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및 트레킹.(충청남북도)

백범 김구 선생님의 발자취가 서려있는 충청남도 공주시 "마곡사" 사찰을 찾아서.

용암2000 2012. 11. 27. 22:43

2012년 11월 25일.(일요일)

 

아직까지 무릎관절 통증으로 가능한 산행을 삼가하고 여행이나 트레킹 위주로 주말 여가를 보내고 있던 순간에, 대구 드림산악회에서 충남 공주시가 보유하고 있는 명찰 "마곡사(麻谷寺)" 주변에 만들어진 백범(白凡) 선생님 "명상(冥想)의 길" 로 트레킹을 시도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Wife와 둘이서 길을 나서본다.

다소 늦은 8시 30분 대구에서 출발하여 아침 식사와 더불어 휴식을 겸하면서 공주로 달려가는데, 가는 버스 속에서 Guide는 오늘 산행과 트레킹 코스 설명이 이어진다.

오늘 마곡사 주변 산행과 트레킹 코스는 3가지 방법으로 진행하는데, 먼저 11시 30분 마곡사 주차장에 도착하면 입장권을 구입하고 10여 분 정도 마곡사 방향으로 함께 걷다가 사찰 입구에서 3가지 코스로 나누어진다.

제1코스는 마곡사 뒤편으로 하여 백범 선생님이 걸었던 명상 코스 중에 삭발바위와 군왕대를 돌아보는 약 1시간 30분 트레킹 코스이고 제2코스는 마곡사의 앞산이 되는 활인봉까지 올라갔다가 백련암으로 내려오는 약 2시간 30분 트레킹 코스이다.

마지막으로 제3코스는 제2코스와 동일하게 출발하여 마곡사를 감쌓고 있는 활인봉까지 갔다가, 그 곳에서 나팔봉으로 하여 태화산 전체를 종주하는 약 3시간 30분을 요구하는 산헹 코스로 계획하겠다고 한다.

 

< "마곡사" 주변 트레킹 코스 조감도 >

 

산행과 트레킹을 끝낸 전체 사람들은 최종적으로 많은 문화제를 보유하고 있는 마곡사로 들어가 경내를 관람하고 오후 3시 마곡사 주차장에서 약 40분 거리에 있는 강경읍으로 출발하여 강경읍 젓갈시장을 돌아보고, 대구로 향하는 간력한 트레킹 Schedule를 설명한다.

특히 제3코스가 되는 태화산 종주 산행을 하는 등산객에게는 다소 시간적으로 짧음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가능한 숙련된 사람만 도전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여유를 가지면서 백범 선생님이 걸었던 호젖한 명상길 따라 좋은 추억을 만들고 갔으면 좋겠다는 부언의 설명도 빠지지 않는다.

사찰 주차장에 있는 번잡한 상가지역을 통과하여 태화산 "일주문" 을 통과하면 바로 매표소에 도착하는데, Guide는 단체 입장료 2.000원을 지불하고 입구에 있는 태화산 안내도 앞에서 코스별 트레킹 길을 한번 더 상세하게 설명한다.

 

< 마곡사 입구에 있는 "주차장" >

 

< 마곡사로 들어가는 입구 "상가지역" >

 

< 상가지역을 지나면 만나는 태화산 "일주문" >

 

매표소에서 부터 한 10여 분 정도 마곡천 개울 따라 올라가는데, 겨울의 문턱에 도착하였지만 그래도 개울에는 많은 물이 내려오고 있어 태화산이 매우 깊은 골짜기를 가진 범상치 않는 산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 매표소와 마곡사 "안내도" 가 있는 입구 >

 

< 많은 물이 흐르고 있는 "마곡천" 개울 >

 

< 마곡사로 들어가는 "극락교" 아래에 흐르는 물 > 

 

마곡사 입구에서 부터 삼삼오오 모여 각자의 코스별로 트레킹과 산행이 시작하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제2코스를 선택하므로 동시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트레킹 초입으로 몰려간다.

 

<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올라가는 "트레킹" 길 >

 

마곡사는 충청남도에서 봄에는 마곡사 가을에는 갑사를 찾아야 한다는 "춘마곡(春麻谷) 추갑사(秋甲寺)" 라고 할 정도로 봄의 산이지만, 그래도 가을철에도 갑사 만큼이나 아름다운 산세와 더불어 단풍나무들이 도열하고 있다.

 

< 낙옆이 딩굴고 있는 "계단길" 을 올라가면서 >

 

산행길은 떨어진 낙옆을 밟으면서 걷기에 지상낙원의 길이 되는 코스를 무아지경으로 걸으면서, 버스 속에서 침을 퉁기면서 설명하는 Guide 이야기를 통하여 백범 김구 선생님의 일대기(1876-1949년)를 회상하여 본다.

백범 선생님은 1876년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20세인 1896년도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장교가 한복을 입고 한국인 행세하면서 황해도 안악으로 도망다니고 있는 왜놈을 발견하여 살해하므로써, 왜경에 체포되어 사형에 처 할 위기에 고종황제가 형 집행을 연기시킴으로 인천에 있는 감옥에서 복역 중 탈옥하였다고 한다.

그러고 전국을 떠돌면서 도피 생활하고 있을 때,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한 나그네 따라 금강산으로 가기 위해 동행하면서 마곡사에 잠시 들렸다가 마곡사 사찰의 매력에 빠져 금강산 행(行)을 포기하고 이곳에 머물면서 1898년에 "원종(圓宗)" 이라는 법명을 얻어 스님의 길로 들어선다.

그래서 많은 번뇌를 가지면서 약 1년간 불도의 스님으로써 마곡사에 머물다가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이 꺼져가는 나라 걱정을 하다가, 새롭게 독립운동(獨立運動)을 하기 위하여 다시 이곳을 떠나야만 했던 번민의 장소에 오늘 내가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그의 발자취가 서려있는 역사의 길을 더듬어 본다.

부셔지는 낙옆 소리를 들어면서 원만한 경사길로 조금 올라가면 숨이 가슴까지 차 오른다는 깔닥고개에 이르면서 능선길로 들어서는데, 이 길에서 올라온 방향으로 내려다 보면 마곡사 사찰이 앙상한 나무사이로 그림과 같이 보이기 시작한다.

 

< "깔닥고개" 에서 부터 완만한 길로 걸어가면서 >

 

한 10여 분 정도 더 능선길 따라 걸어가면 3거리 지점에 이르는데, 이 3거리에는 추운 겨울이지만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추길 수 있는 포장마차와 의자들이 놓여 있는 고개마루에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막걸리를 즐기는 3거리 "고개마루" >

 

이곳 3거리에서 오른편으로 백련암으로 내려가는 길과 왼편 0.6Km 지점에 활인봉 정상이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어, Guide는 활인봉까지 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뒤돌아 내려와 백련암 방향으로 내려가자고 길을 인도한다.

잘 만들어진 오솔길 따라 한 20분 정도 올라가면 12시 30분 경 아담한 정자가 있는 해발 427m "활인봉" 정상에 도착하는데, 할인봉 정상을 알리는 정상석은 벌써 겨울로 들어가는 추위를 피하기 위하여 정자 처마 밑으로 들어가 동장군 채비를 준비하고 있어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찍기도 힘이 든다.

 

< "활인봉" 정상에 있는 정자와 정자 밑으로 들어가서 월동준비를 마친 정상석 >  

                                                                                       

일행 대부분이 정상에 있는 정자와 정자 주변에 모여 식사하고 있어, 우리 부부도 그들의 틈에 끼여 간단하게 준비한 김밥으로 허기진 배를 충만하여 본다.

 

< "활인봉 정상" 정자 주변에서 식사하는 일행 >

 

이어 앞으로 계속하여 나아가면 제3코스의 종주산행 길이 되지만, 애초 생각한 것과 같이 적당한 운동과 백범 선생님의 명상길을 걷고 싶어 에둘러 하산길로 접어든다. 

포장마차가 있는 3거리 이정표 까지 하산하여 반대 방향의 백련암 길로 들어가면 곳곳에 백범 선생님이 머물었다고 하는 안내표시를 보면서 10여 분 정도 더 걸으면 백련암 뒤편 언덕 위에 도착한다.

 

< "백련암" 으로 내려가는 소나무 명상길 >

 

< 소나무 숲길 끝에 내려다 보는 "백련암" >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나무테크 길 따라 조금 내려서면 한가지 소원을 반드시 들어준다는 "마애불" 이 새겨진 바위에 도착하므로 마애불 앞으로 가서 간단하게 묵념과 더불어 한가지 소원을 읍조려 보고, 다시 나무테크 길 따라 조금 더 내려서면 "백련암(白蓮庵)" 마당에 도착한다.

 

< "마애불" 앞 기도처를 만들고 있는 조립식 건물 >

 

< 이끼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마애불" >

    

백련암은 백범 김구 선생님이 기도했던 백련암과 암자를 관리하는 요사채 건물이 인접하게 건립되어 있으며, 요사채에서는 차와 다과를 판매하는 휴식 공간도 겸하고 있다.

 

< 백범 선생님이 기도하였던 "백련암" 건물 >

 

요사채 앞에는 잎이 다 떨어진 감나무에서 수확을 기다리는 빨간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모습과 석간수에 흘려내리는 우물과 휴식을 취하는 정자가 상호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을 만들고 있다.

 

< 백련암 앞에 있는 "감나무와 우물" 그리고 휴식을 취하는 정자 >

 

하산길로 계속하여 내려가면 오솔길 옆으로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또 다른 아름다운 정자가 지어져 있어. 힘들게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머뭄의 장소를 제공하여 주고 있어 지방자치단체에서 매우 신경쓰면서 만든 명상길이다.

 

< 하산길에서 만나는 또 다른 "정자" > 

 

정자에서 조금만 더 내려서면 또 다른 암자가 되는 "은적암" 으로 올라가는 시멘트 포장길과 만남이 일어나는데, 동시에 포장길 따라 내려서면 길 옆에 마곡사에서 배출한 고승의 부도탑 군락지가 나무가지 사이로 보인다.

 

< 시멘트 포장길 옆으로 만들어진 백범 "명상길" 안내 지시표 >

 

< 백련암에서 내려가는 길에서 만나는 "부도탑" >

 

여기에서 반대편 다른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계곡 옆으로 만들어진 도로와 합류되고, 이 도로 따라 100m 정도만 더 내려가면 트레킹의 원점(原點))에 이른다.

원점에서 왼편 아치형 조그마한 다리를 건너면 마곡사로 들어가는 사찰 입구에 도착하는데, 수십 대의 승용차들이 주차하고 있는 주차장 뒤편에 마곡사 경내로 들어가는 첫 관문 "해탈문(解脫門)" 에 이른다.

 

< 아치교를 건너면서 만나는 신도용 주차장과 "해탈문" >

 

이 해탈문을 통과하면 문의 뒤쪽 일렬로 "천왕문(天王門)" 이 자라잡고 있으며 해탈문과 천왕문 옆 왼편 축대 위로 많은 건물들이 도열하고 있는데, 제일 앞쪽 건물이 마곡사에서 제일 오래된 고찰로써 보물 제800호 "영산전(靈山殿)" 건물이라고 한다.

 

< 해탈교 뒤편에 있는 "천왕문" >

 

그런데 현재 영산전 건물을 수리하기 위하여 온통 비닐로 덮고 출일을 통제하고 있으며, 그 옆으로 스님들이 공부하는 매화당(梅花堂), 수선사(修禪舍) 건물과 연이어 명부전, 국사당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 천왕문 왼편 축대 위에 있는 "매화당" >

 

< 매화당 옆에 있는 "명부전" >

 

수리하고 있는 영산전 건물에는 "ㄷ자형" 불단을 마련하여 천분(千分)의 부처님을 모신 고찰로써 불단 가운데 목조(木造)로 만든 과거칠불(過去七佛)을 모셨져 있으며 무엇보다 "영산전(靈山殿)" 이라고 쓴 현판 글씨가 조선시대 세조의 친필 글씨이지만. 공사로 인하여 보지 못 함에 애석하여 진다.

천왕문을 통과하고 나면 이내 또 다른 다리 "극락교(極樂橋)" 가 놓여 있는데, 이 극락교 뒤편으로 본격적으로 마곡사 사찰이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으면서 사찰 규모가 범상치 않다.

 

< 천왕문 뒤편에 있는 "극락교" >

 

마곡사는 예로부터 기근이나 병란이 없는 십승지지(十勝之地) 가운데 하나인 차령산맥 줄기 태화산(泰華山)에 자리잡은 청정도량의 사찰로써,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로 충남 지역에 산재하고 있는 78개 말사를 관장하며 주위에 영은암, 은적암, 대원암, 백련암, 토굴암 등 많은 암자를 거닐고 있다.

그런데 사찰 이름을 마곡사라고 불려진 이유는 신라 "보철화상(補綴和尙)" 이 법문을 열 때, 인접 지역에서 모인 대중이 삼밭(麻田)의 "삼대(麻)" 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였다고 하여 마곡사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9년(640년) "자장율사" 가 창건하고, 고려 명종 2년(1172년)에 "보조국사" 가 중건한 사찰로써, 경내 가운데로 흐르고 있는 마곡천을 중심으로 두개의 영역으로 구획한다.

영산전을 중심으로 남쪽 가람은 수행영역이고, 대광보전을 중심으로 북쪽 가람은 교화영역으로 매우 독특한 가람 배치를 이루어지고 있어 선교 양종 대본산의 위치를 확실히 지켜 나오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사찰이다.

 

< 수행영역에서 떨어진 "낙옆" 을 즐기면서 >

 

극락교를 들어서며는 바로 오른편으로 "十" 모양의 범종류(梵鐘樓) 건물이 화려하게 지어져 있으며, 왼편으로 들어가며는 마곡사 경내 마당에 들어서는데, 넓은 마당 뒤편에 5층석탑과 대광보전 건물이 나타나고 그 뒤편으로 대웅보전 건물 지붕만 빠곰히 보이고 있는데, 마곡사는 2중의 본전(本殿)을 두고 있는 이색적인 모습으로 만들어진 사찰이다.

 

< 극락교 오른편에 있는 "十" 자 모형의 범종류 건물 >

 

< 극락교 왼편에 있는 "마곡사" 전경 >

 

넓은 마당을 통과하여 사찰 앞으로 들어가면 먼저 보물 제799호가 되는 "마곡사 5층석탑" 이 나타나는데, 이 석탑은 다보탑 또는 금탑이라고 불려진다.

탑 전체 높이는 8.67m로 1층 몸돌 남면에는 자물쇠 모양과 2층 몸돌 4면에는 소박한 솜씨로 사방불(四方佛)이 새겨져 있으며 상륜부에는 청동제인 풍마동(風磨銅)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그 모습이 티베트 라마식 보탑과 유사하여 중국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형식이라고 한다.

 

< 라마식 보탑 모양의 "5층석탑" 모습 >

 

이 5층석탑 뒤편 몇 단의 축대 위에 보물 제802호가 되는 "대광보전(大光寶殿)" 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대광보전은 마곡사 중심 가람으로써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순조 13년(1813년)에 새롭게 지었다.

건축 양식은 광대하면서도 화려한 특징을 갖고 있는 다포식(多包式) 형태이며, 건물 정면 출입문에는 다양한 꽃살 무늬의 형상으로 조각되어 있다.

 

< 마곡사 본전이 되는 "대광보전" 모습 >

 

내부에는 화려한 공간을 구성하고 있으며 건물 바닥에는 참나무로 만든 돗자리가 깔려 있고 그 위에 "비로자나불" 한 분의 부처님만 모시고 있는데, 부처님이 바라보는 시야 방향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보고 있는 독특한 가람의 배치 방법을 가지고 있다.

이 대광보전 오른편 옆으로 만들어진 돌계단 따라 올라서면 2층 "대웅보전(大雄寶殿)" 건물이 나타나는데, 이 대웅보전도 보물 제801호로써 밖에서 보면 2층 건물이지만 내부에서는 통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 마곡사의 또 다른 본전이 되는 "대웅보전" 모습 >

 

이 건물도 마곡사 중심 건물로써 임진왜란 때 불탄 건물을 효종 2년(1651년) "각순대사(覺淳大師)" 와 공주목사인 "이주연(李奏淵)" 씨가 다시 지었다고 하며, 건물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과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다.

사찰 마당으로 내려와 주변을 관광하기 위하여 우측 종무소 방향으로 들어가니, 사찰 인접지역에서 수확한 배추로 신도들이 직접 김치를 담그면서 불우 이웃 돕기 행사를 하고 있는 아낙네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인다.

 

< 불우 이웃을 돕기 위한 "김치" 를 담그는 보살 >

 

다시 사찰로 나와 대광보전 앞에 이르면 무한정 배추를 가져다 놓고 원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만큼 가지고 가라고 하여, 옆에 있는 비닐봉지 하나를 집어서 배추 한 포기를 담아 옆구리에 차 본다.

이어 사찰 왼편에 있는 건물들도 관람하여 보는데, 왼편 제일 앞쪽 "응진전(應眞殿)" 건물이 보이고 있으며 그 뒤편에 백범 김구 선생님이 머물었던 "백범당(白凡堂)" 건물이 서 있고 제일 뒤쪽으로 "조사전(祖師殿)" 건물 등이 촘촘히 자리하고 있다.

 

< 사찰 왼편에 있는 "응진전" 건물 >

 

< 백범 선생님이 기거한 "백범당" 건물 >

 

< 백범당 뒤편에 있는 "조사전" 건물 >

 

그런데 중앙에 있는 백범당 건물 옆에 김구 선생님이 사찰을 떠나 독립운동에 매진하고 나서, 50년 후인 1948년 이곳에 다시 찾아와서 마곡사 경내에 있는 대광보전 주련에 "각래관세간 유여몽중사(却來觀世間 猶如夢中事 : 물러나 세상의 일을 생각하니 마치 꿈속의 일과 같다)" 라는 글씨와 함께 향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 50년 후 다시 방문하여 심은 "향나무" >

 

그러고 백범당 벽에 "서산대사" 의 시를 휘호로 남겼으며, 아울러 백범 선생님을 존경하는 좌익과 우익의 구분없이 마을 유지 모두 함께 모여 찍은 사진 한장도 함께 부착되어 있다. 

서산대사의 시(詩)를 휘호로 쓴 백범 선생님 글씨는

"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 눈 덮인 들판을 걸어 갈 때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 말아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 백범 선생님이 쓴 "휘호" 와 사진 >

 

백범은 자기 운명도 모르면서 이곳 마곡사를 방문하였다가 다음해가 되는 1949년 6월 26일 12시 45분 민족의 반역자 "안두희" 총탄에 쓰려져 운명하는데, 한국의 큰 별이 떨어지는 국운의 손실이 일어난다.    

이렇게 백범이 기거한 방 앞에서 한참 구경하다가 사찰 왼편으로 만들어진 백범 명상길로 들어서는데, 마곡천 옆으로 만들어진 나무테크 길 따라 조금 올라가면 백범 선생님이 삭발하면서 불교에 귀의하는 첫 의식 장소가 되는 "삭발바위" 에 도착한다.

 

< 백범 선생님 머리를 깍았던 "삭발바위" >

 

< 가까이에서 보는 "삭발바위" 모습 >

 

이 바위 뒤편 마곡천을 넘어가는 구름다리를 건너면서 명상길은 계속적으로 이어지지만 하산시간의 임박으로 더 이상 명상길을 걷지 못하고 뒤돌아서 내려오는데, 명상길 옆에 "성보박불관" 이 자리잡고 있지만 공사 중이라써 그냥 통과하여 아침에 왔던 길로 내려간다.

 

<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백범 "명상길" >

 

< 사찰에서 건너가는 "징검다리와 성보박물관" >

 

주어진 시간을 맞추어 주차장에 기다리는 버스에 승차하니 모든 사람이 도착하므로 이내 버스를 출발시켜 젓갈의 고장 논산시 강경읍으로 달려가는데, 약 40분 정도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강경읍에 도착하여 입구에 있는 "원자물산" 젓갈 판매점으로 들어가 진열하고 있는 젓갈을 시음(試飮)하여 본다.

 

< 강경읍에 있는 젓갈을 판매하는 "원자물산" >

 

강경읍은 바다 옆에 있는 포구(浦口)가 아니지만 이렇게 젓갈로 유명한 것은 금강 입구에서 풍분한 수운(水運)을 이용하여 내륙 깊숙하게 올라올 수 있는 배들이 서해에서 잡은 수산물의 집산지가 되고, 이 내륙 포구는 호남, 호서 지방은 물론 멀리 경기 지방까지 접근이 용이한 교통의 요지가 되는 곳이다.

조선시대 부터 일제 강점기를 통해 풍부한 해산물을 비롯한 농산물, 포목 등 도매시장을 형성한 강경은 평양, 대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시장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지리적인 이점에서 발생된 포구이라고 한다.

특히 1920년 대에는 1원산, 2강경이라 하여 "동해에서는 원산" 이고, "서해에서는 강경" 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곳으로 일일 2-3만명의 장사꾼들이 모여들고 있는 활발한 고을이었다고 한다.

 

< 강경 젓갈을 홍보하는 "안내문" >

 

< 젓갈을 판매하는 "상점" 내부 >

 

그런데 해방 이후 대도시의 급 팽창과 농촌의 쇠퇴로 인하여 이곳 강경읍도 많은 인구들이 도시로 떠나므로 슬럼(Slum)화가 일어나면서 자연히 포구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래서 강경읍 되살리기 운동과 현대식 도로의 발달 등으로 강경은 옛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는 도시로, 전통 젓갈을 브랜드(Brand)화 하여 많은 사람이 다시 찾게하는 곳으로 변천 할려고 노력하는, 인구 1만명 정도의 소읍(小邑) 이라고 한다.

함께 하는 많은 여자분들은 적당한 젖갈을 구입하면서 돈을 팍팍 지불하고 있지만, 우리집 사람은 돈이 없다고 하면서 그냥 빈손으로 나온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