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강좌.

대구시 남구 평생학습관에서 실시하는 초청 명사 중 작곡가 '이호섭' 씨 강연을 경청하면서

용암2000 2019. 9. 18. 11:15

2019년 9월 17일. (화요일)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대구광역시 남구청 소속이 되는 '남구평생학습관' 에서 매월 명사(名士) 한분을 초청하여 강연을 추진하고 있는데, 금년 9월의 강연은 우리나라의 대중가요에 많은 희트곡을 작사 및 작곡을 하고 있는 '이호섭(李虎燮)' 선생님을 모시고 강연을 개최하겠다는 현수막이 곳곳에 부착이 되어있다.

나는 작년 9월에 코미디언 '김병조' 선생님의 '명심보감에서 배웁시다' 라는 강연을 경청하므로 인하여 인생에서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면서 이번에 강연을 추진하고 있는 이호섭 선생님도 좋은 강연이 되겠다는 예감으로 한번 참석하여 보기로 한다.

나는 때때로 남구평생학습관에서 실시하는 문화강좌를 경청하는 경향이 다수 많는데, 남구평생학습관에는 많은 교육생을 수용할 수 있는 대강당이 없으므로 명사 초청에 따른 강연은 대구 앞산 속에 자리하고 있는 대덕문화전당에서 개최한다. 

금일도 오전에는 대구광역시립남부도서관에서 실시하고 있는 스마트폰 강좌를 경청하고 여분의 시간 동안 도서관 내에서 머물고 있다가 오후 3시에 실시하는 강연시간에 맞추어 도서관 인접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대덕문화전당으로 넘어가 본다.

 

< '대덕문화전당' 을 알리는 입석 >

 

대덕문화전당의 대강당에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어 이호섭 작곡가의 명 강연을 경청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데, 강연을 경청하기 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호섭 선생님의 노래를 좋아하는 중년 여성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 앞산 속에 자리하고 있는 '대덕문화전당' 전경 >

 

< 매달 강연에 초청되어 있는 '명사' 의 현수막 >

 

먼저 남구평생학습관에서 근무하는 사회자가 나와 금일 초청 강연에 빛을 내기 위하여 참석한 내빈을 소개 하는데, 내빈으로는 조재구 남구청장을 비롯하여 다수의 내빈들이 참석하여 간단하게 인사로 대신하게 한다.

 

< 많은 여성분이 참석하고 있는 '대강당' 방청석 전경 >
 

이어 오늘의 초청 명사가 되는 이호섭 선생님이 입장하여 간단하게 인사의 말씀을 나누고 나서 본격적으로 강연을 시작하기로 하는데, 오늘의 강연 제목은 '노래하며 건강하고 행복한 삶' 이라는 주제로 강연이 되어진다.

 

< '이호섭' 선생님의 강연 제목 >

 

< 인사를 하고 있는 '이호섭' 선생님 >

 

이호섭 작곡가는 매주 일요일 마다 송해 선생님의 사회로 유명한 KBS '전국노래자랑대회' 의 심사위원에서 부터 아침마당 방송에 출연하여 많은 웃음과 더불어 딱다구리와 같이 이야기를 잘하기로 유명한 작곡가인데, 금일도 처음부터 방청객에게 웃음의 보따리를 풀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남구청장을 무대로 초빙하여 남구의 비젼과 더불어 2곡의 노래를 부르게 하는데, 남구청장의 노래 수준은 지금까지 월급의 10%가 넘게 노래방에 투자한 가수의 수준이라고 경찬(慶讚)을 아끼지 않는다.

 

< 무대에 초빙되어 인사를 하고 있는 '남구청장' >

 

< '안동역' 등 2곡의 노래를 부르는 남구청장 >

이호섭 선생님은 지금까지 약 880여 곡의 노래를 작곡 하였는데, 그 중에서 일부의 곡(曲)은 직접 노래를 부르는 가수도 겸하고 있어 노래의 실력도 상당한 수준이라 강연의 내용은 희트곡 노래로 부터 시작이 되어진다.

 

< 방청객과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노래를 하는 '이호섭' >

 

이호섭 선생님이 가요계에 등장은 처음에는 작사가로 출발하여 우리들에게 많이 들어본 문희옥의 '사투리 디스코, 천방지축' 와 주현미의 '짝사랑, 잠깐만' 현철의 '싫다 싫어' 및 박남정의 '사랑의 불시착' 등을 작사하였고, 이어 1991년 설운도의 '다함께 차차차' 를 작곡하므로 일약 작곡가로써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다.  

이후 수 많은 희트곡을 작곡하므로 많은 가수들을 한국가요계에 큰 족적을 남기도록 하였는데, 그는 세계 최초로 작곡가로써 TV 및 라디오 진행자가 되므로 많은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까지 수령한 인물이다.

 

< 직접 작사 및 작곡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호섭' 가수 >

 

이렇게 화려한 족적(族籍)의 뒤편에는 얼마나 어려운 생활이 있었다는 과거사(過去事)를 이야기하여 주는데, 그는 1959년 경남 의령군에서 부농의 아들로 출생하였지만 어렸을 때 부터 부모님이 판사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고시공부를 열심히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큰집에서 아들이 없어 양자로 입양이 되어진 것도 모르고 성장을 하였는데, 키워준 부모님은 아들의 공부를 위하여 마산으로 이사하여 공부를 시켰지만 가세(家勢)가 기울기 시작하여 정규적인 학교로 들어가지 못하고 독학으로 고등학교를 마쳤다고 한다.

그러고 2번이나 고시에 도전 하였지만 낙방을 하고 나서 인생에서 살아가야 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여 자살을 하기 위하여 억수와 같이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낙동강으로 뛰어 들었지만,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살았다고 한다.

그후 이웃에 살고 있는 작은 아버지가 이야기를 하는데, 너는 큰집으로 양자를 갔다는 내용과 더불어 너의 친부가 되는 아버지가 좌익에 가담하므로 인하여 호적에 연좌제(緣坐制)로 걸려있어 고시에 합격을 하여도 임용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조건 서울로 상경을 하였다.

서울에서 어릴 때 좋아하였던 음악에 심취하면서 낮에는 식당에서 점원으로 일을 하고 밤에는 무대에서 일을 하였는데, 어느날 지독한 감기로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손님 한분이 찾아와 써빙이 억망이라고 하면서 주전자에 가득 담겨져 있는 술을 머리에 부었지만 그 술을 다 쏟을 때 까지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참았다고 한다. 

몇달 후 그 손님이 찾아와 그때의 일이 잘못되었다고 사과하면서 자기를 소개하는데, 자기는 서울 영등포에서 큰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 사장이지만 왜 그런한 행동을 했는지 지금 까지 이해가 안되었다고 한다.

그후 사장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므로 오늘 날 이호섭이라는 사람으로 성장하였는데, 그때 부터 어떠한 어려운 난관이 발생하여도 화를 내지 않고 항상 웃은 얼굴로 살아가는 것이 자기의 랜드마크(Landmark)이라고 한다.

점점 형편이 좋아지면서 고향에 계시는 양쪽 부모님에게 용돈도 부쳐주면서 열심히 노력한 결과와 더불어 작곡가로써 인기를 얻게 되었지만 언제나 배움에 굶주림을 느겠다고 한다.

그래서 늦까기로 방송을 통하여 대학교 과정을 이수하고 2014년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 석사과정을 끝내고 나서, 다시 도전하여 금년(2019년) 2월 동대학교에서 박사를 획득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면서 매사(每事)가 긍적적으로 살아가겠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는데, 현재는 어떠한 난관이 일어나는 순간에도 노래와 함께 하므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 '강연' 에 열중하는 관중 >

 

더불어 관중들에게 노래를 부르는 방법을 가르켜 주는데, 모든 노래에 있어서 노래 마디마디 끝 부위가 내려가지 않도록 아래쪽 배가 쏙 들어가게 하면서 반대로 명치 부위에 있는 배에 크게 힘을 주면서 노래를 하면 음치는 저 멀리 살아진다고 반복적으로 연습을 시켜준다.

 

<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가르키는 '이호섭' >

 

< 모두 일어서서 함께 '노래' 하는 관중 >

 

이렇게 명치 부위에 힘을 주면 많은 운동의 효과와 더불어 엔도르핀(Endorphin)을 유발시켜 걷기가 어려워지는 노인들에게는 매우 좋은 운동이 되어지므로 하루에 몇 곡이라도 노래를 부르면서 젊음을 유지하면서 살자고 한다. 

 

< 대구에서 활동하는 '가수' 와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

 

< 난장판으로 변하고 있는 '무대 및 관중' >

 

그러면서 약 2시간 동안 웃음과 더불어 음악이 대강당 내에 가득하게 만들어 주는데, 방청객과 한마음이 되면서 모두가 일어서게 하여 함께 손벽치면 10여 곡의 노래를 연속적으로 부르면서 강연의 시간을 종결하게 만든다. -끝-  

 

< 가벼운 마음으로 '대덕문화전당' 을 떠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