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촌 및 친척 동향.

4촌 형제 부부와 함께 지리산 주변에 있는 "한방테마파크" 외 겁외사 및 청학동의 관광.(2)

용암2000 2016. 7. 24. 23:23

2016년 7월 10일.(일요일)

 

3. 삼성궁 관람.

점심식사를 끝낸 일행은 다시 버스에 오르면서 "청학동 삼성궁(靑鶴洞 三聖宮)" 앞으로 들어가는데, 정문의 주변에는 옛날과는 많은 차이점을 나타내면서 다소 깨끗한 분위기와 더불어 계곡에는 장마로 인하여 풍족한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 삼성궁으로 들어가기 전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총무" >

 

< 삼성궁의 상징이 되는 "솟대" >

 

< 삼성궁 입구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폭포" > 

 

청학동은 지리산의 한 맥(脈)을 형성하고 있는 해발 1284m 삼신봉(三神峰)에서 뻗어내리는 계곡의 언저리 해발 850m 정도에 청학동()이 있어 붙은 이름으로, 청학(靑鶴)은 신라 말 고운() "최치원()" 선생님이 은거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푸른 학이 노닐던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 명종 때 이인로()가 지은 "파한집()" 에는 “지리산을 두류산이라고도 하는데, 이 산을 둘러싼 고을이 10여 주(州)에 이르면서 이 산의 신비를 다 알려고 하면 얼마 만큼의 세월이 걸릴지 모른다.

옛 노인들이 서로 전하기를 이 산속에 청학동이라는 곳이 있는데, 길이 매우 좁아 겨우 사람이 지나칠 만하고 어떤 곳에서는 아주 길이 막혀 기고, 엎드리고 하여 가까스로 수리를 들어가면 비로소 광활한 별천지가 펼쳐지면서, 거기는 양전옥토()로 곡식을 심기에 적당하며 오직 청학이 서식함으로 그런 이름으로 전 한다." 라고 할 정도로 비경 속에 숨어있는 동네이라 하겠다.

이러한 비경 속의 제일 상부에 자리하고 있는 청학동 삼성궁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매표소로 들어가는데, 먼저 매표소 입구에 붙어있는 삼성궁 조감도를 보면 옛날과는 너무나 많은 변화를 가져오면서 관람의 순서는 수행공간이 되는 삼선궁(三仙宮), 삼신산의 언저리에 있는 마고성(麻姑城)을 통과하여 배달성전 삼성궁(三聖宮)으로 넘어가는 3분화의 구역으로 나누어지고 있다.

성인 한명당 7.000원의 입장료를 요구하지만 경로의 혜택을 받고 있는 65세 이상은 3.000원의 입장료를 징수하므로 총무는 경로 및 성인을 파악하여 입장권을 구입 함과 동시에 출입문이 되는 대문을 통과하는데, 대문에는 "선국(仙國)" 이라는 글씨가 매우 독특한 필적이 된다.

 

< 삼성궁 입구 매표소와 함께 "선국"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대문 > 

 

삼성궁의 삼성(三聖)은 한배인(환인), 한배웅(환웅), 한배겸(단군)을 모시는 사당(祠堂)으로 배달 민족의 고유 경전이라는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의 삼화경과 삼륜(三輪), 오계(五戒), 팔조(八條), 구서(九誓) 덕목을 교리로 삼고 신선도를 수행하는 곳이다.

국풍(國風)인 천지화랑(天指花郞)의 정신을 연마하는 구조자들의 마을이며,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으로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실현하고자 하는 수행(修行) 도량이기도 하다.

삼성궁의 정확한 명칭은 "지리산청학선원 배달성전 삼성궁" 으로 이 고장 출신 강민주(한풀선사)가 1983년 고조선 시대의 소도(蘇塗)를 복원하여 민족의 성조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모셨다.

1984년 음력 3월 16일 삼성사(三聖祠)를 삼성궁(三聖宮)으로 개명하고 선도의 중흥을 꾀하기 위하여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화전민이 버리고 떠난 폐허 속의 원시림을 가꾸는 작업을 시작하였고, 또한 울타리를 만들어 행인의 출입을 막고 굴러다니는 돌을 모으고 연못을 파는 행선(行仙)을 하여 오늘날의 삼성궁을 만들었다고 한다.   

 

< 삼성궁 내력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매표소를 지나면 왼편의 계곡에는 많은 물과 함께 폭포수가 흘려 내려 주변으로 시원함을 느끼므로 많은 관광객들이 계곡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고 있으며, 오른편으로 막걸리 등 음료수를 판매하는 간이 주점과 더불어 거대한 청학의 지붕을 가지고 있는 "청학동박물관" 이 자리하고 있다.

 

< 청학의 지붕을 하고 있는 "청학동박물관" >

 

옛날에는 이 청학동박물관에서 부터 오른편 야산을 넘어서 바로 삼성궁을 들어갔으나 현재는 왼편의 계곡 따라 조성하고 있는 돌탑 사이로 만들어져 있는 삼선궁으로 들어가 관람을 하면서 계곡 따라 올라가면 마고성이라는 관람지역을 만나고, 이 마고성을 지나 야산을 넘어 삼성궁으로 넘어가는 새로운 길을 조성하므로 관광의 동선(動線)을 배가 되도록 꾸며 놓았다.

먼저 첫 관광구역이 되는 삼선궁 입구에서 부터 다양한 돌탑과 더불어 형형색색의 돌의 모양에 적합한 사람 또는 십이지상, 신선, 용, 악마 등 다양한 형상의 그림을 조각하므로 처음 부터 시선을 온통 돌과 돌탑에 두고 올라가야 한다.

 

< 첫 관람코스가 되는 "삼선궁" 으로 들어가는 일행 >

 

< 다양한 형상의 "얼굴" 을 돌에 조각한 바위와 돌탑 >

 

< 돌담 사이로 걷고 있는 "친척" >

 

< 바위에 조각하고 있는 "용과 기하학적 도형" >

 

< 삼선궁 중앙지점에 있는 "연못" >

 

< 거대한 "동굴" 도 지나면서 >

 

< "오신지문(午神之門)" 도 통과하고 >

 

< 점점 급경사의 "돌길" 도 걷고 > 

 

< "미신자문(未神之門)" 도 통과하고 >

 

특히 돌의 지형에 따라 엄청난 높이의 담장, 돌탑, 동굴, 석축 등을 쌓으므로 인간의 한계성을 느끼게 하는 삼선궁을 지나면서 높은 돌담으로 쌓여 있는 마고성 입구에 도착하여 진다.

 

< 거대한 높이의 돌탑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마고성" 으로 들어가는 입구 >

 

마고성의 주인공이 되는 마고 할멍은 2명의 딸을 두고 이들에게 황궁씨(黃穹氏), 백소씨(白巢氏), 청궁씨(靑穹氏), 흑소씨(黑巢氏)의 남여 각 1명이 되는 총 8명의 자녀를 두었고 이 자녀들이 각각 3남3녀를 낳으므로 이들이 인간의 시조가 되었고, 몇 대를 내려오므로 자손이 3.000명이 되었다고 한다.

성(城)안의 사람들은 품성이 순수하여 능히 조화를 알고 지유(地乳)를 마시므로 혈기가 맑았고, 수명은 한없이 길고 누구나 스스로 지키는 자재력으로 질서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어느날 둘째가 되는 백소씨(白巢氏)의 일족인 지소씨(支巢氏)가 지유(地乳) 대신 포도를 먹고 다른 사람에게도 먹게 함으로써 오미(五味)의 맛에 취하고 다른 생명을 취함으로써 천성을 잃게 됨과 동시에 수명이 줄어들고, 또한 이들은 성에서 쫒겨나게 되었고 성안에도 지유(地乳)가 끊어져 모든 사람들이 풀과 과일을 먹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사태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의 어른이 되는 황궁씨가 책임을 지고 마고 할멍 앞으로 나가 복본(復本)을 서약하고, 일행은 4개의 파로 나누어 성을 떠남에 있어 황궁씨도 일행을 이끌면서 북쪽 문으로 나가 현재의 동복아사아 지역의 천산주(天山州)로 갔다고 한다.

황궁씨와 그의 자손인 유인씨(有因氏)와 그리고 유인씨의 자손이 되는 환인씨(桓因氏)가 천년씩 3천년 동안 복본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열심히 닦은 결과 기후가 안정되고 사람들의 의식이 상승하여 인성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마고 할멍이 살고 있었던 성을 복원하여 만든 마고성을 관람하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계곡 따라 올라가면 마지막으로 거대한 호수와 더불어 마고성에 도착하여 지는데, 성의 웅장함에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다.

 

< "마고성" 입구에 있는 호수 >

 

호수에는 다양한 배들이 떠 있으면, 그 호수 주변으로 아기자기한 돌탑들이 도열하고 있는 성곽 따라 안으로 들아가면 마고 할멍이 살았던 삼신궁(三神宮)을 비롯하여 다양한 모습의 건축물도 함께하고 있다.

 

< 호수 가장자리에서 바라보는 "마고성" 전경 >

 

< 마고할멍이 살고 있는 "삼신궁" 움막집 >

 

< 마고 할멍이 살았다는 "움막집" 내부의 모습 >

 

돌담 사이로 한바퀴를 돌아서 성의 위쪽으로 올라가면 성벽 사이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람 얼굴들을 조각한 두상을 놓여 있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어 구경과 더불어 소로의 성벽 길로 상부로 올라가면 마고성의 한눈이 내려다 보인다.

 

< "얼굴" 모양을 조각하고 있는 바위  >

 

< 다양한 "깃발" 로 장식하고 있는 마고성 >

 

< 마곡성 제일 뒤편에 있는 "무덤" 모양의 동산 >

 

< 마고성 제일 상부에서 내려보는 "연못" >

 

이 마고성을 빙돌아서 한 고개를 넘어가면 배달성전이 되는 "삼성궁(三聖宮)" 으로 넘어가는데, 옛날에는 밑에 있는 청학박물관에서 우측의 야산 300m 정도를 넘어서 오면 삼성궁을 들어가는 문이 있었다.

 

< 마고성에서 삼성궁으로 넘어가는 "고개" >

 

이 문이 항상 잠겨져 있으면서 입구에 "징을 세번 치고 기다려 주세요" 라는 펫말에 따라 다수의 관광객이 운집하면 안에서 안내원이 나와 삼성궁의 내력 설명과 더불어 참배를 올리는 삼성궁으로 안내하였는데, 이 고개에는 어떠한 대문이나 안내원도 없이 그냥 들어가도록 되어있다.

고개를 넘어 아래로 내려가면 길 좌측편으로 한대의 중장비를 의존하면서 다수의 인부들이 전망대를 보수하고 있는데, 오른편 야산 기슭에는 폐가와 더불어 조그마한 한풀선사를 기원하는 선원이 자리하고 있다. 

 

< 고개 마루에서 내려보는 "삼성궁" 전경 >

 

< "전망대" 를 보수하고 있는 중장비 >

 

< "한풀선사" 를 기원하는 선원 >

 

이 길을 내려서면 넓은 광장과 함께 2개의 연못이 자리하고 있는데, 왼편 구석에 있는 연못에는 태극 모양을 하고 있으며 광장 중앙에 있는 연못은 배달성전으로 올라가는 돌다리가 놓여있다.

 

< "태국 모양" 을 하고 있는 연못 >

 

수 많은 멧돌과 다듬잇돌로 조화를 이루면서 쌓여 놓은 다양한 탑을 구경하면서 축대 위로 빙돌아서 올라가면,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고 있는 배달겨레의 성전이 되는 메인(Main) 건물 "건국전(建國殿)" 에 도착한다.

 

< 수 많은 "멧돌과 다듬잇돌" 로 만들어져 있는 삼성궁 정원 >

 

건물 왼편으로 들어가면 삼성궁에 대한 내력을 기술하고 있는데, 오랜 옛날 부터 전해 내려오던 선도를 이어받은 한풀선사가 수자(修子)들과 함께 수련하며 하나하나 돌을 쌓아 올려 기묘한 형상으로 쌓은 1,500여 개 돌탑이 주변의 숲과 어울려 이국적인 정취를 풍겨낸다.

이 돌탑들은 이 곳에서 원력 솟대라 부르는데, 솟대는 삼한 시대에 천신께 제사 지내던 성지 즉 소도(蘇塗)에는 보통 사람들의 접근을 금(禁) 할려고 높은나무에 기러기 조각을 얹은 솟대로 표시를 하였다.

지금 성황당에 기원을 담은 듯 소원을 빌며 지리산 자락의 돌로 솟대를 쌓아 옛 소도를 복원하고 있는데, 3,333개의 솟대를 쌓아 성전을 이루고 우리민족 고유의 정신문화를 되찾아 홍익인간 세계를 이루면서 무예와 더불어 가(歌), 무(舞), 악(樂)을 수련하는 이들의 터전이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 건국전 오른편에 있는 "돌탑" >

 

 

 

< "삼성" 을 모시고 있는 건국전 전경 >

 

< 전면에서 바라보는 "삼성" 의 영정 >


정말 많은 돌탑과 돌의 조형물을 구경하면서 삼성궁을 떠나기로 하는데, 옛날에는 삼성궁 앞에 쉬었다 가는 찻집이 자리하고 있어 그곳으로 내려가 보니 영업을 하지 않고 문이 굳게 잠겨져 있어 다소 아쉬움이 일어나는 장소가 된다.

 

< 건국전에서 내려보는 "앞 마당과 연못" 돌다리 >

 

< 떠나는 길에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삼성궁" 전경 >

 

< 옛날 찻집으로 사용한 "휴게소" 건물 >

 

하산의 길은 옛날 출입문이 되는 곳으로 내려가는 길로 만들어져 있는데, 옛날 삼성궁 출입을 위하여 종을 치면서 기다렸던 대문은 없이지고 현재는 공사용 차량과 더불어 승용차 들의 왕래가 가능하게 하는 넓은 도로로 탈바꿈 하고 있다.

 

< "차량" 도로로 변경 되어진 하산의 길 >

 

도로 따라 한모퉁을 돌아서 내려가면 입구에서 처음 지나친 청학동박물관 건물 내부로 들어가게 하는데, 박물관으로 들어가 관람 하기에는 다소 피곤이 엄습하므로 바로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가로 내려가 출구로 나가기로 한다.

 

< "청학동박물관" 으로 안내하고 있는 길 > 

 

< "기념품" 을 판매하는 상가 내부로 연결하는 통로 >

 

입구에 도착하니 노점상가에서 몇 명의 4촌들이 파전과 함께 동동주를 마시고 있어 합석하여 몇 잔의 술을 마셔보는데, 이곳 또한 청학동의 물 맛으로 그런지 아니면 삼성궁을 한바퀴 돌아서 내려오는 것에 대한 갈증에서 그런지 매우 좋은 술 맛이 된다.

 

 

< 청학동박물관을 벗어나면서 "막걸리"를 즐기는 일행 > 

 

한참을 기다림 후 사촌들이 속속 도착하므로 함께 매표소 건물 앞에 있는 대문으로 나가는데, 이 대문을 통하여 들어왔던 전면에는 선국(仙國)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지만 후면에는 홍익문(弘益門)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 "삼성궁" 을 떠나면서 >

 

4. 화개장터의 방문.

삼성궁을 탈출하여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을 선정하기로 하는데, 몇몇 여동생들이 모처럼 나들이를 나왔으므로 다소 시간이 걸려도 화동군의 다른 명소가 되는 쌍계사 방향으로 우회하자는 의견이 분분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총무가 기사분과 협의한 결과 지금의 시간으로 쌍계사 까지 갔다가 관람 후 돌아서 오는 것은 불가능하고, 쌍계사 입구에 있는 화개장터를 돌아보는 것으로 하면서 남원으로 올라가 88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남성주 IC 및 대구로 돌아서 가는 것으로 하겠다고 한다.

삼성궁을 떠나는 버스는 지방도로 1003번을 이용하여 하동군청 방향으로 내려가 섬진강 따라 만들어진 국도를 이용하여 구례방향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고불고불한 시골길이라 음악에 의존하면서 약 1 시간 정도 달려 오후 6시 경 화개장터에 들어선다.

                  

< 화개장터로 들어가는 "문" >

 

< 화개장터의 "변천사" >

 

나는 화개장터를 몇 번이나 방문한 곳이면서 나의 블로그(2012년 7월 29일)에 기술하고 있는 내용과 같이 여름 휴가차 가족들과 함께 화개장터 건너편에 있는 한 모텔에서 하루밤 머물면서 구경한 곳이라 모든 것이 익숙한 거리가 되는데, 현재 화개장터는 상설시장으로 운영하므로 다소 늦은 시간에도 많은 사람이 움직이고 있다.

장터 중심지를 형성하고 있는 재래시장을 한바퀴 돌아보면서 시골의 인심을 느껴보는데, 이곳 화개장터는 노래가수 "조영남" 씨가 불려 희트를 친 "화개장터" 노래말과 같이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이 어울려서 형성하고 있는 전통 시골장터이라 하겠다.

 

< 아직 영업하고 있는 "화개장터" 전경 >

 

< "상설시장" 으로 운영하고 있는 화개장터 >

 

< 문을 잠그고 있는 "대장간" >

 

< 시장을 구경하는 "관광객" >

 

4촌들은 이곳 섬진강 맑은 물에서 잡은 은어회와 함께 한잔의 술을 마시기 위하여 한 주점으로 들어가지만 나는 민물회가 싫어 시장 주변을 돌아보는데, 시장 가장자리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조영남 동상이 자리하므로 많은 사람들이 동상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장소가 새롭게 만들어져 있다.

 

< "은어회" 를 판매하는 식당 >

 

< 가수 "조영남" 의 화개장터 노래비 >

 

< 시장의 중심지에 있는 "조영남" 가수 동상 >

 

< 동상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 >

 

< 시장의 중심지에 있는 "정자" >

 

< 시장을 가로질려 흐르고 있는 "화개천" >

 

주어진 시간으로 적당하게 구경을 끝내고 나서 버스에 올라 출발하기로 하는데, 버스는 계속되는 19번 국도를 이용하여 구례읍과 남원시 외곽을 돌아서 88고속도로에 진입한다.

약간의 술 힘으로 모두가 일어나 차량의 복도를 누비면서 춤으로 젊음으로 발산하기로 하는데, 다소의 교통 위반이 발생하지만 기사분의 재치 있는 단속을 피하는 신호에 적응하면서 남성주 Toll gate 까지 춤을 추는 시간으로 이어진다. -오후 관광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