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대구박물관.

국립대구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명기에 예를 담다' 이라는 전시회를 돌아보면서.(2)

용암2000 2022. 12. 23. 19:26

 

2022년 12월 20일.(화요일)

 

* '명기에 예를 담다' 이라는 전시회를 돌아보면서.

기회전시실에서 전시하고 있는 '영남의 명찰순례2 팔공산 은해사' 를 관람을 하고 나서, 기획전시실과 특별전시실 중앙에 대형 스크린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여 본다.

대형 스크린에는 불교문화와 더불어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위하여 경기도 수원에 있는 화성산성으로 행차하는 화성행행도(華城行幸圖) 내용을 연속적으로 방영하고 있는데, 나는 휴식도 겸하면서 천천히 그 내용을 감상하여 본다.

 

< 대형 스크린에서 방영하고 있는 '화성행행도' >

 

한편의 방영 내용을 끝내고 나서 기회전시실과 반대편에 있는 특별전시실로 들어가 보는데, 이곳 특별전시실에는 2022년 10월 5일 부터 2023년 10월 9일 까지 1년 동안 '명기(明器)에 예(禮)를 담다' 라는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 특별전시실에서 전시하고 '명기에 예를 담다' 의 주제 >.

 

이번 국립대구박물관 테마(Theme) 전에서 '명기에 예를 담다' 라는 유교 장례 의례품이 되는 명기를 통해 조선 사대부의 장례 문화를 조명하기 위하여 마련하였다고 하는데, 명기의 소박한 아름다움과 그안에 담긴 마음을 한번 감상하여 보기를 바란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곳 특별전시실은 매우 작은 전시실이 되므로 전시하고 있는 전시품이 소량(小量) 또는 소형(小形)의 제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전시실 내부는 거의 관람하는 사람이 없어 적막감만 흐르고 있다.

 

< '특별전시실' 의 내부 전경 >

 

< 다양한 '명기' 를 전시하고 있는 전시실 내부 전경 > 

 

명기(明器)는 죽은 사람의 평안한 내세를 빌며 무덤에 함께 묻는 부장품으로써 그릇, 인형, 악기, 무기 등 일생상 용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명기를 묻는 관습은 순장(殉葬)의 폐해를 없애고자 인형이나 그릇을 작게 만들어 묻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 '명기' 를 요약한 글 >

 

삼국사기의 기록과 경산 임당군 고분 등 발굴 사례로 보아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에는 순장이 이루어졌으나 차츰 살아졌다고 하는데, 삼국시대에는 목 항아리, 굽다리 토기, 작은 토우(土偶) 등 흙으로 만든 물건을 사용하였고 고려시대에는 청자로 만든 각종 생활 용구를 부장품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의 도입과 함께 국가에 의해 명기의 제작과 부장이 제도화로 추진하였는데, 그래서 조선시대에 생활 용기를 본따 작은 크기로 만들었으며 16-17세기에는 백자 제작 기술이 발달하며 왕실과 사대부를 중심으로 백자명기 부장이 유행하였다고 한다.

 

< 조선시대에 출토한 '백자명기' >

 

< 무덤에서 출토한 '백자명기 및 토기 항아리' >

 

< 또 다른 무덤에서 출토된 백자명기' >

 

< 경북 성주 성산리 '이희진의 묘지' 에서 출토된 명기 >

 

내부로 들어가면 경상북도에서 명기가 출토된 지역을 설명하고 있는데. 명기 출토지역으로 경주, 고령, 구미, 김천, 상주, 성주, 안동, 포항 등에 출토가 되어 조선시대 경북의 장례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 경북지역의 '명기' 출토지 >

 

명기의 기종(器種) 구성으로는 잔과 접시, 병, 반발, 그릇 등 10점 내외의 식기류로 이루어져 있는데, 죽은 사람이 내세(內世)에서 배불리 먹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고 한다.

 

< 경북지역에서 출토된 '명기' 의 종류 >

 

특히 명기는 세종실록 135권 '오례(五禮) 흉례 의식 천전의(遷奠儀)' 에 따르면 '명기는 신명의 것이다 모양은 평시와 같이 만드는데, 다만 투박하고 작을 뿐이다(明器 神明之也 象以平時而作, 但麤惡而小耳)' 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 세종실록에 기술하고 있는 '명기' >

 

< 명기의 '종류와 명칭' > 

 

조선시대 사대부의 무덤 양식인 '회곽묘(灰槨墓)' 는 묘광(墓壙)에 석회층을 만들고 그 안에 관(棺)을 안치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는데, 그래서 구조적으로 공기가 통하기 어려워서 복식, 묘지명, 인골, 미라와 같이 무덤에서 신분을 알 수 있는 자료를 확인되기도 한다.

 

< '회곽묘' 를 만드는 과정의 도해도 >

 

특히 안동 옥동 무덤에서 출토된 명기를 살펴보면 17세기 조성된 회곽묘로 편방(偏旁)에는 백자명기 13점과 함께 동전 모양의 도제품, 전통 담뱃대가 출토 되었는데, 무덤 주인의 신원을 알 수 있는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출토한 인골의 분석에 따르면 무덤 주인의 키는 145.4Cm 정도에 36세에서 50세 사이의 여성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 안동 옥동에 있는 '무덤' 의 설명문 >

 

< 안동 옥동 무덤에서 출토된 '명기' >

 

< 안동 옥동 무덤의 내부 '조감도' > 

 

< 전시회 '후기' 를 남기면서 >

 

공간이 협소한 특별전시실이지만 이렇게 경북에서 출토된 다양한 명기를 관람할 수 있었는데, 지금 까지 나는 명기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것을 알게하여 주는 전시실이 되어 많은 내용을 인지하게 만든다. - 2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