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행.(여행)

2박3일 동안 하기휴가는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명소 "건봉사와 진부령미술관" 관람하여 보면서.(3)

용암2000 2013. 8. 19. 20:55

 

2013년 8월 4일.(일요일)

 

화진포 호수 주변에 있는 이승만과 김일성 및 이기붕 별장을 정신 없이 구경하다 보니 다소 시간적인 지연으로 인하여 황급하게 다음 코스로 이동한다.

가는길 도로 변에 적당한 식당이 있다면 들어가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거의 거진읍 까지 달려가도 마땅한 식당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윽고 네비게이션은 거진읍 못 미쳐 오른쪽 건봉사 방향의 지방도로를 가르켜 주는데, 그 길로 한참 달려가도 적당한 식당이 나타나지 않아 최후에는 건봉사 까지 가서 식사 하겠다는 생각으로 고불고불한 지방도로 따라 10분 정도 달려가니 조그마한 마을 입구에 한 식당이 나타난다.

식당으로 들어가 메뉴판을 보니 닭백숙과 추어탕을 전문적으로 하는 식당이라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추어탕을 시켜서 먹어 보는데, 생각치도 못하였던 곳에서 고성의 전통 음식 추어탕을 대면하면서 별미의 맛을 가진 식사가 된다.

고성군에서 전통 음식으로 추천하는 특미(特味) 요리는 자연산 물회, 명태 지리국, 도치 두루치기, 토종 흑돼지, 털게 찜, 고성 막국수, 도루묵 찌개와 더불어 추어탕 등 8가지를 강력하게 추천하는 음식이라고 한다.

이 지방 고성군에서 만드는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갈아서 고추장과 함께 요리하므로  추어탕은 매운 맛 속에서도 그 고유의 향을 맛볼 수 있는 음식이라고 주인장의 자랑이 대단하다.

허기진 배를 달래고 나서 건붕사로 다시 출발하지만 동네를 벗어나자 마자 군인들이 도로를 차단하는 바리케이트를 치고 통행 차량 전부를 검문하는데, 검문하는 이유는 이 도로가 민통선 내에 있으므로 강력하게 통제하는 도로이라고 한다.

검문소를 통과하여 조그마한 고개를 넘어가면 고개 정점에서 부터 송강저수지를 만들기 위하여 저수지 가장자리에는 다리공사를 하고 있는데, 저수지 바닥으로 임시 비포장 도로를 만들어 우회시키므로 운전하기가 매우 성가시게 한다.

한참 씨름하여 공사 부분을 통과하여 아스팔트 길로 조금 더 달려가면 오른편으로 건붕사를 가르키는 이정표를 만나는데, 이곳 이정표 따라 한 5분 정도 더 산길 따라 운전하여 들어가면 건봉사 주차장에 오후 2시 40분 경 도착한다.

 

7. 금강산 건봉사 방문.

지금까지 고성군에서 이곳 건봉사로 오는 길이 너무나 한적하면서 움직이는 차량이 매우 적지만, 주차장에는 많은 차량들이 주차하고 있어 꽤 유명한 사찰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사찰 입구로 들어가 기술하고 있는 건붕사 내력을 읽어 보는데, 먼저 제목으로 선정하고 있는 것은 건봉사(乾鳳寺)가 금강산(金剛山)에 속한다는 것 이다.

 

< "금강산 건봉사" 를 안내하는 설명문 >

 

건봉사는 전국 4대 사찰 중에 하나로써 만해 한용운 선생님의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지(乾鳳寺及乾鳳寺末寺史跡誌)" 에 의하면 신라 법흥왕 7년(서기 520년)에 아도화상이 원각사(圓覺寺)를 창건하였다.

그후 도선국사가 중수한 뒤 서봉사(西鳳寺)라 하는데,며 고려 말기 나옹화상이 또 다시 중수하면서 건봉사로 개명(改名)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서기 1465년 세조대왕이 건봉사를 원당(願堂)으로 삼은 뒤 어실각(御室閣)를 짖고 전답과 친필 동참문을 하사 하였으며 그후 서기 1878년 4월 3일 큰불로 3.183칸의 사찰이 전소하였다.

다시 여러차례 복원작업을 통하여 서기 1911년에 설악산의 신흥사 및 백담사 등을 포함하여 9개의 말사(末寺)를 거느린 대한불교 조계종 제31 교구 본사의 하나가 되었다.

건봉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의승병(義僧兵)을 기병한 호국도량 이었는데, 당시 통도사에 있었던 부처님 진신 치아사리를 왜병이 훔쳐갔는 것을 사명대사가 사행(使行) 하였다가 다시 찾아와 이곳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또한 구한말 서기 1906년 사찰 내 "봉명학원" 을 설립하여 개화사상과 신문화를 받아 들이면서 관동지역의 교육도량이 되었지만, 일제의 의해 강제 폐교(閉校)가 되었다고 한다.

이 지역은 한국 전쟁 중 휴전 직전까지 2년 여 동안 아군 5. 8. 9 사단 및 미군 제10 군단이 연합하여 공산군 5개 사단과 16차례에 거쳐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건붕산 전투 지역으로 유명한 곳 이다.

이때 건봉사는 전화(戰火)로 인하여 완전히 폐허(廢墟)가 되었지만, 서기 1994년 부터 대웅전, 팔상전, 만일염불원, 종각, 사지 등이 각각 복원 되었으며 지금도 사찰 복원이 계속 되고 있다.

한국 전쟁이 발생하기 전 건봉사는 총 642칸의 건물과 더불어 보림암 등 124칸의 부속암자 18개를 거닐고 있었고, 건물만 총 766칸을 간직하고 있는 한국에서  제일 큰 가람 중 하나이라고 한다.

현재 건봉사는 건봉산에서 흘려내리는 개울을 중심으로 하여 이원화 되어있는데, 왼편으로 극락전 지역, 낙서암 지역, 사리탑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개울 건너 오른편으로는 대웅전 지역으로 구획되어 있으면서 왼편에 있는 극락전, 낙서암, 사리탑 지역에는 건물이 복원되지 않고 거의 폐허의 땅으로 남아 있어 보기가 매우 민망하다.

 

< 4개의 지역으로 나누어지면서 한국 전쟁 전 1920년 대 "건봉사" 전경 >

 

경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첫 관문 "불이문(不二門)" 을 통과하여야 하는데, 이 불이문은 한국 전쟁 때 유일하게 불이 타지 않고 남아 있는 건물로 1단의 낮은 기단 위에 원통형으로 다듬은 높이 1.61m의 4개 돌기둥 위에 둥근 나무기둥을 세워 건립한 건물로써 다포양식의 겹치마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 한국 전쟁에서도 소실되지 않고 남아있는 "불이문" >

 

이 불이문 옆으로 거대한 고목의 팽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데, 이 팽나무의 수령이 약 500여 년이 되므로 한국 전쟁 떄 766칸의 건봉사 사찰과 주변 암자가 소실되는 역사적 아품을 함께 하였지만 옆에 있는 불이문 하나만 굳건하게 지켜 주고 있는 나무이다.

 

< 불이문을 지키고 있는 약 500여 년의 "팽나무" >

 

불이문을 통과하여 위로 조금 올라가면 왼편으로 극락전 지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돌기둥으로 만든 솟대 한기가 서 있으면서 그 솟대 위에 역시 돌로 만들 한마리의 새가 쉬고 있는데, 이 새는 극락전과 천당을 오고 가면서 인간과 극락 세계의 전도사 역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 극락전 지역 입구에 있는 돌기둥 "솟대와 새" >

 

그 솟대 뒤편으로 범종각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 주변 부터 무성하게 자란 잡풀이 사찰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잡풀이 자라고 있는 공터가 너무나 방대하여 입구 안내도에서 본 그림과 같이 사찰 건물이 다 존재하고 있다면 정말로 큰 사찰이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에 떠나지 않는다.

 

< 돌기둥 솟대 뒤편에 있는 "범종각" >

 

< "극락전 지역" 에 있는 공터 >

 

이 공터 앞으로 개울이 흘려가고 있는데, 개울에는 보물 제1336호 능파교(凌坡橋)와 더불어 건너편으로 대웅전 지역의 사찰 건물이 보이지만 먼저 왼편 지역을 관람하고 나서 나중에 돌아보기로 하고 계속하여 낙서암 지역으로 올라간다.

 

< 극락전 지역과 대웅전 지역을 연결하는 "능파교" >

 

낙서암 지역 입구에는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계단 양쪽에 "십바라밀" 이라는 2개의 석주(石柱)가 외롭게 서 있는데, 이 석주에는 이상한 도형의 그림이 음각으로 세겨져 있다.

석주를 통과하면 2개의 정 4각형 연못을 만나는데, 본래 연못은 직사각형 1개로 되어 있었으나 일본인들이 연못 중앙으로 다리를 놓으므로 연못이 2개로 나누어지면서 "날일(日)" 자 모양의 연못이 되었다고 한다.

 

< "십바라밀" 석주와 2개로 나누어진 연못 >

 

< 십바라밀 석주에 세겨진 "도형" >

 

연못을 지나면 새롭게 건립한 템플 스테이 수련관 건물을 만나는데, 여기 건봉사에서도 사찰의 홍보를 극대화(極大化) 하기 위하여 당일로 다녀가는 사찰에서 탈피하여 몇 일을 머물면서 불심을 더욱더 전파하면서 사찰 신축에 대한 경제적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건립한 수련관이다.

 

< 낙서암 지역에 있는 템플 스테이 용 "수련관" >

 

낙서암 지역에도 대부분 공터로 남아 있어 매우 쓸쓸함이 일어나는 장소가 되는데, 잡풀만 우거진 공터를 거닐면서 낙서암 영역의 꼭대기 산 가장자리에 있는 산신각(山神閣) 건물을 멀리서 구경하다가 수련관 앞으로 만들어진 길 따라 사리탑 지역으로 올라가 본다.

 

< 낙서암 지역 제일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산신각" >

 

사리탑 지역은 조그마한 실개천을 건너 시멘트 포장길 따라 조금 올라가면 적멸보궁으로 들어가는 출입 건물을 만나고, 내부에는 조그마한 마당을 가지면서 마당 좌우에는 요사채 건물과 더불어 전면에 적멸보궁 건물이 건립되어 있다. 

 

< "적멸보궁" 으로 올라가는 길 >

 

< "적멸보궁" 으로 들어가는 출입 건물 >

 

적멸보궁 건물은 특이하게 전면 3칸의 중앙 칸에는 통유리로 내부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그 통유리 중앙에 금색의 원형을 그려 놓고 있다.

원형의 모습도 특별하고 통유리를 통하여 내부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는 스님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또한 특이한 모습이다.

 

< 중앙에 "통유리" 로 차단하고 있는 적멸보궁 >

 

적멸보궁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면 많은 사리탑이 자리하고 있는데, 중앙에 있는 종 모양의 사리탑에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양산 통도사에 있는 석가모니 진신 치아사리 8과를 훔쳐서 가지고 간 것을 사명대사가 되찾아서 이곳에 봉안하고 있다고 한다.

 

< 적멸보궁 뒤편에 있는 "사리탑" >

 

< 석가모니 "진신 치아사리" 를 보관하고 있는 사리탑 >

 

적멸보궁을 돌아보고 나서 전쟁으로 소실되어 폐허가 되어진 사리탑 지역도 살피면서 천천히 내려오는데, 언제 건물이 다시 중건되어 옛 영광을 찾으면서 활기찬 모습으로 복원하여 번성한 사찰로 거듭나기를 기원하여 본다.

다시 극락전 구역 입구에 도착하여 대웅전 구역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능파교를 건너가는데, 능파교는 보물 제1336호로 지정된 문화재로써 일명 홍예교(虹霓橋 : 무지게 같은 다리)이라고도 불려진다.

 

< 대웅전 영역으로 들어가는 "능파교" 전경 >

 

이 다리는 조선 숙종 30년(1704년)에 건립하였는데, 다리의 길이가 14.5m에 폭 3m, 다리의 중앙부 최고 높이가 5.3m 로써 비교적 잘 보존 되어있는 다리이다.

능파교 다리를 건너가면 왼편에 방문객들에게 갈증을 풀어주기 위하여 사찰 뒤편에 있는 천년의 약수터에서 부터 흘러 넘치는 물을 홈이 파인 통나무를 통하여 이곳까지 흐르도록 하여 공급하는데, 샘 가에 걸어 놓은 조롱박으로 한모금의 약수물을 마시면서 더위를 날려 보낸다.

 

< 대웅전 뒤편에 있는 "약수터" 에서 능파교 앞 까지 흐르도록 하는 이동장치 >

  

능파교에서 대웅전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돌계단으로 올라가면 돌계단 양쪽으로 높이 158Cm "십바라밀(十波羅蜜)" 석주가 망부석 같이 서 있다.

이 십바라밀은 대승불교의 기본 수행인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의 6바라밀에서 이 6바라밀을 보조하여 주는 방편(方便), 원(願), 력(力), 지(智)를 더하여 십바라밀이라고 한다.

 

< 대웅전 입구에 있는 "봉서루와 십바라밀" 석주 > 

 

< 봉서루 앞에 있는 "십바라밀" 에 새겨진 도형 >

 

< "십바라밀" 석주에 새겨진 도형 설명서 >

 

십바라밀 석주가 서 있는 뒤편으로 2층의 봉서루(鳳捿樓) 루각이 건봉사의 위용을 자랑하게 만드는데, 봉서루 건물 2층 처마에 "금강산 건봉사(金剛山 乾鳳寺)" 라는 현판이 붙어있고 그 현판에는 마치 꿈틀거리는 용과 같은 모습의 필적이 새겨져 있다.

봉서루 아래층 중앙에 있는 중앙문을 통과하여 대웅전 입구로 올라서면 넓은 마당이 펼쳐지는데, 그 마당 건너편 축대 위에 아담한 대웅전 건물이 건봉사의 중추적 역활을 하고 있는 Main 건물이다.

 

< 건봉사 "대웅전" 모습 >

 

< 대웅전 법당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는 "스님" > 

 

대웅전 우측편으로 명부전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 명부전 내에는 부처님과 함께 건봉산 전투에서 순직한 병사들의 혼(魂)을 달래기 위하여 위패도 함께 모시면서 영혼을 위로하는 장소이다.  

 

< 대웅전 오른편에 있는 "명부전" >

 

아울러 마당 좌우로 요사채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특히 오른편 요사채 건물에는 "만일염불원(萬日念佛院)" 이라는 현판과 더불어 조그만 글씨로 부처님 진신 치아사리를 참견할 수 있다고 하여 내부로 들어가니 유리병 속에 5과의 부처님 치아가 보관하고 있다.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되찾아온 부처님 진신 치아사리가 총 8과로써 앞에서 관람한 적멸보궁의 사리탑에 3과를 모시고 있고, 여기에 5과를 보관하여 일반인들에게 직접 부처님을 대면하므로 불교와 친분을 더욱더 돈독하게 하고자 하는 의도인 것 같다.

 

< 석가모니 진신 치아사리를 모시고 있는 "만일염불원" 건물 >

 

이렇게 건붕사 전체를 돌아보고 나서 주차장으로 내려와 주변을 한번 더 거닐어 보는데, 건봉사 안내도 앞에 만해 "한용운" 선생님과 더불어 몇 사람이 쓴 시비(詩碑)가 만들어져 았어 내용도 음미하여 본다.

 

< 만해 "한용운" 선생님이 쓴 시비 >

 

개울 건너편에 있는 휴게소 건물도 구경하여 보는데, 이곳 휴게소는 건물 지붕에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게 하여 건물 내부의 온도를 조절하는 기능을 가진 휴게소이라 에너지 절약에 많은 도움을 주는 건물이다.

 

< 지붕에 잡풀이 자라고 있는 "휴게소" >

 

그러고 대구까지 갈길이 멀어 에둘러 사찰을 떠나 왔던 길로 조금 되돌아가면 야산 가장자리에 사찰의 크기를 가름 할 수 있는 많은 비석과 부도 군락지가 보이고 있는데, 다른 한 곳에는 사명당 의승병 기념관과 더불어 동상이 세워져 있지만 그냥 통과하여 진부령으로 달려간다.

 

8. 진부령미술관 관람.              

건봉사에서 대구로 가는 길은 진부령을 넘어 홍천 Toll gate 에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집으로 가는 것이 최단 길이 되는데, 계속하여 시골길로 한 30분 정도 달려 진부령 고개에 도착하면서 장거리 운전에 대한 피로를 줄이기 위하여 오후 4시 경 주차장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휴식을 가진다.

진부령(陣富嶺)은 해발 526m로 강원도 인제군 복면과 고성군 간성읍 사이를 이어주는 남한에서 최북단에 위치한 백두대간을 넘는 고개가 되는데, 진부령은 옛날 부터 강릉의 대관령 및 북한의 추가령과 함께 백두대간을 넘나드는 3대 고갯길 중에 하나이다.

 

< 진부령 고개를 알리는 "안내판" >

 

진부령 고개의 길이가 약 60Km 이고 높이 500m 산맥을 넘어가는 험준한 길이 될 것 같지만 백두대간을 넘는 고개 중에서 거리도 길지 않고, 또한 험준한 산길도 아닌 거의 평지와 비슷하게 넘나드는 고개이다.      

고개 마루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와 조국의 국토를 수호하기 위한 군 부대도 함께 공존하고 있는 고개이면서도 고냉지 산나물과 고추의 일종이 되는 "피망" 의 생산단지가 되는데, 매년 7월에서 10월까지 피망 수확 체험 행사를 개최하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 진부령 고개 마루에 있는 "동네" >

 

또한 고개 정점에는 창고와 비슷하게 건립되어진 3층 "진부령미술관(陣富嶺美術館)" 자리잡고 있어 내부로 들어가 보는데, 미술관은 입장료도 징수하지 않고 무료로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관람자 입장에서는 매우 경제적인 미술관이 되는데, 특별히 "이중섭" 화백의 그림을 상설 전시하고 있어 나와 같이 돈 없는 사람에게는 1조 2석의 미술관이라 하겠다.

 

< 진부령 고개에 있는 "진부령미술관" >

 

내부로 들어가 1층 입구 Desk에 있는 안내원으로 부터 관람에 따른 주의 사항을 듣고, 왼편 전시실로 들어가면 한국을 빛낸 직업별 유명한 예술인 사진이 벽면 전체를 장식하고 있다.

사진의 내용으로는 영화배우, 감독, 연극인, 게그맨, 사진작가, 소설가, 대통령, 가수, 음악가, 작사 및 작곡가 등 수 많은 사람들의 얼굴 또는 가족사진을 전열하고 있어 새로운 추억을 회상하게 만들고 있는데, 특히 지나간 영화 포스터도 함께 전시하고 있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1층 전시실에 있는 유명한 "예술인" 사진 >

 

2층으로 올라가 제1 전시실로 들어가면 많은 미술가들이 기증한 수채화 그림을 전시하고 있으며 제2 전시에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고(故) "이중섭" 화백의 특별 전시 그림을 볼 수 있다.

금년 봄 제주도 여행 때, 서귀포에서 보지 못한 대부분의 이중섭 그림들이 이곳에서 다시 대면할 수 있어 새로운 감회가 일어나는 전시실이다.

 

< 2층 전시실에 전시하고 있는 "수채화" 그림 >

 

3층으로 올라가면 6.25의 참상을 나타내고 있는 수십 장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는데, 어제 통일전망대에서 관람한 내용 보다 훨신 더 현실감 나는 부분의 사진이 많이 전시되어 다소 시간이 요구되는 전시실이다.

 

< 3층 전시실에 전시하고 있는 "6.25 참상" 관련 사진 >

 

이렇게 많은 작품과 사진, 포스터 등이 진열하고 있는 매우 유익한 진부령미술관이 되지만, 시간의 한계로 다음에 다시 찾아와 꼼꼼이 돌아 볼 것이라는 마음의 다짐하면서 진부령 고개를 떠난다.            

완만하게 이루어진 진부령 고개를 내려가 속초 방향에서 넘어오는 차량과 합류하는 용대리에 도착하여도, 교통이 그렇게 혼잡하지 않고 소통이 원활하게 되면서 무사히 인제까지는 달려간다.

문제는 인제에서 부터 강원도 계곡 마다 휴가를 즐기고 귀가하는 차량들이 계속 합류하는데, 소양댐 상류 부터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거의 주차장으로 변화를 가지고 오므로 많은 기다림 속에서 운전이 된다.

겨우 홍천 Toll gate를 통과하여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대구 인접지역에 도착하는데, 또 다시 차량의 증가로 거북이 운전으로 집에 도착하니 거의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 된다.

비록 무더위와 좋은 곳에서 여가를 즐기기 위하여 대구를 탈출하여 강원도 지역에서 2박 3일의 하기휴가를 가졌지만 마지막 귀가 길에서 기다림의 스트레스로 하기휴가가 억망이 되었는데, 옛 성현의 말씀 중 "집 떠나면 고생이다" 이라는 격언을 확실이 증명하는 여행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