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기타)

철원 9경 중에 제8경이 되는 송대소 주상절리대 및 노동당사, 백마고지를 구경하면.(3)

용암2000 2022. 4. 26. 08:05

 

2022년 4월 17일.(일요일)

 

7. 송대소 주상절리대 내에 있는 철원 한탄강 은하수교를 거닐면서.

고석정 종합관광단지를 떠난 버스는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한 5분 정도 달려가면 '송대소 주상절리대(松臺沼 柱狀節理臺)' 입구에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가이드는 이곳 송대소 주상절리 및 철원 한탄강 은하수교를 관람하는데 총 10분의 시간을 부여하겠다고 한다.

송대소 주상절리대는 철원 9경 중에 제8경이 되면서 한탄강 옆으로 만들어져 있는 도로 따라 조금 걸어가면 한탄강변에 은하수 카페가 자리하고 있는데, 카페에는 많은 사람들이 머물면서 여가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 송대소 입구에 있는 '은하수' 카페 >

 

이 카페 바로 앞으로 거대한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는 송대소 주상절리대가 자리하고 있는데, 송대소 주상절리대는 철원평야를 이루면서 흐르던 현무암질 용암이 변성암으로 이루어진 좁은 통로를 통과해 남서쪽으로 흘러가는 부분으로 가파른 절벽과 주상절리로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전망대 입구에 쓰여있는 안내문에 따르면 송대소 절벽에는 지층(地層)의 켜(겹겹이 포개진 낱낱의 층)가 7-8개나 되고 높이가 30-40m에 이를 정도로 장엄한데, 한탄강변과 경계를 이루는 절벽의 밑은 마치 물 속으로 빨려들어 갈 듯이 서 있어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나의 앞으로 넘어올 듯하게 오금이 저려오게 만든다.

이곳에 발달한 주상절리는 지표로 분출한 용암(熔岩)이 빠르게 식으면서 수직의 기둥 모양으로 만들어진 절리를 말하고 있는데, 협곡 따라 약 30m 높이로 만들어진 수직의 주상절리가 많이 관찰되지만 옆으로 기울러진 부채모양의 주상절리도 곳곳에 보이고 있다.

현무암 주상절리는 지층에 따라 붉은색, 회색, 검은색, 황토색 등 색깔이 모두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데, 여러색의 주상절리가 4계절의 풍경과 함께 하면 계절 마다 다른 색깍의 물감을 짜 놓은 파레트가 펼쳐진 것 처럼 화려한 색감을 준다고 기술하고 있다.

 

< '송대소' 앞에 주상절리대를 기술하고 있는 안내문 >

 

전망대에서 송대소 주상절리를 한참 구경하다가 주상절리대 바로 옆으로 만들어진 철원 한탄강 은하수교를 건너가 보기로 하는데, 한탄강 은하수교는 한탄강 주상절리길 제1코스의 동송읍 장흥리와 제2코스가 되는 갈말읍 상사리를 연결하며 주변 관광지를 이어주는 소통의 길이 되어준다.

 

< 전망대 앞으로 펼쳐지고 있는 '주상절리' >

 

< '철원 한탄강 은하수교' 를 나타내고 있는 조감도 >

 

< '철원 한탄강 은하수교' 를 나타내고 있는 포토존 > 

 

한탄강 은하수교는 길이가 180m에 다리의 폭(幅)이 3m에 1주탑 비대칭 현수교(懸垂橋)로 만들어져 있는데, 1주탑의 높이가 54m이며 철원군의 상징 요소가 되는 두루미를 형상화(形象化)하여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 '한탄강 은하수교' 를 거닐고 있는 탐방객 >

 

이곳 은하수교 중간지점 부터 다리 아래로 내려볼 수 있도록 투명 유리로 만들어져 있어 다소 아찔한 기분을 느끼면서 다리의 반대편으로 건너가 보는데, 다리 건너편으로 한탄강 주성절리길 제2코스로 연결이 되지만 주어진 시간으로 인하여 되돌아가기로 한다.

 

< 은하수교 중간지점에 있는 '유리 통로' >

 

< 은하수교에서 내려보는 '한탄강' 하류 >

 

8. 철원노동당사를 구경하면서.

번개와 같은 기분으로 송대소 주상절리대를 구경하고 버스에 오른 일행은 다시 서복쪽으로 25분 정도 달려가면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철원 노동당사(鐵原 勞動堂舍)' 에 도착이 되는데, 이곳 철원 노동당사에서는 건물을 배경으로 단지 사진만 촬영하도록 매우 짧은 시간을 부여한다.

 

< 철원군에 자리하고 있는 '노동당사' >

 

< 노동당사 앞에 있는 한편의 '시비' >

 

철원 노동당사는 1946년에 북한 노동당(勞動黨)이 철원과 그 인근지역을 관장하기 위하여 지는 건축물이 되는데, 지역 주민의 노동력과 자금을 강제로 동원하여 지었으며 주민을 통제하고 사상운동을 억압하는 구실을 담당한 곳이라 하겠다.

철원군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통치 당시 강원도의 도청(道廳)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구철원은 철원군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이 때 1946년 철원읍 관전리에 조선 노동당에서 3층의 당사(堂舍)를 건립하였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며 구철원은 대한민국으로 귀속되어 자연적으로 노동당사도 대한민국 수중에 들어왔다.

이곳은 당시 철원의 중심지이었지만 한국 전쟁으로 인하여 철저하게 모든 건축물이 파괴되었지만 이곳 노동당사는 지금까지 남아 분단과 전쟁의 아품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건물이 되는데, 이 건물도 3층으로 지어졌지만 천정을 비롯하여 건물 내부 모든 것이 파괴 되었지만 건물 벽체는 온전하게 남아있다.

노동당사 건물은 철근구조에 벽돌과 시멘트로 벽을 쌓아 매우 견고하게 지어졌는데, 건물 전면에서 바라볼 때 좌우가 대칭(對稱)이 되고 언덕 위에 지어진 덕분에 매우 권위적인 느낌을 주는 건물로써 당시의 건축양식을 비롯하여 분단과 전쟁의 아푼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노동당은 마을마다 쌀 200가마를 빼앗고 노동력과 장비를 강제로 동원 하였지만 건물 내부를 지을 때에는 노동당원만 투입하여 비밀을 유지시겼는데, 이 건물을 통하여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일대의 주민을 수탈하는 중심지일 뿐 아니라 많은 사상운동가를 가두어 고문 및 학살하는데 사용하였다.

그러 하므로 노동당사의 지하에 있는 방공호에서 많은 인골(人骨)과 함께 만행에 사용한 수 많은 실탄 및 철삿줄 등을 발견 되었는데, 현재 안보관광지로 사용하므로 인하여 철원군을 탐방하는 많은 사람들이 머물면서 공산당의 참상을 회상하게 만든다.

 

< '철원 노동당사'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9. 백마고지를 탐방하면서.

철원 노동당사에 부터 도로변으로 수 많은 전쟁 방어용 구축물을 통과하면서 다시 북쪽으로 한 10여 분 정도 달려가면 비무장지대(DMZ)의 최고 북단에 자리하고 있는 '백마고지 전승비(白馬高地) 戰勝碑)' 주차장에 도착하는데, 넓은 주차장에는 단지 몇 대의 승용차만 머물고 있다.

주차장 중앙에는 하늘로 비상할려고 하는 한마리의 백마 동상이 서 있고 그 뒤편 백마고지로 올라가는 통로의 입구 좌우로 백마고지 전승비(白馬高地 戰勝碑) 및 백마고지 전적비(白馬高地 戰跡碑)가 서 있는데, 백마고지 전적비에 따르면 이곳 백마고지는 6.25 동란 당시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이라 기술하고 있다.

 

< 주차장 중앙에 서 있는 '백마' 동상 >

 

< '백마고지' 로 올라가는 중앙 통로 >

 

< 중앙 통로 오른편에 서 있는 '백마고지 전승비' >

 

< 중앙 통로 왼편에 서 있는 '백마고지 전적비' >

 

1952년 10월 6일 중공군의 대공세에 의해 10얼 15일 까지 10일 간이나 계속 된 백마고지 전투는 약 30만발의 포탄이 떨어지면서 고지의 주인공이 24번이나 바뀌어진 고지인데, 이 전투에서 1만4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 중공군 2개 사단이 와해되었으며 국군 제9사단은 백마고지 전투의 대승으로 인하여 백마사단이라고 명명되었다.

격렬했던 전투(戰鬪) 끝에 남은 흙먼지와 시체가 뒤섞여 악취가 산을 덮었으며 서로의 포격에 의해 고지의 본래 모습이 잃어 버렸는데, 그래서 산의 높이가 395m가 되면서 마치 백마(白馬)가 옆으로 누워있는 형상이라 하여 백마고지로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당시 이 백마고지 사수를 위하여 용감하게 싸운 국군 제9사단 장병 3천4백여 명의 넋을 추모하기 위하여 이곳에 백마고지 전적비를 건립하였는데, 이 비석에는 당시 전투의 격렬함과 더불어 많은 사람이 조국의 수호신으로 산화(散華) 하였음을 알리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 '백마고지 전적비'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중앙 통로(通路)의 양쪽으로 도열하고 있는 태극기를 보면서 한참 올라가면 통로의 중앙에 백마고지 위령탑(白馬高地 慰靈塔)이 서 있는데, 위령탑 앞에 이곳 백마고지에서 순국한 국군의 명단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어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 중앙 통로 양쪽으로 도열하고 있는 '태극기' >

 

< 통로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위령탑' >

 

< 위령탑 앞에 새겨진 '전사자' 명단 >

 

이 위령탑의 바로 뒤편 양편으로 백마고지의 전투 내력을 보여주는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문이 닫혀 있고, 기념관 뒤편으로 두손을 모아 합장하는 모습의 기념탑 조형물과 더불어 높은 태극기가 새찬 바람에 힘차게 펄럭이고 있다.

 

< 통로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기념탑' 조형물 >

 

조형물의 뒤편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종각(鐘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건물 앞에는 타종금지(打鐘禁止)이라는 안내문이 놓여있고 종각 건물을 돌아서 뒤편으로 들어가면 다소 넓은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는데, 전망대 가장자리에는 백마고지 전투지를 비롯하여 망원경 등이 설치되어 있다.

 

< 전망대의 제일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종각' 건물 > 

 

이곳 전망대 앞에 서면 백마고지가 바로 눈 앞에 머물고 있는데, 오늘 트레킹을 인도하고 있는 대구 드림산악회 사장이 이곳 철원에서 군대생활을 하였으므로 백마고지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어 백마고지의 풍경을 세부적으로 해설이 이어진다.

 

<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백마고지' 전경 >

 

< 백마고지 오른편으로 펼쳐지고 있는 '철원평야' > 

 

지금 눈 앞에 보이고 있는 전방 초소에 근무하는 초병(哨兵)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아련하게 만드는데, 머나먼 고향과 부모님을 두고 이곳 백마고지 까지 와서 불철주야(不撤晝夜) 근무하는 군인들 덕분으로 오늘도 안전하게 잠을 잘 수 있도록 노력하는 군인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려본다.

 

< 확대하여 보는 '백마고지' >

 

< 백마고지 주변으로 걸어볼 수 있는 'DMZ 평화의 길' >

 

오후 4시 경 한반도에서 최고 북단에 있는 철원군 여행지 탐방을 종결하기로 하는데, 문제는 이곳에서 대구로 돌아가는 길에는 서울에서 나들이 나온 차량을 비롯하여 교툥의 지옥 서울시가지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요구하므로 철원지역 지리를 잘 아는 기사분은 사잇길로 달려 대구로 내려가기로 계획하겠다고 발표한다. - 3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