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군 문화와 산행.

의병의 고장 중 하나이면서 의병의 맥을 유지하고 있는 "합천임란창의사" 를 관람하여 보는데.

용암2000 2016. 12. 17. 20:24
2016년 12월 6일.(화요일) 

합천댐에서 황계폭포로 가기 위하여 야산의 모퉁이를 돌아서 조금 내려가면 댐의 가장자리에 "합천임란창의사(陜川壬亂彰義祠)" 라는 거대한 입간판과 더불어 초입 길이 나타나므로 그곳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 "합천임란창의사" 를 가르키는 입간판 >


               < 입간판과 함께 하는 "창의사" 안내문 >


높은 경사면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비탈길 따라 조금 올라가면 홍살문이 자리하면서 넓은 광장이 나타나는데, 광장의 입구에는 주차장과 더불어 정원, 정자, 관리소 및 화장실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 창의사로 들어가는 길 경사면 끝에 있는 "홍살문" >


        < 주차장과 함께 1단의 광장에 있는 "정자와 관리소" 건물 >


이 광장 중앙지점에 합천임란창의사로 올라가는 높은 계단과 함께 계단 우측으로 임란창의사의 종합 안내도와 더불어 창의사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이 있어, 먼저 안내문을 정독하여 본다.


          < 계단의 우측에 있는 "종합 안내도" >


           < "임란창의사" 의 조감도 >


이곳은 조선 중기 임진왜란(선조 25년 : 1592년)과 정유재란(선조30년 : 1597년) 때 우리나라를 침략한 왜군과 맞서 싸워, 국난(國亂)을 극복한 합천 선민들의 충혼의백(忠魂義魄)을 모시고 있는 성스러운 장소이다.
120여 년 간 전국시대(戰國時代)를 끝낸 일본이 대륙정복의 허황된 꿈을 갖고 16만 대군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국토를 유린하자, 패퇴를 거듭하는 관군을 대신하여 우리 선조들은 붓과 호미를 던지고 분연히 일어났다.    
정인홍 의병장을 중심으로 하여 윤탁, 박사제, 전치원, 이대기를 비롯한 의병 4-5천여 명이 봉기하여 초계, 현풍 등 낙동강 연안 일대와 고령, 성주, 진주, 금산 등으로 진출하여 내륙 깊숙히 북상한 적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호남 의병군과 합동하여 혈전 끝에 적을 여지없이 무찔러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 서 있었던 나라를 구하는데 공헌하였을 뿐 아니라, 전국 의병궐기에 계기가 된다.
세계전사상(世界戰史上) 유례없는 의병군의 맹렬한 반격으로 전의를 상실한 일본군이 전선을 축소하면서 남해안으로 물러났고 이에 힘을 입어 관군들이 재 정비와 더불어 명군의 지원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 함으로써, 침략군을 물리치고 승리를 쟁취하게한 것은 우리 선조들이 펼친 의병 활동의 빛나는 공적이라 하겠다.
또한 정유재란 시에는 의병창의(義兵倡義)가 전무한 가운데 유일하게 합천지역에서 창기(倡起)하여 약탈과 살육을 자행하는 왜적을 소탕하였고, 지원하려 오는 명군의 작전을 향도(嚮導)하여 우리의 강토를 침략한 왜군을 물리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여기에 민족정기를 발휘하여 나라와 겨례를 수호한 의병장 및 의병 113명의 신위(神位)와 더불어 이름없이 산화한 수 많은 무명의사의 충혼(忠魂)을 모셔 숭고한 업적을 기리고 있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설명문을 읽고 나서 관리소로 들어가 창의사 팜플릿 한장을 부탁 할려고 하니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아주머니 한분이 팜플릿과 더불어 유물관 현광등 불을 올려 줄 것이니, 그곳에도 관람하여 보라고 하면서 친절하게 관람 순서를 가르켜 준다.


                 < 창의사 앞에 있는 "관리소" 건물 >


이윽고 창의사로 올라가는 첫번째 계단으로 진입하지만 계단이 너무나 급경사로 이루어지므로 마음 속으로 숫자를 카운팅 하면서 한참 올라가면 2단의 광장에 도착하여 지는데, 광장의 중앙에는 창의사의 대표적 조형물이 되는 기념탑이 서 있다.   


   < 창의사로 올라가는 "첫번째 계단과 기념탑" >


3개의 기둥이 상호 의존하면서 기대에 서서 있는 기념탑의 하부에는 3개의 날개 깃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 날개의 깃 위에는 의병들이 낫과 호미, 쇠스랑이를 들고 총과 칼로 무장한 일본군과 대항하면서 싸우고 있는 동상의 모습이 너무나 숭고하게 느끼게 한다.


            < 2단의 광장 중앙 3개의 기둥이 상호 마주하고 있는 "기념탑" >


        < 기념탑 하부에 있는 "의병" 동상 >


이 기념탑에서 다시 높은 계단으로 올라가면 외삼문의 되는 숭인문(崇仁門)을 통과하고 나면 또 다시 3단의 광장에 도착하여 지는데, 광장의 양쪽 끝지점에는 협문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왼편으로는 사적비(事蹟碑)가 자리하고 있고 오른편에는 아름다운 정원과 더불어 분수대가 자리하고 있지만 현재는 겨울철이라서 그런지 물도 없이 삭막함이 묻어난다.


            < 2번째 계단과 함께 하고 있는 "외삼문" >


          < 3단 광장 양쪽에 있는 "협문" >


              < 3단 광장 왼편에 있는 "사적비" >


              < 3단 광장 오른편에 있는 "분수대" >


또 다시 높은 계단을 이용하여 상부로 올라가면 4단의 광장이 나타나는데, 이 광장의 오른편에는 일반적으로 강의 또는 회의를 개최하는 경의당(敬義堂)과 왼편으로는 유물관(遺物館) 건물이 마주보고 있다.


                      < 4단의 광장으로 올라가는 "3번째 계단" >


             < 4단의 광장 오른편에 있는 "경의당" 건물 >


               < 4단의 광장 왼편에 있는 "유물관" 건물 >


관리소에서 창의사를 관리하는 아주머니가 유물관 전시실 등불을 켜주므로 내부로 들어가, 임진왜란 때 낙동강 주변에서 전투을 전개한 의병장과 더불어 의병들이 활동한 역사적인 내력을 관람하게 만든다.


  < 유물관으로 들아가는 "도입부" 문 >


본 유물관에는 남명 조식 선생님의 제자들 중 불현듯이 일어나서 활동한 곽재우와 정인홍 장군을 비롯하여, 항일 의병 활동과 관련 되는 유물을 한 곳에 모여 있어 관람의 포인트가 되는 곳이라 하겠다.
전시실 내부에는 좌측으로 부터 도입부, 임진왜란의 발발, 의병의 발생지 합천, 항일의병의 활약상, 합천의병의 맥, 정보검색 코너 등으로 일목요약하게 꾸며지므로 임진왜란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습득하기에 매우 좋은 전시실이 된다. 


        < "전시실" 내부의 관람 방향 안내도 >


특별하게 이곳 합천군에서 배출한 정인홍 장군은 남명학파의 중추적 역활과 더불어 합천 주변에서 치루어진 초계 마진 전투, 성주성 전투, 무계 전투 등에서 맹렬하게 활동하므로 일본놈들의 전의(戰意)를 상실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 "임진왜란" 의 발발 과정 설명문 >


           < 한반도를 유린한 "일본군" 의 동선 >


         < 영남지역에 활동한 "의병장" 이름 > 


          < 의병들이 사용한 "유품" 전시물 >


         < 합천지역에서 치열한 전투가 발생한 "초계 마진 전투" 설명문 >


             < "정인홍" 장군의 활동상 >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관람을 끝내고 다시 계단을 이용하여 올라가면 내삼문이 되는 충의문(忠義門)에 도착하면서 충의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아가면, 5단이 되는 마지막 광장에 도착하면서 광장의 중앙에는 선열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있는 "창의사(彰義祠)" 가 자리하고 있다.


    < 창의사로 올라가는 4번째 계단과 함께 하는 "내삼문" >


창의사로 들어가는 몇 단의 계단으로 올라서면 창의사 정문 앞에 향로가 놓여 있어 향불 하나를 켜고 잠시 참배를 올리고 나서 내부를 들어다 보니 백면 따라 가득하게 113명의 위패들이 모셔져 있는데, 중앙에 다소 큰 3개의 위패 중 제일 중앙에 "정인홍(鄭仁弘)" 이라는 이름 석자가 선명하게 보이고 있다.


          < 113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창의사" 전경 >


          < 벽면 따라 모시고 있는 "위패" >


          < 중앙에 모시고 있는 "정인홍" 장군 위패 >


그러고 나서 창의사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하는데, 창의사 건물에 붙어있는 현판이 이곳 합천군이 배출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글씨(조금 후 알았음)이며 또한 창의사 오른편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식수한 백송 한그루가 추운 겨울에도 푸른 빛을 유지하면서 독야청청 하고 있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방문 식수한 "백송" >


이것으로 창의사 관람을 끝내고 떠나기 위하여 다시 내삼문 입구에 서서 조금 전에 올라온 212계단을 내려보고 있으니 현기증이 발생하지만, 반대로 넘어가는 햇살이 해발 634m 암벽 투성이의 악견산에 걸쳐 있는 모습이 환상적이 그림을 만들고 있다.  


            < 내삼문에서 내려보는 "악견산" 전경 >
  
           < 외삼문에서 바라보는 "악견산" >


무릎에서 발생하는 통증으로 인하여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관리소로 들어가 전등불을 밝혀 주므로 관람을 잘 하였다는 이야기와 함께 212개의 계단을 만든 이유를 물어보니, 옆에서 이야기를 경청하는 소장님이 특별한 의미는 없고 터의 경사면이 너무나 높아 건축학 상 발생한 자연적 계단의 슷자이라고 한다.
아울러 창의사에 대한 내력을 문의하는 과정에서 이곳 창의사 현판이 전직 전두환 대통령의 친필이라는 것을 인지하였고, 아울러 현재 정인홍 선생님의 위패가 중앙에 자리하고 있지만 정인홍 선생님의 스승이 되면서 이곳 합천군 출신이 되는 남명 조식 선생님의 위패를 상전에 모실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임진왜란(壬辰倭亂)에 대한 이야기를 교환하는 순간 관리소 아주머니가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련하여 주므로 너무나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하는데, 합천임란창의사를 관리하는 두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함께 하고자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