탁' 여사 >

 

< 덕수궁에 머물었던 '순종 및 고종' 의 어진 >

 

< 미국의 도움을 청하기 위하여 초빙한 '루스벨트' 가족 >

 

마지막 제6전시실에는 '석조전의 대식당' 으로 대한제국 서양식 연회를 개최하기 위하여 직사각형 테이블의 실물을 전시하고 있는데, 연회의 장면을 파노라마 같이 연상하게 만드는 장소이다.

 

< 대식당에 마련한 '테이블' >

 

지하층으로 내려가면 석조전을 건설할 당시에 사용한 건축 부재로 부터 의료시설 등 다양한 전시물을 전시하고, 다른 한편으로 한성의 옛 모습을 제작한 영상물을 상영하므로 휴식과 더불어 불거리를 제공하여 준다.

 

< '지하' 층의 조감도 >

 

< 석조전에 사용한 건축 '부재' >

 

< 지하층에 전시하고 있는 '수술' 장면 >

 

< 옛 '한성' 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영상실 >

 

< 석조전 앞 정원에 설치한 '해시계' >

 

이상과 같이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석조전 내부를 관람하고 건물 밖으로 나와 건물 앞으로 산책하여 보는데, 건물의 앞에는 세종대왕이 만든 해시계(앙부일영)를 비롯하여 몇 가지의 모형들이 만들어져 있다. -제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