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생가 방문.

꿈 많은 소년에게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이 되어진 "이명박" 고향마을 덕실을 돌아보면서.

용암2000 2017. 2. 12. 00:12
둘째날 : 2월 4일 (토요일)


1. 이명박 전 대통령 고향마을 덕실을 돌아보면서.
포항에서 거주하고 았는 동문 와이프의 깊은 솜씨가 뽐내는 아침식사를 끝내고 나서 포항 인접지역에 있는 관광지를 구경하기 위하여 길을 나서본다.
먼저 포항에서 유명한 내연산이 품고 있는 보경사를 관람하기로 하면서 한대의 승용차를 이용하여 포항시가지를 벗어난다.

승용차는 이내 7번 국도를 이용하여 북쪽으로 달려가 흥해읍을 통과하자 마자 도로 가장자리에 "이명박(李明博)" 전 대통령 고향마을이 있다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이정표가 지시하고 있는 방향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는데, 나는 2007년 12월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고 2008년 초 취임식을 가진 그해 가을에 한번 방문한 마을이 된다.

7번 국도에서 고불고불한 시골길 따라 약 4.5Km 정도 들어가면 덕성리에 도착되고, 덕성리에서 제일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담한 야산이 병풍처럼 펼쳐지면서 앞에 작은 개울이 흘려내리고 있는 "덕실(德室)" 이라는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 입구에 넓은 주차장이 있지만 주차장에는 거의 차량들이 주차하지 않고 마을 앞을 통과하여 올라가면 마을 입구 옛 날에는 없었던 2층의 "덕실관(德室館)" 이라는 새로운 건물이 보이지만, 그냥 통과하여 마을의 중간지점이 되는 도로 가장자리에 승용차를 주차하게 만든다.


< "덕실마을" 의 전경과 도로 >


10여년 전 방문하였을 때에는 마을이 매우 어수선 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기거하였던 집만 생각이 나는데, 지금은 마을도 매우 단정이 되어지면서 이정표도 잘 만들어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는지 도로 가장자리에는 다수의 차량들이 주차하고 있다.   
특히 도로변 가장자리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기술하고 있는 사진과 더불어 설명문을 만들어져 있어 그 중에서 덕실마을 유래를 읽어본다.
덕실마을은 포항시로 부터 효(孝)의 시범마을로 지정된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성1리로 예로 부터 예(禮)와 덕(德)을 중시하는 충절의 고장으로 덕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덕실마을" 로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 도로 가장자리에 붙어있는 "설명문" >


신라 지증왕(505년) 때 퇴화현에 속한 후 퇴화군에서 의창군으로 행정구역을 거쳐 고려 초에 이르러 흥해군이 되었으며 1789년에서야 비로써 흥해군 북상면 덕곡촌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 후 1914년 영일군, 흥해군, 장기군, 청하군을 영일군으로 통폐합 되었으며 덕실마을이 있는 덕곡동과 장성동이 합쳐져 덕성리가 되었다고 한다.     .



< 마을 가장자리에 있는 "덕실마을" 유래 >


이곳 덕성리 덕실마을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연관되는 관광코스로 마을 초입에 있는 덕실관, 덕실관 뒤편으로 새롭게 조성되어 있는 생가, 마을 중간지점에 있는 고향집터 및 고향집, 마을 상부의 이상재 및 담화정으로 나누어지고 있다. 
먼저 마을 중간지점에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향집터를 구경하기로 하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친 이충우 및 모친 채태원이 이곳 덕실마을에서 거주하다가 생활고로 일본 오사카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4남 3녀를 생산하면서 이명박은 1941년 12월 19일 5번째로 출생한다.


< "고향집터" 를 가르키는 이정표 >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살이 되던해 이곳 아버지 생가가 있는 덕실마을로 돌아와 어린시절을 보내므로 이곳은 대통령의 생가가 되지 못하고 고향집터가 되는데, 불행하게도 집이 매각되어 현재는 다른 사람이 새로운 집을 건축하여 살고 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이정표 따라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대문도 없는 1층 양옥집이 나타나면서 담벼락에 이명박 전 대통령 "고향집터" 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어 마당으로 들어가 보는데, 마당 가장자리 테이블 위에 초가의 모형집이 만들어져 있고 다른 한편으로 옛 초가집 사진과 더불어 설명문도 함께하고 있다.


< 고향집터를 가르키는 중간지점의 "안내" 표시 >


<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 "고향집터" >


< 고향집터 테이블 위에 마련하고 있는 "모형집" >


< 고향집터 마당에 있는 "옛집" 사진 >


집을 나와 오른편으로 돌아서 나가면 넓은 광장의 뒤편으로 초가집을 둘려 쌓고 있는 돌담이 보이므로 그곳으로 올라가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생가를 복원하고 있는데, 생가는 넓은 마당을 중심으로 정면으로 안채와 더불어 왼편에는 사랑채, 오른편으로 곡간채가 자리하고 있다.  


< 고향집터 오른편에 있는 "생가" 복원집 >


< 정면에서 바라보는 "생가" 전경 >


< 생가의 왼편에 있는 "사랑채" >


< 생가의 오른편에 있는 "곡간채" >


안채의 처마 밑에 "청계유룡(淸溪游龍)" 이라는 현판과 더불어 현판 왼편 작은 글씨로 을미년 동 17대 대통령 이명박(乙未年 冬 十七代 大統領 李明博) 낙관도 찍혀 있는데, "유" 자를 아무리 보아도 모르는 한자가 된다.
옛날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아호를 일송(一松)이라고 사용하였으나 서울시장 때 청계천 복원공사를 성공적으로 완공하고 나서 그의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호를 청계(淸溪)로 바꾸므로 이곳 생가의 현판에도 청계를 사용하였지만, 유룡과 연결시키는 것은 다소 화합의 미(美)가 이루어지지 않은 표현인 것 같다.  


< 모르는 한자가 있는 "현판" >


의문을 품고 생가 앞으로 내려가면 폭포와 함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얼굴과 더불어 일대기를 기술하고 있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 공원이 자리하고 있지만, 겨울철이 되어 모두가 삭막하지만 추위가 살아지는 날씨에는 어린이들과 함께 산책하기에 매우 좋은 놀이터가 되어지겠다.


< 생가에서 바라보는 "덕실마을" 로 들어오는 길 >


< 생가의 앞에 조성하고 있는 "공원" >


< 공원 내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 석상 >


공원의 옆이면서 덕실마을의 초입이 되는 곳에 덕실관이 자리하고 있어 내부로 들어가 보는데,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이명박 대통령이 손을 내밀고 있는 디오라마(Diorama)가 서 있어 함께 관람하는 동문이 반대편에 서서 악수를 하는 포즈를 취하므로 먼저 기념사진 한장을 찍어 준다.


< 마을 초입에 있는 "덕실관" 건물 >
            
더불어 입구 안내실에 있는 해설사 한분이 관람 코스를 안내하면서 본인이 해설하는 것 보다 전시실 내부에 전시하고 있는 내용을 직접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안내 데스크로 되둘아 가는데, 내부 전시실을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관람을 하고 되돌아 나온다.
  
< "이명박 전 대통령" 의 성장 배경 >


< 꿈 많은 소년에게 "대한민국 대통령" 이 되는 내용 >


< "이명박 전 대통령" 의 치적을 설명하고 있는 영상물 >


다시 안내실로 이동하여 해설사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여 보는데, 왜 대통령 생가터를 다시 구입하여 복원하지 않고 별도의 부지를 선정한 이유와 더불어 현판에 붙어있는 한자를 모르겠다고 가르켜 주었으며 부탁하여 본다.


< 덕실관 내력을 설명하여 주는 "해설사" >


이곳 덕실마을은 풍수 지리학적으로 매화낙지(梅花落地)의 땅이 되어지므로 옛 부터 많은 인재들이 탄생한 지역이 되고,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친이 탄생한 생가에는 매화낙지의 중심지가 되어 현재 구입하여 살고 있는 분이 매각을 허락하지 않으므로 인접하게 생가를 복원하였다고 한다.
더불어 새롭게 지어진 생가의 현판에 걸려 있는 청계유룡(淸溪游龍)에서 놀 "유(游)" 자를 변형하여 썻으나 지금까지 아무도 문의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나에게 현판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진 분이라고 이야기하여 주지만 실제로 가방 끈이 짧은 무식쟁이라 것에 탈로가 나고 말았다.
어찌하던 덕실관을 잘 구경하고 떠나가지만, 덕실관에 전시하고 있는 이명박에 대한 내용들은 지독하게 가난하게 살았던 성장 배경과 더불어 열심히 노력하여 현대건설에서 불굴의 업무를 성취하는 샐러리맨의 신화 과정 및 서울시장 시절에는 정말 한국을 위하여 많은 업적을 가진 인물이라고 기록과 영상물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매우 중요한 시절이 되는 제17대 대통령 시기의 기록물을 전연 보여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한국의 어느 대통령과 동일하게 그의 업적이 얼마나 부적절 하였는지 단편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현실이다.
지금 인터넷을 통하여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검색하여 보면 그의 형 이상득을 포함하여 처남 및 자녀들이 전국적으로 80만평의 토지와 더불어 재산 모든 것을 합산하여 보면 23조가 넘는다고 하는데, 그 돈을 압류하여 그가 저질러 놓는 4대강을 원상 복구하고 감옥으로 보내 몇년 동안 안거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하는 내용을 읽고 있으니 이명박은 유룡의 인물이 아니고 유토룡의 인물인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형님 먼저 아우 나중에 하면서 대통령을 나누어 하고 있는 현재의 박근혜 대통령 치적을 보고 있으니 억장이 무너지는데, 정말 한국에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과 같이 국민들에게 50%가 넘은 지지를 받으면서 무사히 하산 하면서 내려오는 대통령은 한명도 없을까?


< 하산할 때 조심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지는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 >


다시 마을길 따라 내부로 들어가면 도로변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머물었다는 "대통령 고향집" 이라는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이 집은 대통령이 이곳 덕실마을을 방문 할 때 마다 생가가 없으므로 그의 4촌 형수님이 기거하는 집에 머물고 갔다고 하여 4촌 형수님 집을 대통령 고향집이라고 현판을 붙었다고 한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향집" 안내판 > 


< "고향집터와 고향집" 의 설명문 >


이 집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마을 건너편에 있는 야산의 그늘 아래에 있는 논을 이용하여 썰매장을 만들어 놓고 있는데, 썰매장에는 덕실마을을 방문하는 관광객과 더불어 어린이들에게 추억의 장소가 되어지도록 마을에서 운영하고 있는 썰매장으로 많은 어린들이 놀이를 즐기고 있다.


< 많은 어린이들이 놀이를 즐기고 있는 "썰매장" >


이곳에서 다시 도로 따라 한 200m 정도 올라가면 야산 기슭에 "이상재(履霜齋) 및 담화정(湛和亭)" 이라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상재는 경주이씨의 입향조 통정대부 삼호공 "이준(李濬)" 선생님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재실이며 왼편으로 지방 사림들이 모여 시화를 나누었던 담화정이라는 건물도 함께하고 있다.


< 마을의 상부에 있는 "이상재 및 담화정" 전경 >


입구에 있는 안내문에 따르면 이준 선생님은 청송군 안덕면에서 세거하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1952년 이곳 덕실마을로 입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충효예절을 숭상한 공의 유덕에 힘을 입어 후손들이 번성하고 현달한 자손이 많아 세인의 칭송이 자자하다고 한다.
특히 선생님의 12대 후손이 되는 이상득(李相得)은 제17대 국회에서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으며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6선 의원이 되었고, 동생이 되는 이명박은 국회의원과 민선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였고 헌정사상 최다 지지로 제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곳 이상재는 당대 선비들이 거처하며 공부하였던 곳으로 그들의 학문 수준이 매우 높아 인근에 있는 달전, 흥해, 기계, 청하지역의 재지사림(在地士林)을 영도하는 위치에 있었던 장소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는 작은 대문을 통과하면 오른편으로 넓은 마당 가장자리에 고목의 감나무 한그루가 서 있으면서 그 뒤편으로 정면 4칸 짜리 이상재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건물을 구획하고 있는 담장 왼편으로 들어가면 담화정 건물을 만나볼 수 있다.


< 이상재로 들어가는 "대문" >


< 고목의 감나무와 함께하고 있는 "이상재" 건물 >


< 이상재 건물 왼편에 있는 "담화정" >


겨울철이라서 그런지 매우 어수선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는 이상재 건물을 벗어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향집터 앞 도로변에 주차하고 있는 승용차를 몰고, 다음 관광지가 되는 보경사를 구경하기 위하여 떠나기로 한다. - 첫 방문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