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및 트레킹.(경상남도)

겨울철 우중에 경남 창녕군 화왕산 군립공원의 지맥에 속하는 "관룡산" 을 종주하면서.

용암2000 2014. 1. 30. 11:08

2014년 1월 25일 (토요일)

 

옛 직장 동료이면서 고등학교 선배가 되는 2명과 함께 모처럼 경남 창녕군에 있는 관룡산 산행을 약속하는데, 금일 산행시간에 다소의 비가 내린다는 기상청 일기예보가 발하므로 반신반의 하면서 9시 정각 대구 서부정류장 앞에 만남을 가진다.

구마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창녕 방향으로 내려가니 유리창에 가랑비가 내렸다가 멈추었다가 하는 번덕스러운 날씨가 펼쳐지므로 만약 계속적으로 많은 비가 내린다면 관룡사 사찰이나 한번 구경한다는 마음으로 창령 Toll gate를 벗어난다.

 

1. 관룡산 산행.

창녕시가지를 통과하여 시골길 따라 조금 달려가 군립공원 화왕산의 지맥이 되는 관룡산이 품고 있는 관룡사 초입으로 들어가 매표소에 도착하니, 인당 2.000원 입장료와 1.000원의 주차료를 요구한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관룡사 입구에 있는 간이 주차장으로 올라가 주차하고 산행을 시작 할려고 하니, 다소의 많은 비가 내리므로 차 속에 머물면서 아침부터 한잔의 맥주로 목을 추기면서 담소로 약간의 시간을 흘려 보낸다.

이윽고 비가 그치므로 10시 10분 경 우산과 더불어 완전 무장으로 산행의 들머리 관룡사로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일반적으로 사찰에서는 일주문을 통과하여 경내로 진입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곳 관룡사는 한국 고유의 토속 신앙과 공존하는 2기의 석장승(石長丞) 문을 통과하게 한다.

 

< 관룡사 입구에 있는 2기의 "석장승" >

 

왼편에 있는 남자 석장승과 오른편에 여자 석장승이 사찰을 수호하고 있는데, 양쪽 장승 모두 상투 같은 둥근 머리에 툭 튀어 나온 왕방울 같은 눈과 주먹 코, 귀신같은 뽀족한 잇빨로 위엄을 갖추고 있어 속세를 벗어나 경내로 발을 옮기는 중생들에게 모든 죄를 고백하라고 큰 눈으로 응시하는 모습이 익살스럽다.

 

< 왼편에 있는 "남자 장승" >

 

< 날카로운 잇빨을 하고 있는 오른편 "여자 장승" >

 

이 석장승을 지나 아스팥트 길로 조금 더 올라가면 관룡사 주차장에 도착하는데, 우중이라도 많은 차량들이 주차하여 있으며 또한 다수의 산행인들이 산행을 준비하고 있다.

옛날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관룡사 주변 풍광이 매우 어수선하였는데, 현재는 병풍바위를 둘려쳐 있는 암벽을 뒤로하고 있는 사찰 앞으로 몇 단의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석문과 더불어 2층의 범종각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을 만들고 있다.

 

< 석축으로 잘 조성되어진 "관룡사" 전경 >

 

오늘 산행 코스는 관룡사 오른편에 있는 청룡암(靑龍庵) 방향으로 올라가 해발 754m 관룡산 정상을 찍고 왼편 용선대 방향으로 하산하는 원점회귀의 산행코스를 선택하는데, 총 산행 거리가 약 3.5Km 정도의 짧은 코스가 된다.

 

< "화왕산 및 관룡산" 산행 전도 >

 

나는 화왕산과 관룡산을 몇 번 산행한 경험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곳 관룡산 산행은 창령 읍내에서 출발하여 화왕산으로 올라가 화왕산 뒤편에 있는 영화 촬영 Set장을 통과하여 관룡산 정상을 지나 관룡사로 하산하는 연계 산행지로 선택하는 산이지, 오직 이곳 관룡산 단독으로 산행을 도전하는 것은 너무나 비효율적인 산행이 될 것 같다.   

석문을 통과하여 관룡사 옆으로 도착하지만 사찰은 하산할 때 관람하기로 하고 오른편 산행 들머리로 산행을 시작하는데, 산행길은 이내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어 내리는 이슬비로 인하여 상큼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 관룡사로 올라가는 "석문" >

 

< "청룡암" 까지 900m를 알리는 거리 표시 >

 

숲속으로 이어지는 산행길로 조금 상승하면 산행길 옆으로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9호로 지정되어져 부도탑을 만나는데, 관룡사 주변에는 6기의 부도탑이 있지만 이 부도탑은 높이가 2.05m 이고 조성시기가 고려 말 또는 조선 초에 만들어진 부도탑이라고 한다.

 

< 청룡암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만나는 "부도탑" >

 

간간히 내리는 비로 우산을 썻다가 접었다가 하면서 고도를 상승하는데, 청룡암이 가까워 지면서 소나무가 잡목나무로 변화를 가져 오면서 산행길도 흙길에서 너덜바위 길로 변화가 되면 올라가는 경사도가 작난이 아니라 제일 뒤편에서 엉금엉금 기면서 걸어가니 이내 땀으로 번벅이 된다.

 

< 급경사의 "너덜바위" 로 변하는 산행길 >

 

최대한 많은 휴식과 거북이 걸음으로 한 30분 정도 올라가면 2개의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왼편으로는 청룡암으로 들어가는 길이고 오른편으로 관룡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로 나누어 진다.

여기까지 와서 청룡암을 구경하지 않고 그냥 갈 수 없어, 암자의 경내를 안내하는 2개의 돌탑 문으로 들어가 언덕 위에 새의 둥지와 같이 자리하고 있는 암자로 올라가 본다.

 

< 청룡암으로 들어가는 대문 "돌탑" >

 

< 새의 둥지 같이 자리하고 있는 "쳥룡암" >

 

기암괴석의 바위 틈에 자리하고 있는 청룡암에 도착하니,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므로 우산을 쓰고 먼저 암자 뒤편에 있는 석불로 올라가 간단하게 목례로써 인사를 드리고 주변을 구경하여 본다.

 

< 바위 틈 사이에 있는 자리하고 있는 "청룡암" >

 

< 암자 뒤편에 있는 "산신각" 건물 >

 

< 청룡암 뒤편 산신각 옆에 있는 "석불" >

 

왼편 산신각 건물 뒤편으로 기암괴석의 병풍바위가 자리하고 있는데, 그 병풍바위를 휘감고 빠르게 흘려가는 구름과 오른편 용선대 뒤편 능선의 정점에도 감쌓고 있는 구름이 수시로 변화를 가져오는 모습이 한편의 영화와 같이 끝없이 다양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 산신각 뒤편 구름으로 휘감고 있는 "병풍바위" >

 

< 용선대 뒤편 산에도 머룰고 있는 "구름" >

 

계속적으로 내리는 비로 인하여 비가 다소 그칠 때 까지 청룡암 처마 밑으로 들어가니 주지 스님이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에 여기까지 산행하는데 많은 수고를 한다고 하면서 방으로 들어와 몸을 좀 녹이고 가라고 하신다.

그러나 젖은 몸으로 방에 들어가는 것은 실례가 되므로 마루에 앉아 수 인사와 함께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스님은 7년 전에 여기로 올라왔을 때 허물어지고 비가 새는 집을 보수하는데 많은 애로 사항이 있었으며 공양 한톨도 모두가 사람의 힘으로 운반하는데 무척 힘이 들었다고 한다.

 

< 청룡암을 알리는 "현판" >

 

이곳 청룡암에서 내려보는 지형을 이야기 하여 주는데, 이 청룡암 뒤편 청룡산 이름이 일명 비로봉이라고 하고 왼편 부곡온천 방향으로 보이는 산맥이 문수봉, 오른편 용선각 뒤편으로 보이는 산맥이 보현봉이라고 한다.

그러고 발아래 머물고 있는 관룡사 사찰과 더불어 그 앞으로 넓은 평원이 펼쳐지는데, 그 평원에서는 한 때 1.000여 명의 스님이 머물고 있었던 가람의 관룡사 식솔들에게 공양을 올리도록 사찰에서 관리하는 토지이라고 한다.

 

< 청룡암 마루에서 바라보는 "관룡사와 토지" 전경 >

 

불교와 관련되는 이야기와 더불어 관룡사에 대한 역사 이야기를 한 30여 분 정도 나누다가 다소 비가 거치므로 다시 길을 나서는데, 스님은 현재 바위가 물에 젖어 매우 미끄럽고 또한 낙뇌에 대한 사고가 발생 할 수 있으므로 하산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뒤로 하고 다시 암자를 떠나 마지막 남은 산행을 감행하기로 한다.

청룡암에서 숨이 하늘까지 올라간다는 깔닥고개 까지 약 3-400m 정도이지만 정말 고행의 암릉길이 되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방자치단체에서 Rope를 잘 만들어 놓아 죽을 힘으로 로프를 잡고 고도를 상승하여 이윽고 깔닥고개에 도착한다.    

 

< "Rope" 를 의존하면서 울라가는 길 >

 

깔닥고개에 이르니 오른편 병풍바위 방향으로는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표시가 서 있으며 왼편 관룡산 정상 방향의 산행길 따라 조금 올라가면 다시 주변을 구경할 수 있는 전망대 바위가 나타나는데, 여기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정말 환상적이다.

 

< 깔닥고개에서 "병풍바위" 방향으로 출입을 금지하는 안내문 >

 

< "깔닥고개" 에서 휴식을 취하는 일행 >

 

이 전망대에서 300m 전방에 관룡산 정상이 있다는 이정표 따라 한발한발 앞으로 나아가면 가는 길이 완전히 천길 낭떠리지 옆의 능선으로 넘어가는데, 가는 길 양편으로 Rope 시설이 잘 만들어져 있고 바위도 미끄럽지 않아 그렇게 위험한 길이 아니라서 그런되로 안도감으로 넘어간다.

 

< 거대한 "암벽" 을 돌아가게 만들어진 안전 Rope 구간 >

 

거대한 바위로 인하여 다시 한번 크게 내려 갔다가 올라가면, 산행길은 아름다운 숲속으로 만들어져 있어 매우 안전한 길이 되므로 고생하면서 올라온 고통의 순간이 구름과 함께 살아진다.

 

< 구름 속에 머물고 있는 "암릉" >

                                                                                            

거대한 암릉 구간에서 한 10분 정도 걸어가니 먼저 화왕산으로 넘어가는 3거리 이정표를 만나면서 이내 해발 754m "관룡산(觀龍山)" 정상에 도착하는데, 비로 인하여 그런지 우리 일행을 제외하고 한명의 산행객이 없어 모처럼 3명 단체 기념사진 한장도 찍어보지 못 한다.

 

< "화왕산" 으로 넘어가는 3거리 이정표 >

 

< "관룡산" 정상석을 배경으로 >

 

개인적으로 돌아가면서 몇 장의 기념사진을 남기고 바로 관룡사 방향의 하산길로 들어서서 걸어가는데, 여기에서 부터 하산길은 매우 익숙한 길이 되면서 다소 순탄하므로 걷기가 매우 편리하여 진다.

능선의 허리 정도 내려와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즐겁게 점심식사를 하고 커피 한잔을 하고 있으니 다시 비가 내리므로 긴급하게 우산을 쓰고 하산길로 들어가 조금 더 하산하면, 관룡사의 명소에 자리하고 있는 "용선대(龍船臺)" 에 도착한다.

 

< 부처님 머리에 새가 앉아 있는 "용선대" 전경 >

 

옛날 용선대 바위로 올라 갈 때에는 Rope를 의존하면서 힘겹게 올라갔는데, 이제는 잘 만들어진 나무테크 길로 무아지경으로 용선대 바위에 올라 석불을 알현할 수 있어 매우 편리하다.

 

< 용선대로 올라가는 "나무테크" 길 >

 

이 용선대 위에 계시는 부처님은 통일 신라시대에 조성된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 으로 보물 제295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불신의 높이 1.81m에 좌대 높이가 1.17m이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관룡사 사찰을 내려다 보면서 중생들의 행동을 주시하고 계신다.

 

< 관룡사를 내려보고 계시는 "불상" >

 

< 용선대에서 바라보는 "관룡사" >

 

불상을 돌아보니 손은 향마촉지인을 하고 있지만 광배가 없어지고 머리는 둥근 육계와 나발이 올려져 있으며 얼굴은 사각형이지만 둥근 맛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조금 뜬 기다란 눈과 짧고 널적한 코와 입가에 미소를 띤 온화한 형상을 하고 있다.

 

< 보물 제295호 "석조여래좌상" >

 

상대석, 중대석, 하대석으로 높게 구성된 대좌는 아름답게 만들어져 있으며 특히 대좌와 주변 바위가 부처님의 돌과 차별나게 유별나게 붉은색으로 띄고 있는데, 그 이유로 주변 바위에 철분과 광물이 많이 함류하고 있으므로 많은 기(氣)를 품고 있다고 한다.

 

< "철분" 이 많이 함유하고 있는 용선대 >

 

그래서 옛날부터 여기 용선대 주변에서 장시간 머물면서 앉아 있으며 몸에 산과 바위의 기를 받아 매우 마음이 맑아지면서 병을 치유 된다는 속설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까지 올라와 심신을 단련하였다고 한다.  

내리는 가랑비로 인하여 오래동안 머뭄을 생략하고 조금더 하산하여 관룡사 경내에 도착하는데, 관룡사 역사는 조금전 헤어진 청룡암 스님의 이야기를 상기하여 보면 청룡사는 초기 가야의 역사 속에 있지만 가야가 신라에 흡수되므로 건립 년대가 불명확하다고 한다.

 

< 관룡사로 내려가는 길 중간에서 쳐다보는 "용선대" >

 

관룡사는 화왕산(火旺山)의 동쪽에 위치한 사찰로써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화왕산 꼭대기에 용이 살고 있는 연못이 있는데, 사찰을 창건할 때 용이 구름을 따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여러 사람들이 신비롭게 여겨져 이름을 "불 관(觀)" 자와 "용 용(龍)" 자를 써서 "관룡사(觀龍寺)" 라고 하였다고 한다.

관룡사가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로 신라시대를 대표 한다고 할 수 있는 보물 제295호 용선대 석조여래좌상, 조선시대를 상징하는 보물 제146호 약사전이 있다.

약사전 내에 보관하고 있는 보물 제519호 석조여래좌상, 관룡사의 중심 건물 보물 제212호 대웅전과 대웅전 내에 보관하고 있는 보물 제1730호 목조석가여래 삼존불 좌상 및 대좌 등 총 5개의 국가지정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유명한 사찰이라고 한다.

사찰 입구에 있는 천왕문을 통과하면 먼저 왼편으로 2층의 범종각 건물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범종각 건물 앞에 있는 계단을 통하여 위로 올라가면 대웅전이 품고 있는 경내 마당에 도착한다.

 

< 관룡사로 들어가는 "사천왕문" >

 

< 사천왕문을 들어가면 왼편으로 만나는 "범종각" 건물 >

 

계단으로 올라가는 좌측편과 경내 마당 앞에 "원음각(圓音閣)" 이라는 2층 루각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원음각은 불구(佛具)를 보관하는 장소 또는 설법(說法)을 하는 곳으로 인조 12년(1634년)에 건립한 사원의 루각이라고 한다.

원음각은 정면 3칸에 측면 2칸 규모에 들보 5량으로 지어진 건물이고, 우물마루로 되는 마루의 바닥이 대웅전 앞 마당과 높이가 같이 되어 있어 마당에서 바로 출입이 가능하는 건물이다.    

 

< 대웅전 앞 마당과 높이를 같이 하는 "원음각" >

 

경내 마당 정면 양쪽으로 석등이 자리잡고 있고 그 석등 뒤편 기단 위에 대웅전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대웅전 건물은 정면 3칸에 측면 3칸의 다포식 건물에 겹처마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나 다른 사찰의 대웅전 보다 규모가 작지만 매우 아름다운 자태를 가지고 있어 보물 제212호로 지정 되어있다.

 

< 작고 아담한 보물 제212호 "대웅전" >

 

< 대웅전 내에 있는 보물 제1730호 "목조석가여래 삼존불" >

 

대웅전 건물 오른편 기단 아래에는 거대한 석조 물통으로 감로수 물이 흘려 내리고 있으므로 한잔의 물을 마시고, 다시 기단 위에 대웅전 건물과 동일한 높이에 있는 칠성각 건물로 올라가 본다.

 

< 감로수가 흘려내리는 "석조 물통" >

 

일행 중 한명이 칠성각(七星閣) 건물로 들어가 108배 절을 한다고 하면서 같이 하자고 하나 지금까지 108배를 해 본적도 없지만, 산행으로 인하여 다리가 아파 죽을 맛이라 거절한다.

반대로 대웅전과 칠성각 건물 사이에 있는 돌계단으로 올라가니, 좌측편으로 경내에서 제일 작은 산령각(山靈閣) 건물과 오른편으로 응진전(應眞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어 동시에 구경하여 본다. 

 

< 108배 절을 하려 들어간 "칠성각" >

 

< 경내에서 제일 작은 "산령각" 건물 > 

                                                                         

< 산령각과 나란하게 자리하고 있는 "응진전" >

 

다시 경내로 내려와 마당을 가로질려 대웅전의 제일 오른편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약사전으로 들어가 보는데, 이 약사전은 보물 제146호로 지정된 건물로 전면과 측면 각 1칸의 맞배지붕을 가진 건물로 건축 외벽 방향으로 지붕이 길게 뻗어나와 독특한 건물형태를 하고 있다.

 

< 좌우로 지붕이 길게 튀어나온 보물 제146호 "약사전" >

 

임진왜란을 꺽어면서 관룡사의 모든 건물이 불에 따 사라지고 없지만 오직 "약사전(藥師殿)" 건물만 화를 면했는데, 이를 기이하게 여긴 "영운" 스님이 약사전에 영험한 기운이 있어 화를 피했다고 여겨 약사전을 자세하게 살펴보니 들보 끝에 나무가 겹쳐진 곳에 "영화 5년 기유 349년(永和 五年 己酉 349年)" 라는 글씨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보면 관룡사는 약 1.700년의 긴 불교 역사와 함께 하는 천년의 고찰이 되고, 다른 한편으로 관룡사에서 불공을 드리면 한가지 소원을 꼭 이루어진다는 설이 널리 펴졌다고 한다. 

아울러 이 건물 내에 있는 석조여래좌상도 보물 제519호로 지정되어져 있는데, 이 좌상은 고려시대에 축조되어진 불상으로 머리 위에 둥근 육계에는 가르침을 상징하는 반달 구슬인 계주를 표현하고 있으며 법의의 겹쳐진 부분은 선각으로만 표현하여 형식화 되어가는 고려시대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고 한다.

 

< 약사전 내에 있는 보물 제519호 "석조여래좌상" >

 

이 약사전 앞에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된 3층석탑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석탑도 통일 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석탑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고 한다.

 

< 약사전 앞에 많이 파손되어진 "3층석탑" >

 

이 밖에 명부전, 종무소, 공양소, 요사채 등 많은 건물들이 대웅전을 중심으로 잘 조화를 이루면서 짜임새 있게 자리하고 있어, 비록 사찰의 규모 면에 있어 작지만 곳곳에 많은 구경거리를 제공하여 준다. 

 

< 경내 대웅전 왼편에 있는 건물 "명부전" >

 

< 경내 마당 우측에 있는 "요사채" 건물 >

 

< 대웅전 건물 옆에 있는 "나무 밥그릇" >

 

이렇게 경내 구석구석을 돌아 다니면서 건물과 문화재 해설문을 읽으면서 관람을 하고 있으니, 선배가 108배와 참선을 끝내므로 인하여 함께 다시 석문을 통과하여 경내를 벗어나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비와 사찰 관람을 위하여 그렇게 많은 시간을 소비하면서도 오후 2시 10분에 산행이 종료 되어지는데, 산행 시작 부터 총 4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다소 짧은 산행이 된다.

 

< 사찰에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석문" 길 >

 

2. 창녕 석빙고 관람.

산행 시간이 너무나 조기에 끝나므로 다른 관광지를 좀 더 돌아보기 위해 창녕시내에 있는 문화재 "진흥왕순수비" 가 있는 군청 옆으로 들어가 길을 걷는 사람에게 위치를 물어보니, 현재 비석을 보수하기 위하여 완전히 차단하고 있어 관람이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다른 문화재로 창녕 석빙고를 추천하므로 그 뱡향으로 운전하여 석빙고 주차장에 도착한다.

석빙고 안내문에 있는 내용을 기록하여 보면, "창녕 석빙고(昌寧 石氷庫)" 는 보물 제310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읍내 중심지 송현동 288번지 위치하고 있으며 외관상의 모습이 고분과 비슷하다.

 

< 고분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보물 제310호 "창녕 석빙고" >

 

빙실(氷室)이라는 공간이 주변 지반과 비교하여 절반은 지하에 있고 나머지 절반은 지상에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바깥 면은 보온을 위하여 흙으로 두껍게 덮혀 있기 때문이다.

석빙고는 주로 강이나 개울 주변에 만들어지는데, 창령 석빙고도 역시 서쪽으로 흐르는 개울과 직각이 되도록 남북으로 길게 위치하고 있으며 입구를 남북으로 내어 얼음을 쉽게 옮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입구 안에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밑바닥은 경사가 지고 북쪽 구석에는 물이 빠지도록 배수 구멍을 두었으며 바닥은 네모나고 평평하며, 내부는 잘 다듬어진 돌을 쌓아 양 옆으로 틀어 올린 4개의 무지개 모양 띠를 중간중간에 두었다고 한다.

또한 각 띠 사이로 긴 돌을 가로로 걸쳐 놓아 천장을 마무리 하였으며, 천장 곳곳에 요철을 가진 환기 구멍을 두어 바깥 공기를 드나드는 것을 조절하여 냉기가 오래 가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창녕 석빙고 앞에 서 있는 비석의 기록에 의하면, 만든 시기가 조선 영조 18년(1742년)에 당시 이곳의 현감으로 있었던 "신서(申曙)" 씨가 조영(造營) 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 석빙고의 축조 년대를 기록하고 있는 "비석" >

 

그런데 석빙고 내부를 구경하기 위하여 입구로 들어가니 출입구에 철조망으로 굳게 차단하고 있으면서 내부에 또 다시 커텐으로 밀봉하므로, 내부를 전연 불 수가 없고 앞에 있는 사진을 통하여 내부를 상상하게 만든다.

 

< 철문으로 굳게 잠겨져 있는 "석빙고 입구" >

 

< "석빙고" 내루를 촬영하고 있는 사진>

 

창녕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무엇이 두려워서 그런지 철조망과 커텐으로 원천 차단한 이유가 너무한 것 같아 매우 불쾌하게 만드는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창녕시가지를 벗어나 대구로 향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