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및 트레킹.(설악산)

강원도 설악산 내에 자리하고 있으며 천년고찰이 되는 '신흥사' 를 방문하면서.(4)

용암2000 2023. 8. 28. 11:53

2023년 8월 21-23일.(2박3일)

2, 둘째날 : 8월 22일.(화요일)

2) 천년고찰 신흥사를 방문하면서.

설악산의 명소 중 하나가 되는 권금성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 하부승차장 인근으로 식당가를 형성하고 있는데, 다소 불실한 아침식사와 더불어 아침 부터 힘든 산행으로 인하여 홀쪽한 배를 충진하기 위하여 빠른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그래서 케이블카 하부승차장 인근에 있는 많은 식당 중 산채 비빔밥을 잘 한다는 한 식당으로 들어가 맛 있는 점심식사 시간을 가지는데, 많은 식객들과 함께 산채 비빔밥을 주문하여 '맛파람에 게눈 감추는 듯' 한그릇의 식사를 해결한다.

풍족한 식사 시간을 가지고 나서 금일 오후 일정으로는 옛날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방문하였던 비선대 까지 걷기로 하는데, 비선대로 올라가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설악산 내에 천년 고찰이 되는 '신흥사(新興寺)' 를 먼저 탐방하기로 한다.

우리부부는 2012년 10월 21일 대구에 있는 한 산악회에서 추진하였던 울산바위 산행에 참석하였던 과정에서 하산 길에 돌아보았던 신흥사를 다시 탐방하기로 하는데, 식당가를 지나면 이내 신흥사 영역을 표시하고 있는 일주문을 만난다.

< '신흥사' 의 영역을 표시하고 있는 일주문 >

일주문을 통과하여 한 100m 정도 올라가면 오른편으로 신흥사의 상징이 되는 '통일대불(統一大佛)' 을 만나는데, 통일대불은 우리민족의 염원이 되는 통일을 이루고자 대덕스님을 비롯하여 2천만 명 불자들의 발원과 7천만 명의 정성을 모아 건립하였다고 한다.

< 신흥사의 상징이 되는 '통일대불' >

이곳 통일대불은 실항민들의 슬픔과 분단의 아픔을 품고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설악산 입구에 통일대불 청동좌상(靑銅坐像)을 봉안하였는데, 청동좌상은 1997년 10월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 통일대불 앞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청동 등(燈)' >

< 통일대불 앞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는 '청동 등(燈)' >

청동좌상에 사용한 청동의 량이 약 108톤(Ton)이 되고 대불의 전체 높이가 14.6m가 되고, 좌대 높이가 4.3m에 좌대 직경이 13m가 되며 좌대 둘래에는 16명의 나한상(羅漢像)이 조각되어 있다.

< '통일대불'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 통일대불 앞에 자리하고 있는 '권금성' 전경 >

통일대불 뒤편으로 돌아가면 대불 몸 안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만들어져 있는데, 계단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을 봉안하고 있지만 입구를 지키는 한 보살이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다고 하여 그냥 돌아서기로 한다.

대불을 통과하면 이내 신흥사로 들어가는 3거리 계곡을 건너면서 왼편으로 천불동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이고, 오른편으로 울산바위로 올라가는 갈림길이 나타나면서 양쪽 길 모두가 수 많은 탐방객들이 움직이고 있다.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다리를 건너면 다리 오른편으로 아름다운 찻집이 자리하고 있고 이곳 찻집에서 경사면 따라 약간 올라가면 경내의 첫관문 '사천왕문(四天王門)' 을 만나는데, 사천왕문 내에 험상굳은 4명의 사천왕이 탐방객에게 위엄을 보여주고 있다.

 

< 신흥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다리' >

< 신흥사 경내의 입구에 있는 '사천왕문' >

< 사천왕문 내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는 '사천왕' >

< 사천왕문 내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사천왕' >

사천왕문을 지나면 아담한 정원과 함께 정원 뒤편으로 정면 7칸에 측면 2칸이 되면서 2층의 '보제루(普濟樓)'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보제루 건물 옆에 신흥사를 소개하는 안내문이 자리하고 있다.

< 경내의 두번째 문이 되는 '보제루' >

< '보제루'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신흥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로 신라 진덕여왕 6년(652년)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사찰로써 처음에는 '향성사(香城寺)' 이리고 하였는데, '향성' 이라는 이름은 불교의 '중향성불토국(衆香城佛土國)' 이라는 글에서 따온 것으로 중향성은 금강산(金剛山)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 후 향성사는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의 자리로 이전 중창하여 먼저 귀신 신(神) 자를 쓴 신흥사(神興寺)' 로 하였다가 1995년 영동 불교를 새롭게 일으킨다는 뜻으로 새 신(新) 자를 써서 '신흥사(新興寺)' 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보제루 아래에 있는 계단을 통하여 위로 올라가면 경내 마당에 도착하는데, 마당 중앙에는 한기의 석등과 더불어 마당 좌우에는 요사채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마당 뒤편 일단의 축대 위로 주불을 모시고 있는 보물 제1981호 '극락보전(極樂寶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극락보전' 앞 경내의 전경 >

< 석등과 함께 하고 있는 '극락보전' >

< '극락보전' 건물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는 안내문 >

< 극락보전 앞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는 '요사채' 건물 >

< 극락보전 앞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요사채' 건물 >

극락보전 내에는 보물 제1721호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이 자리하고 있는데, 불상의 배 안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따르면 조선 효종 2년(1651년)에 조각승 '무염' 이 만들었다고 전하여 지고 있다.

< 극락보전 내에 모시고 있는 '삼존좌상' >

극락보전 왼편으로 명부전(冥府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건물 내부에는 보물 제1749호 '목조지장보살 삼존상(木造地藏寶薩 三尊像)' 을 모시고 있고, 극락보전 건물과 명부전 건물의 뒤편 사이로 삼성각(三聖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극락보전 건물의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명부전' >

< 극락보전과 명부전의 뒤편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삼성각' >

다른 한편으로 극락보전 오른편에는 '조사전(祖師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지만 수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건물 내부에는 빈공간으로 남아있고, 마당의 윈편 제일 구석에 2층의 형상 '범종각(梵鐘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극락보전 건물의 오른편 자리하고 있는 '조사전' >

< 마당의 앞 왼편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범종각' 건물 >

< 보제루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는 '설정각' 우물 >

이 밖에도 경내에는 설정각이라는 우물을 비롯하여 각종 요사채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어 다소 큰 규모의 사찰이 되는데, 무더위로 인하여 구석구석을 돌아보기에 다소 난이하여 경내를 떠나기로 한다. - 둘째날 2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