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군 문화와 산행.

성주역사 태마공원 내에 있는 성주읍성, 성주사고, 성주이씨 시비공원, 봉산재 등 관람.(2)

용암2000 2020. 12. 1. 18:08

 

2020년 11월 28일.(토요일)

 

4) 성주이씨 시비공원을 돌아보면서.

성주사고(星州史庫)에서 남쪽 방향으로 내려서면 '성주이씨 시비공원(星州李氏 詩碑公園)' 과 더불어 "봉산재(鳳山齋)" 가 자리하고 있는데, 시비공원의 입구에는 작은 주차장과 함께 하고 있다.

 

< '성주이씨 시비공원' 을 알리는 입석 >

 

< 또 다른 '시비공원' 입석 >

 

주차장 주변으로 다양한 시비(詩碑)가 자리하고 있으면서 시비공원 주차장 뒤편으로 성주이씨의 유래를 기술하고 있는 거대한 입석이 서 있는데, 입석에서 기술하고 있는 성주이씨의 내용을 요약하여 본다.

 

< '성주이씨 유래' 를 설명하고 있는 입석 >

 

시조는 신라의 재상이 되는 '이순유(李純由)' 어르신이 신라의 멸망으로 인하여 이곳 성주로 은거하여 자손을 퍼지게 하였는데, 성주이씨의 입향조(入鄕祖)가 되는 이순유의 11대 손 성주호장 '이장경(李長庚)' 어르신은 합주군 부인 이씨를 맞이하여 5남 1녀를 두었다.

아들 5분 중에 장남이 되시는 이벽년(李百年), 차남이 되시는 이천년(李千年), 삼남이 되시는 이만년(李萬年), 사남이 되시는 이억년(李億年), 오남이 되시는 이조년(李兆年)인데, 다섯 아들 전부가 과거에 급제하여 나라에 크게 공헌하였다.

5분은 삼중대광(三重大匡) 좌시중(左侍中), 흥안 부원군(興安 府院君), 도첨의 정승(都僉議 政丞), 지전리사사(知典理司事) 상호군(上護軍), 경산부원군(京山府院君) 등에 제수되어 성주이씨를 크게 일으키셨으므로, 후세들이 이분들을 중시조(中始祖)로 모시고 있다.

손자 중 이승경(李承慶)이 중국 요양성 참지정사가 되어 큰 공을 세워 황제로 부터 농서군(隴西郡)으로 추봉되어 한때는 '농서이씨(隴西李氏)' 로 부르기도 하였으며, 고려 충렬왕 34년(1308년)에 성주목(星州牧)으로 승격된 지명에 따라 관향을 '성주이씨(星州李氏)' 로 불렀다.

고려조 및 조선을 거치며 천여 년 간 훌륭한 선조들이 수 없이 배출하였는데, 중시조 이후 8세에 이르기 까지 문형(文衡)을 지낸 선조가 여덟 분, 재상(宰相)을 지낸 선조가 열다섯 분, 식읍(食邑)을 받은 선조가 다섯 분, 부마가 되신 선조가 두 분, 과거에 급제한 선조가 일흔 다섯 분 등 많은 인물들이 나라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면서 명문대가로 이어졌다.

 

< '성주이씨 시비공원' 의 전경 >

 

많은 선조들 중에 고려대전에 봉안되고 중요 문헌을 남기신 문열공 이조년(李兆年), 참지공 이승경(李承慶), 평양윤 태재공 이인기(李麟起), 경원군 이포(李褒), 문충공 이인복(李仁復), 문숙공 이인임(李仁任), 성산부원군 이인민(李仁敏), 고려 삼은의 한분인 도은 이숭인(李崇仁) 선생님 등 많은 선비를 배출하였다.

 

< 이조년 선생님의 '다정가(多情歌)' >

 

< 이인임 선생님의 '노년에 우거하시면서' >

 

< 이숭인 선생님의 '승사(僧舍)' >

 

더불어 개국공신으로 세종대왕 때 영의정을 지낸 문경공 이직(李稷), 개국공신 경무공 이제(李濟), 한성판윤 이사후(李師厚), 단종충신 고은 이지활(李智活), 명나라 임난(壬亂) 명장 이여송(李如松), 대학자 문경공 일제 이항(李恒), 한글 최초영비를 만든 승지 묵제공 이문건(李文楗), 3.1독립선열의 한분이 되시는 옥파공 이종일(李鍾一) 등 여러 선조들이 문중을 빛낸 대표적 인물이라 하겠다.

 

< 이직 선생님의 '오로시(烏鷺詩)' >

 

< 이제 선생님의 '불사이군(不事二君)' > 

 

< 이지활 선생님의 '망월(望月)' >

 

< 임진왜란의 명장 '이여송' 시 >

 

< 이항 선생님의 '양전(良田)' >

 

< 3.1독립선언 33인 중 한명이 되시는 '이종일' 일대기 >

 

< 가수 백년설(본명 : 이갑룡) 선생님의 '노래비' >

 

< 국정교과서에 나오는 '투금탄' 이야기 >

 

2015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성주이씨 인구는 약 204,000명이 살고 있는데, 중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거주하고 이씨 115개 본관 중 세번째로 큰 가문이다.

성주이씨의 선조들은 예악(禮樂)과 문장(文章)에 뛰어나므로 많은 유문 및 시문을 남겼는데, 여기에 전시하고 있는 시비 중에는 우리나라 국정교과서에 나오는 시(詩가 많아 옛날 입학시험을 위하여 뜻도 잘 모르면서 달달 외운 추억을 회상하게 만든다.

 

5). 봉산재 사당을 돌아보고.

성주이씨 시비공원 내에 있는 주차장 뒤편으로 일단의 계단으로 올라서면 '봉산재(鳳山齋)' 로 들어가는 입구가 자리하고 있는데, 입구에는 성주이씨의 중시조가 되는 '이장경(李長庚)' 선조의 유허비(遺墟碑)와 함께 봉산재(鳳山齋)의 중건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 봉산재 입구 '이장경' 중시조 유허비 >

 

중건기념비에 기술하고 있는 내용에 따르면 성주관아가 있었던 장소의 뒤편으로 수려하게 솟아있는 봉두산(鳳頭山) 자락에 중시조 이장경(李長庚) 선조께서 세거지(世居地)로 삼았는데, 이장경의 아들 5분 모두가 과거에 급제하여 가문을 크게 번창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위 시비공원에 응급하였다.

 

< 봉산재의 '중건기념비' > 

 

사당의 제일 뒤편에 있는 상덕사(尙德祠)에는 중시조 이장경 선조의 위패(位牌)를 봉안하면서 매년 단오날에 지역 유림과 함께 향사(享祀)를 올리는 건물이 되는데, 입구에 있는 솟을대문이 굳게 잠겨져 있어 내부 관람이 불가능하여 담장 밖에서 목을 죽 빼고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하게 만든다.

 

<봉산재로 들어가는 '솟을대문' >

 

< 강당에 되는 '봉산재' 건물 >

 

< 중시조 이장경 선조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상덕사(尙德祠)' >

 

오늘 우연한 기회에 성주역사 테마공원을 관람하는 시간을 가져보는데, 비록 성주읍성 및 성주사고가 역사적 고증을 통하여 새롭게 건립되었지만 Software 측면에서 너무나 빈약함을 느끼게 하는 테마공원이라 하겠다. -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