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문화 및 박물관.

비화가야가 숨쉬고 있는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박물관 및 주변 유적지" 를 관람하고 나서.(1)

용암2000 2015. 1. 6. 07:59

2015년 1월 4일. (일요일)

 

1월 3일 손녀 생일과 1월 4일 둘째아들 생일이 연일 이어지므로 동시에 생일파티를 개최하기에 다소 난이한데, 둘째아들이 근무하지 않는 일요일을 통하여 함께 축하파티를 열기로 한다.

그래서 생일파티는 부산에 있는 큰아들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는데, 부산으로 출발하는 길에 경남 창녕군 창녕읍에 있는 "창녕박물관" 과 더불어 창녕시가지에 산재하고 있는 유적지를 관람하고 늦게 부산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다소 시간적 여유가 발생하므로 느근하게 11시 경 집에서 출발하여 현풍 테크로폴리스로 가는 새로운 길을 이용하여 창녕으로 내려간다.

새롭게 건설되어진 테크노폴리스 길은 화원에서 비슬산을 관통하므로 구마고속도로 보다 훨신 단축하면서 원활한 길이 되므로 매우 편리한 길이다.

새로운 길은 이내 테크노폴리스 중앙을 통과하는데, 테크노폴리스에는 새로운 건물과 함께 신도시를 이루고 있는 아파트 빌딩들이 겨울에도 불구하고 신축에 따른 건설 현장이 활발하게 펼쳐지므로 몇 년 이내로 대구광역시의 새로운 도심권으로 탈바꿈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고 있다.

테크노폴리스에서 국도 5호선 따라 남쪽으로 한참 달려가면 이내 창녕시가지에 도착하는데, 시가지를 가로 질려 화왕산 방향으로 올라가다가 청도군으로 넘어가는 국도 20호선으로 꺽어 조금 올라가면 이내 창녕박물관 주차장에 도착한다.  

 

1. 창녕박물관.

 

1) 상설전시실 관람.

화왕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창녕박물관의 상설전시실에는 제1전시실 및 제2전시실로 나누어져 있고, 야외에는 별관이 되는 계성고분 이전 복원관 및 야외전시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 화왕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창녕박물관" 전경 >

 

< "창녕박물관" 개관 안내문 >

 

나는 이곳 창녕박물관을 작년(2014년 1월 25일) 친구와 함께 관룡산 산행을 끝내고 한번 방문하였지만, 그 때에는 내부수리로 관람이 불가능하였다.

오늘 박물관의 구경은 가능하지만, 시간적으로 점심식사 시간이라서 그런지 개미 새끼 한마리 없을 정도로 내부가 텅비어 있어 박물관 운영 방식에 매우 부족 함을 느끼게 한다.

박물관 입구로 들어서면 중앙홀의 오른편 가장자리에 삼국시대에 대형 고분을 축조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다오라마(Diorama)가 만들어져 있는데, 고분의 축조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한다.

 

< 고분 축조과정을 나타내고 있는 "디오라마" >

 

중앙홀에서 왼편으로 제1전시실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자리하고 있어 내부로 들어서면, 전시실 입구에 한반도 지도를 통하여 가야국들이 분포하고 있었던 지역을 표시하고 있다.

지도에 나타나는 가야는 모두 7개국이 되는데, 김해의 "금관가야", 고령의 "대가야", 성주의 "성산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고성의 "소가야" 상주의 "고령가야" 를 비롯하여 이곳 창녕에는 "비화가야(非火加耶)" 를 표시하고 있다.

 

< 7가야의 "고분" 분포도 >

 

이 7개의 가야국 중에서 금관가야, 대가야, 아라가야, 소가야 및 비화가야가 존재하였던 지역에서는 많은 고분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5개 지역의 고분에서 많은 유물과 유적이 발굴되므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접 박물관을 건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비화가야는 삼국유사 "5가야조(五加耶條)" 에서 "본조사략(本朝史略)" 을 인용하여 비화가야의 위치를 언급하면서 창녕과 고령이라는 2가지 설(說)을 소개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 삼국사기 "지리지 화왕군" 조에서는 본래 비자화국 또는 비사벌국 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렇게 비화와 같은 "비자화" 또는 "비사벌" 이 오늘날 "창녕군(昌寧郡)" 을 지칭하는 것 인데, 비화가야는 창녕을 중심으로 있었던 소국(小國)의 나라가 된다고 본다.

한편 비화가야의 모태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 에 따르면 변한 12국 중 하나로 전하는 "불사국" 이 었다고 생각이 되고, 비화가야의 발달과 소멸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살펴 볼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다만 신라가 창녕지역에 진흥왕 16년(서기 555년)에 비사벌주를 설치하고, 진흥왕 22년(서기 561년)에는 창녕 진흥왕순수비를 세운 것으로 보아 그 이전 신라에 병합되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비화가야는 비록 불확실한 역사를 가진 가야국이 되겠지만, 제1전시실에는 창녕지역에서 산재하고 있는 많은 고분과 더불어 출토 되는 유물을 통하여 7가야국 중 하나의 나라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소가 된다.

전시실 내부에는 가야인들이 살았던 주거지를 포함하여 지석묘 모형 및 유물이 전시하고 있는데, 더 안으로 들어가면 사적 제514호로 지정되어진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서 출토 되어진 토기 및 금속 유물들이 전시하고 있으며 전시실 한쪽 코너에는 진흥왕 순수비의 모형도 함께 만들어져 있다.

 

< 제1전시실에 진열하고 있는 "지석묘" >

 

< 창녕지역 "지석묘" 형성과정의 설명서 >

 

< 창녕지역에 있는 "묘제" 축조 모형도 >

 

< 창녕지역에서 출토한 "돌 칼" >

 

< 고분군에서 발굴한 "유물" >

 

< 고분에서 발굴한 "은제관장식" >

 

< 계성고분에서 발굴한 "유리장식 은제모자 소도자" >

 

< 지역 고분에서 발굴한 "청동뿔잔" >

 

< 함께 전시하고 있는 "진흥왕순수비" 모형 >

 

제1전시실과 연결하고 있는 통로 따라 제2전시실로 넘어가면, 제2전시실에는 창녕지역에서 발굴되어진 지석묘와 하부석실의 단면, 다양한 고분 축소모형 자료, 송현동 고분군에서 발굴되어진 순장묘의 역사 등을 전시하고 있다.

 

< 창녕지역에서 출토되어진 "기와" 조각 >

 

< "화왕산 산성 터" 내에서 발굴한 유물 >

 

< 송현동 고분에서 발굴한 "순장 인골" 모습 >

 

< 송현동 고분에서 출토되어진 "유물" >

 

< 고분군에서 발굴한 "청동거울" >

 

< 고분군에서 발굴한 각종 "도자기" >

 

< "제2전시실" 내부 진열품 전경 >

 

< "제2전시실" 의 출구 >

 

아울러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토기류 및 마구류, 장신구류 등 다양한 유물이 전시하고 있는데, 이 지역에서 출토되어진 자료를 통하여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여 주는 박물관이다.

 

2) 야외전시장 구경.

상설전시실을 나와 박물관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야외전시장이 자리하고 있는데, 야외전시장 주변에는 창녕 고분군에서 출토되어진 유물과 더불어 이 지역의 사찰 및 유적지에서 수집되어진 석재물이 전시하고 있다.

 

< "야외전시장" 의 전경 >

 

< 야외전시장에 전시하고 있는 "석재물" >

 

< 창녕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각종 "고분" >

 

다른 한편으로 계성고분 이전 복원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계성고분군의 복원관으로 들어가면 대형 고분 1기를 이전 및 복원하여 내부 구조를 직접 관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분군 주변으로 발굴 당시의 사진과 더불어 출토되어진 유물 사진들이 함께 전시하고 있으므로, 고분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 "계성고분 이전 복원관" 건물 전경 >

 

< 이전되어진 계성고분의 "단면도" >

 

< 계성고분 내부의 "석실" 모습 >

 

< "계성고분군" 발굴 및 조사 사진 >

 

< 계성고분 내에서 출토되어진 "유물" 사진 >

 

< 계성고분 주변에서 발굴되어진 "항아리" >

 

3) 교동 고분군 산책.

창녕박물관 도로 건너편에 있는 주차장으로 다시 들어가 주차장 뒤편에 있는 교동 고분군으로 올라가 보는데, 이곳 교동 고분군은 사적 제514호로 지정되어진 고총 고분군으로 총 40여 기가 복원 및 정비되어 있는 곳이다.

 

< 박물관에서 "교동 고분군과 송현동 고분군" 으로 가는 길 이정표 > 

 

< 박물관 앞에 있는 "교동" 고분군 >

 

< 박물관 옆 도로변에 있는 "교동" 고분군 >

 

< "고분군" 사이로 걷는 통로 >

 

< "발굴 및 조사" 를 끝낸 고분 >

 

< 화왕산으로 올라가는 방향에 있는 "송현동 고분군" 전경 >  

 

< 창녕 고분군의 "발굴 및 조사" 에 따른 설명문 >

 

1910년 대 여러 차례 발굴 및 조사를 통하여 토기류, 금속장신구, 옥류, 철제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 되었다고는 하지만 몇 점을 제외하고는 행방이 모연하다고 하는데, 출토되어진 유물의 모양과 더불어 고분군의 구조를 연구하여 볼 때 5-6세기 전반의 고분군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 1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