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생가 방문.

다양한 삶을 살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 가 있는 봉하마을 찾아서.

용암2000 2014. 2. 28. 00:23

2014년 2월 23일 (일요일)

 

부산에 있는 큰 아들 집으로 가서 귀여운 손녀도 다시 대면하면서 같이 저녁식사를 하자는 이야기로 인하여 오전 좀 바쁘게 돌아본 "함안박물관과 무진정" 의 관람시간이 예정시간 보다 다소 일찍 종결하므로, 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부산으로 가는 길 중간지점에 있는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 생가 방문을 추가하여 본다. 

동창원 Toll gate를 벗어나 밀양으로 가는 방향으로 조금 가다가 진영종합운동장 인근에서 진례로 넘어가는 길의 오른편 야산을 넘어 "본산 준공업지구" 를 관통하자 마자 노란색으로 만들어진 바람개비가 돌아가고 있는 도로를 만난다.

이 도로 따라 조금 들어가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生家)가 있는 붕하마을에 도착하는데, 마을 앞에 있는 주차장이 만차가 되므로 제2주차장으로 인도하는 안내원과 담화하는 순간 한대의 차가 빠지므로 신속하게 그 자리를 점유한다.

 

< "봉하마을" 내에 있는 마을 주차장 >

 

< "봉하마을" 의 조감도 >

 

이곳 봉하마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2월 25일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5년의 임기를 마치고 2008년 2월 24일 후임 이명박 대통령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다음날 이곳 봉하마을로 낙향하여 살다가 2009년 5월 29일 사저 옆에 있는 "부엉이 바위" 에서 뛰어내려 삶을 마감한 고향 마을이다.

고향으로 귀향하여 1년 3개월이라는 짧은 삶을 살아갈 동안 많은 에피소드와 더불어 대중적인 연설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았고, 또한 나도 그들과 함께 2008년 6월 한번 방문하여 연설을 들어본 봉하마을이라 다소 익숙하여진 장소이지만 그래도 그 때와 비교하니 너무나 많은 변화를 가져온 동네가 된다.

생가 집이 옛날과 동일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입구에 들어서니 많은 변화가 눈에 들어오는데, 내가 방문 할 시점에는 허름한 본채 하나만 달랑 건립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헛간채와 더불어 생가와 사저 사이에 있는 중간 길에도 많은 대나무가 자라고 있어 다소 짜임새를 갖추어지고 있다.

 

< 새롭게 건축한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와 사저" 전경 >

 

그래서 생가 입구에 있는 내용을 읽어보니, 이 생가는 내가 방문한 시점보다 훨신 뒤 2009년 2월에 착공하여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 한 후 2009년 9월에 완공되므로 내가 방문할 때와 많이 상이하게 건립하였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필로 그 내력을 설명하고 있다.

 

< 생가가 복원되기 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설계 설명서" >

 

그러고 노무현 대통령이 생존하고 있을 때에는 오전과 오후 각 한차례씩 사저에서 나와 생가 뒤편 도로변에 서서 생가 마당 주변에 모인 청중들에게 연설을 하였는데, 그 때 연설한 내용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떠오르게 한다.

아마 그 시절 연설의 내용이 청와대에서 발생한 일급비밀을 요약하여 설명하여 주므로 일반 서민에게는 너무나 쇼킹한 이야기라고 생각이 된다.

먼저 생가 집으로 들어가서 많은 사람들이 마루에 앉아 사진을 찍고 있어 우리집 사람과 작은 아들도 순서를 기다렸다가 한장의 사진를 찍고 나서, 옆으로 넘어가니 쉼터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생가를 관람하는 "관광객" >

 

< 본채 마루에서 찍어보는 "가족" >

 

< 헛간채" 앞 에서도 >

 

당초 쉼터에는 방문객들이 앉아서 커피라도 한잔 마실 수 있는 공간으로 건립하였지만 현재는 기념품과 서책을 판매하는 기념품 가게로 탈바꿈하고 있는데, 가게에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묘역과 더불어 생가 관리 및 기념사업 비용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 생가 옆에 있는 "좌판기" >

 

< "기념품과 서적" 을 판매라는 쉼터 가게 >

 

< 선물을 구입하는 "관광객" >

 

쉼터에서 나와 도로를 건너 가니 도로 오른편으로 각종 먹거리를 판매하는 가게 및 친환경 농산물을 판매하는 상가로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데, 옛날에 대비하여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거리가 된다.

 

< "도로" 좌우로 많은 관광객이 걷고 있는 모습 >

 

< 도로 건너편에 "음식" 을 판매하는 상가 >

 

이 먹거리 가게 뒤편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위한 임시 "추모의 집" 이 지어져 있는데, 입구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다양한 업적 사진이 붙어있으며 그 뒤편 추모의 집 내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유품과 사진 및 기록물과 영상물을 볼 수 있는 전시실로 운영하고 있다.

 

< 임시로 가설한 "추모의 집" > 

 

< 추모의 집 입구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 동상 >

 

< 추모의 집 앞에 있는 홍보 "전시물"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더욱더 상세하게 기록하여 보면, 본관은 "광주 노(光州 盧)" 씨 이고, 1946년 9월 1일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에 있는 한 빈농의 3남 2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나 인접하게 있는 대창초등학교와 진영중학교를 졸업하였으나, 가난한 집안으로 인하여 인문계 학교를 포기하고 부산상업고등학교로 진학하여 1966년에 졸업한다.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나서 어망 제조 회사에서 잠시 일을 하다가 그만 두고 막 노동판에서 일을 하면서 사법시험을 공부하였으며, 1968년에 육군에 입대하여 1971년 만기 전역을 하고 나서 계속하여 사법시험을 준비하였으며. 1973년 1월 동향의 권양숙(權良淑) 여사와 결혼을 한다.

1975년 네 번째의 도전 끝에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1977년 대전지방법원에 판사로 임용되었으나 이듬해 5월에 사직하고,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여 운영하였다고 한다.

이후 다소 안정된 삶을 살다가 1981년 제5공화국 정권의 민주화 세력에 대한 용공조작 사건인 "부림사건(釜林事件)" 의 변론을 맡은 것을 계기로 학생, 노동자 등의 인권사건을 변호하는 인권변호사의 길로 업무를 전담하기 시작한다.

1988년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의 제의로 정치에 입문하여 부산 동구에서 제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하여 국회에 입성하고, 같은 해 제5공화국 비리 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연한 논리와 날카로운 질문으로 증인을 추궁하는 "청문회 스타" 로 부각 되어진다.

그 여세로 김대중 정권 때 해양부장관을 역임하고, 2002년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 및 최고위원을 거쳐 제16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물리치고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그후 대통령으로써 많은 치적과 더불어 국민의 정서에 반하는 일도 많이 벌리므로 인하여 재임 기간 동안 바람 잘 날이 없었지만, 그래도 퇴임 후 귀향하여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하여 많이 노력하던 중, 주변 인척들의 비리로 인한 도덕성 상실과 더불어 검찰 출두를 앞두고 양심적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 추모의 집 내부에 있는 "전시물" >

  

< 추모의 집 내부를 구경하는 "관람객" >

 

< 추모의 집 내부에 있는 "영상실" >

          

이와같이 노무현 대통령 일대기와 영상물을 조금 보다가 다시 도로를 건너가니, 봉화대 정점에 있는 "사자바위" 끝지점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墓域)이 조성되어 있다.

묘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마음을 씻고 들어간다는 의미를 가진 작은 연못이 있고, 그 연못 부터 바닥 면에는 국민들의 추모와 애도 글로 만들어진 약 1만 5천개의 박석(薄石)으로 바닥을 장식하고 있다.

 

< 다시 도로 건너편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과 사자바위" >

 

박석의 기부 운동에 참석한 약 1만 8천명의 국민들이 애뜻한 마음을 담긴 글씨가 새겨진 박석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추모비(追慕碑)의 비문을 대신한다고 하는데, 기부한 사람의 박석을 찾기 원한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추모 재단에서 운영한 "사람사는 세상" 의 홈 페이지에서 찾을 수가 있다고 한다.

 

< 각 박석에 새겨진 "추모글" >

 

이 박석 길로 중간 정도 들어가면 헌화와 더불어 분향을 할 수 있는 좌대가 놓여 있으며, 그 좌대 뒤편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골이 안장되어 있는 묘역에 도착한다.

 

< 중간 지점에 있는 "분향대" >

 

죽기 직전 컴퓨터 메모로 나의 무덤에 "아주 작은 비석만 남겨라" 라는 유언에 따라 녹이 쓸고 나면 보호막이 형성되면서 부식을 막아주는 내후성(耐朽性) 강판을 기초로 깔고 그 위에 검소한 남방식 고인돌 형태의 낮은 너럭바위로 봉분(封墳)을 대신하고 있는데, 이 너럭바위에는 "대통령 노무현" 이라는 단지 6자의 글자만 새겨져 있는 매우 단촐한 무덤이다.

 

< 남방식 고인돌 위에 새긴 "대통령노무현" 의 6자 글씨 >

 

< 해설사 이야기를 경청하기 위하여 돌아서 묘의 풍수를 듣고 있는 "관광객" >

 

모든 사람들이 무덤 주변에 서서 묵념으로 예(禮)를 올리므로 같이 묵념을 드리고 나서 천천히 되돌아 나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한 부엉이 바위 방향으로 올라가 보는데, 가는 길의 좌우에는 거대한 건물을 건축하기 위한 기초 공사를 하고 있어 아마 이 공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품을 전시 할려는 "전시장" 을 건립하는 것 같다.

 

< 묵념을 하고 있는 "관광객" >

 

< 부엉이 바위 앞에 건립하고 있는 "전시장" >

 

공사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부터 "대통령 산행길" 이라는 오솔길이 만들어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트레킹을 겸하면서 산행을 즐기고 있는데, 산행 입구에는 대통령이 귀향하여 추진하고 있었던 무공해 "장군차" 밭이 만들어져 있다.

 

< "봉화산" 산행 안내도 >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한 "장군차" 밭 >

 

< "장군차" 재배 기술을 전수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

 

여기에서 부터 거대한 부엉이 바위를 왼편으로 두고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을 이용하여 고도를 상승하면, 이내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지는 길에 도착하면서 다소 급경사의 계단길이 되어진다.

 

< 트레킹 길 왼편에 있는 "부엉이 바위" >

 

계단길로 한 모퉁이를 돌아 올라가면, 좌측편으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된 "진영 봉화산 마애불" 이 있다는 안내판이 있어 그 방향으로 내려가 보니, 안내판 뒤편에 있는 수직 바위에는 마애불이 없어 주변을 찾아보니, 거대한 바위 속에 넘어져 있는 마애불이 바위 틈에 끼여있다.

 

< 바위 틈에 끼여서 넘어져 있는 "마애불" >

 

안내 설명서에는 한 때 이 마애불이 서 있었으나 어느 시기에 넘어졌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이 마애불은 당나라 황후의 꿈에 한 청년이 자꾸만 자기를 괴롭히므로 신승(神僧)의 힘을 빌려 그 청년을 바위 틈에 넣어 김해 땅 봉화산에 석불이 되게 함으로써 생긴 것이라고 한다.  

 

< 아래 방향으로 내려와서 처다본 넘어진 "마애불" 바위 >

 

여기에서 다시 나무테크 계단길로 올라가면 2개의 길로 나누어지는데, 왼편 100m 전방에 부엉이 바위를 가르키고 있으며 오른편 200m 지점에 "정토원(淨土苑)" 으로 간다는 이정표가 서 있어 먼저 부엉이 바위 방향으로 올라가 본다.

 

< "부엉이 바위" 를 알리는 3거리 이정표 >

 

부엉이 바위 정점에는 다소 넓은 터와 더불어 허물어져 가고 있는 무덤 한기가 자리하고 있으나, 계속되어지는 투신 자살을 예방하기 위하여 높은 철조망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하기 전 담배를 피우면서 고민한 "부엉이 바위" 상부 >

 

아마, 노무현 대통령이 여기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얼마나 고뇌를 하였으며, 순간적인 마음을 통제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모든 부귀영화를 모두 내려놓고 자살로 생(生)을 마감할 수가 있였을까 하는 상념의 시간을 가져본다.

 

< 부엉이 바위 상부에서 바라보는 "노건평" 씨가 골프를 친 연못 > 

 

한참 후 다시 3거리로 내려가 정토원 방향으로 올라가니 울창한 숲 속에 정토원이 자리잡고 있으며, 입구에 있는 요사채 건물을 돌아서 들아가면 다소 넓은 마당에 앙상한 배롱나무 한그루가 자리하고 있는데, 배롱나무는 겹질이 벗겨진 밑부분에 혹 같이 울퉁불퉁한 모양을 하고 있는 특색을 가진 나무이다.

 

< 정토원을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요사채" 건물 >

 

배롱나무 뒤편 돌계단 위에 봉화산 정토원의 본찰인 "수광전(壽光殿)" 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수광전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49 제를 올리므로 인하여 더욱더 대중에게 알려진 유명한 사찰이 되어졌다.

 

< 울퉁불퉁한 모양을 하고 있는 "배롱나무와 수광전" > 

 

몸과 마음이 청정하고 주변 환경이 깨끗하게 하는 것이 정토(淨土)라고 하는데, 불교에서는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진 곳에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고, 출생하고 죽음도 없이 불보살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곳을 "정토극락세계(淨土極樂世界)" 라고 한다.

 

< 정토원의 본찰 "수광전" >

 

이 정토원 옆으로 잘 만들어진 나무테크 길로 한 100m 정도 올라가면 옛날 봉화대(烽火臺)가 있었던 사자바위 정상에 도착하여 지는데, 여기 사자바위에서 발아래로 내려다 보면 봉하마을과 더불어 밑에서 예(禮)를 올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이 바로 내려다 보인다.

 

< 정토원 옆 "사자바위" 로 올라가는 나무테크 길 >

 

< "사자바위" 상부에 있는 전망대 >

 

< 사자바위 정점에 있는 "봉화대" 안내판 >

 

< 사자바위에서 내려다 보는 "봉하마을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

 

사자바위에서 주변 풍경을 구경하다가 봉화대에서 올라온 방향과 반대 뱡향으로 호미를 들고 있는 관음보살이 300m 전방에 있다는 안내문 따라 능선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체육시설이 있는 휴식처가 나타나고, 그 휴식처에서 부터 조금 올라가면 해발 140m "봉화산(烽火山)" 정상에 도착한다.

 

< 사자바위에서 봉화산으로 가는 길 중간지점에 있는 "체육시설" >

  

< 민둥산 형상을 하고 있는 "봉화산" 전경 >

 

봉화산 정상에는 민둥산 형태를 하고 있으며 그 중앙에 호미를 들고 있는 관음보살이 서 있는데, 이 관음보살은 봉화산에 정식 불교가 들어오기 전 원시인, 구석기인, 신석기인들의 제사(祭祠)의 터로 사용하여, 오래 전 부터 정성이 축적되면서 정기가 서려 있는 곳에 관음보살이 자리하므로 기도의 효험이 매우 높은 곳이라고 한다.

 

< 오른손에 호미를 들고 있는 "관음보살" > 

 

이 관음보살 주변으로 나무테크 전망대와 더불어 동서남북 4방향으로 사진과 설명서가 붙어있어 주변을 조망하기가 매우 편리하게 하는데, 특히 낙동강변 방향에는 넓은 평야에서 풍족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논이 끝없이 펼쳐지는 평야가 머물고 있다.

 

< 관음보살 주변에 있는 "나무테크 전망대" >

 

<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넓은 평야" >

 

<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정토원" 방향 >

 

봉화산에서 여러방향으로 내려가는 대통령 산행길이 만들어져 있어 삼림욕을 즐기면서 산책이 가능하지만, 시간적인 촉박으로 인하여 올라왔던 길로 하산하여 봉하마을에 도착한다.

 

< 봉하마을에서 오리농법 무공해 "쌀" 을 도정하는 방앗간 가는 길 >

 

다시 한번 더 주변을 돌아보면서 스쳐가는 풍경에 대하여 눈 맞춤 하다가 집에서 기다리는 큰 아들와 며느리 및 손녀의 재롱을 보기 위하여 횡하게 부산으로 달려가기로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