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및 트레킹.(전라남북도)

마지막 무더위를 날려 보내기 위한 백두대간 등산과 지리산 "구룡계곡" 을 거닐어 보다.

용암2000 2012. 8. 13. 19:01

2012년 8월 11일 (토요일)

 

연일 폭염이 내리는 무더위로 인하여 밤잠을 못 이루게 하는 열대야(熱帶夜)를 탈출하기 위하여 백두대간 종주 제4코스의 일부분 산행과 더불어 심심계곡으로 유명한 지리산 구룡계곡(九龍溪谷)으로 계곡산행을 추진하겠다는 대구 D산악회의 연락을 받고, 산행에 동참하여 본다.

일반적으로 백두대간 제4구간 코스의 시발점은 지리산 정령치 끝자락에 있는 "고기리마을" 에서 시작하여 "노치마을" 을 통과하여 덕운봉으로 올라가 수정봉을 지나 여원재로 내려섰다가, 또 다시 산행으로 이어져 고남산을 지나 "매요리마을" 까지 도착하는 약 16Km의 길을 6-7시간 소요되는 산행길이다.

나는 약 10년전 대구 모 산악회를 통하여 이 코스를 갔다가 능선이 빨래판과 같이 오르내림이 너무나 많이 반복하므로 반죽음의 길을 걸어본 길이지만, 오늘은 제4코스 중간지점 여원재에서 역방향의 수정봉으로 올라가 약 1/2만 걷는 길로써 부담이 적은 산행이 되지만 무더위로 인하여 고생이 따르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맴돈다.

버스는 단촐한 식구만 싣고 여원재에서 출발하여 수정봉(水晶峰)으로 올라가 덕운봉에서 백두대간 길을 벗어나 구룡봉을 넘어 구룡계곡으로 내려가는 약 6시간 종주코스로 계획하지만, 버스를 타고 가면서 오늘 산행 일정을 설명하는 Guide는 무더위에 따른 체력 안배와 함께 구룡계곡에서 몰놀이 및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 위한 2시간 정도 단축 산행을 제안한다.

새롭게 제안한 산행코스는 백두대간 제4코스의 정방향이 되는 고기리마을 안에 있는 노치마을까지 버스를 타고 들어가서, 노치 마을회관에서 시작하여 백두대간 길 따라 바로 덕운봉으로 올라가 덕운봉 3거리에서 구룡계곡으로 들어가는 약 4시간의 산행코스로 변경시킨다.

아침 9시 45분 버스는 고불고불한 농로길 따라 노치 마을회관 앞에 정차하면서 산행준비를 끝내고 마을을 통과하면 마을 중앙에 약 500년 된 마을의 수호신 느티나무 한그루가 산행인을 반겨주는데, 고목의 느티나무 아래에는 백두대간을 알리는 안내문과 지도가 백두대간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 "노치마을" 에 있는 당산나무와 백두대간 안내도 >

 

노치마을 중앙에 환경청 수질조사에서 모두가 우수하다는 표시가 붙어있는 유명한 "노치샘" 이 나타나는데, 이 샘은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많은 산행인들에게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쉼터의 샘이 된다. 

 

< 다양한 지도 책에도 나타나고 있는 "노치샘" >

 

노치샘 가장자리에 붙어있는 많은 산행 시그날 따라 마을을 통과하여 마을 뒤편으로 올라서면 거대한 소나무 4그루가 일렬로 줄을 형성하면서 서 있는데, 그 소나무 앞에는 마을에서 제(祭)를 올린다는 "당산제전(堂山祭典)" 이라는 제단이 놓여있다.

 

< 거대한 4그루의 소나무와 "당산제전" 제단 >

   

이 소나무를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는데, 올라가는 길은 울창한 숲으로 인하여 햇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길이 되지만 전일 내린 비로 인하여 습기가 많아서 그런지 이내 땀으로 번벅이 된다.

 

< 숲길로 울라가는 "산행 길 " >

 

약 30분 정도 심호습 하면서 올라가면 백두대간의 시야가 열리면서 한기의 무덤 가에는 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지금까지 올라온 노치마을까지 거리가 0.42Km이고 수정봉까지는 1.34Km이라고 한다.

 

< 처음 만나는 "이정표와 무덤" >

 

또 다시 무거운 발길로 10여 분 정도 더 올라가면 산의 능선길에 올라서면서, 눈 앞으로는 "수정봉" 의 산맥이 선명하게 나타나면서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머물고 있다.

 

< 백두대간 능선에서 바라보는 "수정봉" >

 

이 능선에서 조금만 앞으로 나아가면 해발 745m "덕운봉" 정상에 이르는데, 정상에는 다소 넓은 공터를 만들면서 휴식을 취하기 위한 돌이 놓여 있지만 정상을 알리는 어떠한 표시석도 없고 오직 산행 리본이 덕운봉 정상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다.

 

< 아무런 표시가 없는 "덕운봉" 정상의 휴식처 >

 

덕운봉 정상에서 수정봉 방향으로 한 20m 만 더 앞으로 나아가면 Rope에 메여 있는 비닐 속에 "구룡폭포 3Km" 라는 표시 방향이 나타나면서 그 옆 한쪽 구석에 움막집 한채가 지어져 있는데, 이 움막집은 마을 사람들이 산나물이나 송이버섯 등을 재배하기 위한 집인지 아니면 무속인의 집인지는 모르겠으니 보기가 다소 민망하게 만든다.

 

< 덕운봉 언저리에 있는 "구룡폭포 이정표" >

 

< 덕운봉 정상에 있는 "움막집" >

 

백두대간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구룡폭포 방향으로 걸어가면, 잠깐 울창한 숲을 벗어 나면서 남원방향의 시야가 열리면서 남원시가지 아파트 건물이 겹겹히 둘려치고 있는 산맥 속에 졸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 능선에서 바라보는 "남원시가지" >

 

여기에서도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능선길이 계속적으로 이어지는데, 가는길은 백두대관 길과 동일하게 빨래판과 같이 오르내림을 반복하지만 그렇게 큰 굴곡으로 형성되지 않아 걷기가 무척 편리한 길이다.

비록 이 길은 지리산의 변방에 속하는 지역이지만 그래도 소나무 숲이 얼마나 잘 가꾸어져 있으며 이렇게 아름다운 숲속으로 걷는 것이 나의 일생 동안 처음인 것 같은 길이 되므로 무아지경으로 전진하게 한다.

 

< 거대한 소나무 밑으로 걷는 "능선길" >

 

한 30분 정도 걸어가면 해발 739m "구룡봉" 을 지나가지만, 여기에도 정상을 알리는 아무런 표시석이 없어 다소 애석하게 만든다.

구룡봉에서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가면 허물어진 산성을 만나는데, 이 산성에 대해서도 어떠한 설명이나 자료도 없이 그냥 방치하고 있는 모습 보고 있으니 마음이 무척 아파지는데, 대형 지도에는 그냥 "성터" 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 이름도 없이 방치하고 있는 "성터" >

 

가는길 중간 중간 거대한 소나무도 만나지만 그 중에 거대한  연리지 소나무 한그루를 만나는데, 나도 연리지 나무에 대해서는 남들 만큼 많이 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 중에 한명이지만 이렇게 거대한 소나무가 연리지로 되어 있는 것도 처음으로 대면한다.

 

< 내 평생 처음보는 거대한 "연리지" 소나무 >

 

참 아름다운 숲속을 무아지경으로 걷다보면 어느듯 능선길에서 하산길로 접어 들면서 조금 안전하게 천천히 걸어 내려가면 산의 허리길로 도착하면서 넓은길을 만나는데, 이 지점이 "구룡치" 로써 지리산 둘레길 제1코스 길과 만나는 지점이다.

 

< 지리산 제1둘레길을 걷는 "초등학교 학생과 어머니" >

 

오른편으로 길은 지리산 둘레길 제1코스 시발점 남원시 주천면 내송리 마을로 가는길이고 왼편으로는 둘레길의 종점이 되는 운봉읍로 가는길인데, 구룡폭포로 가는 하산길은 왼편 운봉방향으로 한 300m 정도 가면 3거리에 도착하면서 이 3거리에서 오른편으로 90도 꺽어서 내려가는 길이다.

그런데 이 3거리에는 또 다른 연리지 소나무 한그루를 만나는데, 이 연리지 소나무는 거대한 소나무에 애기 소나무 한 그루가 마치 용 같이 휘감고 승천하는 모습을 하고 있어 "용소나무" 라고도 한다.

이 나무 옆에 "사랑은 하나이어라" 라는 안내문과 더불어 한판의 시(詩)가 적혀 있어, 둘레길을 걷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진의 배경이 되어주고 있다.

 

< 용 같이 감아 올라가는 "용소 연리지" 나무 >

 

< "연리지" 나무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연리지 3거리에서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숲길 따라 조금만 내려서면 맑은 물이 내려오는 도랑을 만나면서 시원한 물가에 앉자 휴식을 취하지만 팥죽 같이 쏟아지는 땀을 식히기에는 다소 시간이 요구 된다,

여기서 한 10분 정도 더 내려서면 어디선가 거대한 폭포 소리가 온 산을 진동하듯 흘려가는 물소리만 들리는 허리길을 걸어서 조금 더 하산하면, 또 다른 3거리의 이정표를 만나면서 위쪽으로 "구룡사" 사찰이 있다고 지시한다.

천천히 사찰 방향으로 올라가니 바위 위에 높은 돌탑 2기가 서 있으며 그 돌탑 뒤편으로 사찰의 본 건물이 보이고 있는데, 사찰의 본 건물은 일반적으로 지어진 대웅전 같은 건물 형태가 아니고 민간인 집에 화려한 도색과 더불어 처마에 연등만 잔득 달고 있어 마치 한무리의 무당집과 비슷하다.

 

< "돌탑과 구룡사" 사찰 전경 > 

 

사찰 마당을 들어 갈려고 하니, 풀어 놓는 황소 같이 큰 개들이 짖으면서 공격하므로써 경내 구경도 불가능하게 만들면서 줄 행랑 치기가 바빠진다.

다시 3거리로 돌아와 Rope가 메여있는 낭떠리지 언덕길을 한참 내려서면 거대한 구룡폭포를 가로 질려있는 출렁다리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 출렁다리 위에 서서 떨어지는 구룡폭포를 바라보면 거대한 물줄기가 흰보라를 만들면서 흘려내리는 물소리가 귀청을 울리고 폭포 가장자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한여름의 무더위를 날려보내고 있다.

 

< 구룡폭포 앞에 있는 "출렁다리" >

 

< 출렁다리에서 바라보는 높이 약 30m 제9곡 "구룡폭포" >

 

구룡계곡 전체가 명소로 이루어진 계곡이지만, 그 중에서 경치가 삐어난 곳 9곡을 선정하여 구룡9곡이라고 칭하는데, 제1곡은 송력동폭포, 제2곡 용소, 제3곡 학서암, 제4곡 서암, 제5곡 유선대, 제6곡 지주대, 제7곡 비폭동, 제8곡 석추문, 마지막 제9곡은 구룡폭포로 9개의 명소 중 최고의 경치를 보여주고 있는 곳이 이곳 구룡폭포이다.

우리 일행도 구룡폭포 가장자리에 머물면서 기나긴 휴식을 가지면서 떠날 줄 몰라, 나도 그들과 함께 무한정 쉼을 가지면서 기나긴 휴식시간을 가져본다.

한참 후 산행 Guide가 계곡 따라 더 아래로 내려가면 제1곡까지 머물면서 휴식 취하는 명소가 많이 있으므로 하산을 동요 함으로써 천천히 하산 길로 들어서는데, 내려가는 길 전부가 나무테크 길로 만들어져 다소 안전하게 하산이 이루어진다.

 

< 잘 만들어진 "나무테크" 길 따라 >

 

그러나 수 없이 많은 나무테크 길 중 일부분은 거대한 암벽과 낭떠리지 옆으로 만들어져 있어 많은 고소 공포감을 느끼면서 1시간 정도 걸어서 내려가면 또 다시 물소리가 진동하는 개울가에 도착하는데, 여기에서 부터 넓은 바위들이 계곡을 장식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바위에 올라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절벽에 아슬하게 걸쳐 있는 "나무테크" 길 >

 

그런데 제8곡이 되는 "석추문" 은 나무테크 길따라 내려오는 중간지점의 계곡 깊숙하게 숨어있는 곳으로 물이 거대한 바위를 뚫고 지나가는 문을 통과한다고 하여 석추문이라고 하지만, 숨은 비경의 장소에 있다보니 구경이 불가능함이 아쉽다. 

휴식을 취하는 계곡 반대편 반월봉(半月峰)의 직벽 위로 흘려내리는 여러 갈래의 물이 떨어지면서 한무리의 폭포 무리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 폭포가 구룡계곡의 제9곡 중 제7곡 "비폭동(飛瀑洞)" 이라 하면서 비가 온후에 구경하면 폭포가 마치 비가 쏟아지는 모습으로 장관을 이룬다.

 

< "비폭동"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 오늘 수량이 적게 떨어지는 제7곡 "비폭동" >

 

비폭등 아래에서 알탕을 즐기는 많은 선남선녀의 몸매를 좀 감상하다가, 오솔길 따라 내려가면 길의 오른편에는 기암괴석 사이로 흘려가는 물이 수천 개의 작은 폭포와 담(潭)을 형성하면서 흘려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 비폭동 아래에서 휴식을 가지는 "등산객" >

 

오늘도 혼자서 걷는 계곡 길에는 살아가는 인생사에서 발생하는 모든 잡념을 흘려가는 강물 속으로 떠나 보내면서, 혼자서 걷는 마음이 걸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나의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리라.

 

< 물 소리를 "음악 소리" 로 삼고 혼자 걷는길 >

 

계곡 따라 한참 내려서면 반대쪽 계곡을 만나면서 그 계곡에서 흘려 내려오는 물 위에 만들어진 출렁다리를 건너면 거대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제6곡 "지주대" 가 서 있다는 안내문이 보이지만, 지주대를 찾기가 매우 힘이 든다.

 

< 다른 계곡에서 내려오는 곳에 설치하고 있는 "출렁다리와 지주대" 설명문 >

 

되돌아서서 조금 전 돌아서 내려오는 길 모퉁이의 울창한 숲속에 거대한 바위 군락지가 보이는데, 자세히 관찰하여 보니 그 바위가 안내문에 나타내고 있는 사진의 바위와 동일한 모습하고 있다.      

 

< 울창한 나무에 숨어있는 제6곡 "지주대' >

 

여기서 2개의 계곡 물이 합치면서 풍부한 수량의 물이 흘려가므로써, 물소리가 더욱더 높게 들려오므로 혼자서 걷기에 금상첨화(錦上添花)의 길이 된다.

좌우에는 높은 산으로 깊은 계곡을 형성하고 있는 구룡계곡 밑 바닥에는 바람 한점 들어 올 수 없는 요새와 같은 계곡이 이어지고, 계곡을 만들고 있는 명경지수(明鏡止水)가 곳곳에 나타나면서 수 많은 사람들이 몰놀이 즐기고 있다.

 

< 깊은 계곡을 이루고 있는 "구룡계곡" 전경 > 

 

한 모퉁이를 돌아가면 넓은 바위 군락지를 만나는데, 이 바위가 제5곡 "유선대" 로써 일행 중 한명이 쉬면서 점심식사나 하면서 가자고 하여 배낭을 내려 놓는다.

 

< "유선대"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먼저 양발을 벗고 족탕을 한번하고 일행이 가지고 온 막걸이 한병을 비우면서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데, 옆에 있는 계곡 속에는 청춘 남녀 한쌍이 알탕을 하면서 눈요기를 보여주고 있으며 고개를 들어 먼산을 바라보니 흰구름이 정처 없이 흘려가고 있어 옛 신선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바둑을 즐긴 이유를 알게 한다.

 

 < 제5곡 "유선대" 계곡에서 알탕을 즐기는 사람 >

 

산행의 단축으로 인하여 아직도 하산 시간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어, 유선대에서 신선들이 그 때 놀이한 바둑판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바위로 올라가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는 여유도 부려본다.

 

< 유선대에 누워서 바라보는 "흰구름과 푸른하늘" >

 

따뜻하게 달구어진 바위에 누웠지만 불어오는 계곡의 시원한 바람이 단잠을 깨우므로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천천히 일어나 하산길로 들어서는데, 계곡을 가로질려 만들어진 몇 개의 다리를 건너면서 길을 재촉한다.

또한 거대한 바위 사이를 헤집고 떨어지는 폭포를 만나는데, 이곳의 폭포가 제4곡 "서암" 이라고 하며 일명 "챙이소" 라고 기술되어 있으며 챙이는 전라도 방언에서 "키" 라고 하며 키는 수확한 곡식으로 부터 쭉쟁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도구와 비슷하게 생긴 바위라고 한다.

 

< 수 많은 "구름다리" 를 건너면서 >

 

 < 제4곡 "챙이소" 폭포도 지나면서 >

 

이 바위를 지나 조금만 더 내려가면 "구시소" 라는 폭포를 만나는데, 구시소는 물의 힘으로 바위의 모양을 소나 말의 먹이통과 비슷한 구유 모양을 만들었다고 하여 구시소라고 불려진다고 한다.                                               

 

< 소의 먹이통과 같이 생긴 "구시소" >                                         

 

구시소 아래에는 마지막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수 많은 인파들이 몰놀이를 즐기는 모습 바라보면서 천천히 내려가면 콘크리트 다리를 만나는데, 이 다리가 운봉에서 남원으로 가는 지방도로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 곳곳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 >

 

이 다리 아래에 제3곡 "학서암" 이 있다고 하나 눈에 보이지가 않아 바로 도로에 올라서면 다리 가장자리에는 계곡의 안전을 위하여 지리산국립공원에서 파견된 "구룡계곡 탐방안내소" 가 있으며, 이 안내소 앞 아스팔트 길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도로 우측에 "용호서원(龍湖書院)" 이 나타난다.

 

< 도로변에서 만나는 "용호서원" 출입문 >

 

서원 내부에 들어가니 서원에 안치하고 있는 유학자나 서원의 내역 등이 전연 기술하지 않고, 관리가 거의 되지 않아 매우 어수선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어 그냥 나온다.

 

< 관리가 소흘한 "용호서원" 본당 건물 >

 

이 서원을 지나면 산행의 종점 "육모정(六茅亭)" 이 바로 나타나는데, 이 육모정은 용소(龍沼) 에서 9마리 용이 노닐던 곳이라 하여 용호동(龍湖洞)이라고 불려졌다.

약 400년 전 이곳 지역의 선비들이 용소 앞 넓은 바위 위에 6각형의 정자를 지어 육모정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데, 바위에 있었던 육모정은 1960년도에 큰 비로 소실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겨서 복원하였다고 한다.

 

< 산행의 종점에 있는 "육모정" 정자 >

 

이 육모정 뒤편에는 넓은 계곡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 계곡을 가로질러 넘어가는 나무다리가 설치되어 있으며 그 다리 아래에는 거대한 물줄기를 소용돌이 치면서 흘려가는 소(沼)를 만나면서 이 소가 제2곡 "용소(龍沼)" 이다.

 

< 육모정 뒤편에 있는 "나무다리" >

 

< 나무다리 밑에 있는 제2곡 "용소" 전경 >

 

다리 위로 올라서면 거대한 변바위가 눈 아래에 머무는데, 이 변바위는 옛날 육모정이 있었던 장소이며 그 변바위 옆으로 흘려내리는 계곡 물에는 많는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어울려서 물놀이 열중하고 있는 자연산 풀(Pool) 장을 형성하고 있다.

 

< 옛날 육모정이 있었던 변바위 앞에 있는 "자연산 수영장" >

 

다리를 건너면 풀 장에서 수영하다가 지친 사람들의 휴식을 취하는 야영장이 펼쳐지는데, 야영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머물 수 있도록 하는 텐트촌이 형성하고 있으며 이 야영장 옆으로 올라가 바위 위에 용소의 풍광을 내려다 보면 "용호정( 龍湖亭)" 암자가 그림과 같이 놓여있다.

 

< 야영장에서 여가를 즐기는 "행락객" >

 

< 용소 위에 있는 "용호정" 에서도 >

 

암자에 앉자 흘려가는 용소 물을 구경하다가 천천히 걸어 육모정으로 다시 돌아가면 육모정 앞으로 층층히 만들어진 돌계단이 보이는데, 그 돌계단 가장자리에 "춘향묘(春香墓)" 라는 입석이 눈에 들어온다.

 

< 육모정 앞에 있는 "춘향묘" 를 알리는 입석 >

 

여기가 춘향의 고향 남원 땅이라는 것을 알리는 무덤의 계단 따라 올라가면 잘 가꾸어진 무덤 한기를 만나면서 무덤 오른편에는 "만고열녀성춘향지묘(萬古烈女成春香之墓)" 라는 거대한 입석이 눈에 들어오는데, 과연 춘향이가 만고의 열녀이면서 실존 인물인지 궁궁하게 만든다,

 

< 잘 만들어진 "계단" 끝에 있는 묘소로 올라가면 >

 

< 잘 가꾸어진 "춘향묘" 를 참배하면서 >

 

내가 고전(古傳)을 통하여 배운 춘향전은 실존 인물이 아니고 소설 속에 나오는 가공 인물인데, 이렇게 무덤을 만들고 있는 남원 고을의 지자체는 무엇을 노리고 있는가?

더불어 경북 봉화군에서는 춘향이의 신랑이 되어 이몽룡의 실존 인물이 되는 "성이성" 씨가 존재한다고 연세대학교 "설성경" 교수님의 고증을 생각하고 있으니, 지나간 역사는 한곳에 머물지 않고 수시로 변경하는 것인가? 

참 많은 의문을 가지면서 무덤을 내려와 육모정이 이르니, 산행 Guide가 예정 귀가시간 보다 1시간 빠른 오후 4시까지 육모정 주차장으로 대기하여 달려는 문자가 온다.

그런데 육모정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주차장에는 대형버스가 주차가 불가능하여 여기에서 1.5Km 떨어진 아래 마을 도로변에 대기한다는 안내문을 읽고, 천천히 내려가니 지리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자리하고 있다.

 

< 산행의 끝지점에서 만나는 "지리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를 지나면서 >

 

이곳 관리소 주변에 구룡계곡의 제1곡 "송력동폭포" 가 있다고 하나, 도로에서 내려가는 가장자리에 이정표가 전연 보이지 않아 그냥 통과하여 대형버스가 주차하고 있다는 도로변까지 내려가도 버스가 없다.

상점으로 들어가 빙과류 하나를 구입하여 입에 물고서 한참 기다리고 있으니, 더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버스가 육모정까지 다시 올라가 육모정에서 기다리는 일행 일부를 싣고 내려오므로 동승하여 대구로 출발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