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군.(가야산)

백봉회 7월 산행은 나의 고향 성주군 명소가 되는 '포천계곡 및 만귀정' 에서 보내면서.

용암2000 2021. 7. 14. 07:01

 

2021년 7월 11일.(일요일)

 

*. 포천계곡과 함께 하는 만귀정을 돌아보면서.

 

백봉회 6월 산행은 경북 상주시의 명산 천봉산에서 산행을 추진하였는데, 산행하는 동안 더위로 인하여 고생을 많이 하므로 무더위가 기성을 부리는 한 여름철에는 계곡에서 휴식을 취하는 방향으로 추진하자는 의견으로 금월 7월 산행은 나의 고향 성주군에서 유명한 포천계곡에서 추진하도록 집행부와 협의한다.

경상남도 합쳔군 및 경상북도 성주군과의 경계선을 이루고 있는 가야산(伽倻山)에서는 전면으로 해인사에서 부터 흐르는 '홍류동(紅流洞)' 계곡과 더불어 가야산 뒤편으로 흐르는 '대가천(大家川)' 으로 대별하는데, 대가천 상류에는 2개의 계곡으로 나누어진다.

2개의 계곡 중에서 하나의 계곡은 수도산 청암사에서 발원하여 흐르고 있는 '무흘계곡(武屹溪谷)' 과 다른 하나의 계곡은 가야산 최고의 봉우리가 되는 해발 1.433m 칠불봉(七佛峰) 뒤편에서 흐르고 있는 '포천계곡(布川溪谷)' 이 합류하여 대가천을 형성하면서 낙동강의 지류가 된다.

여름철 경상남도와 경상북도 및 대구시에서 거주하는 많은 피서객들은 홍류동 계곡을 포함하여 무흘계곡 또는 포천계곡으로 모여들므로, 양쪽 계곡에서는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는 피서지(避暑地) 중 하나이다.

나는 동문들을 위하여 여름철이면 무더위를 피신하기 위하여 우리부부가 수시로 방문하는 포천계곡에 있는 만귀정 주변으로 안내하기로 한다.

아침 10시 대구 서부정류장에서 출발하는 일행에게 국도변에서 판매하고 있는 성주참외 한 박스 및 성주군 가천면에서 유명한 가천 막걸리 몇병을 구입하도록 유도하여 본다.

 

< '포천계곡' 을 홍보하는 현황판 >

 

가천 양조장으로 들어가 직접 판매하고 있는 7% 짜리 반배주 막걸리를 구입하고 나서 포천계곡으로 들어가는데, 포천계곡에서 '포천(布川)' 이라는 뜻은 맑고 맑은 물이 흐르는 하얀 바위가 마치 삼베의 빛깔과 비슷하다는 유래에서 내려온 것이라고 한다.

계곡 초입에서 상주(尙州)에서 출발한 한 동문과 만남을 가지고 나서 계곡 따라 10여 분 정도 올라가면 만귀정을 가르키는 방향의 입구에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가 주차를 시키는데, 이곳 주차장에서 개인적으로 출발한 전임 백봉회장 한명과 다시 조우(遭遇)가 이루어지므로 금일 총 8명이 참석한다.

반가운 인사를 교환하고 나서 이곳 주차장에서 한 5분 정도 걸어서 올라가면 만귀정 입구에 다소 넓은 주차장과 함께 하는 산방식당이 자리하고 있다.

금일은 초복(初伏)이라 산방식당의 주 메뉴가 되는 2마리 백숙을 주문하는데, 산행 후 오후 1시 30분 경에 내려 오겠다고 의사를 전달한다.

 

< '산방식당' 을 가르키고 있는 입간판 >

 

< 여름철 '닭' 요리로 유명한 산방식당 > 

 

산방식당 입구에서 만귀정으로 올라가는 길이 울창한 숲 사이로 만들어져 있는데, 숲 사이로 만들어져 있는 오솔길 따라 조금 올라가면 이내 만귀정을 알리는 입석(立石)과 더불어 만귀정 내력을 설명하고 있는 비석(碑石)이 함께 하고 있다.

 

< '만귀정' 초입에 있는 입석 > 

 

입석과 비석에서 부터 한 모퉁이를 돌아서 올라가면 만귀정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건물의 사잇문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만귀정((晩歸亭)' 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어 그 내용을 정독하여 본다.

이곳 만귀정은 조선 후기 성산이씨(星山李氏) 응와 '이원조(李源祚)' 선생님이 40여 년의 관직을 마치고, 철종 2년(1851년)에 귀향하여 독서 및 자연을 벗 삼아서 여생을 보낸 곳이라 하겠다.

응와 선생님은 1792년 성주군 월항면 한개마을에서 출생하였는데, 그는 입재 '정종로(鄭宗魯)' 선생님의 제자로 순조 9년(1809년)에 증광문과의 을과(乙科)로 급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벼슬이 대사간을 거쳐 공조판서 및 판의금 부사에 이른다.

당시에 유학 및 문장에 있어 유림(儒林)의 으뜸으로 추앙을 받았으며 지방관으로서도 많은 치적을 남겼지만 말년에서야 비로써 이곳 포천계곡으로 귀향하여 수양 및 강학을 전념할 수 있었는데, 너무나 늦게 귀향하였다고 하여 정자 이름을 만귀정이라 하였다고 한다.

한강 '정구(鄭逑)' 선생님이 가야산 뒤편이 되는 김천 청암사에서 부터 흘려 내려오는 계곡 따라 '무흘구곡(武屹九曲)' 을 지어 그 풍경을 찬양한 것과 동일하게 응와 '이원조' 선생님도 이곳 포천계곡 따라 흐르는 명소에 '포천구곡(布川九曲)' 이라는 시(詩) 지어 찬양한 곳이라 하겠다.

 

< '만귀정' 을 알리는 안내문 >

 

건물의 배치는 작은 대문과 더불어 그 뒤편으로 북동향(北東向)이 되는 만귀정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작은 대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면 다소 넓은 마당의 축대 위로 정면 4칸에 측면 2칸의 익공계 굴도리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만귀정' 의 전경 >

 

건물의 평면 구성은 가운데 2칸에는 대청으로 사용하고 있으면서 양쪽으로 온돌방 각각 1칸씩 배치하고 있고 앞쪽으로 툇마루를 둔 4칸의 중당 협실형 건물이 되지만, 현재는 대청마루 끝지점으로 현대식 미서기 문을 설치하므로 전면 전부가 일체형 건물이 된다.

 

< 일체형으로 개조한 '만귀정' 건물 >

 

만귀정 오른편 위로 올라서면 다시 넓은 마당과 함께 제일 구석 자리에 매우 작은 곡간채 한채가 자리하고 있으면서 곡간채와 다소 멀리 떨어진 마당의 끝지점에 남향의 별채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별채는 아름다운 포천계곡과 더불어 가야산의 정상 칠불봉을 바라볼 수 있는 풍광을 가지고 있다.

 

< 마당의 구석자리에 있는 '곡간채' >

 

< 남향으로 지어진 '별채' 건물 >

 

이곳 별채 앞에 있는 거대한 바위 위로 쇠로 만든 '철비(鐵碑)' 한기가 서 있는데, 이 철비의 전면에는 '고판서응와이선생 흥학창선비(故判書凝窩李先生 興學倡善碑)' 이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철비는 응와(凝窩) 선생님이 1871년(80세)에 별세하므로 그 후(後)가 되는 을해년(乙亥年)에 세웠다고 기술하므로 을해년은 응와 선생님의 서거 후 4년이 되는 1875년 후학의 한 사람이 되는 한주 '이진상' 선생님이 세운 철비로 추측하고 있고, 응와 선생님의 무덤은 고향과 다소 먼거리가 되는 경남 합천군 매화산에 묻혀 있다고 한다.

 

< 별채 건물 앞에 자리하고 있는 '철비' >

 

만귀정을 나와 앞에 있는 계곡 방향으로 내려가면 계곡 입구에는 포천계곡의 제9곡이 되는 '홍개동(洪開洞)' 이라는 한편의 시(詩)와 함께 작은 정자 한채가 자리하고 있다.

작은 정자 처마에는 일만산의 물이 하나의 폭포를 형성한다는 뜻을 가진 '만산일폭루(萬山一瀑樓)'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 만귀정 앞에 있는 작은 '정자' >

 

< 작은 정자를 보호하고 있는 수령 400여 년의 '소나무' >

 

정자 앞으로 깊은 계곡이 자리하고 있어 비탈면 따라 계곡 바닥으로 내려가면, 계곡에는 다양한 소(沼)와 더불어 다단계 폭포수가 떨어지고 있다.

일행은 폭포 앞에 자리를 잡고 가천 양조장에서 구입한 막걸리와 함께 총무가 준비한 돼지고기로 푸짐한 만찬식을 거행하여 본다.

 

< 작은 정자 앞으로 흐르고 있는 '계곡' >

 

< 풍족한 수량이 흐르고 있는 다단계 '폭포' >

 

< 만찬식 후 폭포를 감상하는 '전임 백봉회장' >

 

만족스러운 만찬식을 끝내고 나서 식당과 약속한 시간이 지나가므로 자리를 정리하고 식당으로 내려가는데, 금월 산행은 폭포 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종결하므로 만귀정 입석을 배경으로 제347봉 등정식을 거행하기로 한다.

 

< '등정식' 을 거행하고 있는 동문 >

 

금월은 지금 까지 산행을 하였던 평월보다 참석 인원이 다소 많아 신나는 등정식을 끝내고 나서 식당으로 들어가는데, 식당은 개울가로 자리가 만들어져 있으면서 다소 많은 식객(食客)들이 음식을 즐기고 있다.

 

< 음식을 즐기고 있는 많은 '식객' >

 

일행도 한 좌석을 점유하면서 조금의 기다림을 가지고 있으니 백숙이 바로 나오는데, 식사를 즐기기 전 회장의 인사와 더불어 전임회장이 거금(巨金)의 찬조금을 하사하므로 많은 박수로써 보답하여 본다.

 

< 음식을 즐기고 있는 '동문' >        

 

바로 직전 까지 돼지고기로 만찬식을 가졌는데, 비록 나이는 칠순이 넘은 노인(老人)으로 들어가고 있지만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가하면서 마음 만은 아직도 청춘이라 많은 소주와 맥주 잔이 춤을 추게 만든다.

 

< 푸짐한 량을 가지고 있는 '닭' 요리 >

 

나는 너무나 과식(過食)을 하므로 배를 진정시키기 위하여 몇명의 동문과 함께 다시 폭포 위에 있는 개울로 올라가 보기로 하는데, 전일 내린 비로 인하여 풍족한 수량이 흐르고 있어 다수의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 계곡 속에서 피서를 즐기고 있는 '방문객' >

 

개울 따라 올라가면 갈수록 아름다운 폭포와 더불어 곳곳에 담(潭)이 만들어져 있어 맑은 물이 흐름을 느리게 하면서 하류로 흘려가는데, 흐르는 물의 유혹으로 일행도 알탕을 즐기기 위하여 물로 들어가 동심의 세상으로 빠져본다.

 

< 작은 '폭포' 를 이루고 있는 계곡 >

 

< 알탕을 즐기기 좋은 '담' >

 

물이 너무나 차거워 폐부(肺腑)에 치르는 추위로 인하여 물 속에 거의 머물지 못하고 물 밖으로 나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 식당으로 내려가는데, 아직도 이야기가 남아 있는지 긴 대화가 이어지고 있다.

식당 영업시간이 오후 5시 까지 한다는 안내문에 따라 적당한 시점에 자리를 정리하고 식당을 떠나기로 하는데, 나는 대구로 오는 길에 고(故) '김규호' 동문의 농장 및 가벼운 저녁식사가 가능한 식당으로 안내하여 간단하게 식사를 즐기도록 추천하여 본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