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회.(고등학교 동문 모임)

충북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 640번지 내에 자리하고 있는 '배론성지' 를 방문하며.(2)

용암2000 2023. 4. 1. 20:28

 

2023년 3월 29-30일.(1박2일)

 

1. 첫째날 : 3월 29일.(수요일)

 

3) 배론성지를 찾아서.

충청북도 제천시의 명소가 되는 의림지를 구경하고 나서 일행은 금일 하룻밤을 머물기 위하여 사전 예약을 한 '명암재(明岩齋)' 이라는 무인 펜션을 찾아가는데, 스마트 폰에서 길찾기 원나비에 주소를 입력하여 길을 안내 받으면서 숙소를 찾아간다.

주인장이 숙소의 주소를 가르켜주는 제천시 봉양읍 명암로 840번지를 입력시키면서 길을 안내를 받으니까 가는 길은 의림지의 상부에 있는 제2 의림지를 지나면서 작은 고개를 넘어 고개 정점에서 조금 내려가면 도로변에 명암재 펜션이 자리하고 있다.

 

< 금일 숙소로 선정한 '명암재' 펜션 >

 

먼저 숙소로 입실하여 짐을 내려놓고 명암재 펜션에서 약 5Km 정도 떨어져 있는 '배론성지(排論聖地)' 를 한번 탐방하기로 하는데, 배론성지는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 640번지 내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한국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로 천주 교회사의 중요한 의미를 가진 성지이라 하겠다.

 

< '배론성지' 를 알리고 있는 현황판 >

 

배론성지는 지리적으로 치악산 동남쪽 기슭에 우뚝 솟은 구학산 및 백운산의 연봉이 둘러싼 험준한 산악지대로 외부와 차단된 산골이면서도 산 길로 10리 만 걸어서 가면 제천시의 명소가 되는 박달재 고개 마루에 도착이 된다.

이어 충주 및 청주를 거쳐 전라도와 통하고 제천에서 죽령을 넘으면 경상도와 통하며 원주를 거쳐 강원도와도 통할 수 있는 교통의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는데, 배론이라는 지명은 이 골짜기의 지형이 배의 밑바닥 모양과 비슷하여 한자로 주론(舟論) 또는 음대로 배론(排論)이라고 한다. 

또한 배론성지에 본격적으로 천주교 신자들이 모이들기 시작한 것은 조선 정조 15년(1791년)에 일어난 신해박해(辛亥迫害) 이후로 추정되는데, 한국 초대 교회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돌어와 화전과 옹기(甕器)를 구워서 생계를 유지하며 신앙을 키워 나간 교우촌이라 하겠다.

이곳 배론성지는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황사영이 당시에 박해 상황과 신앙 자유 및 교회의 재건을 요쳥하는 백서를 토굴 속에 숨어 집필한 지역이 되는데, 철종 6년(1855년)에서 부터 고종 3년(1866년) 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이 되는 배론 신학교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더불어 1861년에 별세한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생이며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번째로 신부가 된 '최양업(崔良業)' 신부의 분묘가 소재한 성지가 되었고, 1866년 병인박해의 순교자가 되시는 '남종상' 신자의 생가가 있는 지역이며 1911년 경성교구에 속해 있다가 1968년 원주교구로 소속이 변경된 성지이다.  

 

< '배론성지'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 '배론성지' 의 조감도 >

 

성지의 영역은 골짜기에 내려오는 계곡을 중심으로 좌우로 나누어져 있는데, 먼저 계곡 왼편에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가 주차를 시키고 주차장 가장자리에 거대한 2개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왼편 건물에는 여자 화장실이고 오른편 건물은 남성 화장실이 된다.

 

< 주자창 가장자리에 만들어져 있는 '화장실' >

 

화장실의 중간 통로를 지나면서 뒤편으로 올라가면 왼편의 야산 기슭에는 성직자 교육을 위한 '은총의 성모마리아 기도학교'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또한 건물의 크기가 대단하여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관광객에게 먼저 배론성지의 크기에 압도를 당하게 만든다.

 

< 성지 왼편 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은총의 성모마리아 기도학교' >

 

기도학교를 돌아서 들어가면 잔디광장을 만나고 그 뒤편으로 대성당 건물 앞에 도착하는데, 대성당 건물 앞에 '최양업 도마신부기념성당' 이라고 표시하고 있는 입석과 더불어 동상이 자리하고 있지만 다소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대성당 내부 관람은 불가능한 것 같다.

 

< 잔디광장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대강당' >

 

< 대강당 앞 '최양업도마신부기념성당' 으로 쓴 입석 >

 

 < 대강당 앞에 만들어져 있는 '최양업' 신부 동상 >

 

대강당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면 '최양업 신부 조각공원' 이 자리하고 있는데, 조각공원 중앙에 원형의 받침대 위에 4각형 조형물을 두고 있다.

그 뒤편으로 반원형의 벽면에 최양업 신부의 일대기를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지만, 너무나 긴 일대기이라 한 두개 섹션(Section)만 읽어보고 자리를 떠나기로 한다.

 

< 대공원 뒤편 '최양업 신부 조각공원' 전경 >

 

< 반원형으로 만들어져 있는 '최양업' 신부의 일대기 > 

 

< 조각공원 뒤편에 만들어져 있는 '예수' 동상 >

 

이제는 배론성지를 이분화시키고 있는 계곡의 오른편 방향으로 들어가 성지를 탐방하여 보기로 하는데, 제일 상부에는 많은 신자들이 머물 수 있는 '순교자의 집' 이 자리하고 있고 그 오른편으로 '황사영순교현양탑(黃嗣永殉敎顯揚塔)' 이 자리하고 있다.

 

< '배론성지' 를 이원화시키고 있는 계곡 >

 

< 계곡 오른편 제일 상부에 자리하고 있는 '순교자의 집' >

 

 < 순교자의 집 오른편에 만들어져 있는 '황사영순교현양탑' >

 

황사영순교현양탑의 오른편에는 경당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경당 건물의 뒤편으로 돌아가면 하나의 토굴(土窟)을 만나는데, 이 토굴은 황사영씨가 이곳에 숨어 한국 천주교의 실상을 폭로하기 위한 백서(帛書)를 기록한 장소이라고 한다.

 

< 경당 건물 입구에 있는 '진복문' >

 

< 진복문 뒤편에 있는 '경당' 건물 >

 

< 경당 건물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황사영 토굴' >

 

< '황사영' 순교자가 남긴 글 > 

 

황사영백서(黃嗣永帛書)는 조선에서 순조 1년(1801년) 신유박해 때 천주교 신자(信者) 황사영이 중국 로마 가톨릭교회 북경 교구의 주교에게 혹독한 박해를 받는 조선 교회의 전말 보고와 그 대책을 흰 비단에 적은 밀서(密書)의 일종이라고 하겠다.

경당의 건물 옆에 자리하고 있는 초가집은 한국 최초 신학교의 모태가 되는 배론 성 요셉 신학당으로 현재 가톨릭대학교로 발전하여 내려오고 있는 학교인데, 벽면의 그림에는 중앙에 예수님이 자리하면서 왼편에는 김대건 신부 및 오른편에는 가경자 최양업 신부의 그림이라 한다. 

 

< 한국 최초의 신학교가 되는 '배론 성 요셉 신학당' >

 

< 신학당 문 입구에 부착하고 있는 '예수' 그림 > 

 

이곳 경당 및 배론 성 요셉 신학당 앞으로 다소 넓은 정원과 연못 및 배론성당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고, 또한 강당 뒤편 산 속에는 가경자 최양업 신부 및 천주교 신자들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지만 산 속으로 올라 갈 시간적 부족으로 관람을 생략한다.

 

< 넓은 정원과 함께 하고 있는 전면의 '배론성당' >

 

< 강당 뒤편 야산에 자리하고 있는 '최양업 및 신자' 무덤을 가르키고 있는 이정표 > 

 

< 무덤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만들어져 있는 '신부' 석상 >

 

계곡하여 아래쪽 방향으로 내려가면 각종 기념품 및 천주교 신자들에 필요한 서적 등을 판매하는 '성물방(聖物房)'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오늘 배론성지를 방문한 다수의 수녀 및 신자들이 기념품을 구입하기 위하여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

 

< 천주교 용품을 판매하고 있는 '성물방' >

 

< '성물방' 내부의 전경 >

 

< 기념품을 구경하고 있는 '수녀' >

 

 < 성물방 건물과 함께 사용하고 있는 '성지 사무실' >

 

< 성물방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카페' >

 

 < 양업교 앞에 만들어져 있는 '미로의 기도' >

 

이곳 성물방 앞에 흐르고 있는 개울에 만들어져 있는 양업교(良業橋)를 건너 성지 왼편 방향으로 들어가 배론성지를 떠나기로 하는데, 성지 출구에 주차하고 있는 승용차에 탑승하여 금일 숙소로 정한 명암재로 달려간다. - 첫째날 2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