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경북)

경상북도 예천군에 산재하고 있는 명사찰 "용문사" 및 기타 다양한 관광지를 돌아보며.

용암2000 2010. 11. 1. 21:30

2010년 10월 30일 (토요일)

 

오늘은 경상북도 북부지역을 자리잡고 있는 예향의 도시 "예천군(醴泉郡)" 에 있는 문화재를 관광하면서 돌아보기 위해 길을 나서 본다.

승용차는 중앙고속도로의 "예천Toll gate" 에 내려 지방도로 따라 10여 분 정도 달려가면 오른편 실개천 옆으로 예천충효테마공원가 나타나고, 왼편 야산 기슭에는 "예천천문우주센터" 의 높은 구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 예천 Toll gate 입구에 있는 "예천천문우주센터" > 

 

이 천문대에는 입장료 2.000원 지불하면 천체 망원경을 통하여 별자리를 관찰하는 천문대와 돔(Dome)형 화면에 별자리를 비춰주는 천체 투영실. 우주 체험 할 수 있는 Spacer 타워가 있는데, 어린들에게는 많은 흥미를 부여하는 장소이지만 우리부부에게는 적합하지 않아 그냥 지나가 지방도 제 931호 따라 2-3분 정도 풍기방향으로 들어가면 예천온천을 만난다.

 

< 새롭게 Open한 "예천온천" 전경 >  

 

예천온천은 2000년 3월에 Open한 강알카리성 중탄산나티늄 온천으로 하루1,600Ton 온천수가 용쏫아 치면서 수질이 부드럽고, 인체 표피지방 제거에 탁월하여 혈액 순환과 기초 신진대사에 탁월한 효험이 있다고 한다.

예천온천 인접지역에 천연기념물 제 294호 인 "석송령" 먼저 만나고, 예천의 다른 문화유적과 더불어 관광지를 돌아보는 것으로 계획 잡는다.

 

* 석송령(石松靈)의 구경.

석송령은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일명 "반송(盤松)" 또는 "부자나무" 라고 하는데, 가슴높이 둘레가 4.2m에 전체 높이가 10m 정도 나무로서 수령이 약 600년 된 노송이다.

 

< 약 600년의 수령을 가진 "석송령" 전경 > 

 

< 밑 둘레가 4.2m나 되는 "석송령" 의 밑 둥지 >

 

600년 전 풍기지방에 큰 홍수가 일어나 "석관천(石串川)" 따라 떠 내려오는 것을 지나가는 과객이 건져 이곳에 심은 나무이며 1930년 경 이 마을 "이수목(李秀睦)" 씨가 영험이 있는 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 이라 이름 짖고, 그의 토지 2,000평을 상속 등기함으로써 한국에서 토지를 소유한 부자나무 중에 하나이면서 매년 세금을 내고 있는 나무이다.

거대한 나무 옆으로는 공원을 조성하고 있으며 주변에 "석송쉼터" 라는 정자가 지여져 있고, 이 정자 앞에 석송령의 죽음을 대비한 2세 나무를 키우고 있다.

 

* 예천 곤충생태 체험관 구경.

석송령에서 되돌아 나와 또 다른 방향인 지방도로 제 927호 따라 풍기 방향인 상리면에 들어서면 고산 지역으로 이루어지는데, 고산 지역의 산의 비탈면에는 고냉지 사과단지가 높은 야산까지 펼쳐지고 있으면서 결실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이 지방도로에 "꽃사과" 나무를 가로수 나무로 심어 놓아 나무 마다 온통 빨간색으로 물들고 있는데, 주위 단풍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정말 매력적인 드라이브 길이다.

 

< 가로수로 심어놓은 "꽃사과" 의 열매 > 

 

약 10여 분 정도 운전하면 3년 전에 2007년 조그마한 시골 동네를 전세계가 주목하게 만든 약 6만평 부지 위에 "예천곤충생태체험관" 에 도착한다.

 

< "예천 곤충생태 체험관" 건물 전경 > 

 

< "야외전시실" 이 있는 건물의 전경 > 

 

지금은 긴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예천 곤충체험 박물관에는 적막감이 들면서 을씨년스러운 모습하고 있는 건물에 종종 어린들과 함께 오는 부모님 몇 명만 방문하여 곤충체험을 하고 있다.

입장료 3.000원 부담하고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며 2007년도 "곤충바이오엑스포" 행사 때 진열하여 놓은 곤충이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조용하게 마음껏 관람이 가능하게 만든다.

 

< 건물 내부에 있는 "전시설" 풍경 > 

 

2층 및 3층을 통해 진열하여 놓은 국내. 외 곤충을 볼 수 있는데, 곤충을 직접 만질 수 있는 생태체험관과 누구나 체험 할 수 있는 야외 생태체험관 2곳 다 돌아볼려고 하니 시간이 무한정 소요된다.

 

< 전시실 내부에 진열하여 놓은 "곤충" >

 

< "호박벌" 이 살고 있는 실외 생태체험실 >

 

2012년 제2회 "곤충바이오엑스포" 를 Open 하기 위하여, 많은 Sample을 준비하면서 심혈을 기울리고 있는 조그마한 지방자치단체 힘이 대단함을 느끼면서 자리를 뜬다.

 

< 2012년도 엑스포 개최를 홍보하고 있는 현수막 >

  

* 용문사(龍門寺) 방문.

또 다시 왔던 길을 조금 되돌아 나와서 약 30분 정도 운전하면서 깊은 야산 속에 자리잡고 있는 "용문사(龍門寺)" 방향으로 길을 잡아보는데, 가는 길에 예천의 선비들이 학문을 전진하는 "초정서예연구원" 건물 만나면서 건물의 주변으로 고옥과 더불어 경치가 잘 꾸며져 있다.

 

< 가는 길에 만나는 "초정서예연구원"  입구 >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도로변에 금당실전통마을 및, 예천권씨 초간종택 및 초간정 등 아름다운 고택과 정자을 많이 만나지만 관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여 그냥 용문사로 바로 들어간다.

 

< 예천군 곳곳에 만나는 "고택" 전경 중에 하나 > 

 

용문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의성군에 있는 "고운사(孤雲寺)" 의 말사로써, 신라 경문왕 10년(870년) 이지방 출신인 "두운선사" 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고려 태조 "왕건" 이 후삼국 정벌 중 용문사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훗날 천하를 평점하면 이곳에 큰 절을 일으키겠다고 맹세하였는데, 그후 매년 150석의 쌀을 하사한 사찰이지만 우리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찰로 머물고 있어 애석하다. 

"소백산용문사(小白山龍門寺)" 라는 일주문 통과하면서 실개천 지나면서 울창한 단풍나무로 물들고 있는 계단 길 따라 올라가면, 아담한 건축물이 되는 "회전문" 에 이른다.

 

< "소백산 용문사"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일주문 >

 

회전문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찰에서는 사천왕문(四天王門)이라고 하는데, 이곳 용문사 사찰에는 회전문이라고 명판이 달려있다.

 

< 사천왕상을 모시고 있는 용문사 "회전문" > 

 

또 다른 문(범종루)을 지나면 넓은 마당에 도착하는데, 마당 앞에는 양쪽으로 석탑이 서 있으며 좌측에는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 이 자리잡고 있고 오른쪽은 요사채 건축이 자리하고 있다.

 

< 용문사 마당에 있는 "석탑과 성보박물관"  >   

 

탑을 지나면서 정면에 있는 돌계단으로 올라가면 "보광명전(普光明展)" 이라는 본찰의 건물이 언덕 위에 고즈늑하게 자리잡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사찰 다니면서 "보광전(普光展)" 이라는 사찰은 몇 곳에서 대면하였지만, 용문사에서는 새로운 보광명전 이라는 사찰을 처음 대면하다 보니 머리가 띵하여 진다.

 

< 돌계단 위에 있는 "보광명전" 전경 > 

 

사찰 문화 해설가와 이야기하여 보니 전반적인 사찰 구성 방법은 잘 모르지만 이곳 사찰에서 주불로 "아미타불" 모시고 있으며, 좌우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봉안하고 있다고 한다.   

청송 주왕산에 있는 "대전사" 보광전에는 석가모니 삼존불을 모시고 있는데, 이곳 용문사 보광명전에 있는 주불로 아미타불 모시고 있어 나의 생각과 너무나 차이가 난다.

어찌하든 이 보광명전의 건물 우측 옆에는 또 다른 건물 보물 제 145호가 되는 "대장전(大欌展)" 건물이 고색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반듯하게 쌓은 석축기단 위에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구조를 가진 건물로써, 기둥 위 공포는 다포(多包)식 장식으로 맞배지붕으로 건축된 건물이다. 

 

< 보물 제 145호로 지정된 "대장전" 전경 >

 

건물 내부에는 보물 제 989호 "목불좌상 및 목각탱화" 를 모시고 있고, 좌우에는 보물 제 684호 "윤장대(輪藏臺)" 가 놓여있다.

목각탱화는 조선 숙종 10년(1684년)에 제작된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목각 후불탱화 중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써, 가로 215cm에 세로 261cm 의 크기로 특수한 수법으로 목각한 그림이다.

 

< 보물 제 989호가 되는 "목불좌상과 목각탱화" > 

 

지금까지 본 대부분 탱화는 종이 위에 그린 그림이 대부분이 되는데, 이곳에서 나무 판에 탱화를 세긴 그림을 보고 있으니 새롭게 불교 문화를 직면하는 사찰이다.

그 탱화 앞으로 "목불삼존화상(木佛三尊化象)" 이 앉자 있는데, 그 형태나 수법으로 보아 탱화와 같은 수법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보면 되겠다.

아울러 좌우 양쪽에 있는 회전식 "윤장대(輪藏臺)" 는 고려 명종 3년(1173년) 설치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사찰 내부에 있는 운장대로 이곳 용문사가 유일하다.  

 

< 보물 제 684호 "운장대" > 

 

그러므로 이 건물 한채에 문화재가 3개가 공존하는 문화재 보고의 건물이 된다.

이 건물 뒤편에 또 다시 극락보전(極樂寶殿) 및 명부전(冥府殿) 등 부속 건물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어, 규모면에서는 매우 큰 사찰이라 경이로움이 발한다.

대충 사찰의 관람을 끝내고 나서 돌아서 나오면서, 마당 좌측편에 있는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 에 입장료 1,000원 내고 들어가 본다.                                  

일반 사찰에서 거의 없는 성보박물관 까지 보유하고 있다니 놀라움 가지면서 내부로 돌아보니 대장전에 있는 회전식 "운장대" 와 동일한 모양의 운장대 만들어 놓고, 이곳에서 운장대를 회전시키면서 소원성취를 빌도록 한다.

또한 운장대 내부 형태를 알 수 있도록 운장대를 1/4로 분해 조각하여 내부를 볼 수 있도록 단면화(斷面化)로 만들어 놓은 것이 이색스럽다.

 

< 박물관에 있는 "운장대" 내부 형태의 모형 > 

 

아울러 박물관 1층과 지하에 불교에 관련된 많은 자료를 진열하여 놓아, 불교를 공부하는 신자들에게는 지식을 부여 할 수 있는 문화재 보고의 박물관이다. 

오늘 예천 용문사에서 부터 지금까지 내가 보고온 사찰 구조와 배치 방법에서 많은 차이점 볼 수 있고, 새로운 지식을 얻는 사찰이다. 

 

* 장안사(長安寺)와 회룡포(回龍浦)에 오르면서.

용문사 사찰을 건성으로 관람하고 나서 서둘러 예천군 외곽 산자락 통하여 농촌 길을 통과를 하면, 곳곳에 고택의 촌락을 형성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시골 구조가 선비의 고장 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내성천을 건너 비룡산(飛龍山)에 있는 장안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몇 걸음 올라가는데, 비룡산 중터에 있는 "장안사(長安寺)" 사찰에 이른다.

몇년 전 이곳 회룡포(回龍浦)를 돌아보기 위해 왔을 때, 장안사에 들어가니 "대웅전(大雄殿)" 건물만 달랑 건축되어 있어 어수선한 사찰 모양이 이젠 제법 짜임새를 갖추고 있는 모습으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 아담한 사찰 규모를 갖춘 "장안사" 전경 > 

 

장안사는 신라 경덕왕 759년 "운명대사(雲明大師)" 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지만, 그 후 사세(寺勢)가 기울어져 쓸쓸하게 퇴락하던 사찰을 최근 1984년 "두타화상" 이 이곳에 정착하여 새롭게 사찰을 번창시켜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 장안사의 "대웅전" 건물 >  

 

사찰의 왼편으로 돌아 능선에 이르면 거대한 석가모니 부처님이 앉자 있으며, 이곳에서 우측으로 한 10여 분 정도 계단을 이용하여 올라가면 회룡포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회룡대(回龍臺)" 에 이른다.

 

< 회룡대에 올라가기 전에 만나는 "석가모니" 석상 >

 

회룡포는 낙동강의 한 지루가 되는 "내성천(乃城川)" 이 용(龍)이 비상하는 것 처럼 물을 270도 휘감아 돌아간다고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높이 190m "비룡산" 절벽 따라 휘 되돌아서 흘려가므로 "육지속의 섬" 만들고 있으며, 맑은 물과 백사장을 형성하고 있는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 맑은 물과 백사장을 품고 있는 "회룡포" 전경 > 

 

섬의 내부에는 가을 갈이를 끝낸 농촌 들렼에는 쓸쓸함이 묻어나고, 형형색색의 지붕을 하고 있는 몇 채의 가옥에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 저녁 노을과 조화를 형성하고 있어 정겨움이 묻어난다.

작금 황금색 물결을 이루는 벼의 추수가 끝나서 그런지 프로급 사진 작가분은 한명도 보이지 않고, 아마추어 길손들이 카메라를 통하여 풍경을 담기에 바빠진다.    

 

* 삼강(三江) 나루터의 막거리 한잔.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나루" 는 태백에서 시작하는 낙동강과 영주에서 내려오는 내성천이 문경에서 흘러오는 감천의 물줄기가 하나로 합수되는 지점에 있는 나루터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옛 선비들이 과거를 보려가기 위하여 영남인들이 걸어 "문경새재" 로 가는 길목이었고, 부산앞 바다에서 낙동강 물줄기 따라 거슬러 올라온 소금 배가 닿는 곳이 삼강나루이다.
강이 있고 배가 있으니 어찌 나루터에 주막이 없을 쏘냐. "삼강주막" 은 약 110년 전 1900년 경 이곳 삼강리 나루터에 세워져 소금과 쌀을 싣고 온 상인과 보부상은 물론 과거 길을 가는 선비들의 허기진 배와 마음을 채워주면서 쉬어가는 곳이다.

삼강나루터에는 낙동강의 마지막 주모였던 할매 "유옥연" 할머니가 2005년 세상을 떠나면서 그대로 방치되어진 장소에, 다시 복원해야 다는 여론에 따라 2007년 새로운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냈다.

 

<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한 "삼감주막" >


뱃가 할매로 불렸던 주모 유옥연 할머니는 1917년 풍양면 우망골에서 태어나 뱃사공 "배소봉" 씨와 열여섯 이팔 청춘에 혼인하였으나, 남편이 일찍 죽자 어린자식을 키우기 위해 주막의 옛 주인으로 부터 주막을 넘겨 받아 2005년 10월 89세로 세상 뜰 때까지 50년 간 삼강주막 주모로 살아왔다. 

 

< 주모 "유옥연" 할머님이 장사한 주막집 > 

 

그러나 이제는 삼강주막 주모는 간데없고 오다가다 머무는 길손만 가득하다.

삼강주막의 정지(부엌)에 들어가면 부엌 벽에 긴 금과 짧은 금이 그어져 있는데, 글자를 몰랐던 주모는 손님들이 술 한잔 외상이면 짧은 금을, 한 주전자는 긴 금을 그어 표시했다가 외상 값을 갚으면 가로줄을 그어 지웠다고 한다.

 

< 주막집 부엌에 표시하여 놓은 "외상장부" > 

 

시커먼 벽에 마치 무늬처럼 그어진 금들이 누구누구의 것인지 주모는 죄다 알고 있었겠지만, 아직 가로 금이 안 끄인 벽의 외상 장부를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 버렸다.

이 주막 뒤편에 450년 된 "회화나무" 만이 외상 장부의 진실을 간직한 채 묵묵히 삼강주막을 지키고 있다.

 

< 주막집 뒤뜰에 있는 450년 된 연리목 "회화나무" >


복원된 삼강주막 앞에 달걀 모양의 큰 돌 한개가 놓여 있으며 이 돌은 농촌 청년이 장성하여 어른으로 인정받는 통과 의례에서 생겨 났는데, 삼강나루터와 주막을 중심으로 많은 보부상들이 이동하면서 이 돌을 드는 정도에 따라 품삯 결정하는 도구로 쓰였다고 전한다.

 

< 장년들 힘의 세기를 저울하는 "달걀형 바위" > 

 

삼강나루의 옛 모습을 기억한다면 가지 마라고 권하고 싶을 만큼 실망이 큰데, 삼산(三山)과 삼강(三江)으로 유명하다는 이곳 삼강에는 긴 다리가 가로 놓여 삼강의 의미도 산의 형체도 제대로 음미할 수 없다.

 

< 삼강나루터를 가로 질려 만들어진 "삼강교" 전경 >


현재 복원된 주막에서 선비가 되고 보부상이 되어 술 한상 받아보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것도 찾아 볼 수 없고 막걸리 한잔하기 위해서는, 임시로 만든 부엌 입구에 긴줄을 서서 한참 차례를 기다리고 나서야 비로서 쟁반에 담겨주는 막거리 주전자를 들고 자리를 찾아 헤메야 하는 초라한 선비로 전락시키는 장사 속에 나그네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것이 무슨 나루터와 주막의 정경인가?  

 

< "포장마차" 치고 장사에만 여념이 없는 주막의 현 모습 > 

 

이제는 그저 이름하여 삼강나루이고 삼강주막이겠지만, 옛 시대의 현상을 읽을 수 있는 지역 역사와 문화적 의의를 간직한 것도 없이, 먹고 즐기는 문화만이 능사임을 많은 사람들은 알고나 있겠지?

보길도에 있는 윤선도씨가 머물었던 유적지 "세연정" 에는 매시간 시조 오우가 또는 국악 한가락을 잔잔하게 울려 퍼지면서 방문객들에게 심금을 울리고 있는데, 이곳 삼강나루터에는 그 흔한 군가 한자락도 듣지 못하고 삭막하다.

몇년 전 한번 찾아 갔을 때에는 그래도 2대 주모는 술상이라도 직접 갔다 주면서 나그네들에게 서비스 정신 흉내라도 만드는데, 주막이 주막의 "혼(魂)" 이 있어야지 이젠 완전히 장사 속으로 빠진 부녀회들이 돈만 샘하고 있구나. 

아무리 한국사회가 서양 문화로 도취되어 Self 세상으로 변모가 되어도, 삼강주막 너 마져 전통의 풍속을 버리고 Self 만 고집하는 것이 꼭 정석은 아닐텐데..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지켜 나가는 것 만이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인으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 예천군은 잘 알고 있겠지만, 당사자가 아닌 내가 방문하지 말라고는 못하겠지만 이곳 술집의 작태를 보고 있으니 왕짜증만 난다.

차라리 예천군에서는 "삼강주막" 에서 "삼강부폐" 로 간판을 바꾸어 달 의향은 없는지 알고 싶다.

한양이나 대구 등 먼 길에서 삼강나루 찾는 나그네들이여, 이곳으로 오실 때에는 그대 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든 막걸리 1병과 오징어 다리 한마리 직접 챙기고 와서 삼강 나루터가 있는 낙동강변에 돗자리 펼쳐놓고 자찬하면서 즐기고 가소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나도 모처럼 찾았던 예천군이라 미처 막걸리를 준비하지 못하고 방문한 내가 잘못 임을 알지만, 그냥 돌아가기가 아쉬워 한 주전자 막걸리 구입하여 손수 오봉 들고 자리찾아 수만리 걸어다니 다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얼근하게 취기를 만들면서 집으로 향하는 하루가 되었지만, 막걸리를 오봉에 담아주는 그런 주막집에 앞으로 두번 다시는 안간다. 

한푼의 주세(酒稅)라도 예천군에 남기고 싶은 마음이 싹 살아지게 만드는 "삼강주막" 이라 하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