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대구)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연암산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구암서원' 돌아보면서.(1)

용암2000 2023. 6. 7. 22:07

2023년 6월 6일.(화요일)

 

*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의 방문.

내가 지금으로 부터 40년 전 부터 30년 전 까지 한 10여 년 동안 대구시 북구 산격동에서 살면서 많이 찾았던 연암산(일명 : 수도산)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구암서원(龜巖書院)' 을 방문하여 보기로 하는데, 내가 산격동에서 살 때에는 구암서원이 존재하지 않았다.

더불어 내가 살았던 산격동의 옛 집 2곳과 함께 나의 아들 2명이 다녔던 대구 '대동초등학교(大東初等學校)' 가 폐교를 당하였다고 한다.

현재 폐교 건물을 이용하여 교육의 모든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교육박물관(敎育博物館)' 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내용을 인지하므로 2곳을 방문하여 보기로 한다. 

 

1. 구암서원을 돌아보면서.

먼저 구암서원을 방문하기 위하여 옛 경상북도청 건물(현재 : 대구시청 별관)의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구암서원을 찾아가는데, 구암서원이 연암산 중터에 자리하므로 나의 모닝 차량이 언덕을 올라가기에 다소 역경을 낸다.

많은 고통을 꺽은 모닝은 구암서원 옆에 있는 넓은 주차장으로 들어가 주차를 시키고 나서 주차장 옆으로 만들어져 있는 도로 따라 조금 걸어가면 구암서원 입구에 도착하는데, 급경사의 계단 따라 한참 올라가면 넓은 마당에 도착한다.

 

< '구암서원' 을 가르키는 입간판 >

 

이곳 마당의 제일 안쪽에는 구암서원을 관리하는 '백인당(百忍堂)' 이라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백인당 건물의 1층에는 사단법인 '영남선비문화' 수련원의 사무실 및 식당으로 꾸며져 있으며 2층에는 강의실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 '구암서원' 입구에 있는 다소 넓은 마당 >

 

< 마당의 제일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백인당' 건물 >

 

또한 마당의 중앙에는 구암서원으로 올라가는 높은 계단과 함께 계단 입구에 구암서원의 조감도와 더불어 서원의 내력을 기술하고 있는데, 연암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구암서원은 복잡한 도시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라 하겠다.

 

< '구암서원'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구암서원은 구계 '서침(徐沉)' 선생님의 덕(德)을 기리기 위하여 대구부(大邱府) 부민이 조선 현종 6년(1665년) 연구산(連龜山 : 현재의 대구 남산동에 있는 산) 서남쪽에 숭현사(崇賢祠)를 건립하면서 출발하였는데, 숙종 44년(1718년)에 대구 중구 동산동으로 이건(移建)하였다고 한다.

사당 내에는 구계 서침 선생님을 비롯하여 사가 '서거정(徐居正)', 함재 '서해(徐嶰)', 악봉 '서성(徐渻)' 등 4분을 차례로 추향(追享) 하였지만,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1868년에 훼철 되었다가 1924년 유림(儒林)들로 인하여 다시 복원되었다고 한다.  

2008년 유림의 뜻을 모아 낙재 '서사원(徐思遠)' 선생님을 추향하였는데, 숭현사는 1975년에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이 되었으며 대구가 직활시로 승격 후 대구시 문화재 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1995년 현재의 위치가 되는 연암산 기슭로 다시 이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마당 중앙으로 만들어져 있는 높은 계단으로 올라가면 계단의 끝지점에 '연비루鳶飛樓)' 이라는 루각(樓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연비루는 '솔개는 하늘 위를 날고 물고기는 연못 속에 뛰놀고 있다' 라는 뜻을 가진다고 한다.

 

< 높은 계단의 끝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연비루' >

 

이곳 루각 건물 아래로 통과하여 높은 계단으로 올라서면 다시 넓은 마당을 만나면서 마당 좌우 끝에는 동재 건물이 되는 '경례재(耕禮齋)' 와 서재 건물이 되는 '누학재( 耨學齋)' 가 자리하고 있는데, 동재 및 서재 건물에는 원생들이 공부하면서 기거하는 건물이라 하겠다.

 

< 동재 건물이 되는 '경례재' >

 

< 축대 아래에서 바라보는 '경례재' >

 

< 서재 건물이 되는 '누학재' >

 

< 축대 아래에서 바라보는 '누학재' >

 

이곳 마당에서 다시 높은 계단의 끝지점에 강당 건물이 되는 '초현당(招賢堂)'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초현당은 본래 벽을 가운데를 가로 지르는 중인방(中引枋)을 일컫는 것으로 1788년 경상 '이조원(李祖源)' 이 중방을 초현으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 강당 건물이면서 구암서원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초현당' 건물 >

 

 초현당 건물의 왼편으로는 제사(祭祀) 때 사용하는 제기를 보관하는 '전사청(典祀廳)'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오른편 아래 단에는 '달성서씨족회사적비(達城徐氏族會事蹟碑)' 가 자리하고 있으며 윗 단에는 구암서원 '묘정비(廟庭碑) 및 이건사적비(移建事蹟碑)' 가 나란하게 세워져 있다.

 

< 초현당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전사청' >

 

< 초현당 오른편 아래 단에 자리하고 있는 '달성서씨족회사적비' >

 

< 초현당 오른편 윗 단에 자리하고 있는 '묘정비 및 이건사적비' >     

    

이 초현당 건물의 뒤편으로 돌아가면 또 다시 높은 계단을 만나면서 계단의 끝지점에 솟을대문 '경앙문(景仰門)' 이 자리하고 있는데, 잠겨져 있는 대문을 살짝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다소 작은 마당 뒤편에 5분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있는 '숭현사(崇賢祠)' 가 자리하고 있다. 

 

< 숭현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솟을대문 '경앙문' >

 

< 5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숭현사' >

 

이곳 숭현사의 문도 잠겨져 있지만 살짝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 보면 구계 '서침(徐沉)' 선생님을 중심으로 좌우측으로 서거정(徐居正), 서해(徐嶰), 서성(徐渻) 및 서사원(徐思遠) 선셍님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 숭현사 내부 중앙 및 왼편에 모시고 3분의 '위패' >

 

< 숭현사 내부 왼편에 모시고 있는 2분의 '위패' >

 

이렇게 도둑 고양이와 같이 아무도 없은 구암서원의 제향공간을 몰래 구경하고 나서 강당의 앞에 있는 마루에 앉아 대구시가지를 구경하여 보는데, 신천(新川)의 물이 이곳 구암서원을 향하여 들어오는 것은 보이지만 나가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 강당 앞에서 바라보는 '대구시가지' 전경 >

 

< 구암서원 방향으로 물이 들어오고 있는 '신천' >

 

< 구암서원 앞으로 펼쳐지고 있는 대구시가지 '아파트' 군락지 >

 

이렇게 배산임수(背山臨水)를 가진 곳에 달성서씨 조상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는 것을 보고 있으니까 과연 달성서씨들이 얼마나 조상의 은덕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게하여 주는데, 지금 까지 달성서씨들이 대구를 위하여 공헌한 내용이 끝도 없다는 것을 다시 일깨우게 만든다.

충분한 휴식의 시간을 가지고 나서 이곳 구암서원을 품고 있는 연암산을 거닐어 보기 위하여 서원 오른편으로 만들어져 있는 오솔길 따라 산 속으로 들어가 보는데, 산의 들머리에서 부터 울창한 숲으로 인하여 힐링(Healing)을 느끼기에 너무나 좋은 산이라 하겠다.   

 

< 연암산 곳곳에서 만나는 '돌탑' >

 

< 정자에서 신선놀이를 즐기는 '동호인' >

 

오솔길 따라 조금 올라가면 곳곳에 정자를 비롯하여 운동 시설을 구비하고 있어 쉬었다 오르기에 안성맞춤의 길이 되는데, 산의 들머리에서 부터 한 10여 분 정도 올라가면 해발 134,5m '연암산(燕巖山)' 정상에 도착이 된다. 

 

< 곳곳에 설치하고 있는 '운동 시설' >

 

< 연암산 정점에 만들어져 있는 '삼각점' >

 

연암산 정상에는 다소 넓은 공간을 가진 공터를 가지지만 정상석 같은 표시석은 없고 단지 측량의 기점이 되는 삼각점과 더불어 다수의 의자들이 만들어져 있는데, 그래서 지방자치단체에서 산의 명칭 정도를 만들어 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 1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