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및 트레킹.(설악산)

45년 전 고교 수학여행 때 산행하여 본 강원도 설악산 "울산바위" 를 다시 찾아보면서.

용암2000 2012. 10. 23. 21:57

2012년 10월 21일 (일요일)

 

옛날 고등학교 2학년 때 설악산 수학여행 행사 중 흔들바위까지 갔다가 오는 일정이 있었는데, 인솔 선생님은 학생 안전을 위하여 흔들바위 주변 관광과 더불어 먼 발치에서 울산바위를 구경하는 것으로 제한하겠다는 엄명을 내린다.

하지만 소수의 학생들은 몰래 숨어 울산바위로 올라 갔다가 내려온 죄로 인하여, 그날 밤을 지새도록 불편한 대접을 당하여야 만 했던 추억의 장소를 45년 이라는 긴 세월의 간격(Term)을 두고 다시 그 길을 찾아 나선다. 

오늘도 대구 D산악회에서 여명도 열리기 전 아침 5시 30분 성서 홈플러스에서 출발하는 버스에는 45명의 Full 산행객을 싣고서 설악산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Guide는 오늘 산행코스를 2개의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제1코스는 신흥사에서 울산바위로 갔다 오는 산행 코스와 제2코스는 천불동 계곡으로 올라가 단풍을 구경 하면서 왕복하는 트레킹 코스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버스는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단양 휴게소로 들어가 산악회에서 제공하여 주는 아침식사를 간단하게 끝내고 이내 북쪽으로 달려서 홍천IC에 내려 설악산 방향의 국도로 들어가는데, 여기서 부터 서울 사람들의 단풍 행렬로 꼬리를 문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거북이 운전으로 달려가지만 휴게소 마다 차량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어, 계속적으로 달려가 마지막 설악산 입구에 있는 "설악휴게소" 로 들어가서야 비로써 불순물을 제거시키는 시간을 잠시 가진다.

 

< 마지막 휴게소가 되는 "설악휴게소" 로 잠시 들어가 >

 

이어 미시령 터널을 통과하고 나서 부터 급경사의 설악산 고개길로 내려가기 시작하는데, 우측편으로 오늘 올라 갈려고 시도하는 울산바위가 파노라마 같이 펼쳐지고 있어 더욱더 신비감이 묻어나는 산이다.

 

< 미시령에서 속초시내로 내려가는 길에서 만나는 "울산바위" 모습 >

 

미시령 터널을 통과하는 비용을 지불하는 Toll gate를 통과 하자마자 버스는 우측의 소로(小路)로 들어가 조금 달려서 "목우재" 를 넘어 설악동 입구로 들어갈려고 하는데, 도로가 완전하게 주차장을 만들고 있어 많은 기다림이 반복된다.

약 6시간 정도 경과하고 나서야 비로써 11시 10분 경 설악동 매표소 앞 주차장에 도착하는데, 주차장 입구 매표소에서는 금년도 마지막 단풍을 구경하기 위한 사람들로 인하여 인산인해의 행락객들이 머물고 있다. 

버스는 매표소 입구에 주차가 불가능하여 여기서 약 4Km 아래 C주차장에 대기하고 있으니 오후 4시 30분 전까지 매표소에 도착하여 셔틀 버스를 이용하여 C주차장에 도착하고, 오후 5시 출발하여 적어도 11시 전에 대구에 안착하도록 협조 부탁한다는 Guide의 계락적 산행 Schedule를 정하여 준다. 

단체 입장표를 구입하여 매표소를 통과하자 마자 인파 속으로 혼합되어 각자의 목적지 따라 설악산 내부로 들어가면 이내 설악산이 품고 있는 신흥사 일주문을 만나고, 연이어 거대한 "통일대불" 을 만난다.

 

< 매표소를 통과하면 만나는 "반달곰" 상 >

 

< 단풍이 내리고 있는 "설악산 소공원" 전경 >

 

< "신흥사" 일주문을 통과하는 관광객 >

 

이 통일대불은 우리민족의 염원이 되는 통일을 이루고자 대덕스님을 비롯하여 2천만 명의 불자들의 발원과 7천만 명의 겨레의 정성을 모아, 여기 실항민들의 슬픔과 분단의 아픔을 품고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설악산 입구에 신흥사 통일대불 청동좌상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 일주문을 통과하면 만나는 "통일대불" 모습 >

 

이곳 석가모니 청동좌상은 1997년 10월에 완공되었는데, 그에 사용한 청동이 108톤(Ton)이고 대불 높이가 14.6m에 좌대높이가 4.3m, 좌대직경이 13m가 되며 좌대 둘래에는 16나한상이 조각되어 있다.

 

< 좌대 둘레에 "16나한상" 새겨진 모습 >

 

이 청동대불 뒤편으로 돌아가면 대불 몸 안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 계단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으로 일체 중생을 보살피는 "천수천안 관세음보살님" 이 봉안되어 있지만 입구를 지키는 보살님이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다고 하여 그냥 돌아선다.

 

< 통일대불 뒤편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 을 모시고 있는 지하로 내려가는 문 >

 

대불을 통과하면 신흥사로 들어가는 3거리 계곡을 건너면서 왼편으로 천불동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이고, 오른편으로 울산바위로 올라가는 갈림길이 나타나면서 양쪽 길 모두가 수 많은 행락객들이 움직이고 있다. 

 

< 천불동 계곡과 울산바위로 갈려지는 지점 "삼거리 계곡" 모습 >

 

비록 무릎이 좋지 않는 나와 Wife는 이번 기회에 울산바위로 올라가지 않으면 더 늙어서는 체력의 한계로 인하여 거대한 바위로 올라가지 못할 것 같은 예감으로, 애둘러 울산바위 방향으로 길을 잡고 산행객 뒤를 따라서 걷기 시작한다. 

 

< 흰 속살을 내밀고 있는 "울산바위" 모습 >

 

이미 설악산 정성부위에는 단품이 떨어지면서 계곡까지 단풍이 내리고 있는 오솔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머물면서, 원색의 단풍나무 속에서 여가를 즐기는 무리들이 곳곳에 자리하면서 저물어가는 가을의 정치에 몰입하고 있다.

 

< "단풍" 이 계곡 아래 까지 내려온 길에서 >

 

이곳 길은 45년 만에 다시 찾는 길이 되다 보니 완전히 낮설은 길이라 무아지경으로 고도를 상승하고 있으니 멀리서 울산바위의 흰 모습이 가끔씩 얼굴을 살며시 내밀고 있는데, 빨리 오르고 싶은 마음으로 산행길을 재촉하여 보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므로 앞 사람의 뒤 꽁무니를 따라 가야만 한다.

 

< "산행객"  뒤 꽁무니를 따라 가다가 >

 

특히 산행객들 중에 미국 등 서구인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지만 간혹 중국과 동남아에서 방문한 산업 연수생들도 많이 포함되고 있어, 설악산은 완전히 전 세계 사람들이 찾은 한국 제일의 관광지이면서 명산이다. 

가는길 중간 지점에 2곳의 휴게소를 만나는데, 이곳 휴게소에는 벌써 울산바위를 갔다가 내려오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하산주를 즐기는 무리들로 장시진을 이루고 있어 많은 부러움이 묻어난다.

 

< 울산바위로 올라가는 길에서 만나는 "휴게소" 모습 >

 

< 올라가는 길에서 만나는 "인파" 와 간이 휴식 공간 >

 

그들 중 몇 명이 울산바위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적어도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이야기 함으로, 주어진 하산 시간을 맞추기 위하여 울산바위로 울라가는 것이 수포가 되는 것이 아닌지 다소 걱정도 일어나는 길이 된다.

 

< 서서히 "울산바위" 웅장한 모습이 나타나면서 >

 

상부 휴게소를 지나면서 한 모퉁이만 돌아서 올라가면 먼저 거대한 바위 위에 둥근 흔들바위가 보이고 있으며 그 뒤편 바위 사이에 조그만 암자가 하나 서 있는데, 이 암자가 "계조암(繼祖庵)" 이라고 하며 이 계조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가 되는 신흥사의 산내 암자이다.

 

< 먼저 만나는 "흔들바위" 를 배경으로 >

 

계조암 앞 넓은 바위 위에 있는 흔들바위는 한명이 흔들어도 백명이 흔들어도 똑 같이 움직인다고 하여 흔들바위라고 하는데, 이 흔들바위의 명성으로 인하여 계조암이라는 이름 석자가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 "계조암" 내부 안내를 알리고 있는 나무 이정표 >

 

이곳 계조암은 신라 진덕여왕 6년(652년) 신흥사를 창건한 "자장율사" 가 수도하기 위해 처음 만들었는데, 자장율사를 비롯하여 동산, 각지, 봉정 등 3명의 스님이 수도하였으며 이어 원효, 의상 등 여러 조사(祖師)들이 대를 물려 수도하면서 계승하였다고 하여 이름이 계조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거대한 바위 속에 자리잡고 있는 "계조암" 전경 >

 

계조암 오른편 옆으로 돌아앉은 바위가 "목탁바위" 암자로써, 이 암자는 목탁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다른 절에서 10년 걸려 공부하여도 끝나지 않은 수도가 이곳에서는 5년이면 끝낼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암자이다.

먼저 암자 앞에 있는 흔들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하여 기다리는 줄을 보니까 엄두가 나지 않아, 먼 발취에서 몇장의 사진을 찍고서 사찰 옆에 있는 목탁바위 속에 있는 석굴로 들어가 본다.

 

< "흔들바위" 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하여 기다리는 행렬 >

 

이 석굴에는 불국사의 석굴암에 있는 부처님 만큼 섬세하게 조각 되어진 부처님이 자라잡고 있어, 많은 불자들이 절을 하면서 소원성취를 빌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 "목탁바위" 로 들어가는 입구와 약수물을 마시는 관광객 >

 

< 목탁바위 내에 모시고 있는 "석불" >

 

석굴 앞에 흐르는 약수물로 갈증을 해소시키고 에둘러 울산바위 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계조암에는 울산바위 까지 거리가 1Km 로써 왕복 1시간 20분이 소요되며 바위에 걸쳐 있는 계단의 숫자가 808개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 "울산바위" 까지 거리와 소요시간 알림표 >

 

아름다운 단풍을 즐기면서 한참 올라가다가 적당한 곳에서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하고, 울산바위 밑 뿌리에 이르니 많은 사람들이 철제 계단으로 올라가기 위하여 대기하고 있다.

 

< "울산바위" 밑 뿌리로 밀려가고 있는 인파들 >

 

울산바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바위로써 해발 873m 이며 둘레가 4Km가 되는 단일 바위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태양 빛에 반사 되면 매우 아름다운 자태를 나타내고 있는 바위가 되는데, 정상으로 오르는 공포의 수직 808개 철제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매우 위험한 계단이다.

정상 전망대에 올라서면 시원한 동해 바다와 더불어 속초시가지의 빌딩들이 고즈넉 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눈을 남북 방향으로 돌리면 공룡능선에서 대청봉 및 화채능선 까지 Sky Line이 무척 아름답게 펼쳐지므로 아무리 힘이 들어도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게 만드는 신비의 바위이다. 

거대한 바위 한편에는 개미와 같이 작은 모습으로 Rock Climbing을 즐기는 알피니스트를 구경하면서 한참 기다림 끝에 한명씩 철제 계단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계단의 폭이 다소 넓어 양쪽으로 교행이 가능하여 많은 사람이 접근이 가능하다.

하지만 중간 지점에서 부터 교행이 불기능한 부분이 많아 올라갔던 사람 만큼 내려와야 비로써 올라감이 가능하여 지는데, 계단의 난간을 부여 잡고 무한정 기다림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 거대한 바위를 올라가는 "알피니스트" >

 

< 다소 넓은 폭을 가진 "철제 계단" 을 올라가는 계단 초입 >

 

< 내려오는 사람을 위하여 "철제 계단" 에서 퍼진 사람들 >

 

약 1시간 정도 소요되고 나서야 비로써 울산바위 전망대에 도착하는데, 좁은 전망대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운집하고 있어 인증 사진 한장도 찍지 못하고 주변 풍경을 한번 돌아보고 하산하여야 하는 비극이 발생한다. 

 

< "전망대" 로 올라가는 마지막 철제 계단 >

 

< 좁은 정상을 점유하고 있는 "관광객" >

 

< 정상 전망대에 있는 "포토 Zone" 모습 >

 

< 정상에서 바라보는 "미시령 고개 및 속초시가지" >

 

<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설악산 "천황봉" 능선 >

 

조금 아래로 내려와 울산바위 조망을 구경하여 보는데, 울산바위는 옛날 조물주가 멋진 바위 1만 2천개를 모아 금강산의 경관을 빼어나게 만들기 위해 전국의 잘 생긴 바위는 모두 금강산으로 모여라고 했다.

그래서 울산에 있는 큰 바위도 금강산으로 항하여 길을 떠났는데, 울산바위가 덩치가 워낙 커서 느림보 걸음으로 가다보니 설악산에 이르렀을 때 이미 금강산 1만 2천봉이 다 만들어 졌다고 하여 울산바위가 금강산으로 가다가 설악산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있어 울산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그후 설악산 유람 길에 나섰던 울산 원님이 신흥사 주지스님에게 소중한 울산의 바위를 가까이 가지고 있으니, 그 대가로 세(稅)를 요구하여 계속 받아냈다.

어느 해 신흥사 동자승이 나타나 세를 더 낼 수 없으니 울산바위를 울산으로 가져 가라고 하여, 울산 원님은 꾀를 내어 울산바위를 재로 꼰 새끼줄로 묶어 주면 가져가겠다고 했다.

동자승은 인근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에 자라고 있는 풀(草)을 모아 새끼를 만들어 울산바위를 동여매고 그 새끼줄을 불에 태워 그 재로 꼰 새끼줄을 묶었다.

울산 원님은 재로 꼰 새끼줄을 못 만들 것으로 생각하고 꾀를 냈지만, 재로 만든 새끼줄로는 울산바위를 울산으로 가져오기가 불가능하여 이 때 부터 신흥사에게 세를 받지 않아다고 하는 전설을 간직한 바위이다. 
이후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의 지명이 "묶을 속(束)" 자와 "풀 초(草)" 자를 써서, 속초(束草)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설악산 계조암에서 보면 울산바위가 마치 "울" 즉 울타리 같아 보인다고 하여서 "울 같은 산 위의 바위" ’라는 뜻으로 "울산바위" 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또 다른 유래도 내려오고 있다.

 

< 내려오면서 바라보는 "울산바위" 내부 전경 모습 >

 

< 아슬하게 지탱하고 있는 "울산바위" 모습 >


바위를 내려오다가 한 곳에서 머물면서 울산바위와 설악산 풍경을 감상하고 있으니 절로 노래 한 소절이 회상되는데, 몇일 전 가요무대에서 방송한 가수 남진씨가 부른 "이력서(履歷書)" 라는 가사가 생각나 코 노래로 읍조려 본다.

 

- 이력서 -

세월아 세월아 걸음을 재촉마라
하도 빨라가서 원망도 못했는데,
왜 자꾸자꾸 등 뒤에서 나를 떠미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사라서
죽자 살자 욕심 많아 그까짓 것 돈 모아도
둘러메고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닐 텐데,
휠휠휠 모두 털고 한 세상을 보냈더니
내 인생의 이력서는 이것 뿐이요.
공연히 한 세상을 헤매였구나.

 

노래 가사와 같이 45년 동안 한 세상을 헤매다가 오늘 이곳 울산바위에 올라와 신비스러운 금수강산을 내려다 보고 있으니, 참 나의 인생 덧없이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에 꽉 찬다.

지금 부터 라도 바르게 살아보자는 마음을 다짐하여 보지만 돈도 벌지 못하고 살아온 나의 인생을 생각하고 있으니 하도 가슴이 아파 공허한 마음으로 하산에 임하는데, 이젠 몸도 얼마 전 월악산 종주 산행으로 얻은 무릎 관절의 통증이 엄숩하므로 하산 마져도 더욱더 나를 괴롭게 만든다.

철제 난간을 부여잡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솦속으로 들어오니 올라 갈 때는 무심코 걸었던 길이 전부가 돌계단으로 되어 있어, 계조암까지 완전히 거북이 걸음으로 내려 가야만 한다.

 

< 많은 "계단" 으로 된 길을 걸어 내려 오면서 > 

 

계조암에서 부터 수 많은 인파 속으로 다시 흡수되어 천천히 왔던 길로 내려가면서 저물고 있는 가을 단풍과 기암괴석, 계곡의 아름다운 풍경을 기념 사진으로 담으면서 약 1시간 정도 걸어서 신흥사 사찰에 도착하여 경내로 들어가 본다.

 

< 내려오는 길에서 만나는 "단풍과 계곡" 을 배경으로 >

 

< 먼 발취 "기암괴석" 의 산을 만들고 있는 풍경도 보면서 >

 

신흥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로 신라 진덕여왕 6년(652년)에 자장율사가 청건한 사찰로써 처음에는 향성사(香城寺)라고 하였는데, 이 향성이라는 이름은 불교의 "중향성불토국(衆香城佛土國)" 이라는 글에서 따온 것으로 중향성은 금강산(金綱山)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 후 향성사는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의 자리로 이전 중창하여 먼저 귀신 신(神) 자를 쓴 "신흥사(神興寺)" 로 하였다가, 1995년 영동 불교를 새롭게 일으킨다는 뜻으로 새 신(新) 자를 써서 "신흥사(新興寺): 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거대한 돌로써 쌓은 담장 따라 들어가면 먼저 사천왕문(四天王門)이 나타나고, 이어 경전을 보관하고 있는 정면 7칸에 측면 2칸의 "보제루(普濟樓)" 건물이 나타나면서 보제루 아래층 기둥으로 이루어진 열린 공간의 통로를 통하여 계단 따라 올라서면 넓은 마당에 도착한다.

이 마당에 올라서면 마당 복판에 석탑이 서 있으며, 그 석탑 뒤편 마당 끝지점 석축 위에 "극락보전(極樂寶殿)" 이라는 아담한 본당이 자리하고 있다.

 

< 신흥사를 빛내고 있는 "돌담" >

 

< 사천왕문을 통과하면 만나는 2층 건물 "보제루" >

 

< 보제루 위쪽에 있는 "극락보전" 전경 >

 

사찰 앞 계단으로 올라서서 극락보전 문 앞으로 접근하여 내부를 돌아보면 건물 내부에는 인자한 "목조 아미타여래삼존좌상(木造 阿彌陀如來三尊坐像)" 이 중생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곳 3분의 부처님은 나무로 만들어진 목조 부처님으로 보물 제 1721호로 지정되어 있다.

 

< 나무로 만든 "목조 아미타여래삼존좌상" 모습 >

 

사찰을 한바퀴 빙돌아 구경하여 보면 기암괴석의 설악산 품 속에 자리잡고 있는 신흥사는 제3교구 본사 답게 많은 건물들이 상호 조화를 이루면서 건축되어 있는 모습이 너무나 포근하게 보이고, 곳곳에 많은 국내 및 외국인들이 사찰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 사진을 찍고 있는 "외국인" 모습 >

 

< 신흥사 경내에서 바라보는 "권금산성" 모습 >


경내에서 잠시 머뭄을 가지고 천천히 원점이 되는 설악동으로 내려서면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인파 사이로 빠져나와 셔틀버스가 운행하는 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줄의 꼬리가 끝도 없는 긴 인파로 머뭄의 인내심을 시험(Test)하고 있다.

 

< 설악산 "신흥사" 를 떠나면서 >

 

< 설악동 "소공원" 으로 다시 내려와서 >

 

버스를 내릴 때 기사 아저씨가 셔틀버스는 무료로 운행한다고 하였지만 기대와 달리 올라 올 때에는 무료로 운행하지만 내려갈 때에는 1.000원의 승차비를 요구하므로 지불하고, 짐짝 취급을 당하면서 산행 버스가 기다리는 C주차장으로 내려가니 출발시간 보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이 된다.

여유의 시간 동안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설악산 가을 하늘을 수 놓은 한대의 비행기가 흰 꼬리를 만들면서 저녁노을 속으로 살아지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

 

< 저녁노을 속으로 설악산 위 흔적을 남기면서 살아지고 있는 "비행기" > 

 

일행 중 몇 명이 다소 늦게 도착하므로 약속시간 보다 10여 분이 지연된 5시 10분 버스가 출발하여 대구로 내려가는데, 갈 때는 올 때와 달리 동해바다 옆으로 하여 강릉시가지를 통과하여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기로 한다.

가는길의 중간 지점에 있는 오대산 행락객들과 합류되는 진부 IC 에서 부터 완전히 주차장이 되어 엉금엄금 기면서 운전하다 보니, 올 때와 동일하게 6시간이 소요되면서 대구에 12시가 넘어서 안착된다.

 

< "강릉휴게소" 에도 잠시 들어가 >

 

당일 12시간 동안 버스 속에서 머뭄으로 여행의 여독으로 몸이 완전히 KO가 되는데, 정말 남진씨 노래가사와 같이 세월이 완전이 나의 등을 떠 밀고 있는 얄미운 시간이 되는 여행이 되는 하루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