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여행 및 산행.(경기도)

대학교 동문 3명과 함께 인천시 강화군에 자리하고 있는 '전등사' 를 관람하며.(1)

용암2000 2023. 11. 10. 22:42

2023년 11월 8-9일.(1박2일)

1. 첫째날 : 11월 8일.(수요일)

* 여행의 개요.

평소에도 가끔씩 한국의 산천(山川)과 더불어 유명한 관광지를 탐방하면서 우정을 쌓고 있으며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는 대학교 동문 3명과 함께 이번에는 인천광역시 강화군(江華郡) 내에 있는 관광지를 탐방하기로 하는데, 일정은 11월 8일에서 부터 9일 까지 1박2일로 계획을 잡는다.

이번 여행의 장소로는 강화도(江華島)를 비롯하여 강화도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 석모도(席毛島) 및 교동도(喬桐島)에 산재하고 있는 관광지를 탐방하여 보기로 한다.

현재 석모도 및 교동도는 강화도에서 부터 상호 대교(大橋)로 연결하므로 인하여 한몸과 같은 섬이 되어 왕래가 매우 편리한 섬이라 하겠다.

3개의 섬 중 석모도에서는 수목원을 비롯하여 자연휴양림을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 우리 일행은 자연휴양림 내에 자리하고 있는 휴양관에서 생활하는 것이 매우 효율성(效率性) 및 편리성이 높아 이번에도 석모도 자연휴양림 내에 있는 숲속의 집을 예약하게 되었다.

대구에서 출발하는 나는 아침 6시 48분 서울로 올라가는 무궁화 열차를 이용하여 수원역에 내려 지하철을 이용하여 금정역으로 올라가는데, 안양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 동문이 승용차로 금정역 앞에서 나를 픽업(Pick-up)하고 일정한 장소에서 나머지 2명의 동문과 도킹이 이루어진다.

대구에서 거주하는 대부분 사람들은 3개의 섬을 탐방하기에 그렇게 녹녹치 않은 거리에 있어 탐방이 어려운 장소 중 하나가 된다.

하지만 나는 안산에 있는 한 회사에서 근무(1998 - 2001년)할 때 2번의 강화도 산행 및 2009년 5월 집사람과 함께 석모도 산행을 통하여 2개의 섬은 어느 정도 인지(認知)하고 있는 섬이라 하겠다.

교통의 지옥이라고 불려지는 김포시를 겨우 통과하여 강화도에 입도(入島)하여 이번 여행의 첫번째가 되는 전등사(傳燈寺) 동문(東門) 앞에 1시 10분 경 도착하는데,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는 속담과 같이 동문 앞에 있는 한 식당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점심식사 시간을 가진다.

< '전등사' 동문 앞에 자리하고 있는 유료 주차장 >

1) 전등사의 탐방.

일반적으로 전등사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남문을 통하여 올라가는 것이 원칙이 되겠지만 다소의 사람들은 조용한 동문을 이용하는 사람도 많이 보이고 있는데, 식당가에서 부터 높은 계단을 이용하여 10여 분 정도 올라가면 깔닥고개에 도착한다.

이곳 깔닥고개에서는 전등사를 감쌓고 있는 '정족산성(鼎足山城)' 의 동문이 자리하고 있는데, 산성의 둘레 약 1Km가 되면서 축성 년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정족산성의 원래 이름은 삼랑성(三郞城)으로 단군의 세 아들이 산성을 쌓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정족산성' 의 동문 >

< '정족산성'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정족산성은 조그마한 산성으로 별로 유명하지 않지만 오히려 산성 안에 있는 '전등사(傳燈寺)' 가 자리하고 있어 유명한 산성이 되는데, 프랑스 군과 싸움을 하였던 병인양요(丙寅洋擾 : 1866년)의 전투 중 가장 치열하였던 격전지가 되는 산성(山城)이다. .

< 둘레 약 1Km 정도가 되는 '정족산성' >

산성의 내부 길 따라 100여 미터(m) 정도 들어가면 남문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남을 가지면서 이내 전동사 입구에 도착하는데, 전등사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 2층의 '대조루(對潮樓)' 이라는 루각 건물이 높은 계단 위에 자리하고 있다.

< 울창한 나무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대조루' >

< 마당에서 바라보는 '대조루' >

대조루 아래를 통과하여 계단 위로 올라서면 넓은 마당을 만나는데, 대조루 앞 일단의 축대 위로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보전 건물과 함께 좌측으로는 관음전. 약사전, 명부전 건물이 나란하게 서 있고 오른편에는 강설당 등 다양한 전각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 보물 제178호 '대웅보전' 앞에서 >

< 대웅보전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관음전' >

< 관음전 왼편에 자리하고 있으며 보물 제179호 '약사전' >

전등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교구 본사가 되는 조계사의 말사로써 중창기문(重創記文)에 따르면 소수림왕 11년(381년)에 '아도화상(阿道和尙)' 이 창건한 사찰인데, 고려 원종 7년(1266년)에 중찬하면서 부터 3-4차례 중수가 되었다고 한다.

보물 제178호가 되는 전등사 '대웅보전(大雄寶殿)' 은 전등사의 대표적 건축물로 그 자체만으로도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 되는데, 전등사 대웅보전이 세상에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대웅보전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裸婦像)' 때문이다.

< 측면에서 바라보는 '대웅보전' >

이 나부상과 관련해서는 유명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면서 전등사는 1.600여 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가운데 여러 차례 화재를 겪고 이 때문에 대웅보전도 여러 번 중건하였는데, 그 중 지금의 나부상이 만들어진 것은 17세기 말로 추측된다.

당시 나라에서 손꼽히는 도편수(都片手)가 대웅보전 건축을 지휘하고 있었는데, 고향에서 멀리 떠나온 그는 공사 도중 사하촌의 한 주막을 드나들며 그곳 주모와 눈이 맞아 사랑에 빠지면서 도편수는 돈이 생길 때마다 주모에게 모조리 돈을 건네 주었다.

하지만 공사 막바지에 이른 어느날 그 주막으로 찾아가 보니 여인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는데, 이에 도편수는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여인에 대한 배반감과 분노 때문에 일손이 잡히지 않았고 잠도 오지 않았으나 도편수는 마음을 다잡고 대웅전 공사를 마무리했다.

공사가 끝나갈 무렵 대웅전 처마의 네 모서리에 벌거벗은 여인이 지붕을 떠 받치고 있는 조각상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 여인을 평생 동안 수치심을 느끼면서 무거운 지붕을 얹어 고통을 주므로써 자신에게 배반한 여인에게 복수를 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 건물이라 하겠다.

< 대옹보전 처마 밑에서 웅크리고 있는 '나부상' >

이 밖에도 전등사에는 보물 제179호가 되는 '약사전(藥師殿)' 및 중국 허난성(河南省) 회경부 수무현 백암산에 위치한 숭명사에 있던 것으로 1097년 중국 북송시대에 주조된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는 보물 제393호 '범종(梵鐘)' 등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경내에서 뒤편 야산으로 올라가면 삼성각(三聖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삼성각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조선왕조실록 5대 사고 중 하나가 되는 '정족산사고(鼎足山史庫)'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경내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삼성각' >

< '정족산사고' 로 들어가는 정문 >

사고(史庫)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서고(書庫)로써 조선 1대 태조(1392년)에서 부터 25대 철종(1863년) 까지 472년 동안 편년체로 서술한 조선 왕조의 공식 국가기록 문서가 된다.

3대 태종 13년(1413년) 때 태조실록을 처음으로 편찬하였고, 26대 고종 2년(1865년) 때 마지막으로 철종실록을 편찬하였다.

이렇게 편찬된 조선왕조실록을 조선전기 4대 사고가 되는 춘추관사고, 충주사고, 성주사고, 전주사고 등 네곳으로 분산하여 보관하였는데, 1592년에 발생한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전주사고를 제외하고 3곳의 사고(춘추관사고, 충주사고, 성주사고)는 불타 버린다.

선조 36년(1603년)에 긴급하게 남겨진 전주사고에 보관 중에 있는 조선왕조실록을 4부로 복사하여 5곳(춘추관사고, 묘향산사고, 오대산사고, 태백산사고, 마니산사고)으로 분산 보관하여 왔는데, 춘추관사고는 인조 2년(1624년) 이괄의 난 때 다시 소실이 된다.

이후 묘향산사고는 청나라의 침입을 대비하여 천연의 요새로 둘러싸여 있는 전라남도 무주군에 있는 적상산사고로 이전을 시키고, 또한 태백산사고와 마니산사고는 강화도에 있는 정족산사고로 이전을 시킨다.

일제 강점기시대 무주군에 있는 적상산사고를 서울 창덕궁의 후원에 있는 장서각으로 이전시키며 오대산사고는 일본 도교제국대학으로 이전시키고, 강화도에 있는 정족산사고는 경성제국대학(서울대학교 전신)으로 옮긴다.

 

<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였던 '정족산사고' 건물 >

< '정족산사고' 주변 풍경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 정족산사고 앞에 자리하고 있는 '취향당' >

오늘 이렇게 역사적 보고가 있었던 정족산사고를 돌아보고 사찰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야산으로 올라가 전등사의 전경을 구경하여 보는데, 전등사 위치가 정족산 중앙에 자리하면서 고목의 은행나무와 소나무가 곳곳에 산재하고 있어 매우 아늑한 사찰이 된다.

< 왼편 야산에서 바라보는 '전등사' 전경 >

< 울창한 '소나무' 숲 속에 자리하고 있는 전등사 >

< 아름다운 단풍과 함께 하고 있는 '전등사' >

갈길이 먼 일행은 다음 관광을 위하여 전등사를 떠나기로 하는데, 경내에서 남문을 구경하기 위하여 남문 방향으로 약간 내려가 본다.

< 정족산성의 메인 출입문이 되는 '남문' >

< 내부에서 바라보는 '남문' 의 전경 >

남문에서 다시 약간의 오르막 길로 올라가 오후 3시 10분 경 동문에 도착하는데, 정족산성이 너무나 잘 보존되고 있으면서 많은 탐방객들이 산성 따라 걷고 있다. - 첫째날 1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