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 문화와 산행.

강원도 춘천시에 있으면서 소양호를 내려보고 있는 "오봉산" 과 더불어 "청평사" 관람.

용암2000 2015. 3. 28. 01:06

2015년 3월 22일.(일요일)

 

금수강산에 봄이 찾아 왔지만 진정한 봄 같이 않다는 뜻을 가진 "춘래춘 불사춘(春來春 不似春)" 이라는 계절에 꽃들도 꽃샘 추위로 인하여 정신을 혼미하고 있는 춘 3월 말, 모든 사람들은 봄과 꽃을 찾아 섬진강 매화마을로 달려가고 있는 것과 반대로 나는 마지막 겨울의 끝자락을 잡고 몸부림 치고 있는 강원도 춘천시를 품고있는 "오봉산(五峰山)" 산행을 위하여 길을 나선다.

평소와 같이 드림산악회에서 운행하는 장거리 버스에 승차하기 위하여 아침 6시 10분 까지 동아쇼핑 앞으로 나아가니, 전라남도의 관광명소 광양 매화축제와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를 구경하기 위한 여행사 버스가 구름 같이 몰려들므로 춘천행 버스 타기가 하늘에 별 따기 정도로 난이하게 만든다.

우여곡절을 꺽으면서 버스에 승차하니 나의 생각과 같이 겨울 끝자락의 의미를 느끼기 위한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춘천시를 감쌓고 있는 오봉산 풍경이 너무나 좋아서 그런지, 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산행을 즐기기 위하여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안동휴게소로 들어가 간단한 아침식사와 더불어 휴식을 취하고 나서 또 다시 북으로 달려 가다가 춘천시 인접지역에 있는 홍천강휴게소로 들어가 마지막 휴식시간을 가지는데, 강원도 지역에는 극심한 가뭄으로 휴게소 앞으로 흐르고 있는 홍천강 바닥에는 아주 적은 물이 흘려가고 있다.

 

< 중앙고속도로 끝지점에 있는 "홍천강휴게소" >

 

< 적은 물이 흐르고 있는 "홍천강" >

 

다시 버스는 작은 고개를 넘으면서 춘천 Toll gate를 통과하여 오봉산 산행의 들머리가 되는 해발 600m 배후령 고개에 10시 30분 도착하면서 Guide는 오늘 일정을 간단하게 설명하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 장거리 운전에 대한 보답으로 총 5시간의 산행시간을 부여하므로 즐기는 산행이 되어지기를 기원한다고 한다.

 

< 오봉산 산행 들머리가 되는 "배후령" 고개 >

 

오늘 산행을 기획하는 오봉산 높이가 해발 779m가 되는 다소 높은 산에 속하지만 배후령의 고도로 인하여 올라가는 높이가 180m 정도 되는 매우 낮은 산으로 동네 뒤산에 오르는 기분으로 천천히 올라가도 1시간 30분 이내면 족하다고 한다.

아울러 산행의 날머리가 되는 청평사 앞 주차장 까지 걷는 코스가 약 7Km 정도의 매우 짧은 거리가 되어지는데, 오늘 걷는 오봉산 구간은 매우 아기자기한 암릉구간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한 역사적인 설화가 많이 있는 "청평사(淸平寺)" 를 경유하므로  고루고루 관람하면서 즐기는 테마여행을 겸하자고 한다,

 

< "오봉산" 산행길을 나타내고 있는 조감도 >

 

특히 오봉산에는 5개의 봉우리로 형성되어 있지만 각 봉우리 마다 뚜렸한 봉우리가 나타나지 않고, 거의 완만한 봉우리가 연속적으로 7-8개를 만나므로 정확하게 봉우리를 선정하기가 난이하면서 또한 지방자치단체에서 표시석도 만들어 놓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오봉산에도 천년 고찰이 되는 청평사를 품고 있다 보니, 각 봉우리 마다 불교의 영향으로 받아 제1봉은 나한봉, 제2봉은 관음봉, 제3봉은 문수봉, 제4봉은 보현봉, 마지막이 되는 제5봉은 비로봉이라는 불교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봉우리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산 종료시간을 오후 3시 30분으로 정하고 나서 산행의 들머리로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산행의 초입에서 부터 약 300m 정도 매우 급경사의 오르막 길이 되므로 벌써 제일 뒤편에 서서 고도를 상승하고 있으니 내가 제일 고령으로 처음 대면하는 Guide 눈빛이 걱정으로 충만하게 만든다.

 

< 급경사의 들머리가 되는 "초입 길" > 

 

이젠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조용하게 살다가 살아지는 것이 상책인데, 괜스럽게 잠도 자지않고 새벽 부터 부산을 떨면서 암릉 산행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고 생각하니 후회 막급의 시간이 주마등 같이 지나간다.

어찌하던 버스는 산행의 날머리가 되는 청평사 주차장으로 달려가 버리므로 죽을 힘으로 고도를 상승하고 있으니, 많은 산악회에서 리본을 붙어놓은 전시물을 만나면서 다소 눈에 익숙한 리본 한개에 시선이 집중하게 한다.

 

< 오봉산 산행 들머리에 있는 "산악회 리본" >

 

이 산악회는 대구에 있는 산악회로 5-6 년 전 오봉산 산행과 더불어 진달래 꽃을 구경하기 위하여 새벽을 깨우면서 달려 왔지만, 그날 아침 다소의 많은 비가 내리므로 산행이 가능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입구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춘천시에서 관할하는 산불감시초소 아저씨들이 아무리 불원천리를 찾아와도 5월 15일 까지 죽어도 입산이 불가능 하다고 하여 인접하게 있는 삼악산으로 발길을 돌린 기억이 아련하게 떠 오르는데, 오늘은 청명한 하늘과 다소 많은 바람이 불고 있었도 입산통제를 하지 않고 있어 춘천의 공무원에게 무슨 변고가 일어난 것은 아니지 모르겠다.     

한 20여 분 정도 고도를 상승하니 오봉산의 능선에 도착하여 지는데, 능선의 정점에서 Guide가 기다리고 있다가 이제 부터 평지와 같은 산행 길이 되어지지만 아직도 곳곳에 빙판이 숨어 있으므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천천히 산행을 즐기라는 이야기를 남기고 꽁지가 빠지도록 달려가 버린다.

 

< 급경사의 끝지점에 있는 '3거리 이정표" >. 

 

이 능선의 3거리에서 오른편으로는 해발 794m 경운산이 있다는 안내 표시와 함께 왼편으로 오봉산으로 올라간다는 이정표를 보면서 왼편으로 천천히 고도를 상승하면 거대한 바위가 있는 아담한 봉우리에 도착하여 지는데, 아마 여기가 오백 나한들이 살고 있는 제1봉 "나한봉(羅漢峰)" 이 되어지는 것 같다.

 

< 오봉산의 제1봉이 되는 "나한봉" 정점 >

 

                         < 옛길이 되면서 "배후령" 으로 올라오는 후면 길 >

 

다시 몇 번의 능선을 오르내림을 반복하여 앞으로 전진하면 나의 덩치로 도저히 빠져 나가기가 어려운 폭이 좁은 출렁다리 하나를 건너가서 계속적으로 앞으로 전진하면 또 다는 거대한 바위를 만나는데, 그 바위 뒤편에 늘씬한 소나무 한 그루가 오봉산 수목을 대표하는 듯 자랑스럽게 서 있다.

 

< 한국에서 제일 좁은 폭을 가지고 있는 "출렁다리" >

 

< 숲속으로 보이고 있는 "오봉산" 능선 전경 > 

 

여기에서 조금 더 앞으로 전진하면 작은 봉우리 한개를 만나는데, 이 봉우리가 불교에서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관세음보살이 살고 있는 오봉산의 제2봉이 되는 "관음봉(觀音峰)" 인가 보다.

 

< 거대한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제2봉 "관음봉" > 

 

제2봉에서 다시 몇 번의 오르내막길로 걸어가면 암릉구간을 만나기 시작하는데, 안전 Rope를 의존하면서 지처 맥이 빠지도록 로프에 매달려 상승하면 설한풍이 불고 있는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이마에 땀방울이 송곳송곳 솟아나기 시작한다.

 

< 제3봉으로 올라가는 "암릉구간" >

 

< Rope를 의존하면서 "암릉구간" 을 올리가는 등산객 >

 

다시 암릉구간을 통과하면서 고도를 상승하면 우뚝솟아 있는 한기의 바위를 만나는데, 이 바위가 오봉산의 제3봉이 되는 봉우리로써 불교에서 지헤의 상징을 가지면서 언제나 부처님과 함께 하시는 문수보살 이름을 따서 "문수봉(文殊峰)" 이라고 한다.  

 

< 오봉산 중 제3봉 문수봉이 되는 "청솔바위" >

 

이 문수봉 정상에는 낙낙장송이 되는 소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이 소나무를 키우는 바위는 고귀한 자태를 나타내면서 오봉산에서 유일하게 "청솔바위" 라는 성명이 붙어있는 귀중한 바위가 되어진다.

 

< "이름표" 가 붙어있는 청솔바위 >

 

또 다시 고도를 상승하여 올라가면 아름다운 소나무 한그루를 만나는데, 이 소나무 아래에 산을 사랑하다가 자연으로 돌아간 한 산악인의 추모비가 설한풍의 바람 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산을 오르고 있는 산악인들의 안전을 보호하고 있는듯 말 없이 2개의 날개가 허공으로 활짝펴고 있다.

 

< 산행인의 "추모비" 와 함께 하고 있는 소나무 >

 

다시 몇 번의 Rope와 암릉구간을 통과하면 거의 정상과 비슷한 제4봉 봉우리를 통과하게 되는데, 이 봉우리가 불교에서 부처님의 오른편에 서서 이덕(理德)과 정덕(定德) 및 행덕(行德)을 담당하고 있는 보현보살 이름을 이용한 "보현봉(普賢峰)" 이 되어진다.

 

< 제4봉이 되는 "보현봉" 으로 올라가는 길 > 

 

< 계속하여 암릉구간을 올라가는 "산행인" >

 

제4봉에서 조금 더 앞으로 전진하면 오늘의 산행의 정점이 되는 제5봉 봉우리에 도착하여 지는데, 이 봉우리에는 불교에서 서방정토를 관장하고 있는 비로자나불 부처님의 이름을 따서 "비로봉(毘盧峰)" 이 되면서 정상에는 해발 779m "오봉산(五峰山)" 이라는 정상석이 자리하고 있다.

 

< 마지막 정상으로 올라가는 "암릉구간" >

 

< 해발 779m "오봉산" 정상석 >

 

이곳 오봉산은 서울을 비롯하여 수도권 지역에 속하는 한국 100대 명산에 들어가는 산이다 보니 많은 등산객들이 움직이고 있어,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촬영하기가 너무나 어려워 많은 기다림을 가짐 후 겨우 나의 차례가 돌아오므로 함께 걷고 있는 일행에게 부탁하여 기념사진을 남긴다.

 

< "오봉산 정상석" 을 배경으로 >

 

불어오는 바람으로 정상에 머뭄이 어려워 이내 하산길로 접어 들어 한 50m 정도 내려가면 3거리 이정표를 만나는데, 직진으로 내려가면 오늘 산행의 종점이 되는 청평사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왼편에는 오봉산으로 올라오는 제일 지름길이 되는 배치고개와 더불어 오봉산 종주코스가 되는 부용산으로 넘어가는 길이라는 이정표가 붙어있다.

 

< "부용산과 청평사" 로 갈려지는 3거리 이정표 >

 

3거리에서 울창한 소나무들이 도열하고 있는 청평사 방향으로 한 20분 정도 내려가면 거대한 홈통바위가 나타나는데, 이 홈통바위에서는 작은 구멍 속으로 한 사람씩 통과하여야 하므로 올라오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으로 인하여 매우 혼잡한 길이 되어진다.

 

< 하산 길에서 만나는 "소나무" 길 >

 

< "홈통바위" 로 들어가기 위하여 기다리는 산행인 >

 

특히 나와 같이 덩치가 큰 사람에게는 배냥을 메고 통과 하기에 다소 난이하여 배낭을 앞으로 하고서 씨름하여 겨우 통과하여 밖으로 내려오니 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만약 돌발적인 악천후가 발생한다면 매우 위험한 장소가 되어진다.

 

< "홈통바위" 빠져 나오는 여인 > 

 

이 홈통바위를 통과하여 조금 더 내려가면 청평사로 내려가는 2개의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오른편 계단으로 내려가는 길은 적멸보궁 터와 해탈문이 있는 다소 안전한 길이 되어지고 직진으로 올라가는 길은 "천단(天壇)" 이라는 암릉구간을 넘어가는 매우 난이한 길이라고 한다.

 

< "청평사" 로 내려가는 2가지 방법을 가르키는 이정표 >

 

대부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안전한 길을 선택하여 해탈문 방향으로 하산을 하고 있는데, 나는 3거리 이정표 아래에 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장고의 시간과 함께 고민의 시간에 빠진다.

새벽부터 불원천리 찾아와 이곳 오봉산에서 최고의 절경을 가지고 있다는 암릉구간을 포기 하기에는 너무나 억울함이 발생하여 기다리고 기다리고 있으니, 한무리의 아주머니 부대가 천단 방향으로 선택하므로 무조건 그녀들 뒤편으로 따라 가기로 한다.

Rope를 이용하여 악간의 능선으로 올라서니 주변 조망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다소 급경사의 내막길로 이어지는데, 여기에서 부터 바위를 타고 넘어가야 하는 험준한 길이 되어지므로 한 순간의 방심에도 큰 사고로 이어지는 길이 되어진다.

 

< 계속하여 내려가는 "암릉구간" >

 

능선에 도열하고 있는 바위를 오르 내리면서 조금 하산하여 가면 "소요대(逍遙臺)" 라는 거대한 바위가 자리하면서 바위 뒤편에는 거대한 소나무 한그루가 고고한 자태를 나타내고 있는데,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이 소나무의 가지에 올라가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어 나에게도 또 다시 아쉬운 부탁을 하여 본다.

 

< 소요대 주변에 있는 죽은 "소나무" >

 

< "소요대" 를 지키고 있는 소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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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대에 있는 설명문에 따르면 서종화 씨의 청평산기(淸平山記)에 "산기슭의 머리 부위가 잘려져서 대(臺)가 되었는데, 그 위에 4-5명이 앉을 만 하다. 대 아래에는 깍아지듯 절벽이 있다" 라고 기술하고 있으며 또한 소요대에 대하여 여러가지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하며 특히 조선 전기의 보우스님이 노래한 유명한 시가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소요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뒤편으로는 조금 전에 지나온 홈통바위을 통과 할려고 많은 등산객들이 보이고 있으며 고개를 약간 오른편으로 이동하면 청펑사로 들어오는 유일한 길이 되는 배치고개로 올라가는 도로가 뱀과 같이 휘감고 있다.

 

< 소요대에서 바라보는 "배치고개와 부용산" 전경 > 

 

전면으로 바라보면 발 아래에는 청평사의 천년 고찰이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고개를 들어 멀리 바라보면 소양호가 아련하게 보이고 있는데, 호수의 물이 산 구석구석을 파고 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고 있다.

 

< 소나무 가지 사이에서 바라보는 "청평사" >

 

< 소요대에서 내려보는 "소양호" 전경 >

 

한참 풍경에 도취하면서 산행의 묘미를 즐기고 있는데, 함께 걷고 있는 일행들이 여기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가자는 의견으로 다소 바람이 불지 않고 있는 양지바른 장소를 찾아서 간단하게 점심식사 시간을 가져본다.

다소 많이 주어진 산행 시간으로 느린 점심식사와 더불어 커피까지 마셔보는 여유를 가지면서 산행을 즐겨보는데, 아직도 오봉산의 유명한 진달래꽃이 피지 않은 계절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산행을 즐기고 있어 진달래꽃이 피는 계절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지 상상이 되지 않은 산이다.

다시 하산길로 내려가는데 암릉구간 따라 조금더 내려서면 거대한 바위 위로 뽀족한 촛대바위 형태의 "천단(天壇)" 바위를 만나는데, 옛날 이 천단 바위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린 장소이라고 한다.

 

< 옛 조상들이 제사를 올린 "천단" >

 

< 하산길에서 뒤돌아 보는 "천단" 전경 >

 

이 천단 바위를 지나면서 부터 정말로 급경사의 암릉구간이 나타나는데, 앞에서 내려가는 몇 명의 아주머니들이 못 내려간다는 고집으로 정채가 발생하여져 다소의 기다림을 가지게 한다.

 

< "암릉구간" 으로 내려 가기를 주저하는 여성 >

 

우여곡절 끝에 순서를 바꾸어서 바위를 타고 내려가는데, 지방자치단체에서 양 다리 사이로 Rope를 끼면서 암벽등반을 하도록 만들어져 있고 발을 디딜 경사면에서는 적당한 간격으로 홈을 파 놓고 있어 발의 간격 조정과 팔의 힘이 있다면 그렇게 위험한 구간은 아니면서 스릴 만점이 등산이 되어진다.

 

< "암벽등산" 을 추진하고 있는 여성 >

 

< 암벽구간에서 바라보는 "청평사" 전경 >

 

한 Rope 구간을 지나면 또 다른 Rope 구간이 나타나면서 연속적으로 긴장 속에서 한단계 한단계 Rope 구간을 내려서면, 이윽고 청평사 경내의 뒤마당에 도착하면서 오늘의 산행은 끝이나고 이제 부터는 명품의 답사 여행지가 되어진다.

 

< 연속적으로 "암릉구간" 을 내려오면서 >

 

< 암릉구간 끝지점에서 바라보는 "청평사" >

 

청평사(淸平寺)는 고려 광종 24년(973년)에 영현선사 님이 창건한 사찰로 조선 명종 때 보우선사가 중건하여 대사찰이 되었는데, 한국동란 때 거의 소실되었으나 1970년 대 전각을 새롭게 짖고 회전문을 보수하여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청평사는 소양강 댐이 건설하고 나서 부터 소양호 댐 선착장에서 유람선으로 한 15분 거리에 있는 섬 속의 사찰이 되면서 부터 유명하기 시작하였는데, 수도권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은 춘천행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와서 호수를 구경하면서 배를 타고 사찰을 방문할 수 있는 다양한 교통 편으로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정평이 나 있는 사찰이 된다.    

청평사 뒤면으로 내려가면 먼저 500년의 수령을 가진 주목나무 한그루가 청평사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으며 경내의 제일 뒤편에 "극락보전(極樂寶殿)" 이 자리하고 있는데, 건물 내에는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관장하고 있는 아미타여래불과 함께 3명의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 청평사 경내 후면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수령 500년 "주목나무" >

 

< 청평사  제일 후미에 있는 "극락보전" >

 

< 극락보전 내부에 모시고 있는 "부처님" >

 

극락보전 오른편 한 축대 위로 삼성각(三聖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삼성각 건물 오른편 한단의 축대 아래에는 거대한 거북이 등에 비석 한기가 세워져 있는데, 이 비석에는 청평사를 새롭게 건립한 법당 중창 불사 공덕비가 되어진다고 한다.

 

< 극락보전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는 "삼성각" >

 

< 삼성각 오르편 구석에 있는 청평사 "법당 중창 공덕비" >

 

이 극락보전 앞으로 내려가면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대웅전 건물 전면에는 회전문을 보관하고 있는 화랑으로 구획하고 있는 복도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오른편에는 관음전 건물과 왼편으로는 나한전 건물로 인하여 대웅전 건물에는 바람 한점 들어올 수 없는 완전한 튼 "ㅁ" 형태의 건물이 배치하고 있다.

 

< 사찰의 중심에서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 >

 

< 대웅전 건물 앞에 있는 "화랑" >

 

< 화랑의 2층에 있는 "복도" 전경 >

 

 

< 대웅전 앞 왼편에 있는 "관음전" >

 

< 대웅전 앞 오른편에 있는 "나한전" >

 

다시 한단의 계단을 내려서면 화랑의 전면 건물에 도착하여 하면서 건물 전면에 "경실루( 慶實樓)" 라는 현판이 붙어있는데, 화랑에는 회전문이 되는 윤장대(輪藏臺)가 설치되어 있다고 하나 현재 회전문을 보수하기 위해서 그런지 빈공간으로 남아있다.

 

<청펑사 제일 앞에 있는 "화랑" 건물 >

 

< 전면 화랑 건물에 붙어있는 "경실루" 현판 >

 

또한 화랑의 오른편 측면에는 범종각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왼편으로는 야산 언저리의 바위 아래에 조그마한 연못에 작은 항아리를 넣어 관광객들이 동전을 던지면서 축원하는 장소가 만들어져 있어, 많은 연인들이 동전을 아끼지 않고 있다.

 

< 사찰의 제일 앞 오른편에 있는 "범종각" >

 

< 사찰 입구 왼편에 동전으로 점을 쳐보는 "우물" >

 

이 밖에 화랑으로 내려서면 넓은 마당과 함께 선물을 판매하는 상점과 더불어 상점 앞에는 청평사를 중수하는데 많은 공을 세운 탄연스님 이신 이자현을 기리는 문수원비의 요약문을 기술하고 있는 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많은 요사채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 다소 짜임새를 갖추고 있는 사찰이라 하겠다.

 

< 사찰 입구 왼편 "탄연스님" 의 기록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 사찰 마당에 있는 수령 250년 "은행나무" >

 

< 경내 왼편 구석에 있는 "요사채" 건물 >

 

사찰 앞으로 오봉산 정상에서 발원하여 만들어진 성동계곡에는 맑은 물이 흘려내리고 있으면서 계곡을 형상하고 있는 암반 경사면에 흘려내리는 아담한 웅덩이가 많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웅덩이 중 하나가 "공주탕" 이라고 한다.

 

< 사찰 앞에 있는 "공주탕" >

 

공주탕에는 공주의 설화가 내려오고 있는데, 중국 당나라 태종의 딸이 되는 "평양공주" 가 상사뱀을 구송폭포 아래에서 떨어내고 나서 사찰로 올라와 인간 세상에 물든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스님의 옷을 만들어 가사불사를 한 공덕으로 상사뱀이 윤회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는 목욕탕이다.

 

< 다시 바라보는 청평사 뒤편 "암릉구간" 을 감상하면서 >

 

이렇게 하여 사찰 주변에 있는 문화재를 포함하여 다양한 풍경을 구경하고 나서 경내를 벗어나 조금 내려가면 "영지(影池)" 라는 연못을 만나는데, 이 연못은 고려시대 청평사를 중창한 이자현 스님이 만든 인공 연못이다.

이 연못이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만든 인공 연못이 되어지는데, 연못 앞에 있는 바위 상면에 조선시대 신동으로 태어난 김시습 선생님의 "오도송(悟道頌)" 이라는 한시 한수가 새겨져 있다.

 

< 한국 최초의 인공 연못이 되는 "영지" >

 

< "김시습" 선생님의 오도송 한시가 새겨져 있는 바위 > 

 

이 영지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한개의 울타리로 구획하고 있는 부도탑을 만나는데, 여기에 모시고 있는 부도탑에는 고려시대 청펑사를 크게 중수한 이자현 스님의 유골을 모신 부도탑으로 이자현이 죽고난 후 임금님이 "진락공" 이라는 시호를 하사 하였다고 한다.

 

< "이자현" 스님 유골을 모시고 있는 부도탑 >

 

이 부도탑 앞에는 차와 음식을 판매하는 새로운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 건물의 전면에는 아무런 단층이나 색칠을 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2층의 정자 한채가 자리하고 있는데, 너무나 아까운 건물이 되어진다.

 

<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정자" >

 

좌측으로 흐르는 계곡 물과 함께 무아지경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계곡에는 거대한 소(沼)를 품고 있는 높이 약 10m "구송폭포(九松瀑布)" 를 만나는데, 이 구송폭포 주변으로 9개의 소나무가 자란다고 하여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 9개의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구송폭포" 전경 >

 

구송폭포 옆에는 평양공주가 하루밤 머물었다는 동굴 하나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동굴에 앉아 구송폭포의 진가를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자라하고 있지만 동굴이 너무나 협소하여 한사람만 겨우 머물수 있는 매우 작은 동굴이 되어진다.

 

< 구송폭포 앞에 있는 "공주굴" >

 

이 구송폭포 아래에 2개의 물줄기가 갈려져서 떨어지는 작은 폭포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계곡 미(美)를 구경하면서 조금 더 내려가면 도로 가장자리에 거대한 거북바위가 자리하고 있는데, 그 바위 주변으로 많은 연인들이 돌탑을 쌓으면서 애정을 돈독하게 하고 있다.

 

< 구송폭포 앞 2개의 갈래로 떨어지는 "폭포" >

 

< 애정을 돈독하게 만드는 "거북바위" >

 

이 거북바위에서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면 개울가에 상사뱀을 앉고 있는 평양공주 동상이 자리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뱀을 앉고 있는 평양공주는 당 태종의 딸로써 평양공주를 사랑하는 한 청년이 태종으로 부터 죽임을 당하여 청년은 상사뱀으로 변하여 공주의 몸에서 살아갔다고 한다.

 

< 상사뱀을 앉고 있는 "평양공주" 동상 >

 

당나라 궁궐에서 상사뱀을 때어 낼려고 여러 방법을 시도하였지만 별 효염이 없어, 공주는 궁궐을 나와 떠돌아 다니다가 한국의 청평사에 도착하여 공주굴에서 하루밤 유숙하고 나서 사찰로 올라가 공주탕에서 몸을 깨끗이 씻었다고 한다.

공주는 스님의 옷이 되는 가사를 만들어서 올렸고 그의 보답으로 상사뱀은 공주와의 인연을 끊고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였는데, 이 사실을 당나라에 연락하므로 당나라에서 사찰을 크게 고쳐 짖고 구송폭포 계곡 언저리에 3층석탑을 건립하였다고 하지만 3층석탑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치므로 그냥 하산하기로 한다.

평양공주의 동상을 지나면서 아름다운 계곡을 옆으로 하면서 혼자 한참을 걸어 내려가면 청펑사로 들어가는 매표소 건물을 만나고, 연이어 많은 상가들이 도열하고 도로 따라 걸어서 내려가면 조그마한 청평교를 건넌다.

 

< "봄" 을 기다리고 있는 청평사 계곡 >

 

< 청평사를 구경하기 위해 "입장권" 을 구입하는 매표소 >

 

청평교를 건너자 마자 또 다시 비닐하우스로 만든 상가가 도열하고 있는데, 한 식당에서 Guide를 포함하여 다수의 일행들이 하산주를 즐기고 있다가 나를 반갑게 마중하면서 한잔의 막걸리를 권하므로 단숨에 갈증을 해소시켜 본다.

 

< 하산주를 판매하고 있는 "비닐하우소" 식당 >

 

그러고 나서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도착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대구로 출발하기로 하는데, Guide는 내려가면서 식당 마다 한산주를 즐기는 일행에게 연락을 취하면서 청평사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 "청펑사 주차장" 으로 올라가는 일행 >

 

그런데 이곳 청평유원지 인접지역 까지 소양호에서 배로 들어오는 선착장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현재는 강원도 지역의 극심한 가뭄으로 선착장이 댐의 하류로 내려가므로 20여 분 정도 더 내려가야 선착장에 도착하여 진다는 상가주인의 한숨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어진 시간에 맞추어 출발하는 버스는 오봉산 정상 언저리에서 보았던 배치고개를 넘어 배후령 터널 방향으로 운행하면서 접근하는데, 멀리 앞산에서 산불이 일어나 도로 주변까지 연기가 날아오는 불상사가 펼쳐진다.

강원도에서도 극심한 가뭄으로 인하여 산불이 일어나면 진화하기가 난이하므로, 불조심을 생활화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끝-