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서울)

근.현대 우리민족의 수난과 고통을 간직하고 있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을 방문하면서.

용암2000 2014. 10. 8. 23:16

2014년 10월 3일 (토요일)

 

오늘 서울에서 살고 있는 고향 친구의 자제(子第) 결혼식을 가진다는 초청장에 의거, 아침 일찍 무궁화 열차를 이용하여 서울역 도착 함과 동시에 예식장으로 찾아가 축하 인사를 전하면서 서울에 거주하는 다수의 고향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점심식사 시간을 가진다.

그러고 나서 각자 헤어짐을 가지는데.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표를 다소 늦게 예매하므로 시간적 여유(Gap)가 발생하여 예식장 인접지역에 있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으로 발길을 돌려본다.

지하철을 이용하여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로 나가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들어가자 마자 오른편에 있는 옛 형무소 담장 따라 조금 올라가면 형무소 역사관으로 들어가는 정문이 자리하고 있는데, 입구에 있는 정문 옆 쪽문 안으로 들어가면 입장권을 구입하여야 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 서대문형무소가 있는 "서대문독립공원" >

 

< "서대문형무소" 로 들어가는 긴 담장 >

 

< 작은 쪽문으로 관람이 가능한 "서대문형무소 정문" >

 

특별 행사기간이라서 3.000원의 입장료가 20% 활인(DC)하여 2.400원의 대금 지불과 동시에 검표소 앞으로 가면, 검표원은 좌측편에 여욱사라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지만 그 건물은 제일 나중에 관람하고 먼저 앞에 있는 "역사관(歷史館)" 으로 들어가 관람이 이루어 지도록 친절하게 안내하여 준다.  

이 서대문형무소는 1907년 일제가 자신들의 본격적인 한국 침탈에 저항하는 애국지사들을 투옥하기 위하여 만든 곳으로, 이곳의 처음 이름은 경성감옥이었으나 연이어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 경성형무소,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 등으로 이름을 바뀌었다가 1967년 서울구치소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일제 시대에 독립운동가를 비롯하여 애국시민 및 학생들이 투옥되었으며 광복 후에는 반민족 행위자와 친일 세력들이 대거 수용되었고, 이후 4.19와 5.16 및 군사정권 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시국 사범들이 수감되기도 하였다.

1987년 서울구치소를 경기도 의왕시로 옮길 때 옥사가 모두 15개동 이었으나, 이 가운데 역사성과 보존 가치를 고려하여 제9, 10, 11, 12 옥사와 여옥사, 나병동, 사형장 건물이 원형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1988년 부터 형무소 주변을 공원으로 만들기 시작하여 1992년 부터 "서대문독립공원" 이라고 하였으며, 또한 형무소 자리에는 전인류의 자유 및 평화에 대한 소중 함을 알리기 위하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으로 개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사관 앞에 있는 안내문에는 이곳 서대문형무소는 "근. 현대 우리 민족의 수난과 고통을 상징하였던 형무소 내부 실정을 보존 및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으로써, 일제 강점기에는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고자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던 독립 운동가들이 투옥되었던 장소이다.

아울러 해방 이후에는 군사(軍士)독재 정권기에는 민주화(民主化)를 이루고자 독재 정권에 맞서 싸웠던 민주화 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르고, 희생 당하였던 현장이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조감도 > 

 

이러한 고난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불굴의 의지로 독립과 민주화를 이루어 내었고, 바로 그 저력과 정신이 깃들어 있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대한민국의 독립과 민주를 향한 투쟁의 역사가 담겨 있는 현장이 되므로 나는 불원천리 찾아와 관람하여 본다.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건물 전경 >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뒤 모습 >

 

먼저 역사관 1층 전시관에는 서대문형무소의 변천 과정과 일제의 폭압적인 식민지 운용실태 또는 해방 이후 독재정권의 민주화 인사 탄압 실태를 전시하고, 관련 기록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 "서대문형무소" 변천 과정 > 

 

< "서대문형무소" 역사를 공부하는 관람객 >

 

< "수감자" 들이 싣고 있었던 고무신 >

 

특히 해설사와 함께 하는 많은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하나의 이야기에도 잊지 않기 위하여 다양한 필기도구로 기록하면서 청취하고 있어, 나도 그들 뒤편에 서서 조용하게 경청에 임하여 본다.

 

< "해설" 을 경청하는 관람객 >

 

오늘은 나 혼자 방문하므로 아무런 방해도 발생하지 않고 시간적으로 충분하게 여유가 있어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보는데, 내가 알지도 못한 내용들이 줄줄 설명하고 특히 33인의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상을 새롭게 인지하게 만들어 준다.   

한 Booth와 Booth를 넘어가면서 전시하고 있는 내용과 실제 주인공으로 출연하여 현실과 고문 흔적을 직접 보여주는 영상 기록문, 실제 체험의 장소로 만들어진 고문실 및 옥사, 사형장 등 일목요약하게 전시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일본인들과 얼마나 투쟁하였는지 눈물이 앞을 가린다.  

 

< 수감자들이 사용한 "족쇄" >

 

< 수감자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용한 "요" >

 

끝까지 해설사 뒤 꽁무니 따라 독립의 실상을 상기하면서 또 다른 전시실이 기다리는 역사관 2층으로 올라가니 먼저 민족 저항실 제1관이 대면하는데, 이 전시관에는 대한제국 말기부터 1919년까지 서대문형무소와 관련된 독립운동과 일제의 탄압 실상을 전시하고 있다.

 

<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진 "독립운동가" 사진 >

 

다음에 있는 민족 저항실 제2관으로 들어가면, 이 전시관에는 독립 운동가들의 수감자료인 수형 기록표를 전시하면서 그 때의 실상을 기억하고 되새기는 추모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 "수행자기록표" 을 전시하고 있는 자료실 >

 

제일 안쪽 민족 저항실 제3관으로 넘어가면, 이 전시관에는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 이후부터 1945년 해방까지 서대문형무소와 관련된 독립운동과 사형장 지하 시신 수습장 모형을 전시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서대문형무소 수감 독립운동가 자료를 검색할 수 있게 한다.

 

< "독립운동가 자료" 를 검색하는 코너 >

 

이렇게 하여 역사관 1층과 2층을 관람하고 나서 밑으로 내려오면 안내원이 역사관 지하로 안내하므로 계단을 이용하여 지하에 도착하니 먼저 지하 고문실을 만나는데, 이 지하 고문실은 일제 강점기 보안과 형사(形事)들의 취조실이다.

 

< "지하 고문실" 로 들어가는 입구 > 

 

독립 운동가들의 취조 과정에서 자행되었던 각종 고문의 실상을 밀납 인형으로 전시하고 있고, 생존 독립운동가의 고문 실상과 더불어 육성 증언을 통하여 폭압적인 식민지 통치의 실상을 볼 수 있게 한다.

 

< 지하 고문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수감자" >

 

< 철사 못이 삐죽삐죽 나와 있는 "상자 고문실" >

 

< "지하 독방" 의 출입문 >

 

< 지하 독방에 수감하고 있는 "밀납" 인형 >

 

아울러 그림자 영상 체험실에는 관람객의 얼굴을 그림자 형태로 영상에 투영시켜, 관람객들이 직접 독립운동을 체험하는 특수영상 기법이 만들어져 있어 어린이들이 투영지점에 서서 고문을 당하는 주인공으로 변신하는 체험식을 가진다.

이렇게 역사관 지하실을 관람하고 나서 건물 뒤편으로 나오면 바로 앞에 중앙사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중앙사 건물은 제10, 제11, 제12 옥사와 연결되어 옥사 전체를 감시하고 통제하였던 1920년 대 건물로써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뒤편에 있는 "중앙사" 건물 >

 

몇단의 계단을 이용하여 건물 내부로 올라가면 먼저 만남의 장소가 되는 "간수사무소" 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간수사무소에는 서대문형무소 운영 현황과 더불어 간수들의 근무 모습을 재현 및 전시하고 있다.

 

< 중앙사 건물 내에 있는 "간수사무소" 전경 >

 

< 간수사무소 내에 있는 "전시품" >

 

간수사무소 뒤문으로 나가 복도 반대편 문으로 들아가면 수감자의 수감생활에 필요한 의(衣). 식(食), 주(住)를 보여주고 있는데, 수감 생활에 대한 기록과 수감자들의 수감 태도 및 등급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식기, 의복, 생활 모습도 전시하고 있다. 

 

< 수감자에게 밥을 차등 지급하는 "국자" >

 

< 수감자들이 입었던 "옷" >

 

< 수감자 "생활용품" 을 진열하고 있는 전시실 >

 

이 중앙사 건물을 기준으로 하여 3개의 옥사가 부채 모양의 줄을 형성하면서 펼쳐지고 있는데, 이 옥사에는 독립 운동가들과 민주화 운동가들이 수감되었던 1920년 대 감옥 건물이 원형으로 보존하고 있다.

오른편 제12 옥사 내부에는 좌우로 감방이 나열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3칸의 독방이 배치되어 있으며 독립 운동가들 사이에 암호 통신인 "타법통보법" 또는 감옥 내 "독립만세운동" 등을 재현 및 전시하고 있다.

 

< "제12 옥사" 의 외형 모습 >

 

< "제12 옥사" 의 내부 모습 >

 

< 제12 옥사 내에 있는 "감방 문" >

 

< 벽면을 두두리면서 상호 의사를 연락하는 "타벽통보법" 설명서 >

 

중앙사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제11 옥사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유명 인사들이 감옥에 잡혀온 사연과 함께 발 모양의 족적이 진열하고 있으며, 감방 구조는 Open 형으로 전시하므로 관람객이 직접 감방 안에 들어가 수감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제11 옥사" 의 복도 전경 >

 

< 수감자 "고은" 시인의 옥사 내역 >

 

< "제10 옥사" 출입문 전경 >

 

< "제11 옥사와 제10 옥사" 가 부채살 같이 펼쳐진 건물 외형 >

 

< 중앙사와 연결하지 않고 단독으로 건축되어진 "제9 옥사" >

 

이 옥사 뒤편으로 돌아가면 1920년 대 건립한 건물로 원형으로 보존하고 있는 공작사 건물을 만나는데, 이 공작사는 형무소 내에서 수감자들이 노역(勞役)하였던 모습을 대면하게 한다.

 

< "공작사" 로 들어가는 입구 >

 

< "공작사" 건물의 설명문 >

 

먼저 만나는 노역 영상실에는 일제가 수감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각종 물품과 군수용품을 생산하였던 기록 영상을 상영하고 있으며, 옆에 있는 노역 전시실에는 일제 강점기 형무소에서 이루어진 노역의 종류와 기록 및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 "노역자" 의 노역 강도 >

 

이 공작사 반대편 옆으로 나아가면 형무소 뒤편 높은 담장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건물 한채가 보이는데, 이 건물은 한센병자의 수감자들이 수용한 "한센감옥" 이라서 그런지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 담장 아래 높게 자리하고 있는 "한세감옥" >

 

이 한센 병자들이 수감하는 건물을 자나 왼편으로 조금 더 이동하면 "추모비" 가 자리하고 있는데, 추모비는 작가 임승오씨 2010년 도에 제작한 비로써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순국하신 독립 운동가들의 넋을 기리고 되새기기 위해 조성된 작품으로써 내부에 순국하신 독립 운동가들의 이름이 투영되어 있다.

 

< 사형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추모비" >

 

다시 왼편으로 더 나아가면 담벼락 아래로 사형장과 시구문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사형장 앞에 역사속으로 살아져간 애국지사의 통곡을 하면서 죽음의 길로 갔다는 "통곡의 미루나무" 한 그루가 묵묵히 자리하고 있어 해설사는 이 미루나무에 얽힌 이야기가 한없이 길어진다.

 

< 사형장 앞에 있는 "통곡의 미루나무" >

 

그러고 사형장 건물로 안내하기 위하여 문 앞에서 다시 긴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이 사형장은 사형을 집행하였던 건물로써 1923년 도에 건립하여 보존하고 있으며 인체 공학적인 방법으로 설계가 되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 사형장 앞에서 해설을 경청하는 "관람객" >

 

사형장으로 들어가는 문은 수감자의 저항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형자를 양쪽에서 붙잡고 들어가기 위하여 출입문의 크기가 3명이 동시에 통과할 수 있도록 넓지만, 뒤쪽으로 나가는 출구문은 사형을 당한 사람의 시신을 운반하기 위하여 들 것에 실고 나가므로 한명이 나갈 수 있는 좁은문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 3명 정도가 나란하게 들어갈 수 있는 사형장 "출입문" >

 

< 한명이 겨우 나올 수 있는 사형장 "출구문" >

 

그러고 형장에서 목을 메는 밧줄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이슬로 살아져간 원혼을 위하여 내부에서 절대로 사진을 찍지 말아 달려는 부탁에서 부탁으로 애원하면서 앞으로 길을 인도하지만 해설사가 보이지 않은 사이 꼭 사진을 찍어보는 비신사적인 사람이 나타나므로 가슴 아프게 한다.

 

< "사형장" 내부의 설명서 >

 

사형장 건물 출구문으로 나오면 시구문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시구문은 일본놈들이 독립 운동가를 사형시킨 후 외부에 그 사실을 은폐하고져 시신을 바깥으로 몰래 반출하기 위해 뚫어 놓았던 비밀통로이라고 한다,

 

< 사형장 출구문 뒤편에 있는 "시구문" 내역을 설명하는 해설사 >

 

왜놈들이 퇴각할 때 전세계로 일본인들의 만행이 폭로되는 것을 방지하게 위하여 시구문을 완벽하게 파괴시켰지만, 최근 형무소 뒤편 공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토굴을 발견하면서 시구문을 복원한 곳이라고 한다.

사형장에서 역사관 건물 방향으로 되돌아서 가면 중간 잔디광장에 "격벽장(隔壁場)" 이라는 운동장을 만나는데, 이 격벽장은 수감자들이 운동할 때 수감자 상호간에 대화를 방지하고 감시를 용이하게 만들진 격벽 운동장이라고 한다.

 

< 수감자들에게 운동을 시키는 "격벽장" 전경 >

 

또한 왜놈들은 수감자에게도 인격적으로 관리하면서 매일 운동도 시킨다는 것을 세상 널리 알리기 위하여 다단의 칸막이 격벽을 만들어 각 칸에 수감자들을 분리 수용하여 운동을 시켰던 시설인데, 1920년 대 지어졌다가 1988년 철거되었던 것을 2011년 다시 복원한 장소이다.

 

< 격벽장 내 벽돌로 단절시키고 있는 "벽" >

 

다시 역사관 왼편으로 나아가 입장할 때 관람을 보류하면서 그냥 통과한 "여옥사(女獄舍)" 건물로 들어가 보는데, 여사옥는 일제 강점기 유관순 등 여성 독립 운동가들을 수감하였던 감옥으로 1918년 설치되어 해방 후 1979년까지 사용하다가 철거되었다고 한다.

 

< "여옥사" 의 내역 >

 

이후 1990년 발굴을 통하여 여옥사 터와 지하 공간을 발견하였고 2009년 원설계 도면을 토대로 원형으로 복원하였으며, 2013년 4월 1일 여성 독립 운동가 전시관으로 꾸며 개관하였다.

 

< 여옥사 내부를 관람하고 있는 "어린이와 선생님" >

 

이 밖에 역사관 오른편으로 취사장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취사장 건물은 수감자들의 식사를 위해 밥을 지었던 건물로 1920년 대 지어졌다가 1988년 철거되었던 것을 2010년 복원하였다고 한다.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오른편에 있는 "취사장" 건물 >

 

< 취사장에 사용한 대형 "솥" >

 

현재 내부에는 취사장 복원 당시 발굴하였던 기관실 유구 터와 관련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아울러 서대문형무소에서 개발한 각종 기념품을 전시 및 판매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 취사장 내에 있는 "기념품 판매처" >

 

이 밖에 다수의 공간과 더불어 실내 휴식처가 곳곳에 만들어져 있어 휴식을 가지면서 천천히 관람이 이루면서 머물고 쉽지만 주어진 기차 예매시간으로 서대문형무소를 떠나기로 하는데, 오늘 우리나라 독립과 민주화를 위하여 헌신한 선열에 대한 정신을 다시 한번 더 기억하게 하는 역사관이 된다.

 

< 마지막으로 "종합 해설" 을 하면서 >

 

천천히 역사관을 탈출하여 지하철을 타기 위하여 독립문사거리 방향으로 걸어가니 먼저 현충사(顯忠祠) 건물이 보이고 연이어 "독립문(獨立門)" 에 도착하는데, 독립문 옆에는 독립문을 쓴 "서재필" 선생님의 동상이 독립문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어둠이 내리고 있는 야경으로 빛을 잊고 있다.   

 

< 서대문독립공원 내에 있는 "현충사" >

 

< 독립문사거리에 있는 "독립문" >

 

< 독립문을 지키고 있는 "서재필" 동상 >

 

완전히 어둠이 내리므로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입구로 들어가 전차를 타고 가다가, 종로3가 역에서 환승하여 1호선을 이용하여 서울역에 내려 다시 무궁화 열차를 타기 위하여 역사로 들어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