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기계과 행사.(대구)

경북대학교 기계공학과 대구 거주하는 동문 9월 모임은 서울팀과 함께 "동문 별장" 방문.

용암2000 2014. 9. 19. 19:09

2014년 9월 16-17일. (1박 2일)

 

* 모임의 취지.

대구에 거주하는 경북대학교 기계공학과 제1회 동문 8명이 매월 정기모임을 가지면서 우정을 돈독하게 유지하여 왔는데, 그 중 한명이 금년 2월로 모교에서 후학을 가르키는 교수 생활에서 정년으로 퇴임하고,다시 6월 부터 말레시아 보르네오 섬 사바주에 있는 사바대학으로 5년 동안 초빙교수로 새로운 인생의 삶을 살기 위하여 떠나가므로 7명이 정기모임을 계속하고 있다.     

8월 정기모임을 가지는 자리에서 41년 전 경북대학교 교정에서 우리와 함께 학사로 졸업 함과 동시에 미국으로 건너가 석사와 박사를 끝냈지만, 학교에 머물지 않고 공학(工學)의 뜻을 실천하기 위하여 공공산업체 근무를 통하여 획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 경영자 길로 걷고 있는 한명의 동문이 작년 말 경북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 비슬산 기슭에 조그마한 별장을 건립하여 주말 또는 공휴일에 머물면서 인생정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9월 정기모임은 본인의 별장에서 간단한 저녁식사와 더불어 만찬을 갖자는 이야기와 함께 주중이지만 타지역(서울, 부산, 대전, 포항, 창원)에 거주하는 동문에서 시간적 여유가 있는 동문이 있다면 초청하겠다는 이야기가 있어, 타지역에 거주하는 동문들에게 연락을 취하여 본다.

타지역에서는 아직 현직으로 근무하는 동문이 다수가 존재하므로 업무와 개인사정으로 동참이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단지 서울에서 거주하는 4명의 동문이 동행하겠다는 연락이 도착한다.

 

1. 첫째날 : 9월 16일.(화요일)

 

1) 청아람 식당에서 만찬.

서울 동문들이 12시 까지 동대구역에 도착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로 할일도 없이 빈둥빈둥 놀고있는 내가 친구들을 Puck-up하면서 대구 일원에 있는 관광지를 돌아보고, 오후 5시 청도군 각북면에 있는 용천사 주차장에서 전원 모임이 가지도록 계획을 수립하여 본다.

그런데 서울 친구를 위하여 대구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한 동문이 점심식사를 대접하겠다고 자청하면서 범어로타리 인접지역에 있는 청아람식당에서 12시 30분에 예역하였다고 하므로, 롯데케슬 아파트 뒤편에 있는 식당으로 올라가니, 대구동문 4명과 서울동문 4명 등 총 8명이 점심식사를 같이한다.

 

< 범어로타리 롯데케슬 아파트 뒤편 언덕 위에 있는 "청아람" 식당 >

 

이곳 청아람 식당은 울릉도와 홍도에서 공급하여진 식자재(食資材)를 이용하여 음식을 만들므로 매우 독특하면서 다양한 반찬과 더불어 울릉도의 별식인 홍합 비빔밥이 점심의 주 메뉴로 제공한다고 하여 일괄 주문한다.

 

< "울릉도와 흑산도" 산 식자재를 사용한다는 가격표 >

 

< 정식으로 제공하는 "홍합 비빔밥" >

 

이 식당에서 먹어보는 홍합 비빔밥은 옛날 친구 한명이 을릉도에서 교감으로 근무할 때, 한 일주일간 방문하여 몇 번 먹어본 홍합 비빔밥의 맛을 다시 느껴지게 하므로 옛 추억의 시절이 그려워지게 한다.

 

< 홍합 비빔밥으로 식사를 즐기는 "동문" >

 

2) 마비정 벽화마을 구경.

모처럼 서울에서 방문한 동문에게 대구의 어떤 명품 관광지를 보여 줄 것인가 고민 하다가 내가 자주 방문하면서도 최종 모임의 장소인 각북면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관광지를 선택하기로 하는데, 1차로 각북면과 동일한 바운다리 속에 있는 비슬산 기슭에 자리하면서 최근 벽화마을로 소문이 나고 있는 마비정(馬飛亭)으로 선택하여 본다.

 

< "마비정 벽화마을" 입구에 있는 조감도 앞에서 >

 

< "마비정 벽화마을" 로 올라가는 길 >

 

< 담장 위에서 손님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어린이" >

 

< 마비정 벽화마을 중앙 갈림 길에 있는 "연리목" >

 

< "마비정의 유래" 를 읽어보는 동문 >

 

< 착시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소" >

 

< 상호 애정을 표현하고 있는 "암소와 황소" >

 

< 마비정 "서낭당" 에 있는 거북이와 남근석 >

 

< 마을 주민들이 사용한 "우물" >

 

< 사랑의 "포토존" 구멍도 지나가면서 >

 

< 마을 제일 꼭대기에 있는 한국 최고령 "옻나무" >

 

< 마을 뒤편에 있는 "물레방아" >

 

< 딱 1년 후 배달되는 "느림보 우체통" > 

 

마비정은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비슬산의 중간산에 자리하고 있는데, 금년 2월 6일 대학교 후배 한명과 함께 방문하여 나의 Blog에 탐방기를 기술하므로 이상 세부적인 내용은 나열하지 않고 단지 동문을 안내하면서 걸어본 코스 따라 관람하는 모습의 사진을 남겨둔다.

 

3) 남평문씨 세거지 방문.

화원시가지에서 마비정 벽화마을로 올라가는 입구에 "남평문씨 인흥 세거지((南平文氏 仁興 世居地)" 가 되는 마을이 자리하고 있는데, 마비정 벽화마을에서 관람을 끝내고 내려오는 길에 세거지 마을로 방문하여 본다.

 

< "남평문씨 세거지" 로 들어가는 입구 >

 

입구에 해설사가 상주하고 있지만, 나는 한번 해설을 경청한 곳이라 추가의 해설을 부탁하지 않고 마을 내부 주차장으로 들어가 주차하고 그냥 동문을 안내 함과 동시에 기억을 회상하면서 간단하게 이야기로 연결하여 본다.

먼저 입구에 있는 안내문을 정독하게 하는데, 그 내용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401-2번지 일원에 있는  남평문씨 인흥 세거지는 고려 말의 충신이며 원나라에서 부터 묵화씨를 가져와 우리나라 의복문화(衣服文化)에 혁신을 가지고 온 충선공(忠宣公) "문익점(文益漸)" 선생님의 18세손 인산재 "문경호(文敬鎬)" 씨가 1840년을 전후하여 터를 잡은 남평문씨 집성촌이다.

삼국유사의 저자가 되는 보각국사 "일연선사(一然禪師)" 의 건의로 사액 개칭된 인흥사(仁興寺)의 절터로 알려진 인흥마을에 현재 9개의 대소가와 재실 두채, 그리고 인수문고(仁壽文庫)와 부속건물들이 한 울타리 속에서 정연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풍치 있는 토담으로 둘려싸인 부지 안에 총 70여 채의 전통 기와집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고 국내에서는 드문 문중문고(門中文庫)로 약 2만권의 소중한 전적들을 수장하고 있으며, 열람과 독서를 위한 거경서사(居敬書舍)와 문고를 보완하는 중곡서고(中谷書庫)도 같이 하고 있다.

 

< "남평문씨 세거지"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수백당으로 바로 들어가는 솟을대문이 잠겨져 있어 본채로 들어가는 문으로 들어가자 마자 왼편의 쪽문을 통과하면 수백당의 넓은 마당 중앙에 아담한 정원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정원에는 노송의 소나무 몇 그루와 더불어 한개의 정원석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이 정원석에는 장수를 뜻하는 거북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 "수백당" 으로 들어가는 솟을대문 >

 

< 수백당 앞에 있는 "소나무" 정원 >

 

< 정원석에 새겨진 "거북이" >

 

이 소나무 정원 뒤편으로 문중의 모임과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수백당(守白堂)"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으며, 이 수백당 건물은 정면 6칸에 측면 3칸으로 되어 있으며 건물 전면에는 튓마루와 함께 오른편 1칸에는 대청마루로 만들어져 있어 매우 독특한 양식이 된다.

 

< 문중의 모임 또는 회의를 개최하는 "수백당" >

 

이 수백당 건물을 구획하고 있는 담장 오른편으로 또 다른 쪽문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이 쪽문을 통과하면 문중서고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옛날에는 내부로 들어가 서고를 구경할 수 있었지만 오늘은 열쇠로 잠겨져 있어 관람이 불가능하게 한다.

수백당을 나와 남평문씨 세거지를 구경하기 위하여 골목길로 걷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전 대구시장을 역임한 문희갑 선생님 집이 나타나는데, 집에는 사람이 기거하므로 사생활 보호차원에서 항상 대문을 잠겨준다.

대문에는 문희갑(文熹甲) 이라는 문폐와 함께 입춘대길(立春大吉)과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는 한자 글 밑에 작은 글씨로 문희갑 전 대구시장의 좌우명이라고 할 문구 "있었다 한들 본래있었던 것. 없었다 한들 본래 없었던 것." 이라는 명언이 붙어있다.

문희갑 전 대구시장 생가 앞에는 수백년의 수령을 가진 회화나무 한그루가 보호수로 관리하고 있으며, 그 뒤편으로 좁은 골목이 직선화를 이루면서 높게 쌓여 있는 토담이 매우 인상적으로 펼쳐지므로 구석구석 걸어본다.

 

< 문희갑 전 대구시장 집 앞에 있는 보호수 "회화나무" >

 

< 긴 토담으로 이루어진 "골목길" >

 

< 집과 집을 구획하고 있는 "토담" >

 

아울러 세거지 제일 앞 방향으로 나아가면 남평문씨 문중의 아동들이 학문을 연마하였던 "광거당(廣居堂)" 이라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광거당에는 매우 고풍의 건물이 되지만 여기에도 문이 굳게 닫혀있어 관람이 불가능하여 아쉬운이 일어난다.

 

< 광거당 담장 주변에 심어진 "노송" >

 

이 광거당 주변으로 심어져 있는 수백년의 수령을 가진 소나무를 구경하면서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면, 처마와 처마를 마주하면서 기와집들이 질서 정렬하게 도열하고 있는 모습을 내려 보이므로 남평문씨 세거지를 구경하는 일품의 장소가 된다.

 

< 광거당 뒤편에서 바라보는 "남평문씨 집성촌" >

 

< 지붕과 지붕이 연결하는 "기와집" >

 

다시 토담길을 걸으면서 승용차를 세워둔 주차장으로 내려와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여 남평문씨 세거지 도로 반대편에 있는 "인흥서원(仁興書院)" 으로 들어가 보는데, 이 인흥서원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명심보감의 저자 노당 "추적(秋適)" 선생님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서원이다.

옛날 인흥서원을 방문하였을 때, 서원을 관리하는 추적 선생님의 후손 할아버지가 서원의 내력과 명심보감 한 구절을 영어로 설명하여 주면서 선조를 극찬하는 해설사 한분이 상주하고 있었는데, 최근 몇 번 방문하여도 문이 굳게 잠겨져 있어 할아버지에게 무슨 변고가 있는지 궁금하여 진다.

다시 한번 더 유창한 영어 해설을 기대하였지만 오늘도 아쉬운 빈 발자국을 만들면서 굳게 잠겨진 대문 틈으로 내부를 한번 돌아보고 다음 목적지로 달려간다.             

      

4) 대구수목원 관람.  

남평문씨 세거지와 인흥서원에서 한 야산을 사이에 두고 자리하고 있는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곡동 284변지 주변에 있는 대구수목원(大邱樹木園)으로 안내하는데, 이곳 대구수목원은 1986년 12월부터 1990년 4월까지 약 3년 4개월 동안 대구 시민들이 배출한 생활 쓰레기 약 410만톤을 매립한 장소이다.

 

< "대구 수목원" 입구에 있는 폭포 >

 

매립이 종료 됨과 동시에 약 10년간 아무런 조치도 없이 방치하므로 주변 주민들의 불편과 더불어 비위생적인 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1998년 기본설계을 추진 함과 동시에 대구지하철 공사에서 나온 흙으로 객토하여 그 위에 나무와 꽃을 심어 조성한 공원이다.

총 면적 7만5천평 부지 위에 약 1.750종 450만 본의 나무와 함께 수 많은 야생화와 수생식물들이 자생하고 있어 대구시민들의 건강증진을 위한 새로운 휴식처로 부각하고 있는 대구수목원인데, 이곳 대구수목원도 2013년 4월 21일 나의 Blog에 이미 기술한 곳이라 별도 기록을 남기지 않고 단지 동문들과 함께 걸어본 곳 따라 추억의 사진첩을 만들려고 한다.    

 

< 유리 온실 내에 있는 "선인장" > 

 

< 온실 속에서 자라고 있는 "바나나" >

 

< 노란색을 가지고 있는 "가지" 도 구경하면서 >

 

< 대구수목원 중심지에 있는 "분수대" >

 

< 아름답게 피고 있는 "꽃무릇" >

 

< "생활 쓰레기" 매립과정의 설명문을 읽고 있는 동문 >

 

< 새롭게 단장한 "곡수거" 를 구경하면서 >

 

< 땅과 하늘을 나타내는 "방지원도" 공원 >

 

5) 용천사에서의 만남.

이렇게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대구 인접지역에 있는 관광지를 산책하다가 초대한 동문과의 약속 시간의 임박으로 대구 앞산을 관통하여 만든 새로운 터널을 통과하여 1차 집결지 용천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별장에서 기다리는 동문에게 도착하였다는 전화를 걸고 옹천사 경내를 구경하는데, 이곳 용천사(涌泉寺)는 비슬산 동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로 신라 문무왕 10년(670년)에 의상법사(義湘法師)가 창건하여 옥천사(玉泉寺)라 하였으며 당시 옥천사는 해동화엄전교(海東華嚴傳敎)의 10대 사찰 중 한 곳이라고 하였다.

고려 원종 8년(1267년) 일연선사(一然禪師)가 중창하여 불일사(佛日寺)라 하였다가 다시 용천사로 고치고, 임진왜란 후 조선 인조 9년(1631년) 조영대사(祖英大師)가 삼중창 하였으며 순조 5년(1805년) 의열화주가 크게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용천사는 맑고 풍부한 석간수가 끊임없이 용솟음쳐 흘러내리고 있어 "용천(湧泉)" 이라 불려진 것이라고 하는데, 전성기에는 일천여명의 승려가 수도를 하였다고 한다.

용천사의 부속 암자(庵子)로는 백련암, 청련암, 일련암, 남암, 서암, 내원암, 부도암 외 47개소가 되었다고 전하여 지고 있으나 오랜 세월 속에서 대부분 암자들이 사라지고, 사찰에서 30m 떨어진 곳에 2m 높이의 부도 6기가 사찰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사찰 내 건물 중 대웅전(大雄殿)은 1631년 3중창 때 건축한 것으로 문화재에 지정되어 있으며, 용천사는 지금까지 24명의 도인이 배출하였으며 앞으로 104명의 도인이 더 배출한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 사찰이라고 한다.    

 

< 문화재로 지정되어진 "대웅전" 과 명부전 >

 

사찰에는 넓은 마당과 함께 일단의 축대 위에 있는 대웅전 건물과 더불어 주변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범종각, 용천, 요사채 등의 건물이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있으며, 특히 사찰 입구에 용천에서 솟아나는 생수를 받아가기 위한 Pipe로 연결하여 일부 대구시민을 비롯하여 지역 주민 대부분이 이 물을 사용하고 있다.

                                                                                                  

< 대웅전 건물 왼편에 있는 "응진전" >

 

< 용천사 마당 가장자리에 있는 "범종각" >

 

< 한국 최고의 물 맛을 자랑하는 "용천" > 

 

< 부처님과 함께 하는 "동자승" 인형 >

 

친구 별장이 이곳 용천사 바로 아래에 있어 한 5분 내에 도착하므로 서울 동문과의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최종적으로 참석 인원을 점검하여 보는데, 오늘 대구에 거주하는 동문 7명 중 2명이 건강(健强) 상으로 참석이 불가능하다고 하여 총 9명의 모임을 가진다.  

 

6) 동문 별장 방문과 더불어 저녁식사.

용천사 바로 아래에 있는 동문 별장으로 들어가 먼저 실내 및 실외를 구경하는데, 별장은 약 100평 부지 위에 2층으로 지어진 건물이 1층과 2층 합계 25평 정도의 건평을 가진 단촐한 집이 된다.

 

< 초대 받은 동문의 "별장" 전경 >

 

< 아담하게 지어진 "별장과 주인장 동문" >

 

밖에는 잘 조성되어진 정원과 더불어 2마리의 개와 함께하고 있는 실외를 한번 돌아보고 건물 내부로 들어가니, 1층에는 거실과 더불어 식당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2층에는 화장실과 함께 침실로 꾸며진 매우 단촐한 건축물이다.

 

< 별장 앞에 있는 "정원" >

 

< 2층에 있는 단촐한 "침실" >

 

< 침실 창문에서 바라보는 "골목길" >

 

동문 사모님은 아직 대구시내 모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므로 집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지 못하여 인접하게 있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예약하였다고 하면서, 한 2-3분 정도 걸어 식당으로 들어가니 이미 한방 녹두 닭백숙 음식이 준비되어 있다.

 

< 저녁식사로 예약한 "거송정 식당" 전경 >

 

< " 한방 녹용' 을 전문적으로 요리 한다는 현판 >

 

이 식당 주 메뉴로 요리하는 닭백숙은 녹두를 사용한 음식이 되므로 별식의 맛을 가진 식사가 되어 약간의 소주와 함께 기나긴 저녁식사 시간이 가지고, 다시 별장으로 돌아와 준비한 후식의 맥주와 과일로 2차 음주시간을 가진다.

 

< "한방 녹두 닭백숙" 을 즐기는 동문 >

 

< 다시 별장으로 돌아와 "2차 음주시간" 를 즐기는 동문 >

 

장시간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별장에서 다수의 인원이 합숙하기에 많이 비좁고 숙박에 따른 이불자리가 구비되지 않아 동문의 비용 배려로 인접하게 있는 펜션으로 이동하게 한다.

       

7) 오크랜드 속소로 이동.

비슬산 언저리를 돌아 "오크랜드" 라는 폔션촌으로 이동하는데, 이 편션촌은 청도와 인근 대구지역에서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군불로" 라는 찜질방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각 건물이 독립되어 있으므로 매우 안락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펜션에서 우리 일행이 머물 숙소는 "독도" 라는 건물로써 2개의 방과 거대한 거실로 이루어진 약 40평 규모의 2층 건물인데, 신축한지가 오래되지 않아서 그런지 매우 깨끗한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다.

 

< "오크랜드 펜션" 의 옛 조감도 >

 

< 일행이 하루밤 머문 "독도관" >

 

< 독도관 뒤편에 있는 "한국관" >

 

< 오크랜드 중앙에 있는 "수영장" >

 

< 다양한 형태의 "펜션" 건물 >

 

동문 집에서 펜션으로 이동할 때 친구가 준비하여 온 음식과 주류를 앞에 두고 3차 음주시간을 가지는데, 다시 기나긴 인생 이야기가 밤을 지새우게 만든다. - 첫날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