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대구)

대구시 동구 둔산동에 자리하고 있는 경주최씨 집성촌 '옻골마을' 의 재차 방문하며.

용암2000 2024. 3. 19. 15:29

2024년 3월 18일.(월요일)

 

* 옻골마을 재차 방문을 추진하면서.

오늘 가끔씩 여행 또는 트레킹을 추진하면서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고등학교 동문 2명과 함께 점심식사를 약속 하는데, 12시 30분 대구 도시지하철 2호선 신매역에서 만나 인근에 있는 한 식당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식사 시간을 가진다.

식사 후 적당한 곳으로 트레킹이나 즐기자는 의견으로 대구에서 경주최씨(慶州崔氏) 집성촌으로 구성하면서 한옥으로 유명한 '옻골마을' 에서 걷기로 하는데, 나는 2017년 10월 23일에 한번 방문하여 나의 블로그로 통하여 소개한 곳이다.

옻골마을은 대구공항 뒤편이면서 팔공산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는데, 한 동문의 승용차를 이용하여 대구 도시지하철 1호선 방촌역으로 달려간다.

방촌역에서 부터 대구공항 뒤편으로 들어가 경부고속도로 밑을 통과하면, 이내 옻골마을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주차장에 도착한다.

 

< 주차장 입구에서 '옻골마을' 로 들어가는 도로 >

주차장 가장자리에 옻골마을을 대표하고 있는 돌담길이 등록문화재로 관리하고 있다는 안내문과 함께 해설사가 머무는 탐방안내소가 자리하고 있는데, 옻골마을에서는 매주 월요일을 휴무로 지정하므로 탐방안내소 문이 닫혀있다.

< 옻골마을의 '돌담길' 을 홍보하고 있는 안내문 >

마을 안길 따라 조금 들어가면 동네를 소개하는 안내문과 더불어 조감도가 만들어져 있는데, 안내문에 따르면 마을 입구에 다소 높은 둑을 형성하면서 그 둑에는 수령 약 400여 년이 되는 버드나무들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 '옻골마을' 을 홍보하고 있는 안내문과 조감도 >

이들 버드나무들을 '비보숲' 이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곳 옻골마을 터가 주변보다 다소 높아 금호강 지류가 휜히 내려다 보이므로 나쁜 기운이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고자 심었다고 한다.

< 수령 약 400여 년이 된 '버드나무' >

< '비보숲' 을 홍보하고 있는 안내문 >

또한 이곳 옻골마을이 자리하고 있는 지형은 남쪽을 제외하고 3개의 면이 산으로 둘러쌓여 오목하다고 옻골이라고 불러졌다는 설(說)과 주변 산천에 옻나무가 많아서 옻골이라고 불러졌다는 두가지 설이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 옻 '칠(漆)' 과 시내 '계(溪)' 자를 써서 '칠계(漆溪)' 이라는 또 다른 마을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아, 후자의 옻나무에서 유래가 되어진 것으로 추측하게 만든다.

옻골마을은 광해군 8년(1616년) 조선 중기의 학자 대암(臺巖) '최동집(崔東潗)' 선생님이 이곳으로 들어와 살면서 경주최씨 집성촌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마을에는 대부분의 고택과 옛길 및 전통 양식의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보숲을 지나면 옻골마을을 병풍과 같이 감쌓고 있는 팔공산 지맥(枝脈)이 되는 해발 464m '대암봉(臺巖峰)' 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대암봉 정상 언저리에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는 거대한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 마을의 뒤산이 되는 '대암봉 및 거북바위' >

등산로 입구에는 인공으로 만든 연못을 비록하여 방문객들의 쉼을 가질 수 있는 정자와 더불어 새롭게 건립한 '옻골마을 홍보관' 건물이 자리하고 있지만, 이곳도 휴무일이라서 그런지 적막감만 내리고 있다.

< 마을 초입에 건립한 '홍보관' 건물 >

홍보관 건물에서 조금 더 내부로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데, 마을 입구에는 다소 넓은 공터와 함께 수령 약 350여 년이 되는 2그루의 회화나무가 차거운 겨울을 견디어 내면서 따뜻한 봄을 기다리고 있다.

< 마을 입구에 수령 약 350여 년이 된 '회화나무' >

이곳 회화나무 뒤편으로 전통주와 더불어 고향의 맛을 낸다는 '돌담집' 이라는 식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도 월요일 휴무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

< 회화나무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돌담집' 식당 >

오른편으로 개울과 함께 하고 있는 중앙 길 따라 내부로 올라가면 왼편에는 다양한 한옥들이 자리하고 있고, 오른편으로 '정려각(旌閭閣)' 한채가 자리하고 있다.

< 중앙 길 주변으로 조성하고 있는 '한옥' >

이곳 정려각은 영남의 대학자이면서 효(孝)를 덕목으로 정하고 부모의 병을 극진히 돌보는 등 효행으로 유명한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 선생님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789년 조정의 령(令)에 따라 세운 건물이라고 한다.

최흥원 선생님은 대구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 입향조가 되는 대암 최동집 선생님의 5대 손(孫)으로 1705년에 태어나 82세 까지 사는 동안 학문을 정진하면서 130여 명의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다고 한다.

< 중앙 길의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는 '정려각' >

정려각 뒤편으로 한옥 체험이 가능한 새로운 집들이 자리하고 있고, 그 집들 뒤편으로 마을의 중앙에서 다양한 방향으로 이동이 가능한 미을 안길들이 상호 연결하고 있다.

< '한옥 체험' 이 가능한 집 >

< 다양한 방향으로 이동이 가능한 마을 '안길' >

다양한 마을 안길의 한 모퉁이에 종택으로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 따라 조금 걸어가다가 북쪽 방향으로 꺽으면, 기나긴 돌담길을 맞이한다.

이곳 옻골 돌담길은 흙다짐에서 돌을 박은 토석(土石) 담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마을 안길의 돌담은 직선화로 만들어져 전통 한옥과 조화를 이루면서 고풍적인 반촌(班村)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다.

< 직선화로 만들어져 있는 '토석' 담장 >

기나긴 토석 담장 따라 내부로 올라가면 오른편으로 '수구당(數咎堂)' 건물을 만나는데, 수구당은 백불암 최흥원 선생님이 제자들과 함께 강학(講學) 공부를 하였던 곳이라 한다.

< 강학 공부를 하였던 '수구당' 건물 >

수구당을 지나면서 마을 제일 안쪽에 경주최씨 종택이 되는 '백불고택' 이 자리하고 있는데, 백불고택은 옻골마을 입향조 최동집의 손자가 되는 최경향 선생님이 1694년에 지은 고택(古宅)이다.

< 수구당 뒤편 '백불고택' 으로 들어가는 대문 >

이 고택은 대구지역 가옥 중에서 가장 오랜된 건물이 되는데, 대구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을 받았다가 2010년에 국가 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61호로 승격 되어진 건축물이라 하겠다.

'백불' 이라는 이름은 '백불지 백불능(百弗知 百弗能)' 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불(弗)에는 부(不)의 뜻이 있어 '하나도 알지 못하고 하나도 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알고 모르고 하고 안하고의 경계를 넘어섰다는 뜻' 이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백불고택은 튼 'ㅁ' 자 형태로 건축되어져 있는 안채와 사랑채, 별도의 담장으로 구획하고 있는 보본당, 2개의 동이 되는 사당, 제사 때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포사, 각종 보존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숭모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열려 있는 대문을 통과하면 다소 넓은 마당과 함께 사랑채가 자리하고 있는데, 사랑채에는 '백불고택(百弗古宅)'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건물의 형태로는 정면 4칸에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과 함께 건물 왼편으로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부섭건물을 붙여서 건축되어 있다.

< 백불고택의 '사랑채' >

백불고택 사랑채는 원래 최흥원 선생님을 추모하기 위하여 설립한 동산서원(東山書院)이 1868년 훼철(毁撤)되면서 그곳에서 부터 발생하였던 자재를 이용하여 건립한 건축물이다.

대문채 왼편 가장자리에 '숭모각(崇慕閣)' 이라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숭모각 건물에서는 종가댁에서 내려오는 각종 제기(祭器)를 비롯하여 반계수록의 초고, 퇴계선생의 성학십도 병풍, 고서, 호패 등 다양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 대문채 옆에 자리하고 있는 '숭모각' 건물 >

< 숭모각 앞에 자라고 있는 '반송' >

사랑채에서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문이 굳게 잠겨져 있는 사당 '대묘(大廟)'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그 옆으로 담장으로 구획하고 있는 '보본당(報本堂)' 으로 들어가는 작은 쪽문이 자리하고 있다.

< 사랑채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사당이 되는 '대묘' >

< 대묘 오른편 옆에서 보본당으로 들어가는 '쪽문' >

쪽문 앞에는 조선 시대에서 유명한 실학자 유형원(柳馨遠) 선생님의 저서 "반계수록(磻溪隧錄)" 을 교정하였다는 설명문이 붙어있는데, 그래서 보본당은 역사적 의미가 사뭇 깊은 건축물이라 하겠다.

작은 쪽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정면 5칸에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보본당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건물은 대암 최동집 선생님의 제사를 모시기 위하여 영조 29년(1753년)에 건립한 건물이라 한다.

< 반계수록을 교정한 '보본당' 건물 >

보본당 건물 오른편에 있는 대문을 통과하여 밖으로 나가면 또 다르게 담장으로 구획하고 있는 마당 가장자리에 작은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건물은 제사를 올리기 위하여 음식을 만드는 '포사(哺舍)" 건물이라고 한다.

< 보본당 건물로 들어오는 '대문' >

< 대문 밖에 자리하고 있는 '포사' 건물 >

이렇게 백불당 고택을 구경하고 오솔길 따라 조금 내려가면 "동계정(東溪亭)' 이라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동계정은 백불암 최흥원의 아들이 되는 동계 "최주진(崔周鎭)" 선생님을 기리기 위한 건물이라 한다.

< 동계정 건물을 구획하고 있는 '토석' 담장 >

< '동계정' 건물로 들어가는 길 >

< '동계정' 건물의 전경 >

< 동계정 옆으로 흐르고 있는 '동계' 계곡 >

이 밖에 옻골마을에는 다양한 한옥들이 중앙 길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자리하고 있고, 거리 곳곳에 산수유 또는 홍매화가 활짝 피어있어 매우 아름다운 사진의 배경이 되어진다.

< 아름답게 피어있는 '홍매화' >

< 새롭게 단장하고 있는 '게스트 하우스' >

< '삼징사(최동집, 최흥원, 최효술)' 선생님을 기리는 추모비 >

옻골마을에 머물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 및 카페가 자리하고 있지만, 이 모든 시설이 월요일 휴무에 따라 문을 닫으면서 적막감만 내리고 있어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돌아보고 옻골마을을 떠나기로 한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