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시 문화와 산행.

경남 밀양시 무안면 영취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사명대사 생가와 유적지' 방문.(3)

용암2000 2023. 1. 9. 10:54

 

 

2023년 1월 5일.(목요일)

 

4. 사명대사의 생가 및 유적지를 방문하면서.

 

1). 사명대사 생가의 구경.

영산정사를 떠난 일행은 영취산 입구에 있는 3거리 까지 내려와 3거리에서 직진의 도로를 이용하여 한 500m 정도 들어가면 '사명대사의 생가 및 유적지' 가 자리하고 있는데, 입구에 있는 다소 작은 주차장으로 들어가 주차를 한다.

 

< '사명대사' 생가를 가르키는 이정표 >

 

밀양시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해발 739m '영취산(靈鷲山)' 산기슭에 사명대사의 조부모 및 부모님 무덤이 있으면서 그 무덤 앞에 약 1만5천여 평의 대지 위에 사명대사 유적지를 조성하였지만, 밀양시가지로 부터 너무나 떨어진 외진 곳 이라 하겠다.

이곳 유적지는 풍수설에 의하면 조부모 및 부모님 묘소가 자리잡고 있는 지점에는 목마른 용(龍)이 물을 먹는 형상을 하고 있고, 주산(主山)은 동자형(童子形)으로 하고 있으면서 그 아래로 좌청룡과 우백호가 감돌아 돌고 있으며 그 앞으로 뻗어있는 안산(案山)은 범이 엎드려 있는 모양이라 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모님 묘소가 있는 최고의 명당 인접 지역에 유적지를 조성하였다고 하지만, 상대적으로 밀양시가지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진 오지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홍보가 이루어지지 않아 거의 관람객이 찾아오지 않은 적막강산(寂莫江山)이 내리고 있는 유적지이다.

나는 이곳에 있는 생가 및 유적지를 두번이나 방문한 경험이 있는 장소가 되므로 바로 생가 방향으로 들어가면 사명대사의 생가지를 기술하고 있는 안내문이 서 있는데, 사명대사 생가지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왜군을 크게 물리친 사명대사 '유정(惟政)' 이 탄생한 곳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안내문 뒤편으로 들어가면 사명대사의 생가(生家)에 도착하는데, 생가 입구에 있는 대문은 솟을대문 형태로 만들어져 있으며 문의 처마에 붙어있는 현판에는 '송운대사구택(松雲大師舊宅)' 이라고 쓰여있다.

 

< 생가 입구에 있는 '솟을대문' >

 

대문을 통과하자 마자 사랑채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건물의 중앙에 안채로 들어가는 통로가 자리하고 있는데, 통로의 왼편 한칸에는 부엌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오론편 2칸에는 방과 함께 대청마루로 만들어져 있다. 

 

< 사명대사 생가의 '사랑채' >

 

사랑채의 통로를 통과하여 안채 방향으로 들어가면 안채의 앞에 넓은 마당이 자리하고 있고 마당의 뒤편에 있는 일단의 축대 위로 안채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안채 건물은 전형적인 사대부의 건물과 같이 정면 5칸에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건축되어져 있다.

 

< 사명대사 생가의 '안채' >

 

건물 형태에는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편에는 2칸의 안방과 함께 부엌으로 만들어져 있고 오른편에는 작은 따림 방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각 방과 대청마루에는 다양한 가구들을 비치하고 있으면서 대청마루에는 육영당(毓英堂)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생가에서 나와 왼편으로 돌아가면 사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사당의 정문도 솟을대문으로 만들어져 있으면서 정문의 처마에 '분충서난문(奮忠抒難門 : 충성을 분발하여 국란을 해결하였다)' 이라는 뜻을 가진 현판이 붙어있다.

 

< 사명대사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 의 전경 >

 

솟을대문과 마당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사당(祠堂)이 자리하고 있는데, 사당의 현판에는 '숙청사(肅淸詞 : 맑고 고상한 사명대사에 대하여 엄숙하게 경의를 표한다)' 이라는 뜻을 가진 현판도 붙어있다.

사당을 나오면 왼편으로 사명대사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비(記念碑) 한기가 서 있는데, 기념비에는 한편의 한시(漢詩)가 새겨져 있으면서 기념비 옆으로 한시의 내용을 해설한 입석이 자리하고 있다.

 

< 사당의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기념비' >

 

2) 사명대사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사명대사의 생가로 들어가는 정문에서 부터 도로 건너편으로 사명대사 유적지 조성비(遺跡地 造成記念碑)를 비롯하여 다양한 조형물을 새롭게 만들어져 있는데, 2021년 5월 4일 방문시에는 유적지를 보완하기 위하여 출입통제로 관람이 불가능하였다.

 

< 유적지 앞에 서 있는 '조성기념비' >

 

유적지로 들어가는 도로 따라 조금 걸어가면 유적지 정문이 되는 솟을대문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솟을대문에도 '충의문(忠義門)'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 유적지의 '정문' >

 

솟을대문을 통과하면서 참배로(參拜路) 따라 내부로 들어가면 4각으로 만든 아취형 문을 만나면서 이 아취형 문을 통과하면 원형의 광장을 만나는데, 광장 주변으로 사명대상의 일대기를 표현하고 있는 모자이크 그림이 그려져 있다.

 

<  광장 앞에 있는 4각의 '아취형 문' >

 

<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그린 '모자이크' 그림 >

 

모자이크 그림 광장을 지나면서 일단의 축대 위로 넓은 마당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마당의 끝지점에 사명대사 '기념관(記念館)' 이 자리하고 있는데, 자동으로 열리는 출입문을 통과하여 기념관 내부로 들어가면 모든 조명이 자동으로 밝혀진다.

 

< 사명대사를 기리는 '기념관' >

 

더불어 전시실 내부에는 사명대사의 일대기 대부분이 영상(映像)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사명대사 유정은 조선 중기의 고승으로써 호는 사명당(四溟堂), 송운(松雲), 종봉(鍾峰) 등으로 불려지고 법명은 유정(惟政)이며 성(姓)과 본관은 풍천임(豊川任)씨 이라고 한다.

 

< '전시실' 로 들어가는 통로 >

 

< '전시실' 내부의 전경 >

 

어려서 아버지를 여위고 조부님 밑에서 공부하다가 명종 11년(1556년) 13세의 어린 나이로 경상북도 김천 황악산 밑에 있는 직지사로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으며, 명종 16년(1561년)에 승과에 급제한 이후 묘향산에서 서산대사 '휴정(休靜)' 스님의 법을 이어 받았다고 한다.

 

< 사명대사가 활약한 '사찰' >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마자 의승병(義僧兵)을 모집하였는데, 의승병과 함께 서산대사의 휘하로 들어가 승군도총섭(僧軍都摠攝)이 되어 명나라 군사와 협력하여 평양성 수복전(收復戰)에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많이 활동하여 수 많은 승전(勝戰)을 이끌어 내었고, 왜군의 수괴 '가등청정' 의 진중에 단신으로 3차례나 방문하여 단판을 이끌어내는 외교 전문가 이면서 전술 전략가로써 많은 공훈을 세운 스님이다.

 

< '가등청정' 과 단판을 버리고 있는 사명대사 >

 

임진왜란 때 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고 하면 육지에는 사명대사의 활약으로 많은 승전의 역사를 만들므로 선조는 '선무원종일등공신(宣武原從一等功臣)' 벼슬을 하사하였지만, 모든 관직을 사양하고 스님의 신분으로 생활하다가 1610년 8월 67세의 나이로 해인사 홍제암에서 입적 하신다.

전시실 내부에는 관람의 동선 따라 움직이면 사명대사의 일대기 대부분을 영상으로 제작하고 있는데, 그래서 어린들에게는 영상을 보면서 사명대사의 행적 또는 활약상을 공부하기에 편리성을 부여하고 있다.

 

<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는 '사명대사' 의 일대기 >

 

< 사명대사가 입었던 '장삼' > 

 

지금 까지 나는 많은 박물관과 유적지를 탐방하였지만 이곳 사명대사 유적지보다 이해도를 빠르게 할 수 있는 영상 전시실을 처음 대면하여 보는데, 이곳 전시실에는 해설사 없이 혼자 관람이 가능한 유적지이라 하겠다.

 

< 영화로 방영하고 있는 대형 '스크린' >

 

< 영상으로 표현하고 있는 '봉화불' >

 

횡하니 기념관을 돌아보고 밖으로 나와 기념관 주변을 거닐어 보는데, 기념관 윈편으로 대나무 숲 사이로 나무테크의 길이 만들어져 있어 힐링(Healing)을 느끼면서 걷기에 안성맞춤이 된다.

 

< 정문 까지 이어지는 '대나무 숲' 길 >

 

나무테크 길이 정문 가까이 도착하면 아담한 연못을 만나면서 나무테크의 길은 연못 가장자리 따라 만들어져 있는데, 연못 속에는 봄에서 부터 가을 까지 푸른색의 잎과 더불어 아름다운 꽃이 피는 연꽃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 연못 가장자리에 마들어져 있는 '나무테크의 길' >

 

또한 연못 가까이 어린이들의 천국이 되는 4층의 놀이기구가 만들어져 있으면서 이곳 놀이기구로 울라가기 위해서는 출렁다리가 만들어져 있는데, 출렁다리를 이용하여 겨우 1층에 올라가니 내려가는 길은 긴 터널로 만들어져 있는 미끄럼 틀 밖에 없다.

 

< 어린이를 위한 '놀이기구' >

 

놀이기구 입구에 어린들만 올라가라는 안내문을 무시하고 관리인 몰래 1층으로 올라갔지만 내려가는 미끄럼 틀에는 어른들이 내려 갈 정도의 큰 구멍이 되지 않아 낭패(狼狽)가 발생하는데, 할 수 없이 올라간 출렁다리로 다시 내려 갈려고 하니 다리가 떨려 죽을 맛을 느껴 본 놀이기구이다.

이렇게 사명대사 유적지를 다시 방문하므로 사명대사 업적을 한번 더 회상하는 기회를 가지면서 유적지를 떠나기로 하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밀양시와 인접하게 있는 부곡온천을 지나면서 왔던 길을 이용하기로 한다. - 3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