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강좌.

대구광역시 남구 대덕문화전당에서 개최하는 코미디언 '김병조' 씨 명심보감 강의를 듣고.

용암2000 2018. 9. 19. 19:43
2018년 9월 18일.(화요일)


나는 매일 눈을 뜨면 대면하는 대구의 앞산을 바라보면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앞산이 품고 있는 대구광역시립남부도서관과 함께 대덕문화전당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안식처가 된다.


< 나의 안식처가 되는 '대구광역시립남부도서관' >


그런데 대구 남구 대명동에 있는 남구평생학습관에서 매월 하루를 선정하여 유명한 강사를 초빙하여 대덕문화전당에서 강의(講義)를 한다는 현수막이 붙어있는데, 금일 도서관에서 어영부영하다가 오후 3시 대덕문화전당에서 방송인 김병조씨의 '명심보감(明心寶監)에서 배웁시다' 강의를 경청하여 보기로 한다.


< 남부도서관 인접지역에 있는 '대덕문화전당' 입석 >


< 앞산의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는 '대덕문화전당' >


< 대덕문화전당으로 들어오는 '구름다리' >


< 대덕문화전당 벽면에 월별 '행사' 를 알리는 현수막 >


< '남구평생학습관' 에서 매월 실시할려고 하는 팜플릿 >


< '강당' 으로 들어가는 입구 >


주어진 시간 보다 조금 일찍 강당으로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좌석에 앉아 강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사이 사회자는 새롭게 부임한 대구광역시 남구청장의 인사를 시켜준다.


< 강의가 열리는 '강당' 전경 >


금년 6월 13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새롭게 당선이 되어진 '조재구' 남구청장이 관중석 중간에 서서 간단하게 인사를 겸하면서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남구의 발전상을 제시하면서 포부를 짧게 설명하여 준다.


< '조재구' 남구청장의 인사 >


그러고 나서 사회자는 점심식사 후 밀려오는 낮잠을 날려 보내기 위하여 간단하게 건강 체조를 시키고 본격적으로 오늘의 강사 배추머리 '김병조(金炳朝)' 교수를 모시고 강의를 시작하게 하는데, 배추머리는 어디로 가고 없고 깔끔한 외형을 가지고 있다.


< 코미디언에서 교수로 탈바꿈한 배추머리 '김병조' 모습 >


오늘 강의를 시작 할려고 하는 김병조 강사는 7-80년대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코미디언(Comedian)이었지만, 현재 그의 이력서에는 방송인 및 대학교수의 명함을 추가하고 있다.
코미디언의 대부격이 되는 심형래와 이주일 등과 함께 방송에서 너무나 많은 유행어를 만들면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던 김병조씨가 어느날 갑자기 방송국에서 사라진 사유를 명심보감의 내용을 응용(應用)하면서 강의가 시작된다.
코미디언 김병조는 1950년 4월 7일 전라남도 장성군에 있는 어느 고을 '광산김씨(光山金씨)' 종가집 장손으로 태어나 어릴 때 부터 한학(漢學)을 배웠는데, 마을의 신동이라 하면서 공부를 잘하여 농촌에서 그 시대 명문교가 되는 광주고등학교로 들어가 1969년에 졸업을 한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장성군에서 높은 공무원도 역임하였지만, 가난의 대물림으로 인하여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공짜로 공부가 가능한 육군사관학교로 갈려고 하였으나 담임 선생님의 간곡한 추천으로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로 진학을 하였다.
월등한 실력으로 4년간 전면 장학생으로 공부를 마치고, 1975년 TBC 방송국에 취업하여 방송인으로 활동을 하다가 1980년 MBC 방송국에서 일요일 밤의 뉴스 대행진에서 시사풍자 코너를 담당하게 되면서 유명한 인사가 된다.
그 때 풍자 코너에서 수 많은 유행어를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유행어 중에서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지구를 떠나라', '나가 놀아라', '먼저 인간이 되어라'. '인간아 왜 사니', '인도 코끼리 방구 끼는 소리하고 있네' 등 숱한 유행어를 만든 장본인이다.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취임 시절 당시 대통령이 요구하는 내용을 멘트(Ment) 하지 않으므로 방송국에서 영구 퇴출을 당하면서 무대에서 살아졌고, 그로 부터 지금 까지 잊혀지고 있는 코미디언이었지만 옛날 어릴적 할아버지로 부터 배운 한문의 실력으로 명심보감에 심취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1997년 부터 조선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명심보감과 고전(古傳)을 가르키는 교수로 다시 탄생하였고, 전국에서 강의를 요청하는 곳 마다 흔쾌하게 돌아다니면서 강의를 하는 것이 이제는 본업이 되었다고 한다.
동 시대에 유명한 코메디언 몇 명은 국회의원도 되고 강남에서 최고의 주택을 가진 부자가 되었지만, 본인은 아직도 강북에서 제일 낙후가 되는 노원구에서 살고 있지만 이렇게 행복 할 수 없다고 한다. 
강의 내용 전체가 김병조 교수의 가족사를 엮어 간간히 명심보감의 내용을 첨언(添言)하면서 강의가 이루어지므로 도서관에서 책을 보면 오후 내내 숙면 속에서 생활하는 것이 나의 주 특기가 되지만, 오늘은 주 특기를 한번도 살려보지 못하고 눈만 말똥말똥하다가 강의가 끝이라고 한다.


< 강의에 열중하는 '김병조' 교수 >


< 자신이 직접 쓴 '명심보감' 의 한자 글씨 >


명심보감은 시대를 초월하여 가정교육의 첫번째 권장 도서로 손꼽히는 책으로 예로 부터 선비들의 교과서로 읽히며 만인을 위한 인생의 길잡이 역할을 하여 왔는데, 기본적인 인간관계 안에서 자신의 삶을 책임있게 꾸려 나가기 위하여 어떻게 생활하여야 좋은지 다양한 형식으로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고려말 충렬왕 때 학자가 되는 '추적(秋適)' 선생님이 엮은 책인데, 우리 대구에는 추적 선생님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인흥서원(仁興書院)이 대구 달성군 화원읍에 있는 화원교도소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한 때 나는 인흥서원을 종종 찾아가면 서원을 지키는 종손 할아버지가 너무 심심하여서 그런지 책상다리를 시키면서 몇 시간 강의를 들어야 했고, 강의가 끝나면 몇만 원 강의 비용을 지불하면 명심보감을 요약한 책이 주어진다.
하지만 주어진 책은 아직도 뚜껑도 열지 않고 집의 어느 구석에서 잠들고 있지만, 오늘 김병조 교수에게 명쾌하게 생활 명심보감을 경청하게 하므로 다시 찾아보아야 하겠다는 마음을 품게 만든다. 
그 때 나는 저자의 종손에게 명심보감 몇 가지 문구를 듣는 것 보다 인흥서원 앞에 있는 남평문씨(南平文氏) 세거지의 한옥마을 구경과 더불어 더 내부 골짜기에 있는 마비정 벽화 마을로 올라가 막걸리 마시는 것이 좋아 명심보감 책만 들고 다녔던 시절을 기억하게 한다.
이번 강의 중 특히 '인간 새옹지마(人間 塞翁之馬)' 라는 뜻을 명쾌하게 설명이 이루어지는데, 인간 김병조의 일생일대(一生一代)가 새옹지마가 되어 현재에는 어떠한 코미디언 보다 부귀영화(富貴榮華) 속에 자부심을 가지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