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및 트레킹.(충청남북도)

한 여름 높은 습도로 인한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월악산" 종주코스 산행을 무사히 끝내고.

용암2000 2012. 8. 28. 17:26

 

2012년 8월 26일 (일요일)

 

지루한 장마 속에서 주말 반짝 날씨가 좋아진다는 일기예보가 발하므로써 집 구석에 쳐 박혀 있으니 무료 함이 발생하여, 대구 드림산악회에서 주관하는 "월악산(月岳山)" 종주 코스 산행에 동참하여 본다.

우라나라 5대 악(岳)자가 들어가는 산 중에 하나가 되는 월악산 종주 코스는 충북 제천시 덕산면 수산리에서 시작하여 보덕암을 통과하여 하봉, 중봉 및 월악산의 최고봉 영봉까지 올라 갔다가 송계 3거리에서 덕주사 방향으로 이어지는 약 12.2Km의 종주 길로써, 한여름 무더위와 싸우면서 나의 인내심을 Test 하는 산행이다. 

 

< "월악산" 종주 산행을 나타내고 있는 조감도 >

 

일기예보에 의하면 금일 날씨가 33도가 되는 무덥고 습도가 높은 날씨 임에도 불구하고 월악산 종주 코스를 선택한 이유는 지금으로 부터 20여 년 전 송계 계곡의 중간 지점에 있는 동창교에서 출발하여 송계 3거리까지 왔다가 산행 시간의 부족으로 영봉까지 가지 못하고 덕주사 코스로 하산 한 경험이 있는 산이라, 항상 월악산 최고봉 영봉에 오르지 못한 미련이 남아 있는 산이기 때문이다.

한 여름이지만 버스에는 무더위를 즐기기 위한 많은 산꾼들이 참가 하므로써 다소 위안감을 가지면서 중부고속도로를 경유하여 단양 IC에서 내려 단양에서 충주호반 옆으로 만들어진 36번 국도를 이용하여 충주로 내려가는 도로 따라 운전하여, 10시 30분 월악산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아담한 마을 수산리에 도착한다.

 

< 수산리 마을 복판에 있는 "마을회관" 을 지나면서 >

    

그런데 오늘 산행을 주관하는 Guide는 월악산 종주에 최적 산행 시기가 되는 가을 철과 동일하게 7시간을 부여 하면서 오후 5시 30분까지 하산 지점인 덕주사 입구에 있는 덕주교 주차장에 도착하여 달려는 설명으로 이어진다.

버스 주변을 돌아보니 전부가 젊은 사람으로 구성 되어있고 육순(六旬)이 훨씬 지난 한물 간 사람은 나를 포함하여 오직 한명만 더 동참하므로써, 다소 걱정이 앞서는 산행길이 된다.

바싹 긴장감을 가지고 마을 안길을 통과하면서 이내 산길은 세멘트 포장 길로 이어지면서 산행길은 고냉지 농사를 짖고 있는 채소 밭과 과수원 사이로 만들어진 농로길 따라 끝없이 올라가는데, 강력하게 내리 쪼이는 햇빛으로 인하여 산행 초입에서 부터 완전히 포기심이 발동한다.

 

< 강력한 햇살' 로 인하여  무더위는 기성을 부리고 >

 

갈 수 있는 좁은 농로길 따라 약 2.2km 정도의 길을 40분 정도 올라가면 몇 대의 승용차 만 정차 할 수 있는 조그마한 보덕암 주차장에 도착하는데, 주차장에서 부터 보덕암까지 약 0.2Km의 거리에는 너무나 급경사로 이루어져 더 이상 차량이 올라가지 못하고 전부가 걸어서 올라가야 하므로 한 10여 분 정도 투자하여야 "보덕암" 마당에 도착한다.

 

< 몇 대의 승용차만 주차 할 수 있는 "보덕암 주차장" >

 

보덕암 전경은 아담한 바위로 감쌓고 있는 중앙에 대웅전 건물이 지어져 있으며 이 대웅전 좌우에 요사채 건물을 거닐고 있는 아름다운 사찰이지만, 사찰에 대한 아무런 내력을 기술하지 않아 보덕암에 대한 역사를 가름하기가 어렵다.

 

< 보덕암의 고즈넉한 "대웅전" 전경 >

 

대웅전 앞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한기의 우물이 있어 쪼롱박으로 갈증을 해소시키고 나서 사찰 주변을 돌아보는데. 요사채에 머물고 있는 스님 한분이 방에서 나와 수 인사를 나누지만 너무나 땀으로 범벅이 되어 몰골이 말이 아니라서 간단하게 목례로써 인사를 나누고 산행길을 재촉하여 본격적으로 월악산 종주길로 들어선다.

산행 지도에는 보덕암에서 부터 하봉까지 산행길은 2.1Km로써 1시간 20분 소요된다는 내용과 더불어 이정표가 500m 간격으로 잘 설치되어 있지만, 산행길은 얼마나 급경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2.1Km를 1시간 20분 만에 주파한다는 것 상상도 되지않는 고행의 길이다.

한발 한발 앞으로 올라가는데, 오르막 길이 작난이 아니며 위험한 곳과 급경사의 오르막 길에는 나무테크 또는 철제 사다리로 길이 잘 만들어져 있어 그나마 다소 위안이 되는 산행이다. 

 

< 급경사의 "나무테크" 길을 올라가는 등산객 >

 

수십 번이 휴식과 엄청난 얼음 물을 소비하면서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산행길 따라 고도를 상승하니 거대한 하봉 바위 밑에 도착하는데, 이곳에서 하봉의 암벽으로 바로 올라가지 못하고 오른편 바위 밑 뿌리로 우회하는 길로 들어선다.

 

< 산행 길에서 만나는 "연리근" 소나무 >

 

그런데 이 바위를 휘돌아서 가는 산행길은 직각으로 선 하봉 바위에서 떨어지는 낙석으로 인하여, 무척 위험한 길로 만들어져 있어 목숨을 완전히 하나님에게 담보로 걸고 걸어야 한다.

지금까지 교회 문턱에도 한번 가지 못하고 하나님을 비판하면서 살았고, 평상 시 Wife가 그렇게도 함께 교회에 가자고 이야기 하여도 코 방구만 끼면서 농띵친 내가 오늘도 교회는 생각지도 못 하고, 오직 산으로 도망 친 것이 후회 막급이다.

 

< 직벽으로 된 "하봉" 바위 밑으로 걸어가니 낙수물이... >

 

수직의 바위에서 떨어지는 낙수물을 덮어 쓰면서 낭떠리지 옆으로 만들어진 토끼 길을 넘고 넘어서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 길로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여기에서 올라가는 길은 완전히 코가 땅에 닿을 정도의 급경사 길이라 고행이 말이 아니다.

 

< 하봉 밑을 돌아서 올라가는 "철제 계단" >

 

약 30분 정도 씨름하면 능선에 올라서면서 바위 전망대에 이르는데, 여기 전망대에 서서 방금 밑으로 돌아온 거대한 하봉 바위 덩어리를 바라다 보면 그 크기와 풍경에 압도 당하고 그 뒤편으로 펼쳐지는 충주호의 푸른 물이 산 골짜기 구석 구석 깊숙에게 파고 들고 있는 모습의 그림이 환상적이다.

 

< 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하봉과 충주호" 전경 >

 

전망대에서 충분한 휴식을 가지고 능선의 깔닥고개에 도착하면 또 다른 이정표를 만나는데, 이 이정표 주변에는 하봉 바위로 올라가지 못한다는 출입금지 현수막이 붙어있으며 이 깔닥고개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써 하봉으로 올라가지 못 함을 알게 되는 곳이다.

여기 하봉에서 중봉까지는 순수 암릉구간으로 되어 있어 거리가 단지 0.7Km이지만, 40여 분이나 걸린다고 지도에 기술되어 있다.

 

< 암릉 옆으로 만들어진 "철제 계단" >

 

이 암릉구간은 천길 절벽 낭떠리지를 지나가는 매우 위험한 곳으로 길이 만들어져 있지만 그래도 거의 모든 구간 마다 철제 계단으로 완벽하게 보강되어 다소 안전한 길이 되지만, 그래도 난간대 쪽으로 바라만 보아도 현기증이 바로 엄습하므로 혼자서 걷기에 무척 고난도의 길이다.

 

< 하봉에서 중봉으로 올라가는 "철제 계단" 난간대에 기대면서 >

 

현기증으로 인하여 충주호 조망 구경도 거의 하지 못하고 앞만 보고 올라가 중봉 언저리를 우회전하여 돌아서 가면 눈 앞에 월악산 영봉이 머물고 있는데, 중봉와 영봉 사이에 또 다시 약 100m 정도 내려가는 급경사의 길로 이루어져 있어 완전히 맥이 풀리는 곳이다.

 

< 중봉에서 한참 내려 갔다가 만나는 "영봉" 전경 >

 

중봉에서 영봉 바위로 올라가는 보덕암 3거리 까지 0.9Km 거리에 30여 분이 소요된다고 기술되어 있으므로 힘을 내어, Rope와 나무가지를 의존하면서 10여 분 정도 내려서면 골짜기에 도착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 주변에서 휴식과 더불어 점심식사를 하지만, 나는 식후 부른 배로써 바로 영봉으로 올라가는 것이 겁이 나서 동행하는 한 젊은 친구와 함께 휴식과 더불어 응급 처방으로 무겁게 지고 가는 "오이와 포도" 등 과일로써 허기진 배를 보충하고 나서 다소 가벼운 몸으로 산행길을 재촉한다.

약 20분 정도 걸어가면 영봉을 형성하고 있는 바위 밑 둥치에 있는 "보덕암 삼거리" 에 도착하는데, 이 보덕암 3거리는 제일 첫번째 사진에서 나타나는 조감도와 같이 영봉으로 올라 갔다가 내려오는 원점회귀의 길목이다.

 

< 영봉으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보덕암 3거리" 이정표 >

 

여기서 영봉까지 거리는 0.3Km 로써 왕복 40여 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는데, 올라가는 길은 완전히 나무테크 길로 되어 있으면서 그 경사도가 작난이 아니다. 

나무테크 길 오른편에는 영봉의 바위에서 떨어지는 낙석을 방지하기 위하여 철망으로 보강하고 있지만, 곳곳에 떨어진 낙석으로 인한 찢어진 철망이 보이므로 안전에 신경 쓰면서 한발 한발 계단의 숫자를 Counting 하면서 고도를 상승한다.

 

< 영봉으로 올라가는 "나무테크 길" 과 안전 철망 모습 >

 

계단 난간대에 기대 서서 수 없이 많은 쉼을 가지면서 바위를 조금 돌아서 올라가면 산행 길은 다시 숲속으로 이어지면서, 영봉의 정상 꼭지점 바위가 눈 앞에 머문다.

 

 < 영봉 정상 꼭지점에 머물고 있는 "산악인" > 

 

월악산 정상에는 양쪽 2개의 암봉으로 되어 있으며 먼저 만나는 암봉에는 영봉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입간판이 놓여 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여 보면 한반도에서 최고로 높은 백두산 정상과 이곳 월악산 정상만 동일하게 영적인 뜻을 품고 있는 "영봉(靈峰)" 이라고 불려진다고 한다.

 

< 월악산 "영봉" 을 설명하고 있는 입간판 >

 

충북 제천과 충주에 걸쳐있는 월악산은 삼국시대에 영봉 위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월형산(月兄山)" 이라고 불려졌고, 고려초기에는 "와락산" 이라고 불려지기도 하였다.

이는 고려 초기 왕건이 나라를 건국하고 나서 도읍을 정 할 때 개성의 송악산과 이곳 월악산이 상호 경쟁하다가 개성으로 도읍이 확정됨으로써 도읍의 꿈이 와락 무너졌다고 하여 와락산이라고 불려졌다고 하는데, 추후 이 와락산이 월악산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특히 월악산 영봉은 산 전체 높이가 1.097m로써 험준하고 가파르며 정상을 점유하고 있는 암반 높이가 150m에 둘레 4Km가 되는 거대한 단일 바위로 구성되므로, 매우 빼어난 봉우리가 된다.

또한 나라의 큰 스님이 나온다고 하여 국사봉(國師峰) 이라고도 불려졌으며, 옛날 나라의 중요한 일이 발생 할 때 마다 "소사(小祀)" 라는 제(祭)를 올리는 산으로 선정도 되었다고 한다.

뒤편에 있는 영봉 정상으로 올라가면 암벽 중심에 조그만한 정상석이 놓여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정상석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 찍기 위하여 줄을 형성하고 있으므로 순서가 도착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먼저 영봉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을 구경하기 위하여 뒤편 전망대로 물러서서 지금까지 올라온 중봉과 하봉의 능선 바위를 내려다 보고 있으니 그 모습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그 뒤편 충주호수도 중봉과 하봉이 함께 어울리면서 한폭의 예술품을 만들고 있다.

 

< 영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종봉과 하봉 및 충주호" 전경 >

 

시야를 송계 계곡 방향으로 돌리면 거대한 계곡 따라 만들어진 도로와 함께 농촌들이 고즈늑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위로 한무리의 행글라이드 동우인들이 창공을 선회하면서 계곡 사이를 누비고 있는 모습도 하나의 수채화를 만든다.

 

< 첩첩 산 속에 자리하고 있는 "송계 계곡" 전경 >

 

< 앞으로 하산하여야 하는 "덕주사 능선길" >

 

한참 구경하고 나니 포항에서 온 한무리의 산행팀이 하산하므로 한산한 "영봉 정상석" 을 배경으로 다양한 포즈를 취하면서, 정상을 정복한 기분을 만끼하면서 인증샷 몇 장을 남겨본다. 

 

 < 월악산 "영봉 정상석" 을 배경으로 > 

  

다시 조금내려 와 숲속으로 들어가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고 있으니, 산행 Guide가 많은 동료들과 함께 정상으로 올라가므로 정성을 구경하고 돌아 내려올 때 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하산 길로 들어선다. 

보덕암 3거리에서 반대편에 있는 신륵사 3거리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이 길은 영봉 바위 밑 둥치를 돌아서 가므로 한참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반복의 길로 이루어져 있어 다시 맥이 빠진다.

 

< 수 없이 많은 "나무테크" 길을 오르 내리면서 > 

 

월악산 바위 밑 둘레를 1/4 정도 돌아가면 신륵사로 내려가는 신륵사 3거리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여기서 신륵사까지 2.8Km로써 약 2시간 30분이면 신륵사에서 월악산 영봉까지 올라올 수 있는 최단 거리의 산행길이라고 한다. 

 

< 신륵사로 내려가는 "신륵사 3거리" 이정표 >

 

일행은 영봉 바위 옆으로 만들어진 나무테크 길 따라 계속적으로 걸어 영봉 바위 밑 둘레를 반바퀴 정도 돌아서면 송계 3거리 까지 0.3Km, 덕주사 까지 3.7Km 라는 또 다른 이정표를 만난다.

여기서 부터 산행길은 거의 평지를 이루면서 힘들이지 않고 조금만 걸어가면 송계 3거리에 도착하면서 산행길 옆에는 국립공원 월악산을 홍보하는 안내문과 더불어 월악산에서는 많은 산양이 서식한다고 이야기도 함께 기술된 쉼터에 이른다.

 

< 송계 3거리에서 만나는 "국립공원" 홍보 안내문 >

 

쉼터 가장자리에는 월악산 산행에 대한 안전을 책임지는 월악산 지킴이 건축물이 있지만 담당자는 한명도 없고, 단지 국립공원에서 지켜야 하는 몇 가지 수칙만 붙어있어 그 내용을 읽으면서 휴식을 가져본다.

 

< 월악산을 관리하는 "지킴이" 건물 >

 

여기 송계 3거리에서 덕주사 까지 3,4 Km 로써 내가 20여 년 전 한번 걸어본 길이지만 너무나 많은 시간이 지나갔으므로 산행길이 다소 알송 달송하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지연 됨으로 하산시간 내 도착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속보로 걷기를 시작한다.

한 10분 정도 걸어가면 헬기장이 나타나면서 이 헬기장에서 지금까지 온 길을 뒤돌아 보면 거대한 월악산 암릉이 눈 앞에 머물고 있는데, 그 웅장 함에 감탄사와 함께 가슴이 꽉 막혀 오므로 몇 번이나 사진을 찍으면서 기억 속으로 메모리하여 본다.  

 

< '암릉' 을 바라 보면서 >

  

평탄한 능선길 따라 30분 정도 걸어가면 960m 고지(일명 : 마애봉)에 이르면서 여기서 부터 지독한 암릉길로 다시 들어서는데, 암릉길은 능선 따라 이루어져 있다.

왼편으로 덕주사 마애불 뒤편 산으로 형성된 경사면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장관을 만들고 있으며, 오른편에는 송계 계곡의 깊은 계곡을 형성하고 있는 골짜기가 한폭의 그림과 같이 펼쳐져 걷는 길이 무한정 늘어지게 만든다.

 

< 마애봉 바로 밑 능선에서 바라보는 덕주사 "마애불" 뒤편 경사면 암릉 >

 

< 마애봉 바로 밑 능선에서 바라보는 "송계 계곡" >

 

  < 마애봉 바로 밑 능선에서 바라보는 "영봉과 중봉" 암릉 모습 >

 

내려가는 산행 길은 수직의 암벽에 아슬하게 걸쳐놓은 나무데크 길, 철제계단, 나무계단, 돌계단 등 수 없이 많은 계단으로 이루어진 길로 만들어져 있어 지겹도록 내려가면 계곡의 바닥에 내려서는데, 여기서 조금만 위쪽으로 올라가면 보물 제406호 "덕주사 마애불" 에 도착한다. 

 

< 마애봉에서 마애불까지 내려가는 길에서 만나는 수 없이 많은 "철제계단" >

 

이 마애불은 신라 마지막 왕이 되는 56대 경순왕의 아들과 딸 "마의태자와 덕주공주" 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 역사적인 마애볼(磨崖佛)이다. 

경순왕은 쇄퇴하여 가는 신라를 태조 왕건에게 이관하자, 마의태자와 덕주공주는 나라를 재건하기 위하여 병사를 양병하기 위하여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이곳 월악산 산자락에 머물면서 마애불을 새겨 8년 간 머물었던 장소이라고 한다.

 

< 덕주사 "마애불"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이 마애불 높이가 13m로써 입상의 모양하고 있는데, 상부 얼굴에는 두들어지게 뚜렸하게 융곽이 새겨졌지만 하체는 얇게 새겨져 있어 마의태자 본인의 자화상을 마애불로 형상화 하였다고 한다.

 

< 보물 제406호 덕주사 "마애불" 전경 >

 

이 마애불에서 덕주사까지 내려가는 가는 길은 약 1.6Km 로써 울창한 나무 아래에는 작은 산죽나무가 자라고 있는 길 따라 조금 내려서면 이내 덕주산성 뒷문이 나타나는데, 아직 루각을 복원하지 않고 성벽 일부분만 복원하여 놓았다.

 

< "덕주산성" 뒷문에 있는 산성 일부분 > 

 

이 산성을 지나면서 부터 웅장한 덕주골 계곡 물을 만나기 시작하는데, 내려 갈수록 전일까지 내린 비로 인하여 풍족한 물이 흘려가므로 곳곳에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에 여념이 없다.

 

< 덕수사로 내려가는 길에서 만나는 "개울" >

 

약 30분 정도 계곡 따라 걷다보면 개울 건너편 아담한 사찰 하나가 나타나는데, 이 사찰이 덕주공주가 건립하여 머물었다는 "덕주사" 사찰이다.

 

< '덕주사'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부처님 >

 

덕주공주가 머물면서 기도 증진 한 곳이라서, 이후 사찰의 이름을 덕주사로 개명(改名)하여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 덕주사의 본찰 "대웅보전" 모습 >

 

< 덕주사 "관음전" 모습 >

 

< 덕주사 "약사전" 전경 >

 

덕주사 입구를 벗어나면 사찰 입구에 거대한 입석이 서 있으며 그 입석 앞에 덕주산성의 동문에 이르는데, 이 산성은 제1곽, 제2곽, 제3곽 및 제4각의 4중으로 축조된 산성으로 고려 고종 떄 몽고의 침입 시에 몽고를 대항 했던 항몽의 유적지이며 임진왜란 때 인접한 문경새재와 함께 많은 전투가 벌려진 산성이라고 한다.

 

< 덕주사로 들어가는 도로변에 만나는 "거대한 입석" >

 

< 덕주사 입석 앞에 있는 덕주산성 "동문" >

 

이 산성을 지나면서 약 30분 간 덕주골 계곡 따라 내려가면 곳곳에 소(沼)와 담(潭)을 만나는데, 그 많은 소와 담에서는 많은 물을 품고서 맴돌다가 흘려 내려가므로 한 여름 피서를 보내기에 최적의 계곡이 된다.

 

< 덕주골 계곡에서 만나는 "수경댸" 소 >

 

아스팔트 길 따라 무아지경으로 한참 내려서면 덕수사 입구 위락 촌에 도착하며 이내 지방도 597호 도로를 만나면서 덕주사 주차장에 약속시간 보다 10여 분이나 늦게 도착하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도착하지 않아 송계 계곡으로 내려가 땀으로 번벅이 된 얼굴과 손발을 씻는 시간을 가져본다.

 

< 덕주골 계곡 끝지점에서 만나는 "식당촌" 과 지방도 597호 >

 

< 주차장 앞에 있는 "송계 계곡" 으로 내려가 족탕을 하면서 >

 

후미가 약속시간 보다 30분이나 지연 된 오후 6시 경 도착하므로 다소 늦게 출발하면서 돌아오는 길은 수안보로 나와 중부내륙고속도로의 연풍 IC를 이용하여 매우 늦게 대구에 도착하는데. 오늘 나의 한계 체력을 실험하여 보는 산행이 아무런 대과 없이 무사히 끝남에 위로를 느끼는 하루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