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군.(가야산)

해인사 주변에 있는 16 암자 중 적멸보궁이 있는 "길상암" 을 포함하여 5개 암자를 탐방하면서.

용암2000 2017. 7. 16. 20:10

2017년 7월 13일.(목요일)

 

1. 2차 해인사의 산내암자 탐방.

오늘도 나의 농원에서 필요한 식수를 구하기 위하여 가야산 언저리에 있는 성주군 수륜면 백운동으로 올라가기로 하는데, 식수를 획득하기 전 해인사(海印寺)로 들어가 사찰 주변에 산재하고 있는 암자를 탐방하여 보기로 한다.

해인사를 홍보하는 홈 페이지에 의거하면 산내에는 16개 암자가 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금년 6월 12일 백련암을 비롯하여 6개의 암자를 탐방하므로 나머지 10개 암자에 대하여 2회에 거쳐 방문 할 계획을 수립하여 본다.

금일은 전국적으로 35 - 38도가 넘겠다는 폭염 주의보로 인하여 움직이는 동선(動線)을 가능한 짧게 하는 방향으로 선정하여 이동하기로 하는데, 제일 먼저 승용차로 접근에 가장 쉬운 길상암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2. 길상암(吉祥庵) 탐방.

"길상암(吉祥庵)" 은 몇일 전(7월 9일) 백봉회에서 해인사 소리길 트레킹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만난 암자인데, 그 때는 트레킹이 주요 목적이므로 그냥 지나친 것을 이번에는 암자 탐방 계획에 의거 방문하기로 한다.

넓은 공터와 함께 하는 주차장에 승용차를 주차시키고 먼저 암자가 자리하고 있는 풍경을 감상하여 보는데, 암자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남산제일봉의 3부 능선 정도에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 남산제일봉 3부 능선 근처에 자리하고 있는 "길상암" 초입에 있는 명진교 다리 >

 

명진교를 건너 길상암 입구로 접근하면 오른편으로 거대한 3개의 석조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제일 아래쪽에는 미륵보살과 더불어 미륵보살 주변으로는 58명의 부처님이 원형으로 자리하고 있다.

 

       < "길상암 입구 오른편에 있는 "석조물" >

 

중앙에는 약사여래불이 자리하고 있으며 제일 위쪽에는 불광보탑(佛光寶塔) 이라고 불려지는 5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석탑에는 미얀마 무소비타 종정으로 부터 보관하고 있는 34과의 부처님 진신사리 중 1과를 이관하여 봉안하고 있는 탑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 뒤편 야산에는 길상암을 창건한 영암스님 및 중건한 명진스님의 공덕비와 함께 명진스님의 동상을 함께 하므로 비록 작은 암자에서 이렇게 거대한 석조물을 설치하는데, 얼마나 풍족한 재원을 보유하고 있는지 궁궁하여 진다.

 

             < 5층 석탑 뒤편 야산에 있는 "영암 및 명진스님" 공덕비 >

 

다시 입구로 돌아오면 산의 비탈면 따라 길상암으로 올라가는 높은 나무테크 계단이 조성되어 있는데, 경사도가 작난이 아니라 이내 얼굴에는 땀으로 번벅이 되면서 많은 휴식을 취하면서 계단으로 올라가면 계곡의 오른편 언덕 위로 길상암 건물들이 마치 포도송이와 같이 매달려 있다.

 

              < "길상암" 으로 올라가는 급경사의 나무테크 길 >

 

             < 길상암으로 올라가는 길 옆에 피고 있는 "꽃" >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 터가 너무나 급경사면을 이루고 있다 보니 암자의 건물 전체가 층층으로 건립되어져 있는데, 노약자나 어린이들은 접근하기에 매우 인내를 요구하는 암자가 되어진다.

 

                   < 층층으로 건립되어진 건물 옆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나무테크 길" >

 

처음 만나는 건물 앞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따라 야산으로 넘어가면 하나의 토굴 같은 "마야불모전(摩耶佛母殿)" 건물은 만나는데, 이 건물에는 석가모니의 어머님이 되는 마야(摩耶) 부인을 모시는 곳으로 지금 까지 나는 많은 사찰을 방문하였지만 석가모니 어머님을 모시고 있는 사찰은 처음 대면하여 진다.

 

           < 건물 앞으로 "마야불모전" 으로 가는 오솔길 >

 

              < 토굴과 같이 지어진 "마야불모전" >

           < 마야불모전 내에 모시고 있는 "마야 부인" >

 

       < "불모전"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다시 나무테크 계단으로 돌아와 계단으로 올라가면 먼저 요사체 및 공양간으로 들어가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그 뒤편으로 금불당(金佛堂)과 길상암(吉祥庵)이라는 2개의 현판이 붙어있는 건물이 자리하지만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 출입을 금지시키고 있는 "금불당 및 길상암" >

 

다시 한 계단 더 올라가면 대장전(大藏殿)이라는 건물을 만나는데, 대장전 건물 중앙에는 2대의 윤장대(輪臟臺)가 자리하고 있어 2명의 여성 방문객이 내부로 들어가 윤장대를 몇 바귀 돌리고 나서 불전 앞에 헌금으로 공양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 금불당 및 길상암 건물 바로 뒤편에 있는 "대장전" >

                     < 대장전 내에 있는 "윤장대" >

 

     < "윤장대" 에 대한 설명문 >

 

대장전 건물에서 다시 나무테크 계단으로 올라가면 길상암 제일 상단에 매우 작은 삼성각(三聖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왼편 야산에는 종각(鐘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건물 내에는 범종과 함께 목어(木魚)가 달려있다.

 

              < 매우 작은 건물의 "삼성각" >

                < 삼성각 왼편에 있는 "종각" >

 

삼성각의 오른편으로 주불을 모시고 있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건물의 왼편 측면에는 문수전(文殊殿) 이라는 현판과 더불어 건물의 전면으로 이동하여 보면 대웅전(大雄殿) 이라는 2개의 현판이 붙어있다.

 

             <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 >

            < 대웅전 건물 측면에 붙어있는 "문수전" 현판 >

 

다소 의아심을 가지면서 대웅전 건물 내부를 들어다 보면 중앙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 협시불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는데, 불상의 크기가 석가모니불 보다 다소 작은 불상을 모시고 있다.

 

             < 대웅전 내에 모시고 있는 "석가모니불" >

 

그 주위로 천수천안 관세음보살(千手千眼 觀世音菩薩)과 더불어 다수의 부처님을 함께 모시고 있는데, 다른 사찰의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의 협시불로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을 모시는 것과 상이하게 협시불을 모시고 있어 사찰의 예법에 너무나 동떨어지는 기분이 일어난다.   

 

          <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외 다수의 부처님 >

 

대웅전 건물의 오른편으로 돌아서 가면 높은 곳에 나한전(羅漢殿) 건물과 더불어 다층의 석탑이 자리하고 있으며, 나한전 건물 앞으로 300m 위에 적멸보궁이 있다는 안내표시에 따라 적멸보궁으로 올라가 보기로 한다.

 

          < 대웅전 오른편 골짜기에 있는 "나한전" >

 

매우 더운 날씨가 되어지지만 울창한 숲속으로 길이 만들어져 있어 300m 정도야 하는 마음으로 초입으로 들어섰지만 올라 갈수록 작난이 아닌 돌계단이 이어지는데, 너무나 급경사의 계단이 되어지므로 이내 땀으로 번벅이 되어진다.

 

            < "적멸보궁" 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

 

안전 난간대를 의지하면서 수십번의 휴식을 취하면서 30분 정도 올라가면 거대한 바위 아래에 석간수가 흘려 내리는 샘이 자리하고 있지만, 흐르는 물이 전연 없어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못하고 발길을 옮기니 머리 위로 적멸보궁 건물이 보인다.

 

           < 돌계단 중간지점에 있는 "샘" >

 

마지막 안간 힘을 쓰면서 계단으로 올라가면 높은 축대 위로 다층의 석탑을 품고 있는 적멸보궁 앞에 도착하여 지는데, 건물 전면 처마에는 "보궁(寶宮)"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 머리 위에 있는 "적멸보궁" 건물 >

 

닫혀 있는 보궁의 정문을 열어보니 일반적으로 적멸보궁에는 벽의 뒤편으로 유리 창을 만들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탑이나 무덤을 보게하는 것이 원칙인데, 이곳의 적멸보궁에는 건물의 후면을 볼 수 없게 벽면을 하면서 등신불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금색의 옷을 입고 있는 부처님을 등신불이라고 말하는데, 등신불은 열반에 드신 스님이 오랜 세월이 지나도 썩지 않고 살아생전 모습 그대로 유지하자 그 몸체에 금을 입힌 부처를 말하며 이곳 등신불은 스리랑카, 몽골, 미얀마에서 가지고 왔다고 한다.

 

             < 보궁 내에 모시고 있는 "등신불" >

 

어찌하던 많은 궁궁증을 품고 보궁을 떠나 다시 계단 길을 내려올려고 하니 무릎 관절의 통증으로 거의 죽을 맛을 느끼면서 겨우 하산하여 암자에 도착하니, 밑에서 기다리는 Wife가 짐승에게 물려갔거나 낙상하여 죽은 줄 알았다고 한다.

 

             < 적멸보궁에서 내려오는 길에서 바라보는 "길상암" 전경 >

 

무사히 암자에 도착하여 다시 죽음의 나무테크 계단으로 내려가니 한 스님이 올라오므로 적멸보궁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 한 것 보지 못하였다고 하니, 부처님의 진신사리 2과는 보궁 뒤편에 있는 거대한 자연석 아래에 봉안하므로 일반인들은 알 수 없다고 간락하게 설명하여 준다.

 

3. 홍제암(弘濟庵) 탐방.

다시 승용차를 운전하여 식당가가 있는 치인마을로 들어가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 탐방을 계속하기 위하여 성보박물관 앞에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가 주차를 시키고 나서, 해안사 경내로 들어가는 일주문을 통과하여 서쪽으로 한 200m 정도 들어가면 3개의 암자 방향으로 들어가는 이정표가 자리하고 있다.

 

        < 3개의 암자로 가는 "안내판" >

 

먼저 오른편으로는 가야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산행 길과 동시에 용탑선원으로 가는 길이 되고, 직진하여 바로 가면 홍제교를 만나면서 다리를 건너자 마자 다시 2개의 길로 나누어 진다.

 

           < 홍제암과 원당암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홍제교" >

 

2개의 길 중에서 왼편으로 달마선원과 함께 원당암으로 올라가는 길이 되고 직진으로 올라가면 홍제암으로 가는 길이 되어지는데, 길의 가장자리에는 사찰에서 사용하는 채소류 등을 생산하기에 충분한 넓이를 가진 텃밭이 자리하고 있다.

 

        < 다시 "홍제암과 원당암" 으로 나누어 지는 이정표 >

 

텃밭을 지나 작은 경사면의 길로 올라서면 홍제암으로 들어가는 대문을 만나는데, 대문의 처마에는 보승문(寶勝門) 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으면서 그 옆으로 홍제암을 홍보하는 2개의 설명문이 함께 하고 있다.   

 

           < 홍제암의 입구가 되는 "보승문" >

 

홍제암의 설명문을 읽어보면 홍제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가 되는 해인사 산내암자 중 하나이며, 창건 연대 및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으나 광해군 2년(1610년) 사명대사(四溟大師)가 입적한 곳으로 유명한 암자이다.

광해군은 사명대사의 죽음을 애도하여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 라는 시호를 내리고 비(碑)를 세우게 하였는데, 시호에서 나오는 홍제를 따와서 "홍제암(弘濟庵)" 이라고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 "홍제암" 을 설명하는 안내문 >

 

대문을 통과하여 마당으로 들어서면 넓은 마당의 뒤편으로 다수의 계단 축대 위에 "工자" 형태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건물은 광해군 6년(1614년)에 혜구대사가 사명대사의 초상화를 모시기 위하여 건립한 건물이면서 1979년 10월 대대적인 해체 및 보수가 이루어진 건물이라 하겠다.

 

           < 대문을 통과하면 만나는 "홍제암" >

 

건물 외형은 경사진 대지를 이용하여 왼편으로 홍각과 오른편으로 영자각(影子閣) 이라고 불려지는 돌출된 누각형으로 만들어져 있고, 지붕의 처마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 윗부분에 구성한 공포의 수법도 각 공간의 위계에 따라 달리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 되어진다.

건물의 전면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을 달리하고 있는데, 밖으로 노출하고 있는 기둥은 둥근기둥을 사용하고 있지만 내부에 있는 기둥은 사각기둥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또한 특색이라 건축학적으로 매우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 되어진다.

 

           < "홍제암" 현판과 함께 부등간격을 하고 있는 둥근기둥 >

 

건물 내부에는 법당으로 비롯하여 생활공간의 기능을 겸하는 인법당(因法堂) 형식의 건물 한채로 구성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인법당과 차별나게 사명대사에 관련 되는 모든 기능을 한 곳으로 집결하고 있는 형태의 건축물이다. 

보물 제1300호로 지정이 되어진 인법당 건물은 중앙에 법당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에 조사전, 영자각, 홍각, 조실, 시자실 등이 함께 하면서, 각각의 공간 앞에는 툇마루를 통하여 상호 연결되어 있어 움직이는 동선을 매우 짧게하고 있다. 

인법당 처마에는 "홍제암(弘濟庵)" 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마루를 통하여 법당 내로 들어가면 법당 중앙에는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고, 오른편에는 조사전(祖師殿)과 더불어 스님의 생활공간이 함께하고 있다.

 

           < 홍제문 법당에 모시고 있는 "지장보살" >

            < 법당 오른편에 연결하고 있는 "조사당" >

 

건물의 제일 오른편 구석에는 영조 때 사명대사의 영정을 모시면서 "표충사(表忠祠)" 라고 하였으나, 밀양에 있는 표충사(表忠寺) 경내에 사명대사의 영전 및 유품을 모시고 있는 유물관이 자리하므로 이곳에 보관하고 있었던 모든 유품을 밀양 표충사로 이관하므로 이곳을 폐하였지만 현판은 그대로 두고 있다.

 

                < 인법당 건물 오른편 돌출 부분에 있는 "표충사" 현판 >

 

그러고 그 자리에 16명의 고승 영전을 모시고 있는데, 16명의 고승은 청허(淸虛), 사명(四溟), 영규(靈圭), 하운(夏雲), 화곡(華谷), 장섭(仗涉), 송파(松坡), 평신(平信), 정월(淨月), 부환(賦還), 보응(普應), 돈암(遯庵), 모은(慕隱), 예봉(禮峰), 회은(晦隱), 해활(海活) 스님이라고 한다.

 

           < 건물 오른편 코너 방에 있는 "고승 영정" >

 

오른편으로 돌출되는 영자각 건물 내부에는 사명대사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제단이 만들어져 있으며, 벽면에는 사명당(四溟堂) 이라는 현판과 더불어 한자로 쓴 글씨가 빼곡하게 걸려있다.

 

            < 오른편 돌출 부분 방에 설치하고 있는 위패" >

 

         < 아직 벽면에 붙어있는 "사명당" >

 

이렇게 홍제암 건물을 돌아보고 나서 마당으로 내려와 내부로 조금 들어가면 마당의 가장자리에는 샘이 자리하고 있으며, 마당의 뒤편으로 서래당(西來堂) 이라는 거대한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서래당" 과 함께 하고 있는 샘 >

 

또한 서래당 주변으로 다양한 요사체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요사채 건물 사이로 나가는 길 따라 다리를 건너 계곡 옆으로 올라가면 넓은 텃밭의 뒤편에 거대한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건물의 처마에는 "귀노난약(歸老蘭若)"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 서래당 주변에 있는 "창고" 건물 >

 

        < 텃밭과 함께 하고 있는 "귀노난약" 건물 >

 

이 건물 뒤편으로 일단의 축대 위로 올라가면 정견각(正見閣) 이라는 정자와 함께 마당의 중앙에 2명의 돌 부처를 모시고 있으면서 주변으로 "ㄱ자" 형태의 건물에 자리하고 있는데, 건물의 유리를 통하여 내부를 들어다 보니 많은 석조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 귀노난약 건물 뒤편에 있는 "정자" >

 

          < 마당 중앙에 모시고 있는 "돌  부처" 및 통유리 건물 >

 

다양한 석조 불상을 구경하고 정문 방향으로 나오면 입구에 거대한 바위 한기의 상부에 한그루 호두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바위 틈에서 소나무가 자라는 것은 쉽게 불 수가 있지만 호두나무가 자라는 것 또한 처음 보는 관경이다.

 

         < 바위 위에서 자라고 있는 "호두나무" >

 

다시 홍제암 마당으로 돌아와서 마당의 동쪽에 있는 문을 통과하여 밖으로 나가면 일렬로 줄을 형성하고 있는 부도탑 군락지를 만나는데, 부도탑 중앙에 옛 것과 새로운 것 2개의 석장비(石臟碑)가 자리하고 있다.

 

            < 홍제암 앞으로 지나가면 만나는 "동문" >

 

          < 홍제암 오른편에 있는 "부도탑 군락지" >

 

옛 석장비에는 광해군 4년(1612년)에 홍길동전의 저자가 되는 석학 허균(許筠)이 쓴 글씨이라고 하는데, 석장비의 문장이 너무나 빼어나면서 사명대사 행적이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하므로 사적(史積)으로서 값어치가 매우 높은 비석이라 한다. 

 

               < 일본인들이 파손한 "사명대사 석장비" >

 

이 비문에는 사명대사의 전기에 관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비문의 내용이 한국인의 민족 혼(魂)을 불러 일으킬 염려가 있다고 하여, 1943년 일본인들이 4개의 조각으로 파괴하여 길가에 방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광복 후 이 비문을 명월당(明月堂)에 보관했다가 1978년 철봉으로 속을 연결하고 파손되어진 부분을 석회로 때워서 현재의 위치에 안치하고 있는데, 서산대사 부도탑과 함께 보물 제1301호로 지정이 되어져 있다.

 

           < 마멸을 대비하여 새롭게 쓴 "석장비" >

 

부도탑 군락지 뒤편 야산의 중터에 사명대사 사리탑이 따로 조성되어 있다고 하나 더위로 인하여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면서 홍제암을 떠나기로 하는데, 인접하게 있는 용탑선원으로 이동하기로 한다. 

 

4. 용탑선원(龍塔禪院) 탐방.

용탑선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2개의 길로 나누어 지는데, 하나의 길은 먼저 홍제암으로 들어오기 전 오른편 가야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방향으로 올라가 외나무 다리를 건너 용탑선원 정문으로 들어가는 방법과 더불어 다른 하나의 길은 홍제암 옆으로 올라가는 길이 되어진다.

 

           < 홍제암 입구에서 "용탑선원" 을 가르키는 입석 >

 

그래서 홍제암 옆으로 이어지는 길로 올라가면 먼저 용탑선원을 건립한 "백용성(白龍城)" 대종사의 사리를 모시고 있는 부도탑이 자리하므로 탑을 먼저 관람하기 위하여 일단의 축대 위로 올라가면, 넓은 터의 후면에는 3층 석탑과 더불어 탑비(塔碑)가 나란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앞 줄에는 승탑(僧塔) 및 사리탑이 자리하고 있다.

 

            < "백용성 대종사" 의 사리탑 >

 

백용성 대종사는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분이면서 불교계에서 한용운 선생님과 더불어 유일하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분으로써, 용탑선원은 대종사를 위하여 창건한 암자이면서 스님의 사리탑을 수호 관리하기 위하여 1945년에 창건되었으며 "용탑전(龍塔殿)" 이라고도 불려지기도 한다.

축대에서 내려와 용탑선원 방향으로 올라가면서 선원의 뒤편으로 바라보면 웅장한 가야산 정상과 더불어 상왕봉 바위 군락지가 마치 한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펼쳐지고 있어, 암자가 너무너 좋은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게하여 준다.

 

         < 용탑선원과 함께 하는 "가야산" 전경 >

 

              < 가야산 정상이 되는 "상왕봉과 칠불봉" >

 

텃밭을 통과하여 요사채 건물 사이로 들어가는 사잇길로 경내로 올라서면 넓은 마당과 함께 마당의 중앙에는 3층 석탑과 더불어 왼편으로 용탑선원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그 뒤편으로 미타굴(彌陀窟)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마당 중앙에 있는 "3층 석탑" 과 왼편의 용탑선원 건물 >

 

        < 납골당을 겸하고 있는 "미타굴" >

 

미타굴 건물은 돌로써 축조하므로 마치 성문으로 들어가는 기분으로 내부에 들어서면 건물 전면에는 부처님을 모시고 있고, 좌측에 있는 작은 사잇문을 통하여 다시 내부로 들어가면 많은 위패를 봉안하고 있어 납골당을 겸하고 있다,

 

            < 미타굴 내부에 모시고 있는 "석불" >

 

          < 미타굴 내부 좌측 방에 있는 "납골당" 위패 >

 

마당에 있는 3층 석탑 오른편 일단의 축대 위에 용탑선원의 본찰이 되는 "칠불보궁(七佛寶宮)" 이 자리하고 있는데, 보궁 내에는 부처님과 더불어 우측 벽면에는 용성 대종사와 더불어 12명의 제자 영전이 함께 하고 있다. 

 

           < 용탐선원의 본찰이 되어지는 "칠불보궁" >

 

          < 칠불보궁 내에 모시고 있는 "불상" >

 

       < 칠불보궁 내 우측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용성선사와 12명의 제자" >

 

이 밖에 칠불보궁 우측편으로 돌아서 가면 "선자당(禪慈堂)" 이라는 요사채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건물 내에서 스님이 한무리 불자와 함께 다과를 먹으면서 담소하는 모습이 열려 있는 문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 칠불보궁 오른편에 있는 "선자당" >

 

용탑선원 정문을 통하여 밖으로 나가면 가야산에서 내려오는 계곡을 건너는 작은 다리가 있고, 다리의 아래 방향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외나무 다리가 만들어져 있어 외나무 다리를 한번 건너보는 체험을 가지고 나서 차도 따라 조금 내려오면 홍제암으로 올라가는 길과 다시 만남이 일어난다. 

 

           < 용탑선원으로 들어가는 "정문" >

 

                 < 용탑선원 정문 바로 밑에 있는 "외나무 다리" >

 

5. 원당암(願堂菴) 탐방.

다시 홍제암으로 올라가는 길 따라 조금 올라가 홍제교를 건너자 마자 홍제암과 원당암으로 올라가는 2개의 길로 나누어 지는데, 왼편의 방향으로 달마선원(達磨禪院) 이라는 입석과 더불어 "원당암(願堂庵)" 을 가르키는 이정표가 나란하게 서 있다.

 

            < "달마선원" 을 가르키는 입석 >

 

다소 급경사의 오르막 길로 올라가면 대문 역활을 하고 있는 거대한 2그루의 나무 사이로 통과하면 왼편으로 넓은 주차장과 함께 오른편으로 종무소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전면의 야산 위로 공양간 건물이 산의 비탈면 따라 높게 자리하고 있다.

 

                     < 텃밭과 함께 "원당암" 으로 올라가는 길 >

 

                 < 2그루의 나무와 함께 하는 원당암 "종무소" >

 

          < 산의 비탈면에 자리하고 있는 "공양간" >

 

급경사의 오르막 길 따라 조금 올라가면 심검당(尋劍堂) 건물이 자리하면서 건물 뒤편으로 돌아서 가면, 원당암에서 주불은 모시고 있는 보광전(普光殿) 건물과 더불어 보광전 앞 보물 제518호가 되는 "점판석 다층탑 및 석등" 이 자리하고 있지만 보수 공사로 인하여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공양간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심검당" >

 

                  < "보광전" 건물 앞에 포크레인으로 공사를 하고 있는 현장 >.

                < 대대적인 보수 공사로 볼 수 없는 "다층탑과 석등" >

 

보광전 건물을 중심으로 튼 "ㅁ자" 형태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전면에는 원당(願堂)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좌측에는 조금 전에 통과한 심검당과 우측 상단에는 점화실(坫花室) 및 하단에는 무설설(無說說) 건물이 나란하게 자리하고 있다.

 

                  < 보광전 앞에 있는 "원당" 건물 >

 

              < 보광전 우측 상단에 있는 "점화실" >

 

        < 보광전 우측 하단에 있는 "무설설" 건물 >

 

보광전 뒤편으로 연결하는 높은 계단으로 올라가면 미소굴(微笑窟) 이라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미소굴 내에는 이곳 원당암을 주석하였던 혜암스님이 남긴 사리와 유품을 모시고 있는 건물이며, 건물의 왼편에 있는 높은 기둥에 "공부하다가 죽어라' 라고 쓴 혜암스님의 글씨가 이색적이다.

 

            < 원당암 제일 상단에 있는 "미소굴" >

 

           < 미소굴 왼편에 있는 "혜암스님" 글씨 >

 

다시 미소굴 왼편으로 올라가면 원당암에서 제일 높은 곳에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전망대에 원당암 설명문과 함께 가야산 전도(全圖)가 있어 전도에 표시하고 있는 번호 따라 가야산 전경을 찾으면서 보는 풍경이 마치 한폭의 산수화와 같이 머물고 있다.

 

            < 미소굴 좌측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해인사" 전경 >

 

이곳에 기술하고 있는 설명문의 기록에 따르면 원당암은 신라 왕실의 원찰(元刹)로 세운 매우 큰 사찰이었는데, 해인사의 본당이 되는 대적광전과 마주 보이는 비봉산 중터에 건립한 사찰로 본래의 이름은 "봉서사(鳳棲寺)" 이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이 암자는 해인사의 창간을 위하여 기초 작업장 역할을 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본찰이 되는 해인사 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역사가 오래 됨으로 풍부한 사적과 더불어 몇 차례의 중수한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세조 임금 때에는 학조대사가 오랫 동안 주석하였으며 철종 3년(1852년)에 우룡스님이 중수하였으며 고종 11년(1874년)에는 비구니 스님이 되는 성주스님이 다시 중수하였고, 근대에 이르러 해운스님과 혜암스님께서 도량의 변모를 일신시켰다고 기술하고 있다. 

 

           < 미소굴 좌측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가야산" 전경 >

 

전망대에서 왼편 골짜기로 이동하면 달마선원(達磨禪院) 이라는 건물을 만나는데, 달마선원은 혜암스님에게 생전에 재가 불자들에게 참선을 가르치려고 건축한 시민 선방으로 스님께서는 1996년 가을 부터 이곳에 머물려면서 대중에게 참선을 지도하였다고 한다.  

 

           < 불자들에게 제가 참선을 행하는 "달마선원" >

 

이렇게 간단하게 원담암을 돌아보고 나서 암자의 왼편 방향으로 내려오면 공앙간 건물을 비롯한 다양한 요사채 건물이 자리하므로 원당암은 상당한 규모를 가진 암자가 되어진다.

 

                      < 많은 불자들에게 공양하는 "식당" > 

 

6. 금선암(金仙庵) 탐방.

원당암을 떠난 우리 부부는 해인사 경내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는 "금선암(金仙庵)" 을 방문하여 보기로 하는데, 금선암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입석과 더불어 매우 아를다운 삼우다원 찻집이 자리하고 있다.

 

             < "금선암" 을 가르키는 입석 >

 

          < 금선암으로 내려가는 입구에 있는 "삼우다원" >

 

홍류동 계곡 방향으로 내려가는 도로 좌우에는 텃밭을 조성하고 있는 경사면 따라 걸어가면 금선암 경내에 도착되어 지는데, 제일 위쪽에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법당 건물이 자리하면서 건물 처마에는 "법당(法堂)"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어 일반 사찰과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 금선암 제일 위쪽에 있는 "법당" >

 

금선암은 1945년 하담스님 께서 창건한 비구니 수도처로써 사찰의 전면에는 기암괴석의 앞산과 더불어 아름다운 홍류동 계곡이 펼쳐지므로 사시사철 자연의 풍경을 제일 가까이에서 대면하는 암자이라 하겠다. 

법당 내에서 스님 한분이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모든 음식과 더불어 과일을 새롭게 교환하므로 매우 어수선한 분위기라 내부로 돌아보지 못하고 경내로 내려가는데, 계곡 언저리에 요사채와 더불어 다수의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금선암은 해인사 산내암자 중 약수암과 더불어 유일하게 공부하는 학생들이 머물 수 있는 암자이라고 하는데, 학생들이 공부하는 건물 뒤편으로 풍족하게 흘려내리는 물소리로 인하여 저절로 공부가 머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 금선암의 "요사채" 건물 >

 

            < 요사채 건물 앞에 있는 "분수대" >

 

            < 학생들이 공부하는 "선방" 건물 >

 

                < 금선암 앞으로 흐르는 "홍류동" 계곡 >

 

금선암 앞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따라 암자를 벗어나면 금선암과 거의 함께 하는 삼선암이 자리하고 있는데, 삼선암은 첫날(6월 12일) 암자 탐방 때 방문한 암자가 되어지므로 시원한 계곡 따라 주차장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