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서울)

서울의 중심지 강남구 삼성동에 자리하고 있는 "봉은사" 경내를 거닐어 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용암2000 2017. 4. 16. 20:06

2017년 4월 8일. (토요일)

 

 1. 개요.

지하철 9호선 선정릉역 인접 지역에 있는 한 예식장에서 대학교 동문의 아들이 오후 3시 30분 결혼식을 거행한다는 초대로 대구에서 다소 아침 일찍 무궁화 열차를 이용하여 서울역에 도착 함과 동시에 지하철을 이용하여 선정릉역에 도착하니, 예식시간 보다 다소 많은 여유가 발생하여 2개의 역을 더 통과하여 봉은사역 내린다. 

 

2. 봉은사 경내를 걸어보면서.

옛날에 몇번 방문하여 보았던 봉은사(奉恩寺)를 다시 관람하기 위하여 지하철을 통하여 밖으로 올라가 사찰 입구에 도착하니 주말이라서 그런지 많은 불자와 더불어 관광객 및 외국인들이 움직이므로 다수의 군중들과 함께 봉은사 경내로 들어가면, 왼편의 정원 속에는 한국불교를 중흥시키는데 크게 공헌한 보우선사의 동상이 있고 오른편으로 불교 용품과 더불어 지역 상품을 판매하는 여여(如如)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 "봉은사" 입구에 있는 출입문 >

 

              < 봉은사 출입문 뒤편에 있는 "보우선사" 동상 >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제1교구에 속하면서 우리나라 선종(禪宗)의 대표적 사찰이 되는 봉은사는 서울의 중심지 강남구 삼성동에 자리하고 있는 약 1.2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천년고찰인데, 신라 원성왕 10년(794년) 연회국사(緣會國師)가 견성사(見性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으며 연산군 4년(1498년)에 정현왕후가 성종의 능(陵)인 선릉을 위해 이 절을 중창하고 봉은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명종 17년(1562년) 보우선사가 중종의 능인 정릉을 선릉의 곁으로 옮기고 이 절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임진왜란 및 병자호란 때 소실된 것을 숙종 때 중건하였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수하였는데, 1912년에 31본산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1939년 화재로 주요 전각들이 소실된 것을 1941년 다시 증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라 말에 창건한 봉은사는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불교를 탄압하였던 조선시대의 불교 명맥을 유지하기 위하여 애쓰신 보우스님의 원력으로 불교 중흥의 주춧돌이 되었다.

현재 코엑스 자리가 되는 승과평에서 스님을 선발하는 승과고시를 실시해 한국불교의 선맥을 이은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등 거출한 스님들을 배출하였으며, 조선 후기에는 영기스님 께서 판전을 세우고 화엄경 81권을 판각하여 판전에 봉안하면서 판전의 현판을 추사체로 유명한 김정희(金正喜)선생님의 절필하였다고 한다.

꽃으로 장식되어 있는 경사면의 길 따라 조금 올라가면 봉은사의 첫 관문이 되는 진여문에 도착하면서 진여문의 전면에는 "봉은사(奉恩寺)" 라는 현판이 붙어있고 문을 통과하여 내부에서 바라보면 "진여문(眞如門)"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데, 진여(眞如)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뜻하며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절대의 진리에 이른다는 뜻을 가진다고 한다.

 

                < 봉은사의 첫 관문이 되는 "진여문" >

 

                       < 문의 뒤편 처마에 붙어있는 "진여문" 현판 >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찰에 있어 사천왕문(四天王門)에는 험상굳은 사천왕이 자리하고 있지만 이곳 봉은사에서는 진여문에 사천왕을 모시고 있는 것이 또 다른 특색이 되는데, 문제는 이곳 봉은사에서 모시고 있는 사천왕은 유리벽 속이 안치하면서 그 모습이 너무나 인자하게 생겨서 보면 볼수록 미소를 머금게 한다.

 

                  < 진여문의 좌측에 있는 "사천왕" >

 

            < 진여문의 우측에 있는 "사천왕" >

 

진여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계속하여 올라가면 다음 달 초순에 찾아오는 사월초파일을 기념하기 위한 수 많은 연등을 장식하고 있는데, 연등이 마치 꽃의 터널을 형성하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으면서 어느 축제장 마당에 도착한 기분을 일어나게 만든다.

 

             < 진여문을 통과하면 만나는 "연등" >

 

수 많은 연등 아래에 있는 통로 좌측에는 아름다운 정원과 더불어 실개천을 만들어 놓아 실개천 따라 맑은 물이 흘려 내리면서 작은 연못을 형성하는데, 이 작은 연못에는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는 금붕어들이 노닐고 있고 통로의 우측 측대 위로는 크고 작은 여러가지의 모양을 하고 있는 부도탑 군락지가 자리하고 있다. 

 

                  < 통로 좌측으로 물이 흘려 내리는 "실개천" >

 

        < 실개천의 끝지점에 있는 "연못" >

 

                   < 통로의 오른편 축대 위에 있는 "부도탑" >

 

이렇게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는 통로의 끝지점에 거대한 법왕루(法王樓) 라는 누각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법왕루는 문자 그대로 "법의 왕" 이 되는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말하며 대웅전과 마주보고 있는 누각으로써 사시사철 예불을 올리는 장소로 이용하고 있으면서 3.300분의 관세음보살 원불이 모셔져 있다.

 

               < 진여문 뒤편에 있는 "법왕루" >

 

이 법왕루를 통과하면 일단의 축대 위로 넓은 마당에 도착하면서 넓은 마당의 중앙에는 3층석탑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좌측에는 심검당(尋劒堂) 건물이 있고, 오른편에는 선불당(禪佛堂)이 자리하고 있다.

선불당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수행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으면서 건물은 팔작지붕으로 전후좌우 각 모서리에 작은 합각(合閣)을 두어 양쪽 측면과 함께 6개의 합각이 보이는 특이한 건축물이 된다.

 

            < 대웅전 앞 마당에 있는 "3층석탑" >

 

              < 대웅전 앞 마당 오른편에 있는 "선불당" >

 

                      < 대웅전 앞 마당에서 바라보는 "선불당" >

 

이 넓은 마당에도 연등으로 인하여 주변 건물을 잘 볼 수 없도록 많은 연등을 장식하고 있는 일단의 축대 위로 1982년에 건립한 대웅전(大雄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대웅전 건물의 처마에 붙어있는 현판이 추사(秋史) 김정희 선생님의 글씨이라고 하나 나의 편견으로는 정말 난이하게 쓴 글씨가 된다 . 

 

                      <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 전경 >

                            <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대웅전" 글씨 >

 

여기 봉은사의 대웅전도 일반 사찰과 차별나게 내부에는 2층의 닫집을 짓고 목조로 만든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 협신불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는데, 이 목조 석가여래삼불좌상은 보물 제1819호로 지정되어 있으면서 많은 불자들이 그 앞에서 기도 정진하고 있다.

 

             < 대웅전 경내에 모시고 있는 "목조 삼존불" >

 

대웅전 건물 오른편으로 조금 이동하면 지장전(地藏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지장전 내에 주불로 모시고 있는 지장보살은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면서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이 모두 구제될 때 까지 지옥에서 함께 남아 극락왕생 하도록 기원하는 부처님이라 하겠다.

 

                    < 대웅전의 오른편 있는 "지장전" >

 

대웅전과 지장전 사이에 있는 높은 계단을 이용하여 뒤편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전각이 되는 영산전(靈山殿)이 자리하고 있는데, 영산전에는 석가모니를 주불로 하면서 좌우 부처님으로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모시고 있으면서 존자의 양쪽 옆으로 16 나한도와 더불어 산중탱화 등 불화가 자리하고 있다.

 

                 < 높은 돌계단 위에 있는 "영산전" >

 

영산전에서 좌측으로 조금 이동하면 다른 사찰에서 보기 어려운 북극보전(北極寶殿)이 자리하고 있는데, 북극보전에는 영산전과 함께 1942년에 중건한 건물로써 산신(山神)이 되는 칠성와 독성 등을 모시고 있는 전각으로 일반적인 사찰에서는 삼성각(三聖閣) 또는 칠성각(七星閣)으로 불려지면서 불교가 자연적으로 민간 신앙과의 접목 되어짐을 보여주는 건물이라 하겠다.

 

                    < 영산전 좌측에 있는 "북극보전" >

 

북극보전에서 다시 왼편으로 조금 내려가면 영각(影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영각 내에는 지장삼존불상과 더불어 탱화가 있으며 벽면에는 봉은사를 창건한 연회국사를 비롯하여 조선 불교를 중흥한 보우선사, 서산대사, 사명대사, 영기율사, 영암스님의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오른쪽 벽면에는 영단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 아름다운 꽃 속에 자리하고 있는 "영각" >

 

영각 건물의 좌측으로 조금 더 이동하면 주차장에서 바로 올라오는 또 다른 계단이 되는 곳에 2층 건물이 되는 미륵전(彌勒殿)과 더불어 미륵대불(彌勒大佛)이 자리하고 있는데, 미륵대불은 1986년 영암스님 께서 발원하여 봉은사 사부대중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1만명 이상이 불사에 동참하여 10년 간에 걸쳐 이루어진 대작불사(大作佛事)이라고 한다.

 

                       < 미륵대불 앞에 있는 "미륵전" >

 

1996년에 완공한 미륵대불은 높이가 23m로 국내 최대 크기의 부처님이 되고, 현재 미륵전과 미륵대불 사이에 있는 넓은 광장에서는 많은 신도들의 기도처가 되지만 때로는 이곳에서 법회 및 수련회 등 문화 행사장으로도 사용하므로 다양한 용도를 가진 공간이라 하겠다.

 

                    < 국내 최대의 높이를 가지는 "미륵대불" >

 

미륵대불에서 다시 왼편으로 이동하면 또 다른 전각이 되는 판전(板殿)이 자리하고 있는데, 판전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으면서 1855년 남호 영기율사와 추사 김정희 선생이 뜻을 모아 판각한 화엄경 소초 81권을 안치하기 위하여 지어진 전각으로 후에 다시 유마경 등 불경을 더 판각하여 현재 3.438점의 판본을 보관하고 있으면서 봉은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한다.

 

             < 화엄경 등 판각을 모시고 있는 "판전" >
 

판전에 붙어있는 현판은 추사 김정희 선생님이 철종 3년(1852년)에 북청의 유배지에서 풀려나 과천에 있는 과지초당에 머물면서 그곳에서 종종 봉은사 왕래하다가 철종 7년(1856년) 10월 10일에 별세를 하는데, 여기에 있는 가로 181Cm에 세로 77Cm의 현판은 그가 별세하기 3일전에 썻다고 전하고 있다.

 

               < 추사 김정희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쓴 "판전" 글씨 >

 

               < 판전 앞으로 펼쳐지는 "봉은사" 전경 >

 

이 판전의 뒤편으로 판전을 기록한 내용에 대한 안내문과 더불어 흥선대원군의 불망비(不忘碑)를 새긴 비각 건물과 더불어 다수의 석등이 자리하고 있고, 그 옆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따라 조금 올라가면 봉은사 수련원으로 들어가는 문이 자리하고 있지만 문의 입구에 출일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으로 발길을 돌린다.

 

            < "판전" 의 현판을 쓴 내역에 대한 안내문 >

 

            < 흥선대원군의 "불망비" 를 보관하고 있는 비각 및 추사의 기념탑 >

 

                     < 비각 뒤편에 있는 "석등" >

 

               < 봉은사 "수련원" 으로 들어가는 문 >

 

                    < "수련원" 내부에 있는 정원 >

 

다시 판전 앞으로 내려오면 보우당 건물 및 샘물이 흘려내리고 있는 우물과 더불어 종각, 종루(鐘樓) 건물 등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그 앞으로 샘에서 흘려내리는 물을 가두어서 만들어져 있는 다소 큰 연못 속에 해수관음보살이 자리하고 있는데, 관음보살의 손에는 감로수 병을 들고 있으면서 보관에는 아미타불이 새겨져 있다.

 

                 < 판전과 미륵전 앞에 있는 "우물" >

 

            < 미륵전 앞에 있는 "종각" >

 

              < 우물 옆에 있는 "종루" >

                 < 종루 앞에 있는 "해수관음보살" >

 

이 밖에 경내는 보우당, 공양실, 전통다실 다래헌, 불이문, 화장실, 대형 주차장, 다양한 조각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고, 특히 사찰의 전면에는 켄벤션 센터가 되는 코엑스, 코엑스 몰, 아셈타워, 고급 호텔, 고층 빌등 등 건물과 상호 조화를 이루고 있으므로 도심 불교를 접하기 위하여 많은 외국인들이 찾아오는사찰이 된다.     

 

                  < 사찰 음식을 제공하는 공양실" >

 

                       < 차를 판매하는 "다래원" >

 

                    < 법왕루 앞에서 수련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불이문" >

 

                     < 경내에 만들어져 있는 "조각품" >

 

                  < 선불당 앞에 있는 "화장실" >

 

                                  < 봉은사 경내에 있는 "대형 주차장" >

 

                                < 봉은사 경내에 있는 "정원과 꽃" >

 

                       < 봉은사 앞으로 펼쳐지는 "빌딩" 숲 >

 

더불어 경내에는 많은 공사를 하고 있어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데, 이렇게 많은 공사를 하고 있는 이유는 오랜 세월 동안 산중 사찰에서 내려오고 있는 전통의 불교문화를 도심 속에서 자리하고 있는 봉은사를 통하여 그 문화를 전달하는 가교적(架橋的) 역활을 하기 위하여 대대적으로 공사를 통하여 거듭나기 위함이라고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