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시 문화와 산행.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에 자리하고 있는 '사명대사 생가 및 유적지' 를 다시 찾아갔지만.(4)

용암2000 2021. 5. 10. 11:01

 

2021년 5월 4일.(화요일)

 

4. 사명대사 생가를 돌아보면서.

 

영산정사를 떠난 일행은 영취산 입구에 있는 3거리 까지 내려와 3거리에서 직진의 도로를 이용하여 한 500m 정도 들어가면 '사명대사의 생가 및 유적지' 가 자리하고 있는데, 입구에 있는 다소 작은 주차장으로 들어가 주차를 한다.

 

< '사명대사의 생가 및 유적지' 의 조감도 >

 

< 주차창 가장자리에 세워져 있는 관람의 동선 '이정표' >

 

< 주차장 인근 '사명대사 유적지' 를 가르키는 입석 >

                                                                                 

주차장 입구에 있는 한 관리인이 현재 왼편에 있는 사명대사 유적지(四溟大師 遺跡地)는 1년 정도의 계획으로 대 수리를 하기 때문에 관람이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오른편에 있는 사명대사 생가(四溟大師 生家)만 관람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안내하여 준다.

밀양시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해발 739m '영취산(靈鷲山)' 산기슭에 사명대사의 조부모 및 부모님 무덤이 있으면서 그 무덤 앞에 약 1만 5천평의 대지 위에 사명대사 유적지를 조성하였지만, 밀양시가지로 부터 너무나 떨어진 외진 곳 이라 하겠다.

 

< '사명대사' 의 연역을 홍보하고 있는 안내문 >

 

이곳 유적지는 풍수설에 의하면 조부모 및 부모님 묘소가 자리잡고 있는 지점에는 목마른 용(龍)이 물을 먹는 형상을 하고 있고, 주산(主山)은 동자형(童子形)으로 하고 있으면서 그 아래로 좌청룡과 우백호가 감돌아 돌고 있으며 그 앞으로 뻗어있는 안산(案山)은 범이 엎드려 있는 모양이라 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모님 묘소가 있는 최고의 명당 인접 지역에 유적지를 조성하였다고 하지만, 상대적으로 밀양시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진 오지에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홍보가 이루어지지 않아 거의 관람객이 찾아오지 않은 적막강산(寂莫江山)이 내리고 있는 유적지이다.

나는 이곳에 있는 유적지 및 생가를 2013년 6월 24일에 방문을 한 경험이 있는 장소가 되므로 입구에 상주하고 있는 해설사에게 해설을 부탁하지 않고 바로 생가 방향으로 들어가는데, 입구에 기술하고 있는 사명대사의 연역을 다시 정독하여 본다.

사명대사는 조선 중기의 고승으로써 호는 사명당(四溟堂), 송운(松雲), 종봉(鍾峰) 등으로 불려지고, 법명은 유정(惟政)이며 성(姓)과 본관은 '풍천임(豊川任)' 씨 이라고 한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위고 조부님 밑에서 공부하다가 명종 11년(1556년) 13세의 어린 나이로 경상북도 김천시 황악산 밑에 있는 직지사로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으며 명종 16년(1561년)에 승과에 급제한 이후 묘향산에서 서산대사 '휴정(休靜)' 의 법을 이어 받았다고 한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마자 의승병(義僧兵)을 모집하여 서산대사의 휘하로 들어가 승군도총섭(僧軍都摠攝)이 되어 명나라 군사와 협력하여 평양성 수복전(收復戰)에 승리를 이끌었다고 한다.

이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많이 활동하여 수 많은 승전을 이끄러 내었고, 왜군의 수괴 '가등청정' 의 진중에 단신으로 3차례나 방문하여 단판을 이끌어내는 외교 전문가 이면서 전술 전략가로써 많은 공훈을 세운 스님이다.

임진왜란 때 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고 하면 육지에는 사명대사의 활약으로 많은 승전의 역사를 만들므로 선조는 '선무원종일등공신(宣武原從一等功臣)' 으로 벼슬을 하사하였지만, 모든 관직을 사양하고 스님의 신분으로 생활하다가 1610년 8월 67세의 나이로 해인사 홍제암에서 입적 하신다.

생가로 들어가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왼편으로 사명대사의 업적을 기리는 유허비(遺墟碑)가 서 있고 그 옆으로 사당으로 들어가는 정문이 자리하고 있는데, 정문의 현판에는 '충성을 분발하여 국란을 해결하였다' 는 뜻을 가진 '분충서난문(奮忠抒難門)'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솟을대문이 서 있다.

 

< 생가의 입구에 있는 '사명대사' 의 유허비 >

 

< 정면에서 바라보는 '유허비' >

 

< '유허비' 에 새긴 글씨 >

 

이곳 솟을대문과 마당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사당(祠堂)의 건물에 도착하는데, 사당 현판에는 '맑고 고상한 사명대사에 대하여 엄숙하게 경의를 표한다.' 는 뜻의 내용을 가진 '숙청사(肅淸祠)' 라는 현판이 반겨주고 사당 내부에는 사명대사의 영정과 위패을 모시고 있다.

 

< 사당으로 들어가는 '정문' >

 

< 사당 정문 앞에 피고 있는 '작약' 꽃 >

 

< 사명대사의 기리는 '숙청사' 사당 >

 

 < 사당 내에 모시고 있는 '위패 및 영정 그림' >

 

이곳 사당을 벗어나 오른편 구석 돌담 사이로 내려가면 사명대사의 생가에 도착하는데, 이곳도 입구 대문은 솟을대문 형태로 만들어져 있으며 그 문의 현판에는 '송운대사 구택(松雲大師 舊宅)' 이라고 쓰여있다.

 

< 사당에서 생가로 들어가는 '돌담' >

 

< 생가로 들어가는 '솟을대문' >

 

대문을 통과하자 마자 사랑채 건물이 머물고 있으면서 건물의 왼편으로 안채로 들어가는 통로가 자리하고 있는데, 통로의 왼편 한칸에는 부엌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오론편으로는 2칸의 방과 함께 대청마루로 만들어져 있다.

 

< 솟을대문을 통과하면 만나는 '사랑채' >

 

< 사랑채 중앙에서 안채로 들어가는 '통로' >

 

사랑채의 통로를 통과하여 안채 방향으로 들어가면 안채의 앞에 넓은 마당이 자리하고 있고 마당의 뒤편에 있는 일단의 축대 위에 안채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안채의 건물은 전형적인 사대부의 건물과 같이 정면 5칸에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건축되어져 있다.

 

< 일단의 축대 위에 자리하고 있는 '안채' >

 

건물의 형태에는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편으로 2칸의 안방과 함께 부엌으로 만들어져 있고 오른편에는 작은 따림 방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대청마루에는 육영당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 안채의 대청마루 위에 붙어있는 '육영당' 한자 >

 

이곳도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을 관람을 끝내고 생가를 벗어나 다음 관광지가 되면서 밀양의 3대 신비의 유적지 중에 하나가 되는 만어사를 찾아가기로 하는데, 만어사는 삼량진의 뒤편에 있는 먼어산의 꼭지점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어 다소 많이 이동을 하여야 한다. - 4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