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경남)

한국 선비의 실상을 체험할 수 있는 '선비문화연구원' 및 '남사예담촌' 을 방문하면서.

용암2000 2022. 11. 3. 23:39

 

2022년 11월 1-2일.(1박2일)

 

* 여행의 개요.

서울에서 거주하는 대학교 동문 한명이 이젠 더 늙기 전에 해발 1.915m 지리산 '천왕봉(天王峰)' 산행을 한번 추진하여 보자는 제의로 무척이나 망서림을 가지면서 고민을 하였는데, 나는 지금 까지 지리산 명성에 눌려 천왕봉 도전은 꿈도 꾸지 않고 살아왔다. 

그래서 나의 인생 마지막으로 지리산 천왕봉으로 한번 올라가 보겠다는 마음을 품고 도전장을 내밀어 보기로 하는데, 만약에 도전에 실폐한다면 지리산 천왕봉 아래에 있으면서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높은 곳 해발 1.450m에 자리하고 있는 법계사(法界寺) 까지 라도 도전하여 보기로 한다.

도전 일자 및 일시는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오는 시간과 더불어 천왕봉 입구에 있는 중산리 버스정류소 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감안하여 2022년 11월 1일 부터 2일 까지 1박2일로 선정하는데, 첫날에는 중산리 버스정류소 입구에 있는 민박집에서 1박(泊) 하고 나서 2일차 아침 일찍 도전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수립한다.

대구에서 친구와의 만남을 가진면서 나의 애마 모닝을 운전하면서 광주-대구 및 통영-대전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지리산 천왕봉으로 올라가는 최단 코스의 출발지점에 있는 중산리로 달려가는데, 가는 길에 다소 시간적 여유가 있어 경남 산청군이 자랑하는 명소를 탐방하기로 한다.

 

1. 첫째날 : 11월 1일.(화요일)

 

1) 한국 선비문화연구원의 탐방.

신청 Toll gate를 벗어난 승용차는 중산리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시천면을 통과하면서 시천면사무소 변두리에 자리하고 있는 한국 '선비문화연구원' 을 방문하여 보는데, 이곳 산청군 시천면에는 한국 유림을 대표하는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님이 인접한 합천군 삼가면에서 탄생하였지만 여생 대부분을 풍광이 수려한 이곳 시천면에서 보낸 고을이기도 하다.

 

< 한국 '선비문화연구원' 을 나타내고 있는 입석 >

 

그래서 이곳 시천면에서 한국 선비문화연구원을 오픈(Open)하였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방문하여 보기로 하는데, 선비문화연구원 측면에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가니 문화원 부지와 건축물이 어마아마하게 크므로 인하여 놀램을 발생하게 만든다.

나는 일전 합천군 초계면에 있는 한 고등학교 진학 담당 선생으로 근무할 때 합천군에 있는 문화 및 유적지를 거의 다 탐방하였는데, 그 때 남명 조식 선생님이 탄생한 합천군 삼가면에 있는 생가 및 서원을 방문한 경험이 있었다.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본관 앞에 매우 넓은 잔디광장이 자리하고 있는데, 잔디광장 오른편으로는 선비생활관을 비롯하여 별관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오른편에는 한옥체험관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한국 '선비문화연구원' 으로 들어가는 정문 >

 

또한 일단의 축대 위로 중문이 되는 2층의 루각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루각 건물의 2층 처마 밑에는 경의루(敬義樓)이라는 현판이 붙어있고, 경의루 뒤편으로 거대한 3층 건축물이 되는 본관이 자리하고 있다.

 

< 한국 선비문화연구원의 중문에 붙어있는 '경의루' >

 

본관 건물로 들어가면 건물 입구에 안내 데스크와 팜플릿을 비치하고 있는데, 비치하고 있는 팜플릿 내용을 요약하면 이 건물에는 선비정신이 한국문화의 핵심임을 인식하고 남명학을 비롯하여 선현들의 실천유학에 관한 자료를 수집 및 연구하는 곳이라고 한다. 

 

< 한국 선비문화연구원의 '본관' >

 

< 본관 1층에 자리하고 있는 '안내 데스크' >

 

< 전시실 내에 기술하고 있는 '선비의 산실' >

 

하지만 안내 데스크에 아무도 자리하고 있지 않아 안내도 없이 전시실 출입구로 들어가면 입구에서 부터 한국 선비들의 발자취를 기술하고 있는데, 전시실 대부분은 남명 조식선생님의 일대기 및 그의 학문에 대하여 응급하고 있다.

남명(1501 - 1572년) 선생님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로 영남학파(嶺南學派)의 총수로써 천문, 지리, 역학, 의약, 병법 등에 모두 뛰어 났으면서 평생을 처사(處士)로 살면서 학문 연구와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3명의 임금으로 부터 십여 차례 이상 벼슬에 부름을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고 을묘 사직소를 올려 국정을 비판하였고 무진봉사를 통하여 서리 망국론을 펼치기도 하였는데, 그의 문하에는 임진왜란 때 곽재우, 정인용, 김면 등을 비롯하여 50여 명의 의병장을 배출시켰다.

 

< 남면 '조식' 선생님의 일대기 >

 

사회적 정의와 실천 위주의 학문 추구 및 공직자의 청렴설파 등 시대를 앞선 현대적 사상으로 남명 정신이 현재 더욱더 크게 부각하고 있는데, 시간의 부족으로 인하여 전시실 내부를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돌아보고 선비문화연구원을 떠나기로 한다.

 

2) 남사예담촌 마을의 관람.

한국 선비문화연구원에서 지방도로 20번을 이용하여 단성 Toll gate 방향으로 한 15분 정도 달려가면 도로변으로 '남사(南沙)예담촌' 마을을 만나는데, 도로 가장자리에 다소 넓은 주차장이 자리하고 있어 주차를 시켜본다.

 

< '남사예담촌' 을 나타내고 있는 입석 >

 

< '남사예담촌' 의 조감도 >

 

경상북도의 한옥촌으로는 안동하회 마을이고 경상남도의 한옥촌으로는 산청 남사예담촌 마을이라고 할 정도로 먼 옛날 부터 그 명성이 자자한 마을인데, 남사예담촌 마을은 양반 또한 전통 한옥마을로 유명하다고 하여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 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 로 지정하고 있는 안내판 >

 

남사마을은 수 많은 선비들이 과거에 급제하여 가문을 빛냈던 학문의 고장으로 공자가 탄생하였던 니구산(尼丘山)과 사수(泗水)를 이곳 지명에 비유할 만큼 예로 부터 학문을 연마하는 마을로 숭상받는 동네로 유명하다고 한다,

전통가옥이 하루가 다르게 사라져가는 요즘 평범하게 살아가면서 전통가옥을 보존하고 일부러 찾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지리산 초입의 작은 마을이 유난히 정감있고 고풍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해묵은 담장 너머 엿볼 수 있는 우리 조상들의 정서와 삶의 모습을 아직까지도 고스란히 간직한 마을이라 하겠다.

농촌 전통 테마마을로 지정된 남사예담촌은 고즈넉한 담장 너머 우리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어 표면적으로는 옛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내면적으로는 담장 너머 그 옛날 선비들의 기상과 예절을 닮아가자는 뜻을 가지고 있다.

 

< 남사예담촌의 골목 '담장' >

 

한옥은 수천년의 우리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뿌리를 두면서 시대적인 삶을 반영하며 변화되어 왔는데, 한 민족의 문화가 전통을 바탕으로 하여 현재를 딛고 미래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 변화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 되어진다고 한다.

전통 테마마을이 되는 남사예담촌은 변화하는 현재 속에서 옛 것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 나아가는 배움의 휴식터로 자리를 잡고자 하는데, 금일 한옥 풍경이 어우러진 전통문화의 배움터가 되는 남사예담촌에 방문하였으니 Slow city의 걷는 기분으로 천천히 기나긴 담장 따라 거니는 체험을 가졌본다.

제일 먼져 마을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최씨고가(崔氏古家)를 방문하기로 하면서 좁은 돌담 사이로 돌아서 들어가면 높고 튼튼한 대문이 버티고 있는 매우 인상적인 고가를 대면하는데, 이 고가가 현재 세대주가 되는 '최재기' 씨의 부친이 1930년에 건축한 건물이라고 한다.

 

< '최씨고가' 로 들어가는 골목 >

 

< 대문의 잠금장치가 되는 '거북이' > 

 

문화체육관광부로 부터 명품고택(名品古宅) 및 한국관광공사로 부터 2014년 우수 한옥 스테이로 인증받는 고옥이라 하겠는데, 남녀 사용공간을 나누어 공간의 독립성을 부여한 뛰어난 배치로 전통적인 남부지방 사대부가의 유교적 전통을 볼 수 있는 건물이다.

대문으로 들어서면 왼편으로 외양간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외양간 건물의 오른편으로 돌아서 가면 2층으로 되어있는 뒷간이 자리하면서 이 뒷간은 어느 변소와는 달리 계단을 올라가서 일을 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 대문 옆에 자리하고 있는 '외양간' >

 

이것은 조선시대에 있었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라는 농업생활 백과사전에서 위생적이고도 효과적인 인분 활용을 위하여 만들도록 권장한 변소가 되는데, 벽과사전 그대로 따른 화장실이라 하겠다.

2층 변기에서 일을 보고 1층에 흙이 담긴 상자에 담겨지면 그 위에 땔감의 재를 덮어 냄새를 줄이고 발효를 촉진시켰는데, 또한 뒷간 남쪽으로 홈을 내어 소피를 본 후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고이도록 둥굴게 구덩이를 파 놓아 인분이 가장 좋은 비료로 활용하였다고 한다.

다소 넓은 마당을 지나면 사랑채에 도착하는데, 사랑채는 정면 5칸에 측면 3칸 규모에 앞뒤 툇칸이 있으며 들보 5량(五樑)으로 조성되어진 팔작지붕의 건물로 지어졌으며 방으로 들어가는 여닫이 문의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봉창 문이 이채롭게 만들고 있다.

 

< 최씨고가의 '사랑채' >

 

사랑채에서 집의 좌와 우측으로 돌아서 들어가는 중문이 양쪽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동쪽 중문을 통과하면 안채가 한 눈에 들어오지만 서쪽의 중문을 통과하면 'ㄱ' 자 형태의 돌담으로 차단되어 안채와 익랑채가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고 한다.

현재 이곳 최씨고가의 안채에 주인장이 기거하므로 사생활(私生活)의 보호 차원에서 주인장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하여 중문 앞에서 멈추어야 하는데, 사랑채만 구경이 가능하여 다소 아쉬움이 발생하는 고옥이다,

그러고 나서 다음 골목이 되는 길을 걸어서 남사예담촌의 대표적인 가옥이 되는 '사양정사(泗陽精舍)' 를 방문하여 보는데, 사양정사로 들어가면 대문 앞 담장 넘어 수령 650년이 된 감나무 한그루가 자리하고 있으면서 이 감나무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써 아직도 많은 감이 열리고 있다.

 

< '사양정사 및 감나무' 가 있는 곳을 가르키는 이정표 >

 

< 수령 약 650년의 '감나무' >

 

사양정사의 입구가 되는 대문은 4칸의 광을 넣어 7칸의 장대한 규모로 구성하는 대문채에는 충절을 상징하는 홍살을 넣은 솟을대문을 달아 사양정사의 품격을 높게 만들고 있으며, 풍족한 경제력을 과시하고 있는 건물이 되므로 내부로 들어가는 것도 조심스럽게 한다.

 

< 사양정사로 들어가는 '솟을대문' >

 

사양정사란 '사수(泗水)' 남쪽의 학문을 연마하는 집이란 뜻을 가지는데, 여기에서 사수는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동성 곡부에 있는 강의 이름으로 공자를 흠모하는 뜻으로 남사마을 뒤에 있는 개울을 사수라고 부르고 정사가 개울의 남쪽에 있어 사양정사라는 이름을 붙었다고 한다.
이곳 사양정사는 한말의 유학자 '정제용(鄭濟鎔)' 의 아들 정덕용과 장손 정정희씨가 남사마을로 이전한 후 선친을 추모하기 위하여 1920년 대 지어진 고옥으로 정면 7칸 측면 3칸으로 단일 건물로는 엄청나게 큰 사랑채이다.

 

< '사양정사' 의 전경 >

 

천정이 높고 부재가 튼실하며 치목이 정교 할 뿐만 아니라 다락과 벽장 등 수납공간을 풍부하게 설치하였고, 또한 당시로서는 새로운 건축 재료가 되는 유리를 사용하여 근대기 한옥의 변화된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건물이다.

이 사양정사는 1935년 부터 연일 정(鄭)씨의 소유로 되어진 건물로써 건립 이후 주로 자손을 교육시키는 장소이면서 문객을 맞아 교류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데, 현재는 한옥 스테이를 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이 사암정사에 내부로 들어가면 선명당 건물을 만나는데, 선명당 마당에는 220여 년이 된 단풍나무와 더불어 수령 150여 년이 되어진 매화나무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의 매화나무들을 남사매(南沙梅)이라고 불려진다고 한다.

 

< 사양정사 옆에 있는 '선명당' 건물 >

 

< 선명당의 '사랑채' 건물 >

 

이 밖에 남사예담촌에는 예담한옥, 이씨고가, 이동서당, 기산국악당, 면우 곽종석생가. 유림독립기념관, 680년 된 원정매, 450년 된 회화나무, 물레방아 등 다양한 한옥과 더불어 휴식처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또한 담쟁이로 덮혀있는 돌담길 따라 걸어보는 트레킹 길이 잘 조성하고 있어 골목 따라 걷기에 안성맞춤의 마을이 된다.

 

< 토산품을 판매하고 있는 '예담한옥' >

 

< 마을 입구에 있는 '물레방아' >

 

< 마을 가장자리에 있는 '상가' > 

 

마을 안길과 동네 주변을 한바퀴 돌아보고 나서 오후 4시 20분 남사예담촌을 떠나 하루 밤 유숙 할려고 하는 중산리 버스정류소로 달려가는데, 중산리는 지리산의 최고봉이 되는 천왕봉(天王峰)으로 올라가는 최단 코스의 입구에 있는 마을이다. 

중산리 버스정류소 인근에 있는 많은 민박집 중에 식당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민박집으로 들어가 저녁식사와 더불어 하나의 방을 예약하는데, 중산리에 있는 많은 민박집에서 2인실 방은 6만원을 요구한다. - 첫째날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