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및 트레킹.(설악산)

설악산 울산바위 전망대가 되는 '신선암' 등산 및 65년 만에 개방된 외옹치 해변의 산책.

용암2000 2018. 6. 10. 21:19

2018년 6월 6일.(수요일) 

 

1. 설악산 울산바위 전망대가 되는 신선암의 산행.

 

오늘은 호국의 달이면서 6월 6일 현충일이 되는 날로써 Wife와 함께 산행에 한번 도전하여 보기로 하는데, 산행지는 이곳 대구에서 제일 머나먼 곳 중에 하나가 되는 북설악산에 있는 '신선암(神仙岩)' 으로 산행을 추진하여 보기로 한다.

지금까지 무릎 통증으로 가능한 산행을 지향하면서 트레킹 위주의 걷기운동 중심으로 체력을 보강하고 있었는데, 금일은 드림산악회에서 금강산 화암사를 내려볼 수 있는 신선암 산행을 추진하겠다는 안내문에 따라 매력을 발동하게 만든다.

아침 5시 40분 까지 집결지가 되는 대구 동아쇼핑 앞으로 나아가니 평소에 잘 알고 있는 여성 가이드(Guide)가 반가운 인사와 더불어 제일 앞 좌석을 지정하여 주면서 목적지가 되는 강원도 속초시가지로 달려간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침식사와 더불어 몇번 휴식을 취하면서 속초시가지를 관통하는데, 미시령고개 옛길로 조금 올라가다가 '델피노 골프 앤 리조트' 앞을 통과하여 산행 들머리가 되는 금강산 화암사 입구에 있는 대형주차장에 10시 40분 경 안착한다,

'금강산 화암사(金剛山 禾巖寺)' 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일주문을 통과하면서 Guide는 간단하게 화암사 내력을 설명하는데, 옛날에는 미시령고개를 경계로 설악산 또는 금강산으로 상호 구획하고 있있지만 6.25 전쟁으로 금강산 대부분은 북한 영역으로 들어갔다.

 

< '금강산 화암사' 로 들어가는 일주문 >

 

더불어 미시령고개 이북 지역에 있는 일부 금강산은 존재 가치가 미미하여 설악산으로 통합이 되어지는데, 그래서 설악산은 신흥사를 중심으로 하는 '외설악산' 과 백담사를 중심으로 하는 '내설악산'  및 오색약수터를 중심으로 하는 '남설악산' 에서 화암사를 중심으로 하는 '북설악산' 으로 나누어진다.

더불어 화암사는 금강산 팔만구암자(八萬九庵子) 중 첫번째로 손꼽히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에 위치한 전통 사찰 제27호가 되는데, 창건 당시 사찰의 명칭을 금강산 화암사로 되면서 현재 북설악산에 자리하고 있지만 한번 작명된 승명(僧名)을 그대로 사용하므로 금강산 화암사로 표기가 된다고 한다. 

특히 오늘 산행코스를 개략적으로 설명하는데, 이곳 금강산 화암사 일주문에서 약 1Km 정도 시멘트 포장길 따라 올라가면 화암사로 들어가기 전 기념품과 음료수를 판매하는 상가 건물을 만나면서 계속하여 바로 올라가면 화암사 경내로 들어가는 길이지만 그 앞에 있는 왼편 사잇길로 들어가 100m 정도 올라가면 수바위를 만난다.

이곳 수바위에서 다시 2Km 정도 올라가면 성인대를 만나는데, 성인대 앞에 신선암 방향으로 출일을 통제한다는 안내문을 무시하고 오솔길 따라 조금 올라가면 오늘 산행의 하일라이트가 되는 신선암에 도착한다.

이곳 신선암은 설악산의 명품이 되는 울산바위를 조망하는 최고의 천연 전망대가 되는데, 이곳에서 오랜시간 동안 머뭄과 더불어 점심식사의 시간을 가지고 화암사 이라고 쓰여 있는 이정표 따라 계곡 방향으로 하산하여 원점회귀의 산행으로 이루어진다.

더불어 산행의 거리와 시간은 주차장에서 화암사 앞에 있는 3거리까지 약 1Km가 되고 3거리에서 신선암까지 2Km, 신선암에서 화암사까지 2Km가 되므로 총 걷는 거리가 6Km에 약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여가 1시간을 더하여 하산 종료시간을 오후 2시 10분으로 하겠다고 한다.

Guide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으면서 천천히 고도를 상승하면 길의 가장자리에는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고승의 오도송(悟道頌)과 더불어 열반송(涅槃頌)을 새긴 내용이 도열하고 있는데, 이곳 시들을 대충 읽어보면서 걸어가면 사찰의 크기를 가름할 수 있는 부도탑 군락지가 자리하고 있다.

 

< '성철스님" 의 열반송 >

 

< '겸허스님' 이 남긴 선시 >

 

< 사찰의 크기를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부도탑' 군락지 >

 

< '석가모니불' 열반유훈을 이야기 하는 장면 >

 

울창한 도토리나무 숲과 더불어 잘 쌓여있는 돌탑을 구경하면서 10여 분 정도 올라가면 도로의 가장자리에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가 건물을 만나는데, Guide는 입구에 서서 개개인에게 산행의 들머리를 안내하여 준다.

 

< '화암사" 로 들어가는 길 >

 

< 곳곳에서 만나는 '돌탑' >

 

< 화암사 입구에 있는 '기념품' 상가 >

 

< 기념품 상가 앞에 있는 '산행 들머리' 이정표 >

 

< '성인대 및 신선암' 으로 올라가는 산행도 >

 

산행 들머리에서 부터 다소 경사도가 있는 고난의 길로 10여 분 정도 올라가면 깔딱고개가 되면서 왼편으로 거대한 바위를 만나는데, 이 바위의 명칭을 '수(穗)' 바위이라고 하면서 바위의 허리까지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면서 모험을 즐기고 있다.

 

< 초입 부터 빡시게 '올라가는 길' >

 

< 거대한 바위가 되는 '수 바위' >

 

바위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휴식의 시간을 가지고 나서 찬찬히 바위를 구경하면서 바위 앞에 기술하고 있는 현황판을 정독하여 보는데, 수 바위는 우리들에게 교훈을 일깨워주는 욕심 많은 객승(客僧)에 대한 이야기이다.
화암사는 민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스님들은 항시 시주를 구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하는데, 몸에서 깨달음이 되는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라 하면서 우선 몸이 지탱되어야 수도 할 수 있었기에 겨울이 되면 끼니가 걱정이 되었다.

그러던 중 화암사에서 수도를 하던 두분의 스님이 계셨는데, 어느 날 두분의 스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수 바위에 조그만 구멍이 있으니 그 곳으로 찾아가 끼니 때 마다 지팡이로 세 번 흔들어라고 하였다.
잠에서 깨어난 스님들은 아침 일찍 수 바위로 달려가 꿈을 생각하며 노인이 시킨 대로 했더니 정말로 두 사람분의 쌀이 쏟아져 나왔다고 하는데, 그 때 부터 스님은 식량 걱정 없이 편안히 불도에 정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한 객승이 찾아와 이곳 스님들은 시주를 받지 않고도 수 바위에서 나오는 쌀로 걱정 없이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그래서 객승은 세 번 흔들어서 두 사람분의 쌀이 나온다면 여섯 번 흔들면 네 사람분의 쌀이 나올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날 날이 밝기를 기다려 아침 일찍 수 바위로 달려가 지팡이를 넣고 여섯 번을 흔들므로 객승의 욕심에 산신(山神)이 노하여 쌀이 나와야 할 구멍에서 엉뚱하게도 피가 나왔고, 그 후 부터 수 바위에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이곳 바위와 얽힌 다른 구전의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는데, 임진왜란이 한참 일 무렵 왜군들이 볏짚으로 위장한 수 바위를 보고 놀라면서 군량미를 쌓아둔 것으로 착각하면서 군사들이 엄청나게 많은 것으로 알고 지레 겁을 먹고 여기를 침범치 못하고 도망갔다고 한다.

 

 < '수 바위' 앞에 있는 현황판 >

 

< 수 바위 옆으로 보이고 있는 '울산바위' >

 

또한 수 바위에는 계란 모양의 바닥 위에 왕관 모양의 또 다른 바위가 놓여 있는데, 바위 윗면에는 길이가 1m에 둘레가 5m 정도의 웅덩이가 있으면서 그 웅덩이에는 항상 물이 고여 있다고 한다.

그래서 고성 사람은 가뭄이 발생하면 이 물을 떠서 주위에 뿌리고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렸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이 바위를 물 '수(水)자' 를 써서 수 바위(水巖)이라고 하였고 반면에 너무나 아름다워 빼어날 '수(秀)자' 를 써서 수 바위(秀巖)이라고 불렸다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수 바위가 너무나 거대한 바위가 되므로 아래에서는 일부만 보이므로 고도를 상승하면서 가끔씩 바위를 바라보면 바위의 위용이 점점 나타내고 있어 정말 화암사의 명풍이 되는 바위이다.

 

< 고도를 상승하면서 바라보는 '수 바위' 상부 >

 

폭포수와 같이 흐르는 땀을 훔치면서 고도를 상승하고 있으니 산의 주변으로 금강송 나무들이 도열하고 있는데, 수 많은 '피톤치드' 이라는 방향성 물질을 뿜으므로 다소 상쾌한 기분으로 20여 분 정도 더 고도를 상승하면 이제는 시루떡과 같이 포개진 바위를 만난다.

 

 < 다시 만나는 '시루떡' 바위 >

 

시루떡 바위 앞에서 충분한 휴식 시간을 가지면서 지참하고 있는 오이와 물로 허기진 배 및 갈증을 해소시키고 본격적으로 산행길로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가끔씩 나무테크의 길이 만들어져 있지만 대부분 마사토 길이 되므로 매우 미끄러운 길이 된다.

죽을 힘으로 30여 분 정도 더 고도를 상승하면 이윽고 거대한 바위 아래를 지나는데, 그 바위 뒤편으로 올라서면 바위 전면에 성인대(聖人臺)" 이라는 팻말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머물면서 이곳 까지 올라온 것이 대하여 수고하였다는 인사가 쏟아진다.

 

< '성인대' 옆에서 바라보는 전경 >

 

성인대 앞에 있는 안내문에 따르면 성인대는 아주 먼 옛날 '조' 씨 성을 가진 나그네가 모닥불을 지피면서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모닥불에 굽고 있었던 조약돌을 호랑이 입에다 접어 넣었다.

이에 호랑이는 고통을 참지 못하여 딩굴다가 돌만 뱉어 버리고 죽으므로 뱉어버린 돌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훗날 죽은 호랑이는 토성면 인흥리 주민들이 신성시 하는 성황산이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성인대 앞에서 한숨을 돌리고 나서 천천히 바위로 올라가 보면 성인과 같이 생긴 거대한 2개의 바위가 서 있는데, 그 앞으로 호랑이가 뱉어버린 조약돌 같이 생긴 둥근 바위가 자탈스럽게 자리하고 있으면서 이곳에서 바라보는 주변 조망이 환상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 2명의 성인과 같이 서 있는 '성인대' >

 

< 호랑이가 뱉어버린 '조약돌' >

 

< 성인대에서 바라보는 '신선암' 방향 >

 

이곳 성인대에서 신선암으로 가는 방향으로 출입을 금지한다는 팻발이 붙어있지만, 팻말의 내용을 무시하고 뒤편으로 올라가면 이내 능선에 도착하면서 신선암은 거대하면서 평평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 신선암 방향으로 출입을 금지시키는 '팻말' >

 

<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지고 있는 '신선암' >

 

바위 위를 걸어 조금 앞으로 전진하여 나아가면 거대한 계곡의 건너편으로 웅장한 울산바위를 조망할 수 있는 자연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는데, 전망대에서는 울산바위를 비롯하여 설악산의 위풍당당한 뒤 모습이 마치 한폭의 산수화를 만들고 있다.

 

< 신선암에서 바라보는 '울산바위' >

 

< '울산바위' 를 배경으로 >

 

< 신선암에서 '울산바위' 를 감상하고 있는 등산객 >

 

이곳 화암사 뒤편에 있는 등산로는 출입을 금지하였으나 2년 전 화암사 주변으로 둘레길을 만들므로 이곳 성인대와 신선암도 함께 오픈하였는데, 아직도 안전시설이 전무하므로 전망대 끝지점까지 가는 것이 다소 위험한 지역이 된다.

고소공포증 덩어리가 되는 나는 견물생심(見物生心)의 전망대가 되지만, 젊음이는 전망대 끝에 있는 낙타바위 까지 올라가서 울산바위를 더욱더 가깝게 감상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어 정말 젊음이 좋겠다는 부려움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 신선암 끝에 있는 '낙타바위' >

< 낙타바위 앞에 있는 '거북바위' >

 

신선암 전망대에서는 성인대에서 보다 더 다양한 방향으로 조망이 열리고 있는데, 동쪽으로 바라보면 조금 전에 출발한 수 바위를 비롯하여 그 뒤편에는 앞으로 갈려고 하는 하산지점의 끝에 화암사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 전망대 앞에 자리하고 있는 '수 바위' >

 

< 수 바위와 함께 하는 '화암사' 전경 >

 

고개를 조금 들어 먼쪽으로 바라보면 다소 흐린 날씨로 인하여 좋은 조망은 아니지만, 그래도 희미하게 속초시가지 빌딩과 더불어 속초의 명품이 되는 영랑호 및 청초호가 한폭의 그림을 만들고 있다.

 

< 다소 희미하게 보이는 '속초시가지' >

 

< 발 아래에 있는 '리조트' >

 

눈을 약간 북쪽 방향으로 돌리면 속초에서 미시령으로 넘어가는 옛길과 더불어 새롭게 건설한 미시령 터널을 통과하는 도로가 함께 달리고 있고, 그 꼭짓점으로 설악산에서 미시령 고개를 넘어서 종주하는 백두대간의 능선이 연결된다.

 

< 미시령으로 넘어가는 '옛길' 과 새로운 도로 '터널' >

 

이곳의 백두대간은 산행이 금지 되면서 출입 통제구역이 되는 해발 1242m '상봉' 과 해발 1212m '신선봉' 이 파란색 하늘과 조화를 이루면서 끝없이 연결되는 능선이 북쪽으로 흐르고 있다.

 

< 백두대간이 되는 '상봉과 신선봉' 능선 >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으로 인하여 쉽게 신선암 바위를 떠나 가기가 아쉬워 계속하여 주변의 조망을 감상하기 위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점심식사를 하겠다는 생각을 접고, 전망대 주변에 있는 소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가 조망을 감상하면서 간단하게 준비한 점심식사 시간을 가져본다.

 

< 다시 확대하여 보는 '울산바위' >

 

충분한 휴식 시간을 가지고 성인대 방향으로 다시 나와 이제는 올라왔던 길의 반대 방향이 되면서 화암사를 가르키는 방향으로 걸어가기로 하는데, 처음에 다소 오르막 길이 되지만 이내 평탄한 길이 된다.

울창한 숲속으로 10여 분 정도 걸어가면 3거리가 나타나면서 눈 앞에는 백두대간으로 올라가는 길이 되지만, 이곳 방향으로 출입 통제구역이 되므로 하산 방향이 되는 화암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 '화암사' 방향을 가르키는 이정표 >

 

한 5분 정도 하산을 하면 급경사 내리막 길이 되면서 길 전체가 마사토로 이루어져 있는데, 매우 미끄러운 길이 되지만 안전시설이 없어 길가에 있는 잡나무를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하산 하여야 한다.

거의 1시간 정도 고생을 하면 물이 흐르는 계곡에 도착하지만, 마사토에서 고생한 발을 위하여 신과 양발을 벗고 개울가로 내려가 찬물에 화근거리는 발을 담그고 한참 동안 맛사지를 하므로 겨우 진정이 된다.

계곡 따라 다시 5분 여 정도 내려가면 신선암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였던 화암사 경내로 들어가는 다리를 만나면서 경내를 구경하여 보기로 하는데, 이곳 화암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신라 혜공왕 5년(769년) 진표()율사가 창건하여 사찰 명칭을 금강산 '화엄사()' 이라고 하였는데, 사적기에 의하면 당시 금강산으로 들어온 진표율사는 금강산 동쪽에는 발연사()를, 서쪽에는 장안사()를, 남쪽에 화엄사를 창건하였다.

화엄사 이라고 한 까닭은 이곳에서 화엄경을 강의하여 많은 중생을 계도하였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당시 화엄경을 배운 제자 100명 가운데 31명은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갔고, 나머지 69인은 무상대도()를 깨달았다고 한다.

또 진표율사는 이곳에서 지장보살을 친견하고 그 자리에 지장암()을 창건하여 화암사의 부속 암자로 삼았는데, 그 뒤 인조 1년(1623년)과 연이어 1635년 산불이 일어나 사찰 전체가 불타 버린다. 

조선 현종 3년(1662년)에도 화재가 발생하였으며 숙종 42년(1716년)에는 산적들이 불태워 버렸고, 영조 36년(1760년) 대웅전과 향각() 및 승당이 불타자 승려들이 협력하여 이듬해 승당을 다시 세웠고 1762년 대웅전과 향각을 중건하였다.

고종 1년(1864년) 다시 산불로 소실하자 불타지 않은 승당에 임시 법당을 마련하고 지냈는데, 화재를 면하고자 풍수지리에 입각해서 남쪽의 화기를 지닌 수암()과 북쪽의 코끼리 바위의 맥(脈)이 상충하는 자리를 피하여 100m 아래에 절을 짓기로 하였다.

1912년에는 사찰령()에 따라 전국 31본사 중 금강산 건봉사() 말사가 된 뒤 부터 화암사라는 이름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였는데, 1915년 9월 다시 불타 1917년 중건하였지만 1950년 6.25 때 크게 파손되어 건물 1동만 남게 되었다.

화암사는 천년 고찰이 되지만 이렇게 많은 화재로 인하여 역사적인 건물이나 문화재를 보유하지 못하고 전적으로 새로운 건물로 지어져 있는데, 그래도 불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하였는지 많은 전각을 가진 사찰이라 하겠다.

다리를 건너면 넓은 광장과 함께 요사채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왼편의 계단을 올라가면 또 다시 넓은 마당과 함께 마당 가운데 9층석탑 및 석등과 더불어 본찰 건물이 되는 대웅전 건물이 일단의 축대 위에 자리하고 있다.

 

< 다리를 건너면 만나는 '화암사' 요사채 건물 >

 

< 좌측 축대 위에 있는 '구층석탑과 대웅전' >

< 대웅전 내에 모시고 있는 '삼존불' >

 

< 대웅전 앞에서 바라보는 '수 바위' >

< 대웅전 오른편 축대 위에 있는 '석가모니불' >

 

본당 앞에 서서 주변을 살펴보면 오른편 마당 끝지점에 범종각 건물과 더불어 그 뒤편으로 웅대한 수 바위가 지척에 두고 있는데, 화엄사 터가 얼마나 명당에 자리하고 있는가를 알게 만든다.

 

< '9층석탑와 범종각 건물 및 수 바위" 의 전경 >

 

경내 주변으로 산재하고 있는 삼성각을 비롯하여 다양한 건물을 구경하다가 주어진 시간의 임박으로 사찰을 벗어나 오전 산행의 출발지점이 되는 기념품 판매 건물에 도착하는데, 이곳에서 부터 도로 따라 하산하여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2시 30분 경 도착이 된다.

 

< 대웅전 뒤편에 있는 '삼성각' >

 

2. 외옹치항 둘레길의 산책.

 

주차장 가장자리에 주차하고 있는 버스에 도착하니 Guide가 안절부절하면서 우리부부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제는 하산 종료시간을 2시 10분으로 하였지만 전화도 받지 않으면서 주어진 시간에서 20분 이나 초과하여도 나타나지 않아 크게 걱정 하였다고 한다.

우리부부는 20분 일찍 산행을 출발한 것을 깜박 잊어버리고 오직 안내 팜플릿에서 주어진 2시 30분 종료시간만 기억하다 보니 큰 불상사가 발생하였는데, 하필 오늘 따라 나의 스마트 폰 작동 에러가 발생하면서 통화도 불통이 되었다.

근원적으로 치매 초기로 들어가므로 이제는 한번 들었던 것도 기억에서 깜박 깜박 한다면서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는 일행에게 사과하고, 버스는 다음 관광지가 되는 외옹치 해변으로 달려간다.

외옹치 해변은 속초시가지 중심지에 있는 청초호와 인접하게 있는 해변으로 아름다운 외옹치 해수욕장과 더불어 외옹치 항구가 유명한데, 외옹치 해변은 유별나게 바다로 돌출하고 있어 간첩들이 자주 상륙하므로 장기간 군사 통제구역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최근 외옹치 해수욕장의 북쪽 끝지점에서 외옹치 항구까지 1,74Km를 '외옹치 바다향기로' 길을 조성하였는데, 반대로 1953년 부터 군사용 철조망이 설치되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다가 2005년 여름철 외옹치 해수욕장 부분만 먼저 개방이 되었다.   

 

< '외옹치 바다향기로' 를 상징하고 있는 조형물 >

 

바다향기로 길 중에서 해수욕장 길이를 제외한 외옹치항 둘레길 약 950m는 계속하여 출입을 통제하다가 2018년 4월 12일 부터 지자체와 국방부 간에 지속적인 협의를 통하여 둘레길 따라 나무테크 시설을 만들었는데, 속초시민 및 전국적인 관광객에게 65년 만에 개방하므로 현재는 트레킹 길로 각광을 받고 있는 지역이라 하겠다.

화암사 주차장에서 10여 분 정도 시간으로 외옹치 해수욕장의 남쪽지점에 도착한 버스는 산행객을 하차시키고, 버스는 트레킹의 종점이 되는 외옹치 항구에 주차하겠다고 하면서 고개를 넘어 항구 방향으로 내려간다.

Guide는 외옹치항 둘레길 950m를 산책하는데 1시간 30분 정도 시간을 부여하는데, 실제로 걷는 시간은 30분 정도가 충분하므로 여분의 시간에는 외옹치 항구에 있는 회집으로 들어가 삼삼오오 뒤풀이 행사를 하는 것도 머나먼 속초까지 왔다는 추억의 발자취가 될 것이라고 한다.

아직도 해수욕장 시즌이 아니지만, 해변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것과 더불어 새롭게 만들어져 있는 해안선 둘레길을 걸으면서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으로 인산인해가 되는 해변이다.

 

< 속초시가지와 함께 많은 사람이 머물고 있는 '외옹치 해수욕장' >

 

< 해안선 둘레길 따라 조성하고 있는 '나무테크 길' >

 

해수욕장의 남쪽 방향으로 한 모퉁이를 돌면서 걸었던 북쪽 방향 길을 되돌아보면 해수욕장과 더불어 속초시가지의 빌딩들이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고, 반대로 남쪽 방향의 둘레길 위쪽 언덕에는 새롭게 건립한 롯데 리조트 건물이 장엄하게 자리하고 있다.

 

< 언덕 위 롯데 리조트와 함께 하고 있는 '트레킹 길' >

 

바다로 크게 돌출하고 있는 롯데 리조트 건물 아래로 만들어져 있는 나무테크 길은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품고 있는데, 곳곳에 만들어져 있는 전망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머물면서 망망대해 동해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 해안으로 돌출하고 있는 곳의 '전망대' >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다 바람을 마주 하면서 앞으로 계속하여 걸어가면 이내 외옹치 항구에 도착하면서 트레킹이 종료 되는데, 내항에는 다수의 배들이 정박하고 있으면서 그 뒤편으로 많은 횟집이 도열하고 있다.

 

< 트레킹 종점에 있는 '출입문' >

< '외옹치 항구' 의 전경 >

 

< 외옹치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해적선' 배 >

 

< 많은 '횟집' 과 함께 하는 외옹치항구 >

 

우리부부는 Guide가 지정하여 주는 횟집으로 들어가 물회와 더불어 소주 한병을 주문하여 보는데,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으로 2명이 한그릇의 물회를 시켰지만 푸짐한 량(量)으로 배를 두두리게 만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