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서울)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에 자리하고 있는 '효창공원 및 백범김구기념관' 을 돌아보면서.(1)

용암2000 2020. 1. 21. 17:00

 

2020년 1월 19일.(일요일)


1. 효창공원 구경.

내가 어릴 때 각종 스포츠 행사로써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에 있으면서 효창운동장을 품고 있는 효창공원(孝昌公園) 내에 있는 '백범김구기념관 및 효창공원' 을 돌아보기로 한다.

먼저 입구에 있는 정문으로 들어가면 왼편으로 효창운동장이 자리하고 있고, 오른편으로는 효창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삼문이 되는 창열문(彰烈門)이 자리하고 있다.

 

< 정문의 입구 '효창공원 및 백범김구기념관' 을 알리는 입간판 >

 

< 정문의 왼편에 있는 '효창운동장' >

 

< 위에서 내려보는 '효창운동장' 전경 >

 

< 정문에서 오른편 효창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창열문' >

 

창열문을 통과하면 넓은 마당과 함께 정원이 잘 꾸며져 있는데, 마당의 죄측편에는 파랑색의 상징조형물이 우뚝 솟아 있으면서 공원의 가장자리 따라 효창공원을 설명하고 있는 현황판과 더불어 공원의 조감도가 자리하고 있다.

 

< 창열문 내에 있는 '마당' >

 

< 마당의 왼편 파랑색의 '상징조형물' >

 

< '효창공원' 을 나타내는 설명문 >

 

효창공원은 조선 정조대왕의 장남으로 세자로 책봉을 받았지만 5세의 어린 나이로 죽은 문효세자(文孝世子)의 묘원이 자리하면서 '효창원(孝昌園)' 의 기원이 되어졌는데, 문제는 일제의 간교로 사적을 격하시키기 위하여 공원법을 제정하고 효창원을 효창공원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1940년 3월 12일 도시계획상 11번째 시립공원이 되었는데, 문효세자의 묘를 비롯하여 문효세자의 어머니 의빈성씨(宜嬪成氏)· 순종의 후궁 숙의박씨(淑儀朴氏), 숙의박씨의 소생이 되는 영온옹주(永溫翁主)의 묘가 있었으나 1944년 모두 고양시에 있는 서삼릉(西三陵)으로 이장하였다. 

당초 효창공원의 면적은 0.317㎢에 달했으나 효창운동장과 도로 및 숙명여자대학교 부지로 일부가 잠식됨에 따라 0.142㎢로 축소되었는데, 현재 공원 내에는 김구(金九) 선생의 묘와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세 의사의 묘 및 안중근 의사의 가묘(假墓) 등과 더불어 효창어린이공원과 효창운동장이 함께 하고 있다.

1945년 해방 후에는 일본군의 숙영지를 철거하면서 1946년 윤봉길(尹奉吉), 이봉창(李奉昌), 백정기(白貞基) 등 삼의사(三義祠)의 유해 및 이동녕(李東寧), 조성환(曺成煥), 차이석(車利錫) 등의 3인 유해 및 1949년 7월에는 백범 김구의 유해가 이곳 공원 묘역에 안장하였다.

2002년 공원 주변으로 백범김구기념관을 비롯하여 원효대사의 동상, 북한반공투사위령탑, 상징조형물, 어린이놀이터. 체육시설, 자연학습장, 휴식처, 산책로 등을 건립하므로 서울시민들에게 휴식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조감도에 따라 오른편에 있는 변소 건물의 뒤편으로 만들어져 있는 오솔길 따라 능선으로 올라서면 체육공원과 더불어 원효대사(元曉大師) 동상이 서 있는데, 원효대사 동상이 왜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지 의문을 발생하게 한다.

 

< 오른편 능선 위에 자리하고 있는 '원효대사' 동상 >

 

능선 따라 만든 오솔길 따라 왼편으로 넘어가면 자연학습장이 자리하면서 많은 조형물이 함께하고 있고, 계속하여 왼편으로 넘어가면 삼의사(三義祠) 묘역에 도착된다.

 

< 공원 내에 있는 '체육시설' >

 

< 공원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휴식처' >

 

< 공원 내에 자리하고 있는 '태극' 조형물 >

 

삼의사 묘역의 자리는 효창공원의 중앙이면서 문효세자의 묘역이 있었던 자리가 되는데, 현재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의 묘역으로 안장되어 있으면서 제일 왼편으로 가묘가 되는 안중근(安重根) 의사의 묘역도 함께 하고 있다.

 

< 효창공원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삼의사' >

 

< 측면에서 바라보는 '삼의사' >

 

< '삼의사' 로 올라가는 입구의 계단 >

 

< 삼의사 묘역 중 제일 왼편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가묘 >

 

< '삼의사' 를 설명하고 있는 현황판 >

 

삼의사 묘역 앞이 되면서 왼편으로 조금 이동을 하면 의열사(義烈祠) 사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입구에 있는 의열문(義烈門)이 굳게 잠겨져 있어 내부로 들어가 참배는 불가능하여 담장 넘어로 내부를 관람하여 본다.

 

< 의열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의열문' >

 

이곳 의열사는 이동녕, 김구, 차이석, 조성환,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선생의 7위 영정(影幀)을 모신 곳으로 1978년 3월 10일 효창공원 순국선영추모위원회가 발족한 후 임시정부 수립일이 되는 4월 13일을 7위 선열 합동추모제를 매년 봉행한다고 한다.

 

< 7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의열사' >

 

< '의열사' 를 설명하고 있는 현황판 >

 

1988년 11월 정부의 주도로 효창공원 정비공사가 추진되어 1990년 11월 의열사 및 창열문이 건립되었고, 1991년 7월에 7인의 영정을 이곳으로 봉안하였다고 한다.

1989년 6월 8일에는 사적 제330호로 지정되었으며 2018년 8월 16일 국가보훈처는 2019년 3.1 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국가가 관리하는 독립운동기념운동으로 재조성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 의열사 주변에 심겨져 있는 '윤봉길' 무궁화 >

 

< 의열사 주변에 심겨져 있는 '이봉창' 무궁화 >

 

< 의열사 주변에 심겨져 있는 '김구' 무궁화 >

 

< 의열사 주변에 심겨져 있는 '백정기' 무궁화 >

 

< 의열사 주변에 심겨져 있는 '안중근' 무궁화 >

 

의열사 앞에서 담장으로 구획하고 있는 문을 통과하여 밖으로 나오면 백범김구기념관으로 올라가는 도로 아래쪽에 이봉창(李奉昌) 의사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는데, 동상의 모습이 다른 동상과 다르게 수류탄을 투척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다.

 

< 수류탄을 투척하고 있는 '이봉창' 의사 동상 >

 

이봉창 의사 동상 뒤편으로 도로가 2개로 나누어지는데, 왼편 대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백범김구기념관 건물로 들어가는 길이고 직진하여 바로 올라가면 북한반공투사위령탑과 김구선생님의 묘역으로 올라가는 길로 나누어진다.

 

< 왼편 '백범김구기념관' 으로 들어가는 대문 >

 

< 바로 올라가면 만나는 '김구' 묘소 >

 

오른편 길 따라 조금 올라가면 북한반공투사위령탑이 자리하고 있어 먼저 위령탑을 잠시 구경하고 오솔길 따라 왼편으로 이동하여 김구선생님의 묘역을 돌아보기로 한다.

 

< 김구 묘소의 오른편에 있는 '북한반공투사위령탑' >

 

1949년 6월 26일 임시정부 주석 白凡 '金九' 선생이 민족통일의 한을 품고 경교장(京橋莊)에서 흉탄으로 쓰러지자 그해 7월 5일 국민장으로 이곳에 모셔 안장되었는데, 그후 이곳 일대가 독립운동에 앞장선 선열들의 묘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 백범 '김구' 묘소 전경 >

 

< 김구 묘소 앞에 있는 '장명등' >

 

묘역으로 올라가 간단하게 목례로서 예(禮)를 표시하고 주변을 돌아보는데, 이곳 김구선생님 묘역에는 1924년 중국에서 먼저 돌아가신 부인 최준례(崔遵禮) 여사와 1999년 4월 12일에 합장을 하였다고 한다. 

묘역(墓域)에서 내려와 옆으로 만들어져 있는 대문을 통하여 백범김구선생님의 발자취 및 업적(業績)을 기리고 있는 백범김구기념관으로 발길을 옮겨본다.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