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일기.

우리나라 유일하게 지평선이 있는 지평선 축제가 열리는 전북 김제시 "벽골제" 찾아서.

용암2000 2014. 8. 9. 09:01

2. 둘째날 (8월 2일 : 토요일)

 

1). 새만금 방조제 드라이브.

 

모텔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자 마자 전일 오후 군산여객선 터미널에서 받아놓은 선유도 행 팜플릿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를 찾아 금일 운행 여부를 확인하는데, 태풍으로 서해 도서지방으로 운행하는 모든 선박들이 꼼짝 못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출발하기 전에 계획하여 놓은 모든 일정에 차질이 발생하므로 긴급하게 계획의 수정 함과 동시에 이성당 빵집에서 구입한 앙금빵 및 야채빵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모텔을 벗어나 전일 밤에 방문한 비응항 방향으로 출발하여 시원하게 만들어진 새만금 방조제 위로 달리기 시작한다.

이곳 새만금 방조제는 군산시 비응항에서 전라북도 부안군에 있는 변산반도 끝지점 까지 장장 33Km 거리를 돌과 흙으로 매립한 방조제로써,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가 된다고 한다.

방조제를 매립할 때 중간에 있는 여러개의 섬과 섬을 연결하면서 공사를 시작하였는데, 먼저 시작한 변산반도에서 가력도 까지 4.5Km를 제1 방조제, 가력도에서 신시도까지 15Km를 제2 방조제, 신시도에서 야미도까지 5Km를 제3 방조제, 야미도에서 군산 비응항까지 8.5Km를 제4 방조제라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비응항에 있는 제4 방조제 입구에서 출발하여 제1 방조제가 있는 변산반도 까지 운전하여 보는데, 비응항에서 제4 방조제 위로 약 5Km 정도 달려가면 방조제 중간지점 양편으로 전망대가 나타나면서 전망대 앞에 많은 차량들이 주차하면서 관광객들은 전망대로 올라가 바다를 구경하고 있다.

 

< 새만금 제4 방조제 중간지점에 있는 "전망대" 주차장 >

 

우리 식구도 주차장으로 들어가 승용차를 세우고 방조제 양쪽 방향의 전망대로 이동하면서 넓은 바다를 구경하여 보는데, 비록 태풍이 제주도 연안에 올라오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비가 내리지 않고 약간의 바람이 불고 있으므로 방조제 외부 바다에는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한다. 

 

< 제4 방조제 중간에 있는 "전망대" > 

 

< 방조제에서 바라보는 "내항" >

 

< 약간의 파도가 일고 있는 "외항과 선유도" >

 

다시 승용차를 타고 야미도를 지나 신시도에 도착하면서 신시도 휴게소로 다시 들어가는데, 이곳 신시도 휴게소에는 준공탑과 더불어 다소의 음식점 및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가들이 자리하고 있다.

 

< 전망대에서 "야미도" 까지 달리는 제4 방조제 길 >

   

< 신시도 휴게소에서 바라보는 "야미도" >

                                                         

나는 신시도에 자리하고 있는 월영산에서 해발 188m "대각산" 정점 까지 종주 산행(2010년 7월 18일)을 위하여 이 휴게소에 한번 방문한 경험이 있으므로, 그 때 휴게소 주변을 돌아보면서 한국의 위대한 토목사업에 대한 감탄사를 연발한 휴게소이라 매우 익숙한 장소이다.

아울러, 대각산 산행의 초입이 되고 월영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깔닥고개가 눈 앞에 머물고 있는데, 그 때 산악회 따라 혼자 산행하면서 너무나 무더위로 인하여 깔닥고개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 한개를 구입하여 단숨에 먹어본 추억의 경험이 주마등 같이 상기 된다.

Wife 및 아들과 함께 신시도 주변 풍경과 더불어 준공 기념탑을 다시 구경하고 나서 가력도로 넘어가는 제2 방조제 초입에 있는 수문(水門)을 구경하기 위하여 식당 뒤편으로 들어가 수문을 내려보니, 오늘은 수문을 개방하지 않아 폭포 같이 쏫아지면서 흰 거품을 만들고 있는 소용돌이 물을 볼 수가 없어 아쉬움이 일어난다.

 

< 신시도 휴게소 있는 "준공 기념탑" >

 

< 중공 기념탑에서 내려보는 내항 쪽 "수문" >

 

< 물을 방류하지 않고 있는 "수문" 전경 >

 

다시, 제2 방조제와 제1 방조제 위를 달려 변산반도에 도착하면서 방조제 입구에 있는 "한국농어촌공사 새만금 전시관" 이 자리하고 있지만, 이 전시관도 옛날 한번 방문하여 구경한 곳이라 다시 관람하는 것을 생략하고 다음 관광지로 달려간다.

 

2). 지평선 축제가 열리는 김제 벽골제를 찾아서.

 

ㄱ) 벽골제 행사장 관람.

승용차는 전라북도 부안군을 통과하여 김제시로 넘어가는데, 김제시에서 매년 지평선 축제를 개최하는 "벽골제(碧骨堤)" 를 구경하기 위하여 네비게이션에서 지시하는 방향 따라 운전하여 가는데, 들어가는 길이 지평선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논의 중앙을 관통하여 달려간다.

약 1시간 정도 달려 벽골제 주차장에 도착하는데, 금년에 개최하는 지평선 축제는 제16회가 되면서 개최 시기가 10월 1일(수요일) 부터 10월 5일(일요일) 까지 5일 동안 실시한다는 현수막이 입구에 붙어있다.

 

< 제16회 "지평선 축제" 가 10월 개최한다는 안내문 >

 

비록 행사기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매년 상설적으로 개최하는 장소이라서 그런지 행사장 건물이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수의 관광객이 찾아들고 있으며, 행사장 입구에 있는 솟을대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입구 안내소에 제16회 "김제지평선축제(金堤地平線祝祭)" 안내 팜플렛이 놓여 있어 한장을 획득하여 관람코스를 가름하여 본다.

 

< 김제 지평선 축제장으로 들어가는 "솟을대문" >

 

< 축제장 입구에 있는 "안내소" >

 

이곳 김제 지평선 축제가 열리는 벽골제는 우리나라에서 제천의 의림지,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3대 저수지가 되면서, 그 중에서 벽골제가 제일 큰 규모이면서 전 둘레을 인력의 힘으로 만들어진 저수지가 된다.

김제 벽골제는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와 월승리에 걸쳐 있는 저수지로 둘레가 약 40Km가 넘으면서 3Km 정도의 제방이 현존하고 있는데, 광법위한 고대 농경지 및 문화, 토목, 건축적으로 의의(意義)가 인정되어 1963년 국가지정 사적 제111호로 지정되었다.    

벽골제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나오는 신라 흘해왕 21년 기록에 의하면 "처음 백골지를 여니 제방의 길이가 일천팔백 보이다" 라고 기술되어 있는데, 흘해왕 21년이 서기 330년이 되므로 그 시기에는 이 장소가 백제의 영토가 되므로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신라본기에 삽입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서기 330년은 백제 제11대 비류왕 27년이 되므로 아마 비류왕 시대에 축조하였으며 이후 통일신라 원성왕 6년(790년)과 고려 현종 및 인종 때 고쳐 쌓았는데, 조선 태종 15년(1415년)에 중수하였으나 세종 2년(1420년)에 심한 폭우로 인하여 유실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동진농지" 개량조합에서 이 제방에 운암제를 설치함에 따라 김제 간수선 수로(水路)로 개조함으로써, 그 원형이 크게 훼손되어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축제장 내부에는 다양한 초가집과 기와집들이 산재하고 있는데, 초가집에는 전통한국 공예품, 목공예, 짚풀공예, 민속놀이, 도구공예 등의 체험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담장으로 구획하고 있는 기와집에는 선비의 정신을 가르키는 선비문화 체험장 및 전통가옥 숙박 체험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 축제를 기다리는 "야시장" 장소 >

 

< 각종 공방으로 사용하는 "초가집" >

 

< 전통예절을 가르키는 "선비문화 체험관" >

 

< 숙박 체험을 하는 "전통기옥" > 

 

< 민속놀이 "그네타기" 를 즐기는 어린이 >

 

이 체험장 뒤편으로 들어가면 농경사 주제관 및 체험관의 2층 건물이 자리하고 있지만, 이 건물에는 이번 제 16회 지평선 축제 행사를 위하여 전면 보수 및 개조 작업을 하므로 출입을 금지시키고 있다.

 

< 새롭게 단장하고 있는 "농경사 주제관 및 체험장" >

 

 그 뒤편으로 넘어가면 넓은 잔디광장과 더불어 생태 연못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연못의 가장자리에 거대한 백용과 흑용 2마리가 서로 응시하면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으며 쌍용 뒤편으로 벽골제 제방이 나타나면서 농사를 짖고 있는 농경지가 끝없이 펼쳐진다.

 

< 서로 응시하고 있는 "백용과 흑용" >

 

< 생태 연못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쌍용" >

 

ㄴ) 벽골제를 만난다. 

제방 위로 올라가면 제방 넘어로 많은 수초(水草)와 더불어 수로가 보이면서 그 수로 뒤편으로 넓은 농경지가 펼쳐지는데, 한 때 이 농경지 전부가 거대한 벽골제 저수지에 속한다고 한다.

 

< 행사장 제일 뒤편에 펼쳐지는 "벽골제 수로와 농경지" > 

 

제방 따라 왼편 방향으로 한참 내려가면 옛날 농경지로 물을 흘려내려 보내는 수문 "정생거(長生渠)" 가 나타나는데, 현재 장생거에는 2개의 높은 돌기둥이 상호 마주 보면서 서 있고 그 중간에 나무 널판으로 가로 놓아 수문 역활을 하게 한다.

 

< 물의 흐름을 조절하는 "장생거" 수문 >

 

이 장생거 왼편으로 조금 걸어가면 벽골제를 건립하게 되어진 내역을 설명하고 있는 "중수비(重修碑)" 한기가 서 있으며, 그 옆에 중수비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해석하고 있는 안내문이 함께 만들어져 있다.

 

< 벽골제 건립 내역을 기록하고 있는 "중수비" >

 

< 벽골제 내역에 대한 "설명서" >

 

이 중수비에 의하면 벽골제는 연인원 32만 명이 동원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 밖에 5개의 수문 및 하천 공사 등에 헤아릴 수 없이 더 많은 공사인원이 투입하므로 당시의 사회구조 및 인구수 등을 고려하면 얼마나 거대한 공사임을 짐작하게 한다.

 

ㄷ) 벽골제농경문화 박물관의 관람.

이 중수비 앞으로 나아가면 벽골제와 벽골제 주변에서 발굴되어진 "벽골제농경문화 박물관" 이 자리하고 있으므로, 내부로 들어가 벽골제 농업문화에 대한 역사를 공부하여 본다.

 

< "벽골제농경문화 박물관" 전경 >

 

박물관 내부에는 각 Booth 마다 벽골제와 김제 주변에서 출토되어진 유물과 그 시대에 사용한 농경도구, 농경문화, 의식주, 민간신앙 등 김제를 주제로 하는 여러가지 전시품이 진열하고 있어 살아져 가는 전통 농경문화를 대면할 수 있게 한다.

 

< 박물관 내에 전시하고 있는 "농경도구" > 

 

< 김제 지역에 사용한 "생활용품" >

 

< 농경시대에 사용한 "생활도구" >

 

< 수력도구로 사용한 "기계" >

 

박물관을 나와 정문 방향으로 올라가면 중간에 중앙광장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 광장 주변으로 단아루, 단아각, 조정래 선생님의 아리랑 문학비, 우도 농악관, 테마 연못, 야외 조각 전시장 등이 자리하고 있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광장 가장자리에 있는 "단아각" >

 

< 공원 내에 있는 "아리랑 문학비" >

 

< 푸른초원에서 풀을 먹고 있는 "황소" >

 

ㄹ) 벽천미술관 구경.

이 광장 한편에 김제 지역에서 배출한 미술작가 벽천 "나상목(羅相沐)" 선생님의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어 내부로 들어갈려고 하니, 마침 점심식사 시간이라 문이 잠시 잠겨져 있어 입구에서 망서리고 있으니 12시 20분도 되기 전 관리직원이 나타나면서 문을 열어준다.

 

< 축제장 내에 있는 "벽천 미술관" >

 

내부로 들어가 벽천 선생님의 미술을 관람하여 보는데, 전시실은 상설전시실과 기회전시실로 구분되어 있어 먼저 백천 선생님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상설전시실로 들어가 작품을 감상하여 본다.

 

< 미술관 내에 있는 "벽촌" 동상 >

 

벽천 선생님은 이곳 김제에서 1924년에 출생하여 1999년에 타계하신 미술가로써 오원 "정승업" 과 목로 "이용우" 선생님의 화풍을 계승한 전라북도의 한국 화가라 말할 수 있다고 한다.   

벽천의 초기 그림은 담목(淡墨)에서 농묵(濃墨)으로 이어지는 적묵법으로써 관염산수(觀念山水)를 시도하였으나, 후기에는 진경산수에 심취하여 담묵으로의 변화를 가져오는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고 한다.

 

< 벽천 선생님이 그린 "작품" >

 

< 벽천 선생님의 작품 "진경산수" >

 

옆에 있는 기회전시실에는 초청 미술가 벽경 "송계일", "오용길", 야송 "이원좌" 선생님들이 한국화의 새로운 위상을 높이기 위하여 별도의 작품을 기증하므로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크케 기여 한다고 안내 팜플렛에 기술하고 있다.

 

< 초청 작가의 작품 "수목화" >

 

< 초청 작가의 작품 "산수화" >

 

ㅁ) 아리랑 문학관 관람.

벽골제 정문 반대편 도로를 건너가면 "아리랑 문학관" 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아리랑 문학관에는 소설가 "조정래(趙廷來)" 선생님의 장편소설 "아리랑" 무대가 이곳 김제를 배경으로 집필되므로 소설의 내용에서 나오는 지역을 기억하기 위하여 조성되어진 문학관이라고 한다.

 

< 조정래 선생님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아리랑 문학관" >

 

조정래 선생님은 1943년 8월 17일 전남 순천에 출생하여 아직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로 제직하고 있으면서도 우리들에게 많이 읽어지는 대하소설 "태백산맥" 을 지필한 소설가이다.

먼저 1층 제1 전시실로 들어가면 장편소설 아리랑 200자 원고지 18.000매가 높게 쌓여 있고, 그 주변으로 조정래 선생님의 성장 배경과 더불어 소설의 무대가 되는 김제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내용이 일목요약하게 기술하고 있다.

 

< 아리랑의 "18.000매" 의 원고 >

 

< 소설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는 "설명서" >

 

< 소설의 배경이 되는 "중국과 러시아" >

 

< 작가의 "성장배경" 에 따른 자료 >

 

2층으로 올라가면 제2 전시실과 제3 전시실이 자리하고 있는데, 각 전시실에는 조정래 선성님이 소설을 집필하면서 사용한 거실, 필기도구, 안경, 책상, 방, 가족사항, 문학 관련 트로피 및 훈포장, 해외여행 일기, 소설로 발간한 12권의 아리랑 책 등 다양한 생활품과 서적 및 원고들이 전시하므로 간단하게 돌아본다.

 

< 12권의 책으로 출판된 "아리랑" >

 

< 작가가 사용한 "안경과 필기구" >

 

< 작가의 "이미테이션" >

 

그러고 아리랑 문학관 앞에 있는 정원으로 나아가면 김제지역에서 배출한 가수 "현숙" 양의 효(孝) 노래비가 자리하고 있는데, 비록 현숙 씨가 이 지역 출신의 유명한 가수이라고 하겠지만 조정래 선생님의 작품과 무관한 것 같아 다소 이질감이 묻어나는 노래비가 된다.

 

< 아리랑 문학관 정원에 있는 "현숙" 노래비 >

 

ㅂ) 한우식당에서 점심식사.

다시 승용차를 세워둔 백골제 정문으로 돌아가니 정문 왼편으로 다양한 먹거리를 판매하는 주막, 전통찻집, 쌀음식 체험식당 등이 도열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지평선 한우고기를 판매하는 식육점에서 지접 운영하고 있는 명품관 식당으로 들어가 비싼 한우고기 먹을 주머니 사정이 되지 못하여 값싼 육회 비빔밥으로 간단하게 점심식사 시간을 가진다.

 

< 정문과 함께 하는 "주막" 집 >

 

< 한우고기를 판매하는 "명품관" 식당 >

 

그러고 나서 오후 관광을 위하여 김제를 떠나 인접하게 있는 익산 방향으로 올라가는데, 익산을 방문하는 이유는 백제 무왕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 전시관을 중심으로 관람하기 위함이다. -오전관광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