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박물관.

한국에서 제일 넓은 교정을 가지고 있는 영남대학교 "박물관 및 임당 고분군" 을 돌아보면서.

용암2000 2014. 12. 6. 11:17

2014년 12월 4일 (목요일)

 

1. 영남대학교 현황.

금일 최고의 한파가 내리므로 추위로 인하여 움직이기가 가장 싫은 이 때, 추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실내에 있는 박물관을 찾아가 고고학도 연구하면서 여가를 보내기에 최상의 장소가 되는 곳 '영남대학교 박물관(嶺南大學校 博物館)' 을 찾아가 본다.

대구 지하철 2호선을 이용하여 영남대역에 내려 출구로 올라가면 학교 정문 안에 도착하면서 교내로 조금 들어가면 학교의 크기를 가름하는 조감도가 자리하고 있는데, 조감도에서 나타나는 학교 건물을 보면서 박물관 방향을 숙지하여 본다.

학교법인 영남학원은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214-1번지 자리하고 있는 약 백만평의 캠퍼스 교정과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 5동 317-1번지에 있는 영남대학교 병원 캠퍼스로 나누어 지는데, 원래 1947년 재단법인 대구대학과 1950년 재단법인 청구대학으로 각각 존재하는 것을 1967년 합병하여 영남대학교로 탄생되어진 학교이다.

대학교 학부로는 문과대학, 이과대학, 공과대학, 법과대학, 정치행정대학, 상경대학, 의과대학, 약학대학, 자연과학대학, 생활과학대학, 사범대학, 조형대학, 음악대학 등 13개의 단과대학과 생명공학부, 중국언어문화학부, 섬유패선학부 등 4개의 학부 등 약 80개 학과에 32.500명이 공부하고 있다.

대학원으로는 일반대학원 외에 교육대학원, 행정대학원, 경영대학원, 환경보건대학원, 조형대학원 등 9개의 대학원으로 학생 3.375명이 연구 활동하는 상아탑으로 약 1.000여 명 교수님 지도 하에 공부하는 학생수가 총 36.000여 명이 된다.

부속기관으로는 영남대학 부속병원으로 개원한 영남의료원 이외에 중앙도서관, 박물관, 정보전산원, 신문방송사, 국제교류원, 시청각교육원, 중앙기기센터, 생활관, 보건진료소, 출판부, 고시원, 외국어 교육원 등이 있다.

부설 연구소로는 인문과학연구소, 기초과학연구소, 공업기술연구소, 사회과학연구소, 정보통신연구소, 조형연구소, 방재연구소 등이 있고, 법인관계 교육기관으로는 영남이공대학이 함께 한다고 한다.

 

< "영남대학교" 정문 >

 

< 광활한 교정을 가진 영남대학교 "조감도" >

 

< 영남대학교 교정의 중앙 "로타리" >

 

< 학교에서 제일 높은 지상 20층 건물이 되는 "중앙 도서관" >

 

2. 박물관 관람.

이렇게 방대한 기구와 더불어 넓은 부지의 정문 왼편 야산 위에 박물관 건물이 자리하므로 추위로 인하여 바로 박물관을 올라가는데, 박물관 건물 주위에는 야외 전시장이 자리하고 있어 몇 점의 전시물을 구경하여 본다.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전시물은 2010년 10월 기준으로 유물이 약 13.745점이 있으며, 그 외에 등재하지 않고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는 유물이 약 20.000여 점, 그리고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한 후 위탁 보관 또는 임시 보관하고 있는 유물이 23.000여 점이 된다고 한다.

그 중에서 경산 복사리 고분 출토분 158점, 경주 황남동 110호 고분에서 발굴한 유물 447점, 경주 미추왕릉 고분군 1.411점. 칠곡 구암동 고분 113점, 경주 인왕동 고분군 2.262점, 경산 임당동 고분군 10.316점, 대구 시지택지지구 내 유적 8.039점, 영천 황산리 유적 118점, 포항 대련리 유적 227점, 대구 월성동 유적 250점 등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니 입구에 안내를 담당하고 있는 학생에게 홍보용 팜플렛 한장을 얻고, 전시실 내부 구조와 더불어 전시하고 있는 내용물을 대충 숙지하고 나서 1층 바닥에 표시하고 있는 화살표 따라 전시실로 들어가 본다. 

박물관 전시실은 총 700여 평으로 11개의 전시실과 로비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 로비의 오른편 측면에는 높이 6m "광개토대왕" 릉 비문의 탁본이 원형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

그러고 1층 전시실은 오른편으로 부터 고지도실, 조각공예실, 서화실, 전통문화 1실과 2실로 되어 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특별 전시실로 창랑 장택상 기증실, 표암 강세황 기증실, 오정 및 소정 기증실, 학교사 전시실, 임당 유물실, 아트 스페이스 등으로 구성되어 전국대학에서 다양하고 수준 높은 대학 박물관이라 하겠다.

 

1) 박물관 건물.

< 영남대학교 "박물관" 건물 >

        

2) 야외 전시장.

< 박물관 주변에 있는 "야외 전시장" > 

 

< 영남대학교의 상징 "천마" 상 >

 

< 야외 전시장에 진열하고 있는 "고인돌" >

 

3) 박물관 로비.

<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는 "로비" >

 

< 로비에 있는 "광개토대왕" 릉 비문의 탁본 >

 

4) 고지도실. 

< 첫 Booth "고지도실" 내부 전경 >

 

< 전시하고 있는 "고지도" Sample >

 

< "중국" 을 나타내는 고지도 >

 

5) 조각공예실.

< "조각공예실" 전경 >

 

< 조각공예실에 진열하고 있는 "불상" >

 

< 조각공예실에 진열하고 있는 "도자기" >

 

< 조각공예실에 진열하고 있는 "와전" >

 

6) 서화실. 

< "서화실" 에서 함께 공부하는 Wife >

 

< 서화실에 진열하고 있는 "병풍" >

 

< 서화실에 전시하고 있는 "영정" 그림 > 

 

7) 전통문화 1실. 

< "전통문화 1실" 내부 전경 >

 

< 전통문화 1실에 전시하고 있는 "의류 및 악세사리" >

 

< 선비들이 사용한 "갓" >

 

< 옛 조상들이 사용한 "신발" >

 

8) 전통문화 2실. 

< "전통문화 2실" 내부 전경 >

 

< 옛 조상들이 사용한 농사용 "소품" >

 

< 옛 조상들이 사용한 "신앙용" 제품 >

 

9) 박물관 2층 기증실. 

< "기증실" 로 들어가는 입구 >

 

< "기증실" 내부의 모습 >

 

< 창랑 "장택상" 선생님의 유품 >

 

< 창랑 선생님의 "기증품" >

 

< 보물 제239호 "분청사기 상감모란문매병" >

 

< 표암 "강세황" 선생님의 전시물 >

 

< "오정 및 소정" 선생님의 기증품 >

 

10) 특별 전시실. 

< "나무" 제작품 전시실 >

 

< 옛 조상들이 사용한 "목재용 생활 용품" >

 

11) 임당 유물실.   

< "임당 유물실" 의 전시 배경 >

 

< "임당 유물실" 내부 전경 >

 

< "임당 고분군" 에서 발굴한 유물 > 

 

< 임당 고분군에서 출토되어진 "인골" > 

 

< 임당 고분군에서 발굴한 "부장품" > 

 

< 임당 고분군에 발굴한 "금동관" >

 

< 임당 고분군에 발굴한 "무기와 말 안장" >

 

< 임당 고분군에 발굴한 "칼" >

 

< 임당 고분군에서 출토한 "그릇" >

 

< 임당 고분군에서 발굴한 다양한 "유물" >

 

3. 임당 고분군 구경.

영남대학교 정문 앞으로 나아가 신호등을 건너 유흥업소와 팬션이 도열하고 있는 숙박촌을 지나면서 뒤편으로 계속하여 전진하여 올라가면, 팬션촌이 끝나면서 야타마한 야산을 만난다.

이 야산의 언저리에 임당 고분군을 알리는 지시표가 곳곳에 붙어있고 야산의 언저리에 거대한 무덤군이 나타나는데, 이 무덤군이 조금 전 관람한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하여 많은 유물이 출토되어진 "임당 고분군(林堂 古墳群)" 이다.

입구가 되어지면서 거대한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있는 곳의 임당 고분군 초입에 설명문이 붙어있는데, 그 내용에는 이곳이 옛 "압독국(押督國)" 이라는 소국을 지배하였던 왕족의 무덤이라고 한다.

압독국은 우리가 원삼국(原三國) 시대라고 부르는 시기에 경북 경산시 일대에 존재하였던 소국이고, 삼국사기에 의하면 압량(押梁)이라고도 불렸던 이 나라는 신라의 모태가 되는 사로국의 파사 이사금에 의해 기원 후 102년 정복 당하였다고 한다.

역사서(歷史書)에 몇 줄 정도만 언급한 채 잊혀졌던 압독국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2년 도굴에 의하여 금동관 및 은관식 등 흔히 볼 수 없는 귀중한 유물들이 국외로 반출되는 것을 당국에서 적발하였는데, 이것을 계기로 영남대학교에서 발굴 조사에 따라 실체가 들어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상당수 무덤이 도굴된 뒤였지만 8기의 무덤에서 금동관과 은광식, 굽은옥 장식의 유리 목걸이, 금동과 은제 고리자루 큰칼, 금동 신발 등 화려한 유물과 무덤 주인공의 인골, 평생 이들을 보좌하여 살다가 끝내 죽임을 당해 함께 묻힌 순장자들의 인골이 고스란히 출토가 되었다고 한다.   

고분군으로 들어가면 수십기의 릉(陵)이 구릉의 정점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릉의 주변에는 울타리도 없고 또한 관리자도 없이 자연적으로 방치가 되어 있고, 특히 고분 내에는 안내하는 통로도 없이 마음되로 길을 만들어져 있어 무덤 위로 사람이 다닌 흔적으로 잔디가 파괴되어 있어 매우 가슴 아프게 한다.

아무리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 빈약하여도 최소한 사람의 다니는 길이라도 확보하여 무분별한 통행으로 인하여 잔디를 보호하고, 무덤의 주인공이 편안하게 누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무덤 끝지점에 고분에서 발굴되어진 유물과 더불어 내부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건물이 지어져 있지만 건물 위치가 무덤과 너무 가깝게 건축되어 있고, 또한 내부를 관람하지 못하도록 문이 굳게 잠겨져 있어 더욱더 아쉽게 만든다.

 

< "임당 고분군" 의 유래 >

 

< 고분군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 한그루 > 

 

< 울타리도 없이 방치하고 있는 "임당 고분군" >

 

< "잔디" 를 훼손시키고 있는 통로 > 

 

< 고분과 함께하는 "발굴 전시실" 건물 >

 

< 고분군에서 바라보는 "경산시가지" >

 

이것이 한국의 문화재를 관리하는 수준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보는데, 쓸쓸하게 고분군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다시 팬션촌을 통과하면서 영남대역(嶺南大驛) 지하철로 내려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