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군.(가야산)

해인사 16암자 중에서 하나가 되는 남산제일봉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청량사' 를 돌아보고.(2)

용암2000 2020. 11. 14. 08:10

 

2020년 11월 10일.(화요일)

 

가야산 소리길을 걸었던 일행은 주자장으로 내려와 주차장에서 왼편 남산제일봉으로 올라가는 산행의 들머리에 있는 '청량사(淸凉寺)' 를 돌아보기로 하는데, 청량사는 해인사의 16암자 중에 하나가 되는 암자이라 하겠다.

나는 2017년 6월 12일에서 부터 7월 18일 까지 3차에 걸쳐 해인사 16암자를 탐방하는 일정 속에서 7월 18일 마지막 날 청량사를 방문하여 나의 블로그에 이미 기술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지만, 가을 풍경이 물씬나고 있는 새롭게 찍은 사진으로 대치하고자 한다.

청량사는 해인사 홈 페이지에서 암자로 등록이 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사(寺)는 독립 또는 말사로 표기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청량암(淸凉庵)으로 표기하지 않고 청량사(淸凉寺)를 표기하므로 다소 혼돈이 발생하게 한다.

청량사는 창건 연대가 확실하지 않지만, 신라말의 학자인 고운 '최치원(崔致遠)' 선생님이 이곳에서 놀았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청량사가 오랜 동안 폐사가 되어 방치한 것을 1811년에 회은스님이 중수하였고 최근에 이르러 경암스님이 다시 중건하였는데, 지금 또 다시 큰 불사를 일으켜 새롭게 단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량사가 자리하고 있는 산의 본래 이름은 천불산(千佛山 : 해발 1.010m) 이었지만 현재는 남산제일봉(南山第一峰) 또는 매화산(梅花山) 이라고 불려지는데, 천불산은 기암괴석의 산세로 인하여 가야산 보다 많은 등산객들이 움직이고 있는 산이다.

 

< '청량사' 를 홍보하고 있는 홍보물 >


경내로 들어가는 오르막 길 오른편으로 돌아서 올라가면 먼저 2층의 루각 건물을 만나는데, 루각 처마에는 '설영루(雪影樓)' 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으면서 1층 돌기둥 사이를 통과하여 경내로 올라서면 넓은 마당과 함께 좌우 신도들이 사용하는 요사채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청량사의 첫 관문이 되는 '설영루' >

 

< '설영루' 로 들어가는 돌기둥 >

 

왼편에 있는 요사채 건물에는 상락당(常樂堂) 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으면서 신도들의 숙박 시설과 더불어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 되어지고, 오른편에 있는 요사채 건물에는 적연당(寂然堂) 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으면서 신도들의 수행처가 되는 건물이라 한다.

 

< 왼편의 요사채 '상락당' 건물 >

 

< 오른편의 요사채 '적연당' 건물 >

 

마당 전면에 있는 높은 축대 위로 3층석탑의 상부 및 대웅전 지붕 일부분이 보이고 있는데, 바로 올라가는 계단이 없으면서 축대의 허리 쯤에서 왼편으로 돌아서 가는 오솔길이 만들어져 있어 길 따라 올라가면 대웅전 마당에 도착 되어진다.

 

< 마당에서 바라보는 '청량사' 전경 >

 

넓은 마당에는 대웅전 건물을 중심으로 전면으로 보물 제253호가 되는 석탑과 보물 제266호가 되는 3층석탑이 일렬로 배치가 되어져 있고, 대웅전 건물의 왼편에는 약광전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오른편에는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 >

 

< '3층석탑 및 석등' 과 일렬로 배치된 가람 모습 > 

 

< 대웅전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약광전' >

 

대웅전 건물을 먼저 관람하여 보기로 하는데, 대웅전 건물 내에는 다른 사찰과 상이하게 불상의 높이가 2.1m이면서 대좌 높이가 75Cm가 되는 보물 제265호가 되는 '석조석가 여래좌상(石造釋迦 如來坐像)' 이 자리하고 있다.

석조석가 여래좌상은 3단의 4각형 대좌 위에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자세로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자세로 앉아 있는데, 착의로 우견편단(右肩偏袒)의 옷이 되어지며 또한 부처의 나발 머리에는 육계가 뚜렷하고 단아한 얼굴 표정을 하고 있어 통일신라 시대의 대표적 불상이라 하겠다.

또한 불꽃 문양의 광배 꼭대기에는 화불이 모셔져 있으며 양쪽에 구름을 타고 나르는 두쌍의 비천상(飛天像)이 역동적으로 묘사되어져 있고, 하단이 되는 기단석에는 부처님께 차를 공양하는 보살상이 조각되어 있어 신라시대에도 차 문화가 발달되었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자료가 되어진다.

더불어 안정되고 조용한 신체 형태로 현실적 사실주의 양식을 하고 있으므로 경주 석굴암 불상과 함께 불상 양식 전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 대웅전 내에 모시고 있는 '석조석가 여래좌상' >

 

대웅전 앞으로 내려오면 보물 제253호로 지정이 된 석등(石燈)은 9세기를 대표 할 수작의 석등이 되고, 뒤편에 보물 제266호로 지정이 된 3층석탑(三層石搭)은 전체 높이 4.85m가 되는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석등과 일렬로 배치하고 있다.

 

< 대웅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석등' >

 

< 석등 앞에 자리하고 있는 '3층석탑' >

 

대웅전 왼편에 있는 약광전(藥光殿) 건물 내에는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지만, 이곳 청량사도 해인사의 아성으로 인하여 그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지 않고 있어 적막감이 흐르는 암자이라 하겠다.

 

< 약광전 내에 모시고 있는 '약사여래불' >

 

나는 한때 청량사 앞으로 만들어져 있는 산행길 따라 남산제일봉을 수 없이 오르면서 산행을 하였던 산이 되는데, 산행 때 마다 건성으로 청량사를 방문한 경험이 있지만 오늘도 친구들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암자를 방문하는 기회를 가져본다.

 

< 3층석탑 앞에서 내려보는 '설영루' >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청량사를 돌아보고 나서 대구로 돌아가기로 하는데, 금일은 특별한 계획도 없이 드라이브(Driver)가 주 목적이 되어지므로 돌아가는 길은 합천군과 인접하게 있는 고령군으로 넘어가 산천도 구경하면서 대구로 들어가기로 한다. -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