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둘째날 : 2010년 12월 11일 (토요일)
1) 성산 일출봉(城山 日出峯)에 오르면서.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제주도 역사와 풍경 속으로 빠져보기 위하여, 아침 일찍 일어나 별장 주위에 있는 "성산 일출봉" 으로 올라가 일출을 보기 위하여 승합차로 10여 분 운전하여 새벽 여명도 열리기 전 성산주차장으로 들어선다.
< 여명도 열리기 전 "성산 일출봉" 주차장 입구 >
일출 관광을 하기 위하여 새벽부터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어 그들의 뒤 꽁무니를 따라 산행 초입에 들어서는데, 매표소에서 1명의 매표원이 인당 2.000원 하는 입장료를 징수하고 있지만 어둠으로 인하여 관리인의 중과 부족으로 대부분 사람들이 그냥 올라가므로 일행도 입장권을 구입치 않는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산길로 들어선다.
"성산" 은 해발 182m 높이를 가진 산이지만 올라가는 길 전부가 수백 개의 돌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어, 20-30분 만에 올라 가기에는 너무나 숨이 차 오른다.
가로등 불 빛따라 중간 쯤 올라가면 용암이 만든 기기묘묘한 돌 기둥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 옆으로 곳곳에 벤치를 만들어 놓아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도록 하고 있어 일행도 쉬어가는 여유와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정상 전망대에 올라간다.
전망대 주위에서 올라온 뒤편을 돌아 보니까 성산읍이 한폭의 그림과 같이 바다와 더불어 희미한 가로등을 앉고서 졸고 있는데, 원래 성산읍을 형성하고 있는 터에는 섬이었으나 수만년에 걸쳐 밀려온 모래와 자갈로 마침내 육지와 연결이 되었다.
그래서 섬이라는 존재는 살아지고 육지의 한부분이 된 지역이 되므로, 바다와 육지가 상호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고 있다.
< "성산 일출봉" 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만나는 돌 기둥 >
< 성산 일출봉 정상에서 내려보는 "성산읍" 전경 >
이어 해가 뜨는 동쪽 방향으로 돌아서니까 눈 앞에 약 8만 평의 거대한 분화구가 펼쳐지고 있는데, 분화구 주위에는 왕관과 같이 뾰족한 99개 봉우리가 또렷한 융곽을 나타내고 있는 태두리 가장자리에 벌써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여 추위로 옷깃을 반듯하게 새우고 해가 올라오는 방향을 보고 있다.
< 전망대 앞에 있는 약 8만 평의 거대한 "분화구" 모습 >
< 일출을 보기 위하여 기다리는 "관광객" >
< 일출 보기를 포기하고 일찍 하산하는 "관광객" 과 함께 >
< 하산 후 되돌아 보는 "성산 일출봉" 전경 >
7시 30분 경에 일출을 구경 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지만, 날씨가 잔득 흐림으로 아무리 기다려도 일출을 볼 기미가 없다는 결론으로 조기에 인지하고 바로 하산하여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주차장 우측편에 일출봉 "동암사(東岩寺)" 사찰 명판이 붙어있어 호기심이 발동하여 내부에 들어가 보는데, 사찰 규모가 제법 크지만 아직도 새벽이라 아무도 움직임이 없이 적막감에 묻혀있다.
< 일출봉 앞에 "동암사" 사찰 표시석이 있는 옆문 >
< 새벽 적막 속에 졸고 있는 "동암사" 전경 >
전일 밤 생선을 구입하기 위하여 잠시 성산읍에 와서 어시장을 찾았으나 성산에는 어시장이 없고 내일 새벽 성산읍 포구로 들어가 해산물 경매장을 돌아보는데, 그 곳으로 들어가 직접 구입하라는 이야기를 상기하고 바로 어판장으로 달려 가본다.
어판장으로 들어가 경매 과정도 구경하면서, 한 아주머니에게 낙찰된 팔딱팔딱 뛰는 갈치 8만원과 잡어 2만원 등 총 10만원 정도 생선을 구입하여 차량에 실으니 차량 타이어가 홀짝하여 진다.
별장으로 돌아오는 길 도로가에 노란 유채꽃이 만발하게 피어 있는 곳을 사진 배경으로 한번 촬영하는데, 1,000원 한다는 안내판을 보고서 제주도 인심이 너무 각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밭의 끝 가장자리까지 가서 차를 새우고 창문만 내리고 사진 한장을 찍을려고 하는데, 주인 여자가 수십가지 쌍욕을 하면서 차량을 따라 오기에 아침부터 줄행난 치는 수모도 경험하여 본다.
< 욕만 실컨 얻어먹고 한번 촬영한 "유채꽃" >
일행도 궁실궁실하면서 별장으로 되돌아 와서, 싱싱한 갈치 및 잡어를 생선구이와 메운탕으로 만들어서 풍족한 아침식사가 이루어 지도록하여 본다.
2) 마라도(馬羅島)의 관광.
아침식사와 더불어 창문을 열고 바다를 바라보니 파도가 좀 치고 있어 "마라도 유람선" 선착장으로 전화를 하니까, 현재 배의 출발이 미정이라면서 선착장까지 직접와 대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여 준다.
그래서 숙소와 반대 방향 송악산 안쪽에 있는 유람선 선착장까지 약 2시간 정도 운전하여 도착하니까, 11시 20분 행 유람선이 출발하기 위하여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있어 긴급하게 인당 15.000원의 왕복 승선료를 지불하고 배에 올라본다.
< 송악산 언저리 마라도로 들어가는 "유람선" >
이미 1, 2층에 많은 사람들이 승선하여 즐거운 여행에 임하는 군중 속으로 혼합되면서 부두에서 미끄러져 나아가는 항구를 뒤 돌아보니 송악산 주위 해변 암벽에는 수 많은 동굴이 있어 또 다른 운치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 동굴은 2차 대전 마지막 일본인들이 미국과 전쟁하기 위하여 인공적으로 만든 군사 요새이라고 한다.
< 송악산 해안가에 일본 군인들이 인공적으로 만든 "군사 요새" >
한 10여 분 항해하여 "가파도" 옆으로 하여 대해로 나아가니 파도가 점점 높게 일어나는데, 유람선이 많이 요동을 치므로 승선한 사람들 모두가 불안하게 만든다.
일부 사람들은 Over eat 하기 위해 비닐봉지를 가져가야 할 정도로 흔들림 속에 한 30분 정도 운행하여 "마라도 선착장" 에 이르는데, 섬에서 1시간 30분만 머물고 오후 1시 20분까지 승선이 이루어 지도록 한다.
< 마라도 선착장에 하선과 동시에 승선하는 "승객" >
마라도 섬에 오르니 전동차로 만들어진 수십대의 Taxi가 손님을 호객하고 있는데, Taxi 운전수가 운행하는 가게에서 짜장면만 팔아주면 섬을 일주하는 택시 비용을 공짜로 하여 Driver를 시켜준다고 한다.
< 손님을 싣기 위하여 기다리는 "전동차 형" Taxi >
한 Taxi에 승차하여 섬의 일주길로 들어서니까 운전수가 섬의 유래를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섬의 형상은 고구마 같은 타원형 형상을 하고 있으며 동서의 길이가 500m에 남북의 길이가 1.3Km, 섬의 둘레 4.2Km이며, 총 9만 평 면적에 6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고 한다.
한 때는 섬 전체가 울창한 소나무로 우거져 있었는데, 농작물을 경작하기 위하여 임으로 불을 질려 불이 3개월 동안 숲을 다 소각시켰다고 하며 현재 섬의 정상 부근에 새롭게 상록수림을 조림하여 나무가 자라고 있지만 강력한 해풍으로 성장이 매우 느리다고 한다.
이어 섬 최고 높은 지점은 36m이며서 그곳에 1915년 부터 등불을 밝히는 등대가 새워져 있는데, 마라도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이유가 이 등대 때문이라고 한다.
< 마라도 최고 높은 곳에 위치한 "등대" 모습 >
세계의 전 해도상에서 제주도가 들어가지 않아도, 마라도 등대가 들어가지 않고는 해도로써의 가치도 없고 배의 항해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운전자 본인은 모슬포에서 생활하다가 18년 전 마라도로 낚시를 하려 왔다가 낚시 매력에 빠져 아직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마라도 주민이 되었으며 짜장면 가게와 더불어 GS25 슈퍼마켓 병행하여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오후 4시 마지막 배를 보내고 나면 바로 바다로 나아가 낚시 삼매경에 빠지다 보니, 본인의 시계는 완전히 멈추어 버려 아직도 18년 전과 동일한 정신 년령(年齡)과 육체를 영위하면서 살아간다고 한다.
섬의 정상을 넘어가니 항아리를 뒤집어 논 형태의 건축미를 가진 성당 앞에 차를 멈추면서, 등대와 더불어 성당을 배경으로 추억의 사진 한장을 필히 찍고가는 장소이라고 하면서 손수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 태양광으로 가동하는 "마라도 등대" 를 배경으로 >
< 등대 앞에 있는 마라도 "성당" >
현재 이 성당에는 2명의 천주교 신자가 있는데, 본인도 그 신자 중에 한명이라고 하며 한 달에 2회에 걸쳐 제주도에 있는 신부님이 직접 방문하여 미사를 드린다고 한다.
조금 아래로 내려가면 한국의 땅 최남단이 되는 "대한민국 최남단(大韓民國 最南端)" 이란 표시석이 태평양을 바라보고 서 있는데, 모든 사람들은 이곳에서 더 앞으로 갈 수 없어 무조건 되돌아가야만 하는 땅의 끝 장소이다.
< "대한민국 최남단" 표시석을 배경으로 >
이 최남단 표시석 바로 앞에는 태평양에서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를 몸으로 부딛치면서 잠 재우고 있는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 있는데, 그 바위 이름을 "장군바위" 이라고 한다.
이 바위가 하늘의 천신(天神)님이 육지의 지신(地神)님을 만나려 내려오는 길목에 있다고 하여 옛날에는 매년 해신제를 지낸 장소이지만, 안전사고를 대비하기 위하여 출입을 제한시키는 철조망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태평양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장군바위" >
거센 바람으로 인하여 오래 머뭄이 불가능하여 섬의 남쪽 방향으로 돌아 마을로 들어가는데, 마을에는 초콜렛전시관, 기원정사, 마라교회, 보건소, 태양광발전소, 마라분교 등의 공공건물과 더불어 민간인 가옥들이 나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으면서 대부분의 민간인 가옥은 마라도 특산품 "짜장면" 가게를 운영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 마라도 남쪽에 나지막하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전경 >
< 일행이 탄 Taxi 운전수가 운영하는 "짜장면" 가게 >
Taxi 운전사 가게에 들어가 짜장면과 해물 짬뽕 2가지를 병행하여 먹어 보는데, 이곳 중화요리는 해삼물만 사용하므로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입안에 감돈다.
< 마라도에서 만든 "짜장면과 해물 짬뽕" 을 겸하여 먹어보니 >
점심식사를 마치고 걸어서 섬의 나머지 부분을 일주하면서 구석구석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데, 작은 섬에서도 기독교, 불교 및 천주교 등 모든 종교시설이 다 있지만 섬과 고기 잡는 뱃사람의 특성상 토속신앙을 믿는 장소의 흔적도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 마라도에 있는 "교회" 전경 >
천천히 선착장으로 발을 옮기면서 앞을 바라보니 더 넓은 바다에는 파도가 올 때보다 더 높아지고 있는데, 파도가 접혀지면서 흰색 포발로 변화가 발생하고 있어 마음이 다소 불안하여 진다.
< 해안 길 따라 "마라도 선착장" 으로 가는 길 >
< "마라도와 가파도" 사이 노도(怒濤)하고 있는 바다 풍경 >
한 동안 유람선이 나타나지 않아 시계를 보면서 기다림 끝에 유람선이 부두에 정박하지만 한명의 사람도 싣지 않고 빈배로 들어와 섬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만 신속하게 승선시키는데, 모든 승객들을 1층만 머물도록 하고 대해로 나아가는데 파도가 작난이 아니다.
일행들은 모두 본인들이 믿는 종교를 가지고 있어 그 분에게 의존하지만 무교인 나는 믿는 것이라고 거시기 뿐이라 거시기만 꼭 붙잡고 파도의 횡포만 바라보면서 무사히 제주도까지 갈 수 있도록 빌어 보는데, 약 30분 정도의 항해 시간이 10년의 시간과 동일한 것 같다.
만약 제주도까지 무사히 나간다면 남들보다 10년 더 살았다는 결론이 되므로, 앞으로는 동료들보다 10년 먼저 죽에도 여한이 없겠지 하는 생각으로 파도와 싸우고 있는 뱃머리를 보고 있으니 후회가 막급하게 만든다.
기나긴 사투 끝에 송악산 선착장에 무사히 도착하여 선객을 하선시키고 유람선은 산방산 근교에 있는 방파제 안으로 똥이 빠지도록 내 빼면서 숨어 버리는데, 거대한 유람선도 높은 파도가 무서운가 보다.
3) 산방산(山房山) 산방굴사에 오르면서.
마라도 유람선에서 죽을 고비를 무사히 극복하고, 승합차는 아름다운 해안 길 따라 한 10여 분 정도 운행하여 산방산 허리에 자리잡고 있는 산방사 주차장에 이른다.
< 송악산 선착장에서 바라보는 "산방산" 원경 >
주차비를 정산하고 몇 개의 계단을 통하여 올라서면 또 다시 사찰 입장료 2,500원 요구하지만, 단체 10명 이상 입장하면 1,000원이나 활인하여 준다고 하여 조금의 기다림을 가진다.
대구에서 온 다른 인행 8명과 합산하여 입장료를 지불하는데, 그런데 한장의 입장권으로 사찰 앞에 넓게 분포한 "하멜 상선 전시관 및 용머리 해안" 까지 동시에 관광을 할 수 있는 복합 입장권이다.
"산방사" 중앙 통로를 두고 좌측에는 본당이 되는 대웅전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통로 우측 토굴 속에 만들어진 "동굴암" 과 더불어 대웅보전 건물이 2중으로 건립되어 있으며 대웅보전은 용머리 해안을 내려보고 있다.
< 중앙 통로 왼편에 있는 산방사 "대웅전" >
< 중앙 통로 오른편에 있는 "대웅보전" >
대웅보전 앞 마당에는 거대한 석가모니 "불상" 이 대웅전과 대웅보전을 옹호하듯이 바라보면서 인자한 웃음을 머금고 앉자 있다.
< 대웅보전 앞에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 >
사찰 뒤편으로 하여 잘 다듬어진 돌계단을 이용하여 한 10여 분 올라가면 산방산의 허리 부위에 있는 "산방굴사" 암굴을 만난다.
산방굴사는 해발 395m 산방산 암벽 중간 지점이 되는 해발 150m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 크기가 너비 5m에 높이 5m, 깊이10m 의 거대한 토굴 형상을 하고 있는 "해식동굴" 이다.
산방산은 원래 바다 속에 있는 수중화산 이었지만, 오래동안 바다 속에 잠겨 있다가 융기로 인하여 육지로 솟아 올라오면서 형성된 산인데, 산방굴사 옆에 있는 바위들이 해수로 깍기면서 많은 곰보를 형성하고 있다.
< 산방굴사로 올라가는 길에 "해수" 로 침식된 바위 >
산방굴사의 제일 높은 제단 위에는 불상이 놓여 있고 그 불상 앞에는 산방산을 지키는 여신 "산방덕이" 의 눈물이 떨어지면서 만든 샘이 있는데, 이 샘물 한 바가지만 먹으면 천수를 누린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 "산방굴사" 내부 전경 및 부처님 앞의 우물 >
산방굴사 앞에 서면 거대한 노송 한 그루가 커다란 가지를 펼치면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데, 그 나무 사이로 바다를 바라보면 용머리 해안과 형제바위, 가파도, 마라도, 송악산의 풍광들이 그림과 같이 펼쳐지고 있어 의자에 앉자 기나긴 머뭄을 가져본다.
< 산방굴사 앞에 있는 "노송" 의 고고한 자태 >
다시 주차장에 내려와 도로 아래에 있는 용머리 해안과 하멜 상선 전시관까지 걸으면서 관광하기에 힘이 들 것 같아, 입장을 포기하고 다음 목적지로 떠난다.
< 입장권을 구입하고도 관광하지 않고 떠나는 "용머리해안 과 하멜 상선 전시관" 전경 >
4) 천제연(天帝淵) 폭포를 구경하면서.
산방산에서 숙소로 가는 길의 중간에 있는 서귀포 "중문관광단지" 로 이동하여 먼저 "천제연 폭포" 로 방향을 잡아보는데, 중문관광단지로 들어가는 도로가에는 열대 야자수가 이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도로가 만들어져 있디.
중문단지 바닷가로 호텔, 펜션, 콘도 등의 숙박시설이 즐빈하게 자리잡고 있지만 관광단지 중앙의 한 호텔 앞에 주차를 하고 나서 천제연폭포로 들어가 보는데, 폭포 앞에 있는 매표소에서 입장료 지불하고 내부로 들어가는 산책길에는 동백꽃이 만발하게 피어 매우 아름다운 길을 형성하고 있다.
산책길 끝 왼편 언덕 위에 "천제루" 라는 아름다운 루각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옆으로 천제연폭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는데, 제1폭포는 폭포물이 떨어지지 않지만 제2폭포에는 거대한 물줄기가 여러 곳으로 분리하여 2단으로 떨어지면서 물 안개를 형성하고 있어 먼 곳에서 한장의 사진을 찍어본다.
< 천제연폭포 공원 내에 있는 "천제루" >
< 루각 옆 전망대에서 본 "천제연 폭포" 전경 >
천제연폭포를 관람하기 위하여 거대한 계곡 위로 육중한 철구조물로 만든 오작교 형태의 "선암교" 다리가 놓여 있는데, 그 다리를 넘어가 폭포 방향으로 길을 잡아본다.
< 천제연폭포로 들어가는 오작교 형태의 "선암교" >
천제연폭포 유래는 "하늘의 옥황 상제를 모시는 7선녀가 별빛 영롱한 밤이면 자주빛 구름을 타고 내려와 맑은 물에 목욕하고 노닐다가 하늘로 올라갔다" 는 뜻을 가진 하늘천(天), 임금제(帝), 연못연(淵)을 써서 "하늘의 연못" 이라는 뜻을 가진 천제연폭포이라고 한다.
오작교 건너 우측편으로 조금 들어가면 야외 공연장에 이르는데, 공연장 뒤 무대가 7선녀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조각하여 놓은 병풍으로 이루어진 조각물이 있다.
< 천제연폭포 야외 공연장에 있는 "7선녀 조각품" >
폭포로 내려가는 나무 계단 길 따라 계곡 아래까지 내려가면 거대한 물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제2폭포 소(沼)에 이르는데, 물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가늠이 불가능하도록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다.
< 용천수 물만 떨어지는 천제연 "제2폭포" 앞에서 >
이어 한 400m 상부에 있는 제1폭포로 올라가면 폭포의 높이가 22m로써 거대한 절벽 바위가 타원형을 형성하고 있는데, 폭포 위에 "천제교" 라는 교각이 놓여 있어 운치가 많이 반감된다.
제1폭포는 상부의 하천이 범람할 때를 제외하고는 평상 시에 폭포물이 떨어지지 않고 전부 물이 솟아오르는 용천수로 연못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 깊이가 자그만치 21m가 된다고 한다.
물이 얼마나 맑고 깨끗한지 바람이 없는 잔잔한 날에는 코발트색 물 밑으로 바닥까지 훤하게 들어다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바닥을 보지 못 함이 아쉽다.
< 물이 하나도 떨어지지 않은 천제연 "제1폭포와 연못" >
오작교 아래 방향으로 제3폭포가 있지만, 그곳에는 별다른 특색이 없어 그냥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 관광코스이라고 하여 탐방에서 제외시킨다.
5) 여미지 식물원의 관람.
동양 최대의 관광식물원 "여미지 식물원" 은 천제연 폭포로 들어가는 남쪽 문 옆에 자리하고 있는데, 관람 입장료가 자그만치 7,000원을 요구하므로 이미 한번 다녀본 일행들은 차량에 남고 3명만 입장하여 본다.
< "여미지" 식물원 들어가는 입구 >
면적 3만4천평 부지 위에 자리잡고 있는 여미지 식물원은 약 3,800평의 유리온실 식물원과 약 3만 평의 야외 식물원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자생식물원, 한국정원, 일본정원, 프랑스정원, 이태리정원, 허브원, 소철원, 잔디광장 등 테마별로 2,000여 종의 희귀 식물과 1,700여 종의 각종 꽃과 나무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 "유리온실 식물원" 전경과 38m 높이의 전망대 모습 >
많은 입장료를 지불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쌀쌀한 날씨로 인하여 유리온실 식물원으로 직행하여 대부분 사람들은 이곳에 있는 식물만 관람하는 것으로 종결한다.
유리온실로 들어가면 온실 중앙에 높이 38m 전망 타워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엘리베이트를 타고 상부 전망대 올라가서 또 다시 회전 계단을 이용하여 몇바퀴를 돌아서 올라가야만 최상 지점에 있는 전망대에 이른다.
< 유리온실 내부에서 상부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트" 탑승대 >
전망대에서 한바퀴 천천히 돌면서 제주도 풍경에 빠져보는데, 발 아래에 중문관광단지 전경과 더불어 멀리 한라산 및 마라도 섬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넓은 광장을 빙돌아서 테마별 식물원이 꾸며져 있는데, 화살표와 번호 순서되로 꽃의 정원. 물의 정원, 선인장의 정원, 열대정원, 과일정원 등 5개 온실로 차례로 들어가면서 식물을 보고 있으니 희귀종류 식물과 꽃이 만발하게 피여 있어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일목요약하게 만들어 놓아 관람시간이 무한정 소비된다.
< 식물원 내부에 있는 "열대식물" 과 호수 >
< 식물원 내부에서 아름답게 피어 있는 "꽃" 을 보면서 >
< 여러 개의 뿌리로 지탱하고 있는 "희귀 나무" >
< 식물원 내에 있는 "선인장" 군락지 >
< 희귀한 형상을 하고 있는 "박쥐난" >
만약 밖에 일행이 기다리지 않는다면 무한정 머물어도 지루 함을 느끼지 못하는 환상적인 장소인데, 마지막까지 돌아보고 나니 왜 비싼 입장료 받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며 입장료보다 훨신 더 가치를 가진 식물원이라 다음에 꼭 한번 더 오고 싶다.
6) 중문(中文) 해수욕장을 거닐면서.
여미지 식물원에서 조금만 바다 방향으로 내려가면 "중문해수욕장" 에 이르는데, 중문해수욕장은 제주도의 대표적 해수욕장 중에 하나로써 길이가 560m에 폭이 50m로써 해수욕장 뒤편에는 모래 언덕으로 형성되어진 절벽을 이루고 있어 바람이 많기로 유명한 제주도이지만 해수욕장에 들어가면 포근한 여인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 포근한 여인의 품속과 같은 "중문해수욕장" 전경 >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기암절벽으로 형성이 되어 있고, 그 절벽 아래 높이 약 15m의 해식동굴이 있지만 지금은 쓰레기만 널려 있어 많이 지저분하다.
파란 바다물과 경계를 이루는 아름다운 모래사장은 파도로 인하여 파쇄 되어진 조개껍질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어 걷는 촉감이 좋아 맨발로 걷는데, 최상의 조건을 가진 해수욕장인 것 같다.
겨울이라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모든 상점이 철수하여 문이 굳게 닫혀 있지만, 몇몇 해녀들이 직접 잡아 온 멍게와 해삼, 전복, 소라 등 해삼물을 판매하는 포장마차가 바닷가 한 모서리에 모닥불을 피우면서 영업하고 있어 Table 구석에 자리 잡고 한접시의 해삼물과 더불어 소주 한잔 마셔보는 추억의 순간도 만들어 본다.
< 해녀가 방금 잡아온 "해삼과 멍게" 로 소주 한잔 >
7) 중문 대포해안 주상절리대(大浦海岸 柱狀節理帶)의 관람.
저녁노을이 물드는 서귀포 중문 바다의 떠남이 아쉬워 해안가를 따라 서귀포 시내 방향에 있는 대포해안 "주상절리대" 공원으로 들어가 본다.
천연 기념물 제443호로 지정된 중문 대포주상절리대는 약 500만 년 전 형성된 주상절리의 돌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화산폭발로 흘러내리는 용암이 바닷물과 만나면서 급속하게 냉각되면서 칼로 정교하게 자른 형태의 4-6각형 조면암(組面巖) 돌기둥으로 딸바꿈한 절벽이다.
높이가 30-50m에 폭이 자그만치 2,1Km가 되는데, 우리나라에서 최대의 크기를 자랑하는 주상절리 군락지가 된다.
< "중문 대포해안 주상절리대" 를 형성하고 있는 바위 >
< 4-6각형 형상을 하고 있는 "주상절리대" 의 다각형 돌기둥 >
나무계단 따라 바닷가로 내려가면 아슬아슬하게 만들어진 전망대 위로 올라가 검푸른 파도가 넘실되는 바다물을 내려다 보는데, 현기증이 바로 일어나고 돌기둥을 파괴하기 위해 파도가 연신 바위에 부딛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언제 둘기둥이 무너질지 몰라 전망대에 머물면서 구경 좀 할려니 오금도 다 저려온다.
< 주상절리대 위에 설치된 "전망대" 에서 >
안전난간대 앞에서 사진 한장을 찍는 것도 고통의 순간인 것 같아 대충 방문했다는 흔적만 남기고, 언덕 위로 만들어진 산책길 따라 거닐어 본다.
< 절리대공원 내에 조성하여 놓은 "12지상 조각품" 보면서 >
이곳 산책길에도 깊은 겨울 잠에 빠진 한라산의 높은 봉우리와 더불어 봉곳이 솟아오른 산방산, 들쭉날쭉한 해안 절벽, 더 넓은 바다 위에 위태롭게 떠 있는 가파도와 마라도 등 제주도 서남부 지역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므로, 새롭게 좋은 관광지로 부각 되는 장소이다.
< 주상절리대 공원에서 바라보는 서남부 해안과 "산방산" >
오늘은 너무나 강행군으로 제주도를 관광하다 보니 다리도 아프지만 피로 누적으로 인하여, 서둘러 별장으로 귀가하여 아침에 구입한 갈치와 잡어를 누가 더 많이 먹을지 하는 시합으로 저녁식사 시간을 가진다.
소주와 더불어 아무리 많은 생선구이를 먹어도 결론이 나지 않아 시합을 무승부로 중단하는 해프닝도 해보면서, 2일째 긴 여정을 끝내기로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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