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행.(여행)

강원도 고성군의 또 다른 명소 화진포 주변에 자리잡고 있는 "이승만, 김일성, 이기붕" 별장의 관광.(2)

용암2000 2013. 8. 18. 09:01

2013년 8월 4일(일요일)

 

통일전망대에서 한 10분 정도 내려오면 동해의 제일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대진해수욕장을 통과하자 마자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야산 사이로 "화진포" 호수가 잠시 보였다가 살아지는데, 계속적으로 도로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금강산 자연사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구 S-Oil 주유소를 만난다,

이 주유소 앞에 비대칭의 3거리가 나타나는데, 왼편으로 약 150도 이상 꺽어서 들어가는 길이 화진포 해안으로 들어가는 지방도로가 되는데, 지방도로 따라 한 5분 정도 운전하여 가면 호수 가장자리에 이르면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장" 이라는 이정표가 나타남과 동시에 넓은 주차장에 이른다. 

 

<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장" 을 알리는 안내판 >

 

4. 이승만 별장 방문.

주차장에서 도로를 넘어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조금 올라가면 화진포 지도와 함께 "화진포 역사 안보 전시관" 이라고 새겨진 입석과 함께 입장료를 징수하는 간이 매표소가 자리잡고 있다.

 

< "화진포 역사 안보기념관" 을 알리는 입석 >

 

< 화진포 호수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별장" 위치도 >

 

이렇게 초라한 별장 한채를 관람하는데 무슨 입장료를 받고 있는지 투덜되고 있으니까, 2.000원의 입장권으로 이승만 별장, 김일성 별장, 이기붕 별장 및 주변에 있는 화진포 생태박물관 까지 동시에 관람이 가능하다고 한다.

입장권을 구입하고 나서 매표소 뒤편으로 이어지는 계단 따라 조금 올라가면 화진포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야산 기슭에 먼저 이승만 대통령 일대기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는데, 그 뒤편에 단촐한 "이승만 별장" 건물이 건립되어 있다.

 

< "이승만 대통령" 의 일대기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 단촐한 "이승만 대통령 별장" 전경 >

 

별장 마당에 서서 화진포 호수를 내려다 보면 마치 바다 같이 넓은 호수에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고 있는데, 이 화진포 호수는 마치 땅콩과 같이 오목한 중간지점에 홍예교 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이 다리를 건너 반대편에 김일성 별장과 더불어 화진포 해수욕장으로 넘어가는 길이 연결되고, 멀리 화진포 생태박물관 건물이 보인다.

 

< 별장 마당에서 내려다 보는 "화진포" 오른편 호수와 생태박물관 건물 >

 

< 마치 땅콩 같이 2개의 호수로 나누어진 "화진포" 모양 >

 

< 좁은 목에 설치하고 있는 "홍예교" 와 왼편 호수 모습 >

 

화진포라는 이름은 호수 주변에 많은 해당화가 만발하게 피므로 인하여 붙어졌다고 하는데, 호수 둘레가 약 16Km로 동해에서 최대로 큰 자연호수이다.

넓은 갈대밭 위로 수천 마리의 철새와 고니때가 찾아오는 곳으로 유명하고, 호수 주변으로 울창한 금강송으로 둘려쌓여 있어 경관이 무척 아름다운 호수이다.

그래서 예로 부터 호수 주변에 유명한 별장이 많이 건립 되어진 곳으로 지금도 이승만 별장과 더불어 "화진포의 성" 이라고 불려지는 김일성 별장, 이기붕 부통령 별장 등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래서 사시사철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보는 호수이라 한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장은 1954년 27평 규모로 신축하여 1960년 까지 대통령 별장으로 사용 하였는데, 이후 건물을 방치하므로 폐허가 되어 철거하였다가 새로운 건물을 신축하여 육군관사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1997년 7월 육군에서 현재 위치에 본래의 모습으로 별장 건물을 복원하여 역사적 자료와 유품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2007년 2월 고성군과 육군복지단에서 별장터에 세워진 건물을 보수하여 역사 안보전사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보수한 건물의 출입문이 미닫이형 유리 창문으로 되어있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다 보니 나무로 된 미닫이문과 문틀 사이에 간격이 발생하여 흘렁거리고 있다.

그래서 문을 열기에 무척 힘을 가(加) 하여 겨우 열어 내부로 들어가는데, 건물 내부에는 응접실과 더불어 침실 및 집무실로 구성되어 있다.

 

< 이승만 대통령과 "화진포 별장" 사이의 유래 설명서 >

 

응접실 입구 오른편으로 여성 안내원이 앉아 있고,. 응접실 벽면으로는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드너 리" 여사가 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마네킹이 자리잡고 있다.

오른편 2개의 방 중 안쪽 방에는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 집무실에는 책상과 더불어 간이 침실이 놓여있는 매우 단촐한 방이 된다.

 

< 별장 응접실에서 대화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 >

 

< "집무실" 로 사용하고 있는 방 >

 

출입문 옆으로 만들어진 쪽문의 출구문으로 나와 별장 뒤편으로 조금 올라가면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 이라는 건물을 만난다.

이 건물에는 별장에 있던 일부 유품과 더불어 이화장(梨花莊)에 있었던 자료 일부를 기증 받았는데, 2007년 8월에 화진포 기념관을 개관하였다고 한다.

 

< 별장 뒤편에 있는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 건물 >

 

< 기념관 벽면에 붙어 있는 "한시" >

 

기념관 내부로 들어가면 먼저 이승만 대통령의 일대기를 요약하고 있는 연보가 전시되어 있는데, 일대기를 찬찬히 읽어보고 나서 관람 순서를 지시하여 주는 화살표 방향으로 들어가 관람하여 본다.

각 Booth 마다 대통령의 역사물,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과정, 저서, 평상시 입었던 옷, 동상, 국민들에게 보내는 메세지 등 이 차례로 전시하고 있는데, 내부를 한바퀴 돌면서 관람이 이루어지게 한다.

 

<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 >

 

< 이승만 대통령의 "일대기"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 이승만 대통령의 "좌우명" >

 

< "임시 정부" 를 추진하고 있는 청년 이승만 >

 

< "초대 대통령" 취임식을 홍보하고 있는 화보 >

 

< 이승만 대통령과 부인이 입고 다녔던 "옷" >

 

< 이승만 대통령이 저술한 "책" >

 

5. 김일성 별장 방문.

이승만 별장에서 홍예교 다리를 건너 호수따라 조금 돌아가면 거대한 주차장이 나타나는데, 이승만 별장 입구에서 구입한 입장권을 제시하고 그냥 들어가 주차하고 나서 안내도 따라 화진포 해변으로 올라가면 오른편으로 김일성 별장과 왼편으로 이기붕 별장이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 금강송 속에 숨어 있는 "김일성" 별장 >

 

먼저 김일성 별장을 관람하기 위하여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아가씨에게 입장권을 다시 보여주고 야산으로 올라가다가 왼편으로 돌아보면, 푸른 동해 바다가 펼쳐지면서 그 앞에 아담한 섬과 함께 화진포 해수욕장이 그림과 같이 펼쳐진다.

 

< 김일성 별장으로 올라가다 내려보는 "화진포 해수욕장" >

 

이곳 화진포 해수욕장도 뒤편으로 송림이 병풍같이 돌려쳐 있으며 주변에는 매우 한적한 해수욕장이 되는데, 백사장 중앙에 몇개의 비치 파라솔과 더불어 수영을 즐기는 소수의 인원들이 물 속에서 유영하고 있는 모습이 아련하게 보인다.

울창한 숲 속에서 지붕만 빠곰히 보이는 별장 건물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다가 보면 2개의 길로 나누어지는데, 왼편으로 나무계단을 이용하여 단숨에 올라가는 지름길이고 오른편 길을 빙돌이서 가는 완만한 산책길이다.

양쪽 길의 중간지점에 김일성 별장을 건립한 동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김일성 별장은 일명 "화진포의 성(城)" 이라고도 하면서 별장이 있는 장소는 한국 전쟁 이전에는 북한지역으로써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공산당 간부의 휴양지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 "김일성 별장" 을 소개하고 있는 안내문 >

 

특히 1948년 부터 6.25 남침이 있기 전에는 김일성과 그의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이 하기휴가로 사용하였던 별장으로 당시 지하 1층 및 지상 2층의 건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현재 건물은 1967년 육군에서 회손된 본래의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운 건물로 재건축 하였는데, 1995년 육군복지단에서 개수와 보수를 통하여 한국 군인들이 휴양시설로 운영하여 오다가 1999년 7월 육군에서 기존의 건물 용도를 변경하여 이승만 별장과 함께 "역사 안보기념관" 으로 사용하고 있다.

오른편의 완만한 산책길로 올라가면, 길 주변에는 평균 수령 60여 년 가령이 되었다는 울창한 금강소나무가 숲을 형성하고 있다.

그 숲에서 많은 피톤치드가 발산하므로 건강을 위하여 숲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별장 뒤편으로 트레킹 길을 만들어 놓고 있는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 별장 주변에 성장하고 있는 울창한 "금강송" 군락지 >

 

금강소나무 숲 속에 자리잡고 있는 아담한 2층 별장에 도착하여 내부로 들어가 보는데, 에어콘이 빵빵하게 가동하고 있어 그 앞에 서서 땀이 완전이 증발될 때 까지 휴식을 가지고 나서 천천히 내부를 관람하여 본다.

 

< 숲과 꽃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김일성 별장" 전경 >

 

< 김일성 별장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

 

1층에는 6.25에 관련되는 자료가 진열하고 있으므로 통일전망대에서 본 내용과 유사하여 한번 빙돌아 보고 나서, 2층으로 올라가 본다.

2층에는 김일성이 휴식을 가졌던 응접실을 비롯하여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화진포의 설화(說話)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설화의 내용은 태백시에 있는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못"  전설과 너무나 똑 같다.

 

< 1층에 전시하고 있는 "6.25" 관련 자료 >

 

< 2층 "김일성" 씨가 머물었던 응접실 >

 

< 2층에 "남북의 화합" 을 염원하는 포스터 >

 

설화의 내용을 요약하여 보면 옛날 화진포에는 "이화진" 이라는 구두쇠 부자와 그의 며느리가 살고 있었는데, 금강산 건봉사 스님이 이화진 집에 와서 시주를 요청 할려고 하니 이화진은 시주는 커녕 스님의 바랑에 소똥을 한 바구니 펴준다.

이 모습을 지켜본 며느리가 시주를 하기 위하여 시아버지 몰래 쌀을 펴서 드릴려고 하였으나, 스님이 받지 않고 돌아가므로 건봉사로 넘어가는 고총산 까지 계속하여 따라가면서 시아버지 행동에 대한 용서를 구(求) 한다.

결국 스님은 시주를 받으면서 며느리에게 말하기를 어떠한 소리가 발생하여도 절대 뒤돌아 보지 말라고 하면서 걸어가는데, 뒤에서 천둥 벼락이 치므로 그만 무심코 뒤를 돌아보니 이화진이 살고 있는 집과 논밭이 거대한 호수가 되었으며 그 호수가 시아버지 이름을 따서 "화진포" 라고 한다.

애통에 하고 있는 며느리가 어느 사이 점점 돌로 변하였는데, 지역 주민들은 며느리를 고총산 서냥당으로 모시고 매년 제사를 드리므로 고성 땅에는 농사도 잘 되고 전염병도 완전히 살아졌다고 한다는 설화가 내려오는 곳이라고 한다

 

< 2층에 전시하고 있는 "화진포" 유래 >

 

전시실을 돌아보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면, 화진포 호수와 화진포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천하 절경의 풍경이 펼쳐지므로 정말 좋은 장소에 별장이 건립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6. 이기붕 별장 방문.

언덕을 내려와 입구에서 반대편 화진포 호수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울창한 숲 속에 담쟁이 넝쿨과 잎이 완전히 덮혀져서 거의 건물이 보이지 않은 풀 덩어리 같은 집의 뒤편에 도착하는데, 이곳의 집이 이기붕 부통령의 별장이다.

이기붕 별장은 1920년 대 외국인 선교사들이 건립한 건물로써 해방 이후 북한 공산당 간부들이 사용한 휴양지 이었지만, 휴전 이후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씨의 부인 박마리아 여사가 개별 별장으로 사용하여 왔던 것을 폐쇄하였다가 1999년 7월 역사 안보전시관으로 보수하여 관광객에 Open하고 있는 별장이다.  

건물 뒤편에는 이기붕씨의 연역과 더불어 얼룩진 3.15 부정선거로 인하여 온가족이 자살로 마감하는 비운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는 안내판이 붙어 있는데, 그 내용을 찬찬히 읽어본다.

 

< "이기붕 부통령" 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있는 안내문 >

 

이기붕은 미국 유학 시절 이승만과의 인연으로 귀국 후에 제2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탁되면서 권력에 핵심에 접근하게 되았는데, 1949년에 서울시장 및 1951년 국방부장관으로 임명되어지만 1952년 2월에 장관직을 물려난다.

그후 1953년 자유당 총무부장으로 임명되어 정치 깡패들을 동원하여 각종 정치 집회를 장악하면서 부터 1954년도 자유당 전성기시대를 만들어 권력의 제2인자로 독주하기 시작한다.

1963년 3월 15일 대통령과 부통령 선거 때, 이기붕 자신을 부통령으로 당선 시키기 위하여 공개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야당 참관인 불법 연행 등 3.15 부정선거를 저질러 역사의 오점을 남긴다.

이에 분노한 학생들이 마산에서 부터 시위를 시작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는데, 경무대 앞에서 시위를 버리고 있는 시민들에게 발포하므로 민심이 완전히 정부로 부터 등을 돌리므로 결국 4.19 혁명이라는 학생운동의 결실로 자유당 정권의 몰락을 가져오게 한다.

정권의 몰락으로 인하여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로 이어지면서 경무대에 피신하고 있는 이기붕은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이면서 그의 장남 이강석의 총격으로 전가족이 권총 자살하는데, 권력의 제2인자로써 부귀영화를 누려왔던 그의 정치 역정(歷程)이 마감된 순간이다.  

건물 앞으로 돌아가 출입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면 별장 내부에는 접견실, 집무실, 침실 등 3곳으로 구별하여 간단한 전시실을 만들어 놓고 있지만, 거의 유품이나 전시품도 없이 매우 단촐한 별장이 되므로 바로 별장을 떠난다.

 

< 담쟁이 넝쿨로 덮혀 있는 "이기붕 별장" >

 

< "이기붕 부통령" 이 사용한 접견실 >

 

< 간단한 업무를 보는 "집무실" >

 

< "이기붕 부통령" 의 침실과 가족 사진 >

 

이렇게 하여 화진포 곳곳에 제일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3곳의 별장을 돌아보고 주차장 인접지역에 생태박물관이 있다고 하지만 더 관람하는 것을 포기하고, 시장기가 발동하므로 식당을 찾아 황급하게 화진포를 떠난다. - 2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