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문화와 산행.

경북대학교 기계과 제1회 남자회원 만으로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등 에서 임시모임을 가져본다.

용암2000 2012. 9. 10. 17:56

2012년 9월 8일.(토요일)

 

매년 2월 말일에서 3월 1일(1박2일 동안)까지 경북대학교 기계공학과 제1회 동문부부 모임을 가져 오던 것을 이제는 많이 늙어서 그런지 남자들만 계절의 중간시점이 되는 가을철에 한번 더 만나자는 의견 일치로, 9월 2번째 토요일 항구도시 부산에서 첫 Meeting을 시도하여 본다.

 

< "부산역" 앞에 제일 먼저 도착한 동문 >

 

서울과 대전, 대구, 창원, 포항, 울산 등 각자 삶의 장소가 다르고 멀어도 11시 정각 부산에서 친구들과 조우가 이루어지는데, 이번에는 평상시 정기모임 보다 더 많은 17명 인원이 부산역 앞에서 만남이 이루어진다.

 

< "부산역" 을 알리는 입석 >

 

< 부산역 앞에 있는 "조형물과 분수대" >

 

부산에 거주하는 동문의 안내로 미니버스 1대를 대절하여 부산시가지를 통과하여 광안리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데, 광안리 해수욕장은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동과 광안동에 걸쳐 있으면 모래사장 면적이 약 2만 5천평이나 되며 백사장의 길이가 약 1.4Km에 폭이 25-110m가 되는 전국에서 유명한 해수욕장 중에 하나이다.

 

< 반달형을 하고 있는 "광안리 해수욕장" >

 

특히 해수욕장 뒤편에 있는 금련산에서 내린 질 좋은 사질(沙質)로 인하여 모래가 곱고 해수욕장 모습이 완전히 반원형을 형성하여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는데, 해수욕장을 더욱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바다 복판을 가로질려 놓은 복층의 길이 7.42Km의 "광안대교" 이다.

광안대교는 약 9.000억원의 예산으로써 8년 간 기나긴 공사를 진행하여 2002년 12월에 완공되어 부산의 랜드마크가 된 다리로써, 다리에서는 다양한 조명시설을 부착하여 수백 가지로 변화하는 야경 조명을 구경하기 위하여 전국에 있는 많은 사진 동우회와 더불어 관광객을 광안리로 모이게 하는 다리이다.

 

< 광안리 해수욕장 앞에 있는 "광안대교" 모습 >

 

이 광안대교를 품고 있는 만(灣)의 뒤편에 있는 해발 255m "장자산" 이라는 산기슭에서 만든 아름다운 해안선이 머물고 있는데, 이 해안선은 지금까지 군사시설로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 왔다.

몇년 전 부터 "이기대 둘레길" 이라는 트레킹 코스로 개발되어 민간인의 품으로 돌아오므로 전국에서 많는 걷기 동호인들이 찾는 장소로 변모되므로, 나도 그들 따라 2011년 9월 25일 Wife 및 아들과 함께 걸으면서 이기대 해안에서 역으로 이곳 광안대교와 광안리 해수욕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본 장소이다.

 

< 광안대교 뒤편에 있는 해발 255m "장자산" 전경 >

  

특히 광안리 해수욕장 주변에는 약 300여 개의 횟집과 회센터가 존재하므로 전국의 많은 식객(食客)들의 관광과 더불어 발길이 이어지게 하는 곳 중에 하나이다 보니, 해안선 따라 만들어진 도로에는 많은 사람들과 차량들이 움직이고 있다.

 

< 많은 식객들이 찾는 "회센터" 빌딩 > 

 

오늘 부산에서 거주하는 한 동문의 안내를 통하여 이렇게 좋은 장소의 선정과 동시에 해수욕장 왼편에 있는 한 회센터를 예약하여 점심식사와 더불어 임시 동문회를 개최하기로 하여, 회센터로 들어간다.

나는 회센터로 들어가기 전 먼저 광안리 해수욕장을 구경하기 위하여 해변으로 내려가니, 백사장 구석에서 부산 지방자체단체의 구청별 모임을 가지면서 야외 천막을 치고 씨름 경기에 열중하고 있다.

 

< 구청별 "장년부" 씨름하는 선수 모습 >

 

씨름 Rule은 청년부와 40세 이상의 장년부로 나누어 시합을 하고 있는데, 정신없이 구경하고 있으니 의리 없는 친구들은 소리도 없이 그 많은 회집 중 어느 집으로 간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자기끼리 살아져 버려 촌놈 완전히 부산 미아가 된다.

한참 장소를 찾고 있는 사이 울산에 거주하는 친구 한명이 승용차 편으로 부인과 함께 나타나므로 미아 신세는 벗어나지만 친구가 Wife를 동행하고 오는 반칙을 범하는데, 그렇게 반칙을 범하는 이유는 금년 3월 모임에 땡땡이친 친구이므로 이번 모임에는 모두 싱글로 만난다는 것도 모르고 혼자만 어부인을 대동하고 나타나 의리가 더 없는 친구이다.

 

< 의리도 없이 "반칙" 하면서도 무엇이 좋아서.... >

 

광안리 해수욕장이 내려다 보이는 8층 회센터로 올라가 미리 준비하여 놓는 Table에 앉자마자 최종적으로 참석한 인원을 점검하여 보는데, 여자 회원이 빠진 상태에서 역대 최고가 되는 총 19명 회원이 운집한 모임이다.

각자 자리를 잡고서 먼저 상호 간단하게 수 인사와 더불어 회장의 건배사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수 많은 술잔이 오고 가면서 지금까지 못다한 이야기 삼매경으로 꽃을 피운다.

 

< "의리" 없는 동문들 자기끼리 한잔하고 있는 모습 >

 

싱싱한 회와 더불어 무한정 시간을 소비하고 나서 부른 배를 앉고서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기 위하여 미니버스를 탑승하는데, 버스는 매년 천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고 있는 한국의 최고 명소 "해운대" 로 발길을 옮겨진다.

해운대는 일명 동양의 나폴리로 일컸는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해수욕장과 더불어 서울의 강남 보다 더 번잡한 신도시와 한국 최고(最高)의 마천루가 즐빈한 도시로 변모하고 있는데, 명실공히 한국 최다(最多)의 내. 외국인들이 찾은 관광지 중에 하나이다 보니 촌놈 해운대 초입에 들어서자 마자 완전히 기가 꽉 죽어 버린다.

 

< 해운대를 형성하고 있는 "마천루" 빌딩과 달맞이 공원 >

 

미니버스는 해수욕장의 제일 안쪽에 있는 "달맞이공원" 근교에서 일행을 하차시켜 주므로 동문들은 삼삼오오 짝을 만들어서 해변따라 만들어진 인도 불록길로 동백섬 방향으로 천천히 이동하는데, 해운대 해수욕장 백사장 길이가 1.5Km에 폭이 40-50m가 되는 한국 최고의 명소 해수욕장이 눈 앞에 펼쳐진다. 

 

< 신도시를 형성하고 있는 "해운대 해수욕장" 입구에서 >

 

비록 날씨가 흐리고 높은 파도가 밀려오므로 바다에 들어간 해수욕객은 한명도 없지만, 사랑하는 연인들과 함께 백사장을 건닐고 있는 사람, 백사장에서 운동하는 사람, 의자에 앉자 휴식을 취하는 사람, 어린들과 함께 노닐고 있는 사람, 비취 파라솔 아래서 음식을 즐기는 사람, 야외 공연장 앞에서 노래에 심취하고 있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지면서 저마다의 놀이 문화에 빠져들고 있다.

 

< 백사장에서 "일광욕" 을 즐기는 외국인 >

 

< "백사장" 에서 운동하는 사람과 산책하는 사람 모습 >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평화스러운 해운대 바다가 2008년 부터 비운의 해수욕장으로 변화를 가져 오는데, 그 비운의 씨앗이 "이안류(離岸流)" 이다.

삼면이 바다가 되는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해수욕장을 가지고 있는데, 유독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이안류가 나타나는 것은 아마도 저렇게 잔인무독한 일본놈들의 농간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안류는 파도에 의해서 모래가 많이 퇴적되어 만든 해안, 즉 사빈(沙濱)으로 몰려든 물이 퇴적되어 있다가 갑자기 해안선과 직각을 이루며 해안 바깥으로 빠른 물길을 만들어 흘러 나가는 해류(海流)로 사실 어느 모래 해안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그 기본적인 원리는 파도의 힘으로 인하여 해안으로 밀려든 물이 한쪽으로 몰려서 빠르게 나가는 것 인데, 왜 넓은 바다에서 한쪽으로 물이 모여서 나가야 하는가 하는 이론(理論)이다.

해수욕장을 보면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바닷물이 해안 가까이 오면서 파도가 인간들에게 시(詩)와 낭만을 부여하기 위하여 하얗게 부서지는 부분이 있는데, 멀리서 오는 파도는 이 부분에서 아직까지 남아있는 파랑(波浪 : 파도가 넘실되는 물결)의 힘을 분산 시키면서 위로는 하얗게 부서지고 물 밑 바닥에서는 운반해 온 모래를 퇴적시켜 둔덕을 만든다.

해안선과 평행하여 길게 늘어진 이러한 둔덕을 사주(沙洲)라고 하는데, 파랑의 힘으로 사빈에 닥친 물들이 도로 흘러 나갈 때 흘러 나가는 물들 중 일부는 물 밑에서 잠겨있는 사주로 인하여 외해(外海)로 나가지 못하고 쌓여 있다가 둔덕의 약한 부분을 무너지면서 동시에 한 곳으로 흘려가는 현상을 이안류라고 한다.

문제는 이 이안류로 인한 갑자기 흘려가는 물의 힘으로 주변에 있는 모래가 함께 바다 멀리 살아지는 것 인데, 아름다운 해운대 백사장이 점점 줄어지는 것이 문제이면서 부산광역시 지자체의 고민이라고 한다.  

일본놈들 독도도 자기내 땅이라고 땡깡 부리면서 야단인데, 우리도 MB와 그 일당이 되는 헌누리당 및 부산 아지매와 아재들 이안류가 일본놈 소행이라고 Demo를 하면서 소금친 미꾸라지 같이 팔딱팔딱 날뛰면 안되나???     

 

< "이안류" 가 많이 발생하므로 주의를 요구하는 안내문 >

 

나도 동문들 꽁무니 따라 제일 뒤편에서 천천히 거닐면서 옛 추억을 회상하여 보는데, 1969년 대학교 1학년 때 적설회(赤雪會) 친구들과 제주도 한라산 등산하려 가기 위하여 부산에 왔다가 태풍으로 배가 떠나지 못하여 이곳 해운대 백사장에서 2일 간 머물면서 밤 마다 극동호텔 앞에서 캠프 Fire 했던 추억의 시간이 주마등 같이 지나간다.

 

< 해운대 바다를 바라보면서 "옛 추억" 을 회상하면서 >

 

그 때 고향이 구룡포에서 제일 갑부의 아들로써 우리 산악회에서 중추적 역활을 하면서 리드를 한 친구가 이곳 해운대 백사장에서 제일 잘 놀았는데, 그 친구가 결혼과 동시에 30세 초반 젊은 나이로 머너먼 곳으로 떠난 놈이 생각나서 하염없이 먼 바다를 바라보면서 해운대 엘레지 노래 가사를 읍조려 본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헤어지지 말자고 명세를 하고 다짐을 하던 너와 내가 아닌가......

 

< "해운대 엘레지" 노래비 앞에서 친구를 한번 더 생각하면서 >

 

해변가 인도 따라 조금 걸어가다 보니 부산과 해운대를 홍보하고 있는 고 손인호씨가 불려 희트한 "해운대 엘레지" 노래가사 비와 조용필씨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가사 비가 눈에 띄어 비석 앞에 한참 머무는데, 다시 한번 더 친구가 회상되어 해운대 노래 가사에 추임새를 넣어본다.

 

< 조용필씨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비 >

 

여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해운대 백사장이 끝나고 조선호텔 뒤문에 이르면서 동백섬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이 시작되는데, 오솔길 입구에는 동백섬을 알리는 조감도 그림이 그려져 있어 그림을 보면서 먼저 걷고자 하는 방향을 Check하여 본다. 

 

< 조선호텔 뒤편을 돌아 "동백섬" 으로 올라가는 오솔길 > 

 

< 동백섬을 알리는 "조감도" >         

 

우리나라 남해 안에는 동백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섬이 많아 동백섬이라고 불려지는 섬들이 많이 있는데, 이곳 해운대 지구에 있는 섬도 평범하게 그들과 함께 동백섬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이 곳 동백섬은 옛날로 부터 겨울철에 동백꽃이 지천에 피어 꽃 방석이 이루어지면서 바다와 구름, 달과 산이 한데 어울려지던 곳으로 옛날에는 육지와 떨어진 섬이지만, 장산폭포에서 흘려내리는 물과 부흥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류하면서 많은 물이 모래를 운반하여 퇴적되어진 모래로 인하여 육지와 연결되어 섬의 흔적이 사라진 곳이라고 한다.

이곳 동백섬은 신라말기 학자이면서 문장가 고은 "최치원(崔致遠)" 선생님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유적지일 뿐만 아니라 동백섬 주변에는 해송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어 예로 부터 경관이 매우 빼어나 유명한 시인 묵객이 많이 찾은 장소이고, 섬의 정상에는 최치원 선생님의 동상과 기념비가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호텔 옆으로 만들어진 몇 개의 나무테크 계단 따라 올라서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 이르면서 바다가 바위 위에 인어상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 인어상은 "황옥공주(黃玉公主)" 의 동상으로써 출령이는 파도를 내려다 보고 있다.

 

< 고향을 그리면서 파도를 바라보는 "황옥공주" >

 

황옥공주는 먼 옛날 인어의 나라 "나란다" 의 공주님으로써 해운대 "무궁" 이라는 나라의 은혜왕에게 시집와 살았지만, 공주는 항상 고국이 너무나 그리워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밤마다 바다로 나와 황옥(黃玉)에 비치는 나라 고국을 바라 보면서 그리움을 달래면서 살았다고 하는 전설이 깃든 장소이라고 한다.

 

< 잘 만들어진 "나무테크" 길을 걷는 관광객 >

 

이 동상을 기점으로 잘 만들어진 나무테크 길 따라 섬의 끝지점으로 나가면 또 다른 전망대가 나타나면서 이 전망대에서는 최치원 선생님이 바위에 새긴 "해운대(海雲臺)" 라는 석각(石刻) 글씨가 있다고 하지만, 그 곳까지 접근하는 길을 몰라 가까이 볼 수 없어 안타깝다.

 

< "해운대" 를 배경으로 한 컷 >

 

< 최치원 선생님이 최초로 해운대 라고 새겼다는 "석각" 설명문 >

 

이 전망대에서 나무테크 길은 끝나고 동백섬을 일주하는 도로에 올라서면 섬의 끝지점에 하얀색의 등대가 고즈늑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이 등대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여 바다를 내려다 보면 구경에 여념이 없다.

 

< 동백섬 끝자락에 있는 "등대" >

 

왼편으로는 지금까지 걸어온 해운대 신도시와 달맞이공원이 한폭의 그림을 만들고 있으며, 눈을 넓은 바다 방향으로 돌리면 수 많은 화물선이 물류를 이동하기 위하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오른편으로 조금더 눈을 돌리면 이기대 둘레길 끝지점에 "오륙도" 섬이 바다 속에서 솟아 있는데, 조용필씨의 노래가사와 같이 오륙도 돌아가는 유람선이 푸른 파도를 해치면서 관광객을 싣고 다니는 배가 여유로움을 나타낸다.

 

< 동백섬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해운대" 전경 >

 

< 멀리 점점이 보이는 "오륙도" 섬 >

 

더욱더 방향을 내륙의 오른편으로 완전히 돌리면 구름 사이로 넘어가는 태양이 두둥실 떠 있지만, 강력한 햇살의 힘을 잃고서 광안대교 위에 무기력하게 걸쳐 있는 모습이 아련하게 보인다.

더불어 섬의 끝자락에는 옛 노무현 대통령 정부 시절 APEC 회의를 개최한 누리마루 건물이 산자락까지 내려와, 우거진 해송 사이를 헤집고 나와 바다 방향으로 얼굴을 살며시 밀어내고 있는 모습도 하나의 수목화를 만들고 있다.

 

< 동백섬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광안대교와 누리마루 건물" >

 

동백섬을 종주하는 도로 따라 한바퀴 돌아 조선호텔 정문이 있는 원점 지점에 도착하면 동백섬 정상으로 올라가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정상까지 300m만 올라가면 최치원 선생님의 동상과 기념비가 있다고 하나 이제는 몸이 너무나 늙어 걷기도 싫어 구경을 생락한다.

 

< 동백섬 "일주도로" 따라 걷는 동문들 >

 

< "최치원 기념비" 가 300m 위에 있다고 알리는 이정표 >

 

호텔 정문에 대기하고 있는 미니버스에 승차하는데 여기서 선약이 있는 일부 동문들은 먼저 떠나고, 소수 인원은 또 다른 부산의 명소 구경과 더불어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하여 광안대교를 건너 남포동으로 이동한다.

 

< "조선호텔" 정문에서 기다리는 미니버스로 내려 가면서 >

 

< 복층으로 이루어진 "광안대교" 를 건너면서 >

 

남포동 중심지에 있는 영화거리를 지나 부산의 명물이 되는 원산면옥으로 들어가 냉면을 시켜보는데, 냉면 한 그릇에 만원이나 하므로 대구지역 음식값 보다 거의 Double이 되어 그러면 맛이나 최고이겠지 하면서 먹어보니 반값의 대구 맛 보다 1/2도 안되어 실망만 앉고 나온다.

 

< 부산의 명소 "남포동" 영화 거리를 지나면서 >

 

< 부산에서 유명하다는 "원산면옥" 식당으로 들어가지만 >

 

< 가격 대비 별로의 "냉면" 을 즐기고 있는 모습 >

 

한양 친구들이 예매하여 놓은 KTX 열차표가 8시 30분이라 다소 시간적 여유가 남아, 천천히 걸어 자갈치시장으로 넘어가 어물시장을 구경하여 본다.

이어 시장 뒤편에 있는 바다에 도착하여 영도를 감쌓고 있는 아름다운 빌딩과 어울리면서 수 많은 갈매기가 날고 있는 바다 가를 거닐어 보는데, 한쪽 구석에서 한 젊은 친구가 기타 반주하면서 노래하고 있어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여흥에 도취하여 보는 시간도 잠시 가져본다.

 

< 자갈치시장에서 바라보는 "영도" 의 빌딩과 구름 >

 

< 자갈치시장에서 바라보는 "영도 항구" 전경 >

 

< 자갈 시장 뒤편에서 노래하는 "아마추어 가수" >

 

< 노래에 심취하고 있는 "동문" >

 

어둠이 내리는 시간을 정점으로 하여 자갈치시장을 벗어나 각자의 삶의 터진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부산역으로 다시 도착하는데, 역 앞에서도 한 무리의 젊은 남여들이 사물놀이를 즐기면서 노래하고 있어 부산은 완전히 한마당 놀이문화의 도시로 변모하면서 여행객들에게 무더위를 날려 보내면서 떠나가는 기차시간을 기다리기에 안성 맞춤의 도시이다.

 

< 부산역 앞에서도 "노래하는 가수" >

 

< 사물놀이와 함께 "국악" 을 연주하는 단원 >

 

마지막까지 남은 서울팀과 대구팀은 부산 친구의 전송을 받으면서, 내년 2월에 다시 재회할 것 다짐하면서 작별 인사와 더불어 동문회 임시모임의 막을 내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