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행.(여행)

북한강 호수문화의 관광지 화천군 "파로호와 평화의 댐" 및 춘천시 주변에 있는 명승지 여행.(1)

용암2000 2013. 10. 9. 07:37

2013년 10월 5/6일. (1박2일)

 

주말을 이용하여 강원도 춘천시 동면에 있는 두산위브 아파트 시세와 주변에 변화되는 모습을 구경하기 위하여 4년 6개월 만에 춘천 나들이 길로 나서는데, 어차피 춘천까지 가는 길에 1박2일로 화천군에 있는 평화의 댐과 더불어 춘천시내 관광지를 돌아보는 것으로 여행 Schedule를 만들어 본다.

 

1. 파로호 관광.

대구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대구-춘천 간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시름시름 운전하여 춘천시에 도착하여 화천으로 넘어가기 위하여 네비게이션을 가동하니 내가 생각한 춘천호 옆 407번 지방도로 방향으로 안내하지 않고, 오봉산 배후령 고개를 넘어가는 국도 46번으로 안내를 한다.

이 길은 춘천에서 양구로 넘어가는 춘천시 외곽 순환도로가 되어 오봉산 산행과 아파트를 구입 할 때, 몇 번 방문한 길이라 다소 익숙함이 묻어나는 길이 되므로 거침없이 운전이 가능하게 만든다.

소양호 인접 지역에서 아파트로 들어가는 신호등 우측으로 춘천에서 닭갈비와 막국수로 다소 유명한 "메밀촌" 식당을 만나는데, 식당으로 들어가니 너무나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30분 정도 기다림 후에 자리가 발생하므로 간단하게 막국수를 주문하여 먹어 본다.

 

< 춘천시 외곽도로에 있는 "메밀촌" 식당 >

 

< 식사 후 무료로 제공하여 주는 "커피" 홀 >

 

다시 출발하여 오봉산으로 접근하니 네비게이션은 오봉산 옛길로 안내하지 않고 새로운 길로 안내하는데, 이 길은 배후령을 관통하는 터널 길로써 2002년 12월에 건설한 지름길이다.

한 때 오봉산으로 산행하기 위해서 해발 600m 배후령 옛길로 올라가 고개마루에서 산행 들머리로 시작하여 청평사로 하산하여 본 길이지만, 현재 배후령 아래로 우리나라에서 최장의 길이 5.1Km 터널이 관통되어 있어 몇분 내로 사고로 악명 높은 배후령을 통과하여 이내 화천군 간동면 파로호 생태마을 방향으로 길이 이어진다.

화천에는 9개의 명소를 선정하여 화천 9경으로 불려지고 있는데, 제1경 파로호, 제2경 딴산폭포, 제3경 비수구미, 제4경 평화의 댐, 제5경 용화산, 제6경 비래바위, 제7경 용담계곡, 제8경 화악산, 제9경 광덕산이라고 한다. 

화천 9경 중 제1경 "파로호" 를 오른편으로 두고 고불고불한 지방도로 461호를 이용하여 무아지경으로 운전하여 가면, 파로호가 거의 끝나는 지점 고개마루에 6.25 전쟁에서 전사한 군인들과 어린 학생들의 원혼을 기리는 "자유수호탑" 과 더불어 파로호 "안보전시관" 건물이 나타나므로 휴식도 겸하여 주차장으로 들어가 본다.

 

< 파로호 주변에 있는 "자유수호탑" >

 

< 파로호 "안보전시관" 건물 >

 

먼저 호수 가장자리에 있는 자유수호탑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목례와 더불어 사진 한장을 찍고 다시 안보전시실로 되돌아 와서 내부를 관람하는데, 전시실 입구에 있는 안내원 아저씨 한분이 컴퓨터 바둑 시합에 빠지므로 정신이 없어 안내 Desk에 있는 팜플릿 한장을 집어서 그 내용을 적어본다.

파로호의 원래 이름은 1944년 일본놈들이 대륙 침략을 위한 목적으로 세운 인공호수를 화천댐으로 불려졌으나, 그후 이승만 대통령이 방문하여 "적을 격파하고 많은 중공군 포로로 잡았다" 는 뜻으로 친필 휘호로 내려 "파로호(破虜湖)" 라고 하여 현재 2개의 명칭을 가진 호수가 된다.

1987년 파로호 상부에 있는 "평화의 댐" 을 축조하기 위하여 물을 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호수 바닥이 노출되면서 고인돌 21기와 더불어 1만년 전 구석기인들이 사용하였던 선사유물 4.000여 점 및 고인돌 군락지를 발굴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파로호 안보전시관은 6,25 당시의 파로호 전투에 대하여 상세하게 조명하고 있는 전시관으로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1층에는 한국전쟁 당시 주민들의 비극적 삶과 생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2층으로 올라가면 휴게실 겸 강단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완전 적막강산의 휴게실이다.

 

< 파로호 "안보전시관" 내에 진열하고 있는 전시물 >

 

< 피난을 떠나는 "양민들" >

 

< 허기진 배를 "감자" 로 해결하면서 >

 

파로호 전투는 1951년 4월 19일 부터 5월 20일 까지 1개월 간에 걸쳐 국군 6사단과 해병대 1연대 장병들이 유엔군의 지원을 받으면서 중공군 제10, 25, 27 3개군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여, 이를 물리치고 중공군 3만 여명을 파로호에 수장시켰다고 한다.

이 전시관 뒤편으로 150m 정도 울라가면 파로호를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입구에 화천 9경 중 제5경 "용화산(龍華山)" 등산 안내도가 그려져 있어 상세하게 들어다 본다.

나는 이 용화산은 2009년 5월 31일 산행한 경험이 있는 산으로, 그 때 산행 들머리가 지금의 반대편에 있는 춘천호 인근에서 출발한 기억이 일어나게 한다.

 

< 안보전시관 뒤편 "전망대" 를 가르키는 이정표 >

 

보도 불록으로 만들어진 급경사의 오르막 길로 5분 정도 올라가면 2층 전망대에 도착하는데, 전망대 주변의 바닥에 많은 알밤이 떨어져 있어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긴급하게 주어 비닐봉지 한개에 가득하게 담아본다.

 

< 고개 마루에 있는 파로호 "전망대" >

 

내부 계단을 이용하여  전망대로 올라가 파로호를 내려다 보는데, 파로호는 병풍같이 둘려쳐 있는 산속에 그림과 같은 모습과 더불어 댐 수문이 자리잡고 있는 환상적인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깊은 호수 내에는 고기 모양의 어초(魚草)로 만든 가두리 양식장이 설치되어 있어 매우 친환경적인 양식장이 된다.

 

< 파로호 전망대에서 본 "화천댐" 수문 >

 

< 평화의 댐 하부까지 연결되는 "파로호" 전경 >

 

< 고기 모양의 어초로 만든 가두리 "양식장" >

 

파로호 관람을 끝내고 다시 승용차에 탑승하여 내리막 길로 조금 내려가면 화천읍시가지 바로 위에 있는 구만교 다리를 건너 460번 지방도로와 접선하고, 오른편으로 90도로 꺽어 평화의 댐으로 가는 이정표 따라 조금 올라가면 북한강 건너편 야산 기슭에 거대한 화천댐 양수 발전소 건물이 보인다.

 

<1939년도에 건설한 "화천 수력발전소" >

 

화천 수력발전소는 발전 용량 총 10만 8000Kw로써 1939년 2월에 설립된 한강 수력전기 주식회사에서 단위 용량 2만 7000Kw의 발전기 4대를 설치할 것으로 계획하고, 1944년 5월 제1호기를 준공 완료하여 발전을 시작하였으며 그 해 10월에 2호기 준공하였다고 한다.

이어 3호기 설치와 동시에 4호기 기초공사를 시작할 때 6. 25 전쟁이 발생하여 공사를 중단하였고, 그 후 발전소가 38도 선 이북에 속하므로 북한으로 넘어갔지만 6.25 화천 전투에서 승리하므로 다시 남한으로 수복되어진 발전소라고 한다.

 

2. 평화의 댐 관광.

여기 화천 발전소에서 아름다운 계곡 따라 조금 올라가면 6. 25의 아푼 역사를 품고 묵묵히 견디고 있는 꺼먹다리를 만나고 그 다리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이내 화천 9경 중 제2경 "딴산폭포" 를 만나지만, 다소 늦은 시간으로 인하여 평화의 댐으로 곧장 달려간다.

평화의 댐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첩첩산중의 오르막 길로 한참 올라가 고개마루에 도착하는데, 고개가 너무나 높아 도로가 최종적으로 고개를 넘지 못하고 길이 1.986m의 기나긴 "해산터널" 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써 반대 방향의 급경사 내리막 길을 내려가는 길로 이어진다.

수 많은 터널과 구비구비 산 모퉁이를 돌아서 내려가면 화천 9경 중 제3경 "비수구미" 로 들어가는 이정표가 나타나지만, 그냥 통과하여 화천 9경 중 제4경 "평화의 댐" 에 도착한다.  

 

< "평화의 댐" 주변 경관을 표현하고 있는 조감도 > 

 

거대한 댐의 둑 위로 만들어진 도로를 통과하면서 가면 둑 중앙에 전망대가 있어 잠시 승용차를 정지하고 댐의 하부 방향으로 관광하여 보는데, 거대한 중장비들이 댐을 보강하기 위하여 공사에 매진하고 있으며 댐 상부 방향으로는 거의 물이 빠진 빈 껍질의 평화의 댐 상부가 길게 펼쳐지고 있다.

 

< 평화의 댐 둑 위로 만들어진 "도로" >

 

< 둑에서 바라보는 "평화 댐" 상부 전경 >

 

< 둑 하부에 "보강공사" 를 하고 있는 중장비 >

 

다시 승용차를 몰고 댐을 건너가 주차장에 도착하니 몇 대의 승용차와 한대의 관광버스가 정차하고 있는데, 이렇게 너무 늦게 도착하여서 그런지 매우 한적한 분위가 펼쳐지는 평화의 댐이 된다.

댐 입구에 있는 "평화의 댐" 이라고 새겨져 있는 입석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 한장을 찍고 나서 댐의 가장자리에 부착하고 있는 댐의 내력을 읽어보는데, 이곳 평화의 댐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북한의 수공(水攻)과 홍수를 대비하면서 하류에 있는 댐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항상 물을 뺀 상태의 빈 댐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 "평화의 댐" 을 알리는 입석 >

 

평화의 댐 위치는 조금 전에 통과한 화천댐과의 거리는 12Km가 떨어져 있으며 북한에 있는 임남댐(일명 : 금강산 댐)과의 거리가 24Km 떨어져 있는데, 남한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는 최전방 백암산까지 12Km가 떨어져 있어 매우 위험한 장소에 위치하고 있다 하겠다.     

또한 댐의 구조는 콘크리트 표면 차수벽 형식의 석괴형(石塊形) 댐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1단계 공사는 1987년 2월 시작하여 1988년 5월에 완공하였으나 초기 성금의 부족으로 높이 80m에 길이 414m, 해발 270m, 저수용량 5.9억톤의 만들었다.

그러나 북한에서 만든 임남댐은 해발 315m에 저수용량 26.2억톤의 물을 저정하고 있는 대규모의 댐으로 만들므로, 북한에서 흘려내리는 수공 방어에 역부족을 느껴 그렇게 반대만 하던 참여 정부의 사람들이 댐을 증축이 필요성을 다시 부각시킨다.

그래서 2002년 9월 2단계 공사를 시작하여 2005년 10월에 증축 공사를 끝내는데, 이 때 증축한 담의 높이가 125m에 길이 601m, 총 저수량 26.3억톤으로 북한에 있는 임남댐의 저수용량 26.2억톤의 물로 수공을 감행하고 홍수가 동시에 발생하여도 1천만 톤의 여유를 가지도록 증축하여 남한에 있는 모든 댐에 안전성이 확보되게 한다.

 

< "평화의 댐" 1단계 및 2단계 공사 현황 >

 

이렇게 댐의 내용과 댐 주변 풍경을 구경하면서 댐의 가장자리 따라 천천히 걸어가면 오른편 야산 절개지를 활용하여 길이 135m에 높이 7m의 벽체 "평화 통일 그날을 위해" 라고 만들어 놓은 조각품을 감상하여 보는데, 왼편에는 과거의 남북관계, 중앙에는 현재의 남북관계, 오른편으로는 미래의 통일된 남북의 화합을 그린 조각품이라고 한다.

 

< 과거, 현재, 미래를 표현하는 "평화 통일 그날을 위해" 라는 조각물 >

 

조금 더 내부로 들어가면 원형의 종각 건물에 거대한 "세계평화의 중" 이 걸려 있는데, 이 종(鐘)은 세계의 분쟁지역에서 사용한 탄피 등으로 수집하여 주조한 종으로 높이가 4.67m에 둘레가 2.76m, 무게가 1만관(37.5톤)이나 되는 거대한 종이라고 한다.

 

< 탄피를 모아서 만든 "세계평화의 종" >

 

이곳 종 주변으로 세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들의 평화에 대한 메세지를 보낸 내용과 더불어 평화의 댐을 방문한 유명 인사의 얼굴과 악수를 청하는 손이 만들어져 있어, 몇 사람과 악수를 나누어 본다.

 

< "노벨 평화수상자" 의 평화 메시지도 읽어 보면서 > 

 

< 악수를 청하고 있는 각국 "유명 인사" 의 상 >

 

그러고 나서 잘 조성된 정원을 통과하여 수자원 공사에서 만들어 운영하는 "물문화관" 으로 들어가 보는데, 입구에 있는 안내원 아저씨 한분이 친절하게 내부를 관람 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준다.

 

< 수자원공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물문화관" >

 

이 물문화관은 전시실과 더불어 영상실로 만들어져 있는데, 먼저 왼편 전시실로 들어가면 평화의 댐 주변에 살고 있는 동물과 식물의 생태계와 더불어 북한강 상류에 살고 있는 어류를 키우는 수족관 등을 만들어 놓아 볼거리를 제공하여 준다.

 

< "물" 의 중요성을 기록하고 있는 설명문 >

 

다른 Booth로 이동하면 귀중한 물을 자원화 하는 과정을 세부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많은 물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며, 다음 코너에는 평화의 댐과 북한에 있는 임남댐의 기능과 역활을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 우리나라 "수자원" 의 내력 설명서 >

 

< "임남댐에서 서울" 까지 건설되어 있는 댐의 모형도 >

 

한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민의 성금을 거두어 만들었던 과정과 더불어 북한에서 인위적으로 임남댐을 파괴하여 수공을 가(加)하였을 때, 한강에 있는 모든 댐의 방어 능력을 설명하고 있어 평화의 댐의 중요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 "평화의 댐과 임남댐" 의 비교 분석표 >

 

다른 한 벽면에는 평화의 댐을 만든 과정에서 국민을 기만하였다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반대의 내용들이 기제한 신문과 사설, Demo를 통하여 의사를 표현하는 내용의 사진들이 일목요약하게 전시하고 있다.

그렇게 반대하였던 사람들은 지금은 모든 것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댐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댐의 보강공사(補强工事)를 통하여 임남댐 보다 우수한 용량의 댐으로 만든 내력을 이해는 하고 있을까?

 

< "평화의 댐" 건설을 비난하는 기록물 >

 

북한강에 만들어져 있는 모든 댐의 내력과 크기를 모형으로 너무나 쉽게 표현하고 있어 댐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더 상기시키면서 옆에 있는 영화 상영관으로 들어가니, 안내원 아저씨가 영화를 방영시키 주므로 평화의 댐 중요성을 다시 한번 더 기억하게 한다.

 

< "물문화관" 뒤편으로 만들어진 공원 >

 

< 휴게실 옆에 있는 "조형물" >

 

< 물고기를 키우는 연못에 세워진 "조각품" >

 

< 마당에 뛰어 다니고 있는 "수탈" 모형 > 

 

물문화관 주변에 있는 공원을 산책하면서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넓은 마당을 배회하면서 구경하다가 마당 가장자리에 있는 안내표시 따라 "비목(碑木)" 공원으로 내려가 본다.  

 

< "비목공원" 으로 내려가는 지시표 >

 

3. 비목공원을 돌아보고.

비목공원은 1995년에 조성하였는데, 비목(碑木)의 유래는 1960년 중반 평화의 댐에서 북쪽으로 12Km떨어진 해발 1.179m 백암산 계곡 비무장 지대에 배속되어진 "한명희" 라는 청년 장교가 잡초가 우거진 곳에서 6.25 전쟁 때 전사한 무명용사의 녹슨 철모와 돌무덤을 발견하고 돌무덤의 주인공이 전쟁 당시에 자기 또래 젊은이였을 것 이라고 생각에 비목의 노랫말을 지었다고 한다.

그후 "장일남" 선생님이 곡을 붙여 비목이라는 가곡이 탄생하였는데, 1996년 부터 매년 호국 보훈의 달 6월에 6.25 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순국한 선열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비목 문화제" 를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급경사의 계단을 내려가면 비목탑(碑木塔)이 평화의 댐을 내려다 보이는 곳이 우뚝 서 있는데, 탑 주위에 6.25 때 한국전쟁에 참전한 국가의 국기가 비목탑 주위에 빙돌아서 게양되어 있다.

 

< 비목공원으로 내려가는 급경사의 "나무테크" 길 >

 

< 비목탑 뒤편 비탈면에 있는 빛 바랜 "수국" > 

 

< 6.25 참전국가의 국기가 게양되어 있는 "비목탑" >

 

그 앞 양지바른 곳으로 한반도 모양의 너덜바위가 쌓여있는 중앙에 다 썩어져 가는 십자가 나무 위에 무명의 용사 철모가 언져 있는 모습이 처량 함이 묻어나는데, 저 무명의 용사는 누구를 위하여 희생하여만 했는가를 느끼게 한다.

 

< 너덜바위 속에 세워진 "십자가 비목" >

 

< "한반도 지형" 을 하고 있는 너덜바위 >

 

< "무명의 용사" 의 녹쓰런 철모를 보면서 >

 

무명의 용사 무덤 앞으로 조금 내려가면 비목의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어, 그 노래 가사를 적어본다.

 

1절 :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 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2절 :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지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 "비목" 노랫말 입석 앞에서 >

 

이 시비 앞으로 "DMZ 아카데미" 건물이 자리잡고 있지만 입구의 문이 굳게 잠겨져 있어 지하로 내려가 문을 열어보니, 내부에 사람들이 기거할 수 있는 숙박시설과 더불어 강당 등 회의시설이 마련되어 있으나 전연 사용하지 않아 곰팡이 냄새가 진동한다.

 

< 비목공원 제일 아래에 있는 "DMZ 아카데미" >

 

댐의 상부로 올라가는 도로 따라 한 모퉁이를 돌아서 댐에 고여 있는 물가에 이르면 또 다시 비목의 가사를 세긴 시비와 더불어 너와집 조형물이 만들어져 있고, 도로는 평화의 댐 상부로 올라가 백암산까지 연결 되는 도로이지만 이곳에서 돌아서야만 한다.

 

< "비목의 현장" 을 가르키는 안내표시 >

 

< 도로 변에 설치하고 있는 "너와집" >

 

< 수공을 대비하여 항상 물이 빠져 있는 "평화의 댐" 내부 >

 

날이 저물어지므로 평화의 댐 관람을 조기에 끝내고 다시 되돌아 해산터널 방향으로 올라가다가 고개 마루 인근에 있는 전망대에 도착하므로 전망대로 들어가 휴식도 잠시 가지면서, 스테인레스 파이프로 만든 "경관창" 이라는 조형물에도 올라가 주변을 구경하여 본다.

 

< 해산터널 인접 지역에 있는 전망대에 설치하고 있는 "경관창" 조형물 >

 

전망대에서는 지금 까지 올라온 도로와 더불어 파로호 상부의 물이 보이고 있으며, 그 뒤편으로 높은 산의 정상(頂上)으로 넘어가는 태양의 빛과 산마루에서 역으로 내려오는 단풍이 더욱 더 빛나게 만들어주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 평화의 댐으로 내려가는 길과 "단풍" 이 내리는 산의 풍경 >

 

해산터널을 통과하면서 고개를 넘어 왔던 길로 되돌아서 내려오다가 올라갈 때 그냥 지나친 "딴산폭포" 로 들어가 보기로 하는데, 어둠이 내리므로 선명한 관광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4. 딴산 유원지로 들어갔지만.

딴산은 파로호와 평화의 댐 진입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섬 같이 물가에 떠 있는 조그마한 동산으로 일대에 산의 그늘과 강물이 시원하게 흐르므로, 여름철 야영장 쉼터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 "딴산 유원지" 에 있는 상가와 폔션 >

 

< 어둠이 내리고 있는 "딴산" >

 

높게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전망대로 올라가는 출령다리와 더불어 인공적으로 흘려내리는 폭포가 장관을 이루면서 주변 산세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어둠으로 희미하게 보이고 있는데, 그래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화천 9경 중 제2경 "딴산폭포" 로 지정된 곳이라고 한다.

 

< 잠시 사이 어둠이 깔리는 "딴산 유원지" >

 

완전히 어둠이 깔리므로 저녁식사와 더불어 숙소를 해결하기 위하여 화천읍을 통과하여 춘천댐 언저리로 만들어진 407호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소양 2교를 지나 춘천시가지에 도착한다.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